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232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73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232화
232화. 평범하지 않은 여자 (1)
이마대는 눈을 뜨자마자 대충 씻고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그리고 쏜살같이 적운상을 찾아갔다.
적운상은 어제와 다르게 머리를 단정하게 넘기고 옷도 깔끔한 걸로 갈아입은 상태였다. 그걸 보고 이마대가 인상을 팍 찌푸렸다. 못생긴 자신과 너무 비교가 됐기 때문이다.
“어서 오시오.”
“어디로 갈 거냐?”
“항주로 갈 거요.”
“멀다.”
“싫으면 관두시오.”
이마대는 뭐라 한마디만 하면 튕기는 적운상의 말투가 상당히 신경에 거슬렸다. 하지만 아쉬운 놈이 우물 판다고 지금으로서는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좋다. 가자.”
적운상은 이마대의 안내를 받으며 밖으로 향했다. 중간에 몇몇 시비들이 적운상을 보고 얼굴을 살짝 붉히면서 지나쳐 갔다. 그걸 보고 이마대는 인상을 팍 찌푸렸다.
‘생긴 것만 반반하다고 다가 아니다. 망할.’
호천마궁을 나와 배를 타고 뭍에 오르자 시끌벅적하니 사람들이 오가는 것이 보였다.
“이제 어디로 가면 되냐?”
“그리 급하게 마음먹지 말고 느긋하게 따라오시오.”
적운상이 그렇게 말하면서 앞장서서 휘적휘적 걸어가자 이마대가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면서 뒤를 따라갔다. 한참이나 대로를 따라가던 적운상은 길가에서 소면을 파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뭐야? 배가 고픈 거냐?”
“아니오. 여기가 자리가 좋아서 그렇소.”
이마대는 적운상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당최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슨 자리?”
“이제 알 게 될 거요. 여기 소면 두 개 주시오.”
적운상이 소면을 파는 뚱뚱한 중년여인에게 소리치자 그녀가 활짝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계산은 네가 해라.”
“생각해 보겠소.”
“흥!”
잠시 후 소면이 나오자 적운상이 그걸 한 번 맛본 후에 입을 열었다.
“이 대협.”
“왜?”
“조혜 소저가 왜 이 대협에게 관심이 없는지 아시오?”
“음…….”
이마대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왜 그 이유를 모르겠는가? 이 추한 외모 때문이 아니던가? 하지만 자격지심 때문에 자신의 입으로 그걸 말하기가 싫었다. 그래서 입을 꾹 다물고 있는데 적운상이 콕 찔러서 말했다.
“혹시 얼굴이 조금 추한 것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하면 틀린 거요.”
“뭐야? 그럼 뭐 때문이란 말이냐?”
“이 대협의 본질이 문제요.”
“본질? 어렵게 이야기하지 말고 풀어서 말해라.”
“저기를 한번 보시오.”
적운상이 길을 걸어가는 한 쌍의 남녀를 가리켰다. 이마대가 그들을 유심히 보니 남자는 자신보다 더 못생겼다. 그런데 여자는 상당히 미인이었다. 두 사람은 연인 사이인 듯 꼭 붙어서 걸어가고 있었다.
“음…….”
“이유를 알겠소?”
대충 짐작은 갔다. 저런 놈도 미인과 다니는데 자신이 뭐가 부족해서 그러느냐, 뭐 대충 그런 뜻이리라 싶었다.
“남자가… 돈으로 여자를 샀겠지.”
“그럼 저들은 어떻소?”
이번에 적운상이 가리킨 연인들은 아까와는 정반대였다. 여자는 굉장히 못생겼는데 남자는 헌헌장부(軒軒丈夫)였다.
“여자가 돈이 많나 보지.”
“허 참……. 그게 아니오. 두 사람의 행색을 보시오. 그리 잘사는 사람들이 아니지 않소.”
“모르겠다. 도대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뭐냐?”
“기분 나빠하지 않고 듣는다면 이야기하겠소.”
이마대는 지금까지 계속 기분이 나빠서 더 나빠질 것도 없었다.
“말해봐라.”
“이 대협의 가장 큰 문제는 이 대협 자체에 있소. 외모는 극히 부수적인 거요. 저들이 외모와 상관없이 저렇게 어울릴 수 있는 건 그들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기 때문이오. 하지만 이 대협에게는 그런 것이 없소.”
“매력?”
이마대는 적운상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런 이야기는 처음 들었다. 정말 적운상의 말대로 뭔가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소. 스스로 한번 생각해 보시오. 이 대협에게 여자가 좋아할 만한 것이 있는지 없는지. 외모야 그렇다 쳐도 내가 보기에 성격도 거칠고 말투도 좋지 않소. 그런데도 조혜 소저 앞에서는 고양이 앞의 쥐처럼 굴지 않소? 자, 그럼 입장을 바꿔놓고 한번 생각해 봅시다. 이 대협이 조혜 소저라면 그런 사람을 좋아하겠소? 아니, 관심이라도 가겠소? 그런데도 자꾸 쫓아다니면 어떤 생각이 들 것 같소?”
적운상의 말을 듣는 동안 이마대는 움켜쥔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다. 아무리 사실이라고 해도 저렇게 대놓고 말하면 화가 나는 법이다. 생각 같아서는 한 대 치고 싶었지만, 화를 내지 않겠다고 미리 약속을 했기 때문에 꾹 눌러 참았다.
“그래서 뭐가 어떻다는 거냐?”
“방금 문제점을 말하지 않았소? 바꿔 생각하면 그걸 고치면 된다는 거요.”
“하아……. 정말, 그런 걸로 조혜 소저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까?”
금방이라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던 이마대가 갑자기 한숨을 푹 내쉬면서 물었다.
“충분히 가능하오.”
“자신하냐?”
“적어도 지금보다는 훨씬 나을 거요.”
“음, 좋다. 그럼 구체적인 방법을 말해봐라.”
“간단하오. 지금 길을 오가는 여자들 중 아무나 붙잡고 말을 거시오.”
“무, 무슨 말을 걸라는 거냐?”
“뭐든지 좋소. 그렇게 해서 여자가 웃으면 되는 거요.”
이마대가 실눈으로 뜨면서 적운상을 노려봤다. 정말 그런 걸로 되는 건지를 묻는 눈이었다. 적운상은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해보시오. 결코 쉽지 않다는 걸 알 것이오.”
“좋다.”
이마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성큼성큼 길을 가고 있는 한 여인을 향해 걸어갔다.
“험! 잠시 멈추시오.”
이마대가 앞을 막아서자 여인이 흠칫 놀란 얼굴을 하더니 비명을 질렀다.
“꺄악!”
대로에서 갑자기 비명 소리가 들리자 오가는 사람들이 모두 이마대를 쳐다봤다. 이마대가 황당해하면서 여인에게 다시 뭔가를 말하려고 했지만 여인은 이미 휑하니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두 번째 시도도 첫 번째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다른 것이라곤 비명 대신 그냥 도망쳐버렸다는 것뿐이었다. 세 번째, 네 번째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열이 받은 이마대는 이제 상대를 가리지 않았다. 젊은 여자들은 물론이고 아줌마나 할머니까지 붙잡고 말을 걸었다. 하지만 말을 꺼내기도 전에 전부 잔뜩 겁을 먹고 도망치기에 바빴다. 심지어 그 자리에서 실신해버린 여자도 있었다.
이쯤 되자 이마대는 오기가 생겼다. 어떻게든 반드시 성공시키리라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오히려 더 역효과였다. 그렇잖아도 추한 얼굴로 험악한 기운을 뿜어대니 여인들이 겁을 먹고 있었는데 거기에 더해 이제는 눈빛까지 사나워졌으니, 아예 멀리서부터 슬금슬금 피해갔다.
소면을 먹으면서 그걸 보고 있던 적운상은 혀를 찼다. 하는 행동을 보니 지금껏 연애라고는 한 번도 못 해본 것 같았다.
잠시 후, 이마대가 씩씩대면서 돌아왔다. 그는 잔뜩 화가 난 표정이었다.
“뜻대로 잘 안 될 거라고 하지 않았소.”
“시끄럽다. 그러면 네가 해봐라.”
“이 일은 나를 위해서 하고 있는 게 아니오.”
“흥! 닥치고 저기 저 여자를 네가 말한 대로 웃게 만들어봐. 그럼 네가 하자는 건 뭐든 군말 않고 따르겠다.”
적운상이 이마대가 가리키는 여자를 보니 명문가의 규수 같은 아가씨가 시비를 데리고 이것저것 구경을 하고 있었다. 워낙에 미모가 뛰어나서 주위를 어슬렁대는 사내들도 몇 명 있었다. 그러다 마침 한 명이 용기를 내서 말을 걸었다가 보기 좋게 퇴짜를 맞고 물러났다.
“좋소. 방금 말한 것 잊지 마시오.”
“나는 한 입으로 두말하지 않는다.”
이마대가 가슴을 탕탕 치면서 말했다. 그걸 보고 적운상이 씨익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여자가 있는 곳으로 갔다.
여자는 가까이서 보니 생각보다 더 예뻤다.
하지만 적운상의 관심을 끈 건 그녀의 미모가 아니었다. 그녀를 지키려는 듯, 주위에서 보이지 않게 뻗어 나오는 기운들이었다.
너무나 은은해서 보통 사람들은 절대로 알 수 없었다. 무공을 한다 해도 웬만한 고수가 아니고서는 잡아낼 수가 없을 정도였다.
적운상이 그들이 위치를 파악했다. 모두 여덟 명이었다. 그들은 행인들로 위장하고 사람들 틈에 숨어 있었다.
그때 그들 중 한 명이 적운상이 여자에게 접근하는 것을 알아챘다. 그러자 여덟 명의 시선이 동시에 적운상에게 향했다. 끈적끈적한 기운이 몸에 눌어붙는 기분이었다.
그것은 경고였다. 그녀에게 더 이상 다가가지 말라는 뜻이었다.
적운상은 그런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여자에게 계속 다가갔다. 그러자 마치 생사대적을 앞에 두고 싸울 때처럼 팽팽한 긴장감이 형성되었다. 그들이 일부러 스스로를 드러낸 것이다.
그쯤 되면 이제 칼 든 무인이라면 누구나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한 번 더 경고를 하기 위해서 그런다는 걸 적운상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적운상은 여전히 그들을 무시하며 여자에게 다가가 포권을 취했다.
“잠시 실례하겠소.”
“또 뭐죠?”
대답은 여자가 아니라 옆에 있는 시비한테서 나왔다. 여자의 앞을 막아서고 허리에 양손을 척하니 걸치고 있는 모습이 상당히 고압적인 자세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게 도대체 몇 번째인지 몰랐다. 웬 남자들이 이리도 달라붙는지 이제는 짜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물론 그녀가 모시는 아가씨의 외모가 뛰어나서 그랬지만, 그렇다 해도 귀찮은 건 귀찮은 거였다.
시비는 적운상도 아가씨의 외모 때문에 접근했다고 여겼다. 그래서 그렇게 나선 것인데 적운상의 잘생긴 얼굴과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예사롭지 않은 박력을 대하자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 떨면서 물러났다.
그러자 그녀의 뒤에 있던 여인이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물러나거라. 네가 상대할 분이 아니다.”
“네, 공… 아가씨.”
시비가 옆으로 물러나자 여인이 적운상을 보며 물었다.
“무슨 일이죠?”
적운상은 잠시 그녀를 살펴봤다. 평범하지만 굉장히 비싼 재질로 된 옷을 입고 있었다. 장신구도 몇 개 달고 있지 않았지만 정교한 무늬나 박혀 있는 보석을 보면 하나같이 값을 따질 수 없는 것들이었다. 거기다 생긴 것은 백수연만큼이나 예뻤고,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이 느껴졌다.
가장 중요한 것이 그거였다. 다른 건 무시할 수 있었지만 사람을 아래로 내려다보는 눈에서 느껴지는 위엄은 감히 무시할 수가 없었다.
저런 건 배운다고 해서 어떻게 되는 것이 아니었다. 날 때부터 그렇게 커왔기 때문에 그런 것이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상대가 누구던가? 적운상이었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느껴지는 박력에 웬만한 고수들조차 몸이 움츠러든다. 그런데도 그녀는 오히려 위엄을 내보이며 찍어 누르고 있었다.
적운상은 문득 그녀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하지만 지금은 멀리서 지켜보고 있는 이마대 때문에 빨리 목적만 달성하고 돌아가는 것이 좋았다. 더구나 아까부터 주위에서 느껴지는 여덟 개의 살기가 이제는 극에 달하고 있었다.
“부탁이 있어서 왔소.”
“하아……. 무슨 부탁이죠?”
그녀가 안 들어도 알겠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면서 물었다. 미모에 혹해서 다가와 이런 식으로 말하는 남자가 도대체 몇 번째인지 셀 수도 없었다. 그들과는 조금 다른 독특한 분위기가 느껴져서 잠시나마 아니라고 여겼는데 저렇게 말하는 것을 보니 똑같았다.
“한 번만 웃어주시오.”
“네?”
생각지도 못한 말에 그녀가 멍하니 적운상을 봤다. 또 수작을 걸려고 온 사람이겠거니 했는데, 갑자기 웃어달라니 그런 말을 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한 번만 웃어준다면 그냥 가겠소. 하지만 웃지 않겠다면 계속 따라다니면서 귀찮게 할 거요. 아마 지금까지 달라붙었던 놈들보다 몇 배는 더 귀찮을 거요.”
“풋! 아하하하.”
일부러 웃을 필요도 없이 여인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걸 보고 적운상이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포권을 취했다.
“고맙소. 그걸로 됐소.”
아까 말한 대로 미련 없이 돌아가는 적운상을 보면서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