아! 형산파 233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0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233화
233화. 평범하지 않은 여자 (2)
“재미있는 사람이구나.”
“미친 사람이에요. 생각도 하지 마세요, 아가씨.”
적운상이 소면을 파는 곳으로 가는 걸 흥미롭게 보고 있던 그녀의 곁으로 행색이 초라한 중년남자가 슬쩍 다가왔다. 생김새도 그렇고 옷차림도 평범해서 특출하게 눈에 뜨이는 점이 전혀 없었지만 눈빛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무공이 절정에 오른 고수의 눈빛이었다.
“괜찮습니까, 군주님?”
“괜찮아요.”
“위험한 자입니다. 그냥 보내십시오.”
“아는 사람인가요?”
“아닙니다. 모르는 자입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이야기하는 거죠?”
그녀가 묻는 말에 사내가 대답을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아까 저자는 저희가 군주님을 호위하고 있다는 것을 바로 알아챘습니다. 그래서 경고를 보냈는데, 그는 그걸 알면서도 모른 척하면서 군주님에게 다가갔습니다.”
“왜 가만 놔뒀죠?”
“자신이 없었습니다. 저희 여덟 명이 목숨을 걸고 덤빈다 해도 이길 확률은 겨우 반 정도였습니다. 싸우면 군주님께서도 무사하시지 못했을 겁니다. 그래서 그가 손을 쓰지 않는다면 나서지 않기로 한 겁니다. 저희는 군주님의 안전이 최우선입니다.”
그가 하는 말을 들으면서 그녀는 크게 놀란 기색을 그대로 드러냈다. 사실 그녀는 공주였다. 그것도 십여 명의 공주들 중에서 황제의 총애를 가장 많이 받고 있는 진녕공주였다.
지금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서 은근히 주위를 배회하고 다니는 고수들도 황제가 직접 골라서 보낸 사람들이었다. 그런 만큼 그들의 무공은 황궁에서도 견줄 자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렇게 강한 사람들이, 한 명도 아니고 여덟 명이 같이 덤벼도 당해낼 자신이 없다고 하니 당연히 놀랄 수밖에 없었다.
“허면 그를 붙잡아야 하지 않나요? 나라에 크게 도움이 될지도 모르는 사람이잖아요. 나이도 젊어 보이던데.”
“그렇기는 하지만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위험합니다. 저자가 군주님을 해하려고 마음먹으면 저희들로서는 지켜드릴 자신이 없습니다.”
“그가 정말 그렇게 강한가요?”
“혹시 반박귀진(返璞歸眞)에 대해서 들어보셨습니까?”
“물론이에요. 무공이 높은 경지에 오르면 기운을 완전히 안으로 갈무리하기 때문에 얼핏 보통 사람과 똑같이 보이는 것을 말하는 거 아닌가요? 맙소사. 그럼 설마 그가…….”
“그렇습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마 그럴 겁니다. 저희는 그가 다섯 걸음 안에 들어와서야 군주님께 접근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습니다. 그 전에는 전혀 의식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길을 오가는 행인이라고만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이전에 저희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한시도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고 진녕공주에게 접근하는 사람들을 경계했다.
혹여 누군가 잠시 긴장이 풀렸다고 해도 이들은 모두 여덟 명이었다. 나머지 사람들까지 긴장을 풀었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도 적운상이 접근하는 걸 몰랐다니, 반박귀진의 경지에 오른 것이 틀림없었다.
진녕공주가 소면을 파는 곳에서 이마대와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적운상을 쳐다봤다.
“그에 대해서 알아봐요.”
“그냥 모르는 척 넘기는 것이 좋습니다. 강호의 고수들은 종잡을 수가 없고 위험합니다.”
“그래도 알아봐요.”
사내가 진녕공주를 쳐다봤다. 단순한 호기심이 아닌 것 같았다.
“후우……. 알겠습니다. 그럼 막내를 남겨서 알아보라 하겠습니다. 하지만 큰 기대는 하지 마십시오.”
“알았어요. 그 정도면 충분해요.”
진녕공주가 허락하자 사내가 길가에 거지꼴을 하고 쭈그리고 앉아 있던 사내에게 눈짓을 했다. 그러자 그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이제 가시지요.”
“그래요.”
진녕공주는 발걸음을 옮기면서도 조금 아쉬운 듯 적운상을 힐끔 한 번 쳐다봤다.
* * *
이마대는 아까 먹다 남긴 소면을 한 번에 후루룩 빨아들였다. 그러고는 신경질적으로 그릇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생각지도 못하게 소면을 파는 중년여인이 한 그릇을 더 내밀었다.
“이게 뭐냐? 난 시키지 않았다.”
“안 돼 보여서 드리는 거예요. 이건 계산하지 않아도 되니까 먹고 힘내세요.”
중년여인이 웃으면서 하는 말에 이마대는 얼굴이 새빨개졌다. 하는 말을 들어보니 처음부터 전부 보고 있었던 것 같았다. 이마대는 인상을 팍 찌푸리면서 중년여인이 내민 소면을 빼앗다시피 하면서 낚아채더니 몇 젓가락 만에 싹 비워버렸다.
그걸 보고 적운상이 미소를 지었다.
“뭐냐? 왜 그런 눈으로 보는 거냐? 고소하다 이거냐?”
“아니오. 그럴 리가 있겠소.”
“흥!”
“이 대협.”
“왜?”
“소면을 파는 여자가 방금 웃으면서 호의를 베풀었소.”
“그게 뭐가 어쨌다는…….”
말을 하던 이마대는 뭔가 깨닫는 것이 있었다. 길가를 오가는 여자들은 말을 붙이기가 무섭게 모두들 도망가 버렸다. 그러데 저 여인은 웃으면서 소면까지 한 그릇 더 줬다. 그것도 공짜로 말이다.
이마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중년여인에게 다가갔다.
“방금 왜 나한테 그런 거냐?”
“후훗! 아까 말했잖아요. 너무 딱해서 그렇다고. 그래도 그 용기가 대단하네요.”
“끙.”
이마대가 살짝 인상을 찌푸리다가 그녀의 손에 은자를 하나 쥐어줬다. 그러자 그녀가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소면 두 그릇은 몇 푼 하지 않는다. 더구나 오늘 판 것도 몇 그릇 되지 않았다. 이렇게 은자를 받으면 거슬러 줄 돈이 없었다.
“저, 저기 이렇게 큰돈을 주시면…….”
“됐어. 넣어둬.”
이마대가 입가를 올려 미소를 지으면서 말하고는 적운상에게 다가왔다. 그러자 적운상도 미소를 지었다.
“바로 그거요.”
“뭐?”
“방금같이 웃으시오.”
“…….”
이마대가 멍하니 적운상을 봤다. 그러자 적운상이 설명을 덧붙였다.
“당분간 그렇게 계속 웃으시오. 특히 여자를 대하면 더욱이 그래야 하오. 그리고 부드럽게 말하시오. 점잖게. 직위에 맞게 말이오. 할 수 있겠소?”
“물론이다. 그 정도야 쉽지.”
“그렇게 쉽지만은 않을 거요. 갑시다.”
“어디를?”
“따라오시오. 이제부터는 군말 없이 내가 하자는 대로 한다고 하지 않았소?”
이마대는 약속한 것이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적운상이 가자는 대로 따라갔다.
적운상은 느긋하게 걸음을 옮기다가 길가에서 그림을 파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키는 크지만 삐쩍 마르고 염소수염을 기른 주인이 웃으면서 반겼다.
“어서 오십시오. 그림을 사시렵니까?”
“아니오. 사려는 게 아니라 그림도 그려주나 해서 왔소.”
“물론입니다. 원하시면 어떤 그림이든 그려드립니다. 하지만 돈이 조금 들 겁니다. 멀리 가야 하는 일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가끔 어디에 가서 뭐를 그려달라고 하고는 소식도 없이 내빼는 손님들이 있었기 때문에 주인은 미리 돈 이야기부터 했다. 적운상이 그것을 눈치채고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말했다.
“돈은 걱정 마시오. 그림만 잘 그려준다면 후하게 쳐주겠소.”
“그렇다면야 뭐……. 그런데 뭘 그려드리면 되는 겁니까?”
“사람을 그려주시오.”
“아, 그러시군요. 사람을 그릴 때는 그리는 부위에 따라 가격이 다릅니다. 일단 얼굴만 그리는 게 제일 쌉니다. 상반신까지 그리는 건 그보다 조금 비싸고, 몸 전체를 그리는 게 가장 비쌉니다. 거기에 풍경까지 그려달라고 하시면 조금 더 가격이 올라갑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생각보다 체계적으로 장사를 하는 것 같았다. 적운상은 그런 주인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몸 전체를 그려주시오. 대신에 값을 조금 더 쳐주겠소.”
적운상의 말에 주인의 입이 헤벌쭉 벌어졌다. 보아하니 무인 같은데, 돈이 많은 것 같았다. 무인들은 돈보다 무공을 중요시여기기 때문에 돈을 물 쓰듯이 쓰는 사람들이 많았다. 적운상도 그런 부류라 여긴 것이다.
“하하. 알겠습니다. 이쪽으로 앉으시지요.”
주인이 싹싹하게 굴면서 자리를 권했다. 그러자 적운상이 거기에 앉아서 옆에 서 있는 이마대를 가리켰다.
“이 사람을 그려주시오. 하지만 그냥 그리지 말고 최대한 꾸며서 그려주시오. 하지만 사람을 못 알아볼 정도로 터무니없으면 안 되오. 머리모양을 바꿔도 좋고, 수염을 그려도 되오. 옷도 알아서 최대한 잘 어울리는 걸로 그려주시오.”
“아하……. 연서를 보내실 때 같이 보내시려는 군요. 하하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서시도 한 번 보면 목을 맬 정도로 그려드리겠습니다.”
가끔 흠모하는 여인에게 서찰을 전하면서 자신의 그림까지 보내는 사내들이 있었다. 그러면 보통 있는 그대로를 그린 그림이 아니라 약간 잘난 듯 꾸면서 그리기 마련이었다.
몇 번 그런 그림도 그려봤기에 주인은 호언장담을 하면서 이마대를 봤다. 그러고는 인상을 살짝 찌푸리면서 방금 한 말을 번복했다.
“음……. 쉽지는 않겠군요.”
그 말에 이마대의 눈빛이 험악하게 변하자 주인이 움찔하며 몸을 움츠렸다.
“돈을 배로 주겠소.”
“네? 하하. 오해하지 마십시오. 어디까지나 쉽지가 않다는 거지 그리지 못한다는 게 아닙니다. 맡겨만 주십시오.”
“직접 그리는 거요?”
“이래 보여도 붓을 잡은 지 삼십 년이 넘었습니다.”
“좋소. 잘 부탁하오.”
주인은 이마대에게 얼굴을 가까이하고 이리저리 뜯어보다가 그리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반 시진 정도가 지나자 드디어 그림이 완성됐다.
“다 됐습니다. 한 번 보시지요.”
주인이 내민 그림을 보고 이마대가 눈을 부릅떴다.
거기에는 건(巾: 모자)을 쓰고 수염을 덥수룩하게 길렀지만 깔끔하고 순한 인상의 이마대가 그려져 있었다. 발목까지 내려오는 포가 바람에 나부끼는 모습이 제법 그럴듯해 보였다.
적운상이 보기에도 상당히 괜찮았다.
“좋군. 마음에 드오.”
“하하하.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입니다.”
“어떻소? 마음에 드시오?”
“음…….”
이마대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썩 만족하고 있다는 것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다.
“그림 값을 치르시오.”
“또 나냐?”
“이 대협을 위해서 하는 일 아니오? 게다가 아까 약조한 것을 잊었소?”
“끙. 알았다.”
이마대가 자리에서 일어나 주인에게 후하게 값을 치렀다. 그리고 적운상을 따라가면서 물었다.
“이 그림은 어디에 쓰려고 그러는 거냐?”
“그 그림을 보고 똑같이 되시오.”
“뭐?”
그제야 이마대는 적운상이 자신의 외모를 바꿔주기 위해서 그랬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은 꾸미기 나름이오. 속도 겉도 마찬가지요. 그림 속의 이 대협을 보시오. 그는 다른 사람이 아니오. 바로 이 대협이오. 그런데도 실물의 이 대협과 차이가 많이 나지 않소?”
이마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자 적운상이 말을 계속했다.
“원하는 걸 얻으려면 노력하면 되오. 하지만 이 대협은 지금까지 노력을 하지 않았소. 내가 이 대협이었다면 가장 먼저 스스로를 바꾸고자 했을 거요. 이 대협은 자신의 외모가 추하다는 이유로 먼저 포기를 하고 아예 그럴 생각조차 하지 않았소. 그래서는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오.”
적운상이 하는 말을 들으면서 이마대는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랬던가? 나는 지금까지 그냥 바라기만 하고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았던가?’
그런 생각이 들자 후회가 들었다. 스스로의 어리석음에 한탄이 절로 나왔다.
“그랬었군. 그랬었어.”
“아직 늦지 않았소. 내가 적극 도움을 줄 테니 같이 한번 해봅시다.”
“너……. 생각보다 좋은 녀석이었구나.”
“하하하. 그걸 이제야 알았소?”
“좋다. 나 이마대가 너한테 은혜를 입었다. 고맙다.”
이마대가 그렇게 말하면서 적운상에게 포권을 취했다. 이마대는 못생기고 거칠지만 사람의 도리를 모르지는 않았다. 생각지도 못한 일에 적운상이 다급하게 그를 말렸다.
“이러지 마십시오, 이 대협.”
“이 대협이라 부르지 마라. 나는 너에게 대협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다.”
“그럼 뭐라고 부르는 게 좋겠소?”
“형님이라고 불러라.”
적운상이 잠시 망설이는 눈치를 보이자 이마대가 왈칵 화를 내면서 소리쳤다.
“왜? 싫으냐? 무공으로 보나 나이로 보나 내가 당연히 형님이지. 그럼 네가 형님 할래?”
나이로 보는 건 맞지만 무공은 아니었다. 마음만 먹으면 적운상은 언제든 십 초식 이내에 그를 무릎 꿇릴 수가 있었다.
“훗! 아니오. 앞으로 형님으로 모시겠소.”
적운상이 포권을 취하면서 말하자 이마대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 좋다. 좋아. 오늘 같은 날 술이 빠질 수 없지. 가자. 내가 거하게 한 잔 사마.”
이마대가 기분이 좋은지 적운상의 어깨를 탁탁 치더니 앞장을 섰다. 그러자 그들을 안 보는 척하면서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던 거지가 슬쩍 뒤를 따라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