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231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5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231화
231화. 중책(重責) (2)
“비 오라버니가 그럴 줄은 정말 몰랐어요. 저는 정말 큰마음 먹고 갔던 건데. 어찌나 화를 내면서 매몰차게 내치던지, 분해서 눈물까지 났었어요.”
적운상이 작게 한숨을 내쉬면서 밥을 입에 떠 넣었다. 아마 자신이 조비였다고 해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저 개념 없는 아가씨를 상대하려면 그런 방법밖에 없었다.
“어여쁜 소녀의 마음을 어떻게 그렇게 짓밟을 수가 있죠? 네?”
“응.”
적운상이 건성으로 대답하면서 계속 밥을 먹었다. 그런데도 조완은 한참이나 나불나불 떠들어댔다. 그러다 적운상이 밥을 거의 다 먹었을 때쯤이 되자 갑자기 탁자를 탕 소리가 나도록 내려치면서 벌떡 일어났다.
“왜?”
적운상이 그녀를 올려다봤다. 그러자 조완이 적운상을 뚫어져라 보다가 얼굴을 점점 가까이 했다. 조완 같은 미녀가 그런 행동을 하면 당연히 좋아해야 하거만 적운상은 그렇지 않았다. 인상을 팍 쓰며 고개를 슥 뒤로 뺐다.
“흐음……. 아무리 봐도 비 오라버니가 더 나은데.”
조완이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아니에요. 오늘 저녁에 시간 있죠?”
“…….”
“하긴, 어디 갈 데도 없으니까. 저녁때 누구를 좀 데리고 올게요.”
적운상이 잠시 그녀를 보다가 그러지 말라고 이야기하려는데 그녀가 먼저 말을 꺼냈다.
“적 오라버니한테도 좋은 일이에요. 그러니까 아무 말 말고 그렇게 해요.”
그 말을 끝으로 조완은 바구니를 챙겨서 휑하니 방을 나갔다.
* * *
저녁때가 되자 조완은 정말 누군가를 데리고 왔다. 그것도 한 명이 아니라 세 명이나 데리고 왔다. 게다가 모두 여자들이었다.
아직 늦은 밤이 아니라 초저녁이어서 예의에 어긋나는 건 아니었지만 난데없이 여인들이 그렇게 찾아오자 편하지가 않았다. 더구나 그 세 명은 모두 조완의 배다른 언니들이었다.
그녀들은 방으로 들어와서 적운상을 보더니 얼굴을 붉혔다. 적운상은 조금 떨떠름한 얼굴로 자리를 권했다. 그러자 세 명이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았다.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저는 조혜라고 해요.”
“저는 조연이에요.”
“저, 저는……. 저는 조해월이에요.”
조혜는 조황인의 둘째 첩의 딸이었고, 조연은 조혜의 동생이었다. 그리고 조해월은 다섯째 첩의 딸이었다.
“적운상이오. 이 밤에 찾아온 이유가 뭐요?”
적운상이 다짜고짜 용무부터 물었다. 그러자 조혜가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그녀는 예쁘기는 하지만 오만한 구석이 있었다. 하지만 적운상 앞이라서 최대한 조심을 했다. 그랬기에 인상만 살짝 쓰고 만 것이다.
사실 그녀들이 이렇게 온 이유는 소문 때문이었다. 적운상이 와서 조황인에게 덤벼들었다는 것은 이미 알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조비와의 친분 때문에 목숨만 간신히 건졌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적운상은 그리 관심을 받지 못했었다.
하지만 조황인이 적운상과 겨룬 이후에 난데없이 폐관수련을 하자 사람들은 모두 그것을 이상하게 여겼다. 그런데 거의 한 달 만에 폐관수련을 끝내고 나온 조황인이 적운상을 불러서 십대의 대주를 맡으라고 한 것이다.
지금까지 십대의 대주 자리는 계속 비어 있었다. 그 이유를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조황인이 적운상에게 대주 자리를 맡겼다는 건 그만큼 믿는다는 뜻이었다.
조황인에 대해서 좀 아는 사람들은 그가 적운상을 시험하려 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그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었다. 그의 눈에 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노력을 하는지 모른다. 그런데도 그는 그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소문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적운상을 본 시비들이 그 독특한 분위기와 잘생긴 얼굴에 반해 비몽사몽하며 입방아를 찧어댔다.
그러자 그 주인들이 적운상에 대해 궁금하게 여겼다. 도대체 어떤 사내이기에 그러는지 한 번 보고나 싶었다.
이에 가장 먼저 관심을 가지고 움직인 것이 바로 여기 있는 세 여인들이었다. 그녀들은 이곳에 오기 전에 먼저 조완을 불러다가 적운상에 대해서 물었다.
조완은 적운상에 대해서 침을 튀겨가면서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적운상과의 친분에 대해서 자랑을 하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조완이 조비를 좋아한다는 건 그녀들도 알고 있었다. 지금껏 조완은 조비 말고 다른 남자는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그런 조완이 그리 칭찬을 하자 궁금증이 일어 미칠 지경이 되었다.
게다가 조완이 화제의 중심에 있는 적운상과 그렇게 가까이 지낸다는 것이 배가 아팠다. 여인들의 알량한 질투심이었다.
그래서 결국 부탁 반, 협박 반, 조완을 다그쳐서 적운상의 방에 함께 온 것이다. 그런데 직접 눈으로 보니 소문이 과하지 않았다.
적운상은 잘생겼다. 선이 얇아서 남자답게 강한 얼굴은 아니었지만 이목구비가 뚜렷했고 풍기는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았다. 가만히 앉아 있는데도 무슨 이유에선지 기가 눌렸다. 그래서 방금과 같이 거침없이 말하는데도 말대꾸는커녕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저 인상만 살짝 찌푸리는 것이 다였다.
“소문을 듣고 꼭 한번 만나고 싶었어요. 그래서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온 거예요. 폐가 되었나요?”
조혜가 적운상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했다. 당돌한 눈빛 안에 총명함이 엿보였다.
“아니오. 나야 이렇게 미인들과 함께 술을 마실 수 있으니 좋군. 완 매 덕분이야.”
“헤헤. 그렇죠? 선남선녀는 만나라고 있는 거라고요. 적 오라버니가 기뻐해서 다행이에요.”
솔직히 기쁜 것이 아니라 귀찮았다. 낮에 확실히 붙잡아두고 물어본 후에 하지 말라고 이야기를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적 공자에 대해서 궁금해해요. 궁내 어디를 가나 적 공자 이야기뿐이에요.”
조혜가 하는 말에 적운상이 살짝 미간을 좁혔다. 그런 줄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조비나 조완이나 그런 것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일언반구도 없었다.
“어머, 모르고 계셨군요.”
“그렇소. 나에 대해서 무슨 이야기가 돌고 있는 거요?”
“당연히… 능력이 대단해서 아버님의 마음에 들었다는 것과 또…….”
굉장히 잘생겨서 먼발치에서라도 본 여인들이 가슴 설레어한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조혜는 초면에 그런 말을 할 정도로 예의가 없지도 않았고, 뻔뻔하지도 못했다.
“잘생겼대요. 적 오라버니 보려고 시중을 들려는 시비들의 경쟁이 얼마나 치열하다고요.”
조완이 말을 척하니 받아서 대신 말했다. 그러자 여인들이 얼굴을 살짝 붉혔다. 조완이야 그런 말을 해도 부끄러울 것이 없었지만 그녀들은 그렇지 않았다. 방금 조완이 한 말은 적운상이 잘생겨서 자신들이 보러 온 것을 그대로 이야기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랬었군. 어쨌든 관심을 갖고 이렇게 찾아와줘서 고맙소.”
적운상이 인사치레의 말을 하자 여인들이 당황하면서 급히 예를 갖추었다.
“아니에요. 실례가 안 되었다니 다행이에요.”
“맞아요. 말도 없이 불쑥 찾아왔는데.”
적운상은 웃으면서 그녀들을 봤다. 그러자 그녀들이 살짝 얼굴을 붉혔다. 그렇게 분위기가 좀 풀리자 서로 편하게 대화가 오고가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면서 추하게 못생긴 사내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를 보고 조혜가 인상을 팍 찌푸렸다.
그는 칠대(七隊)의 대주 이마대였다. 조혜를 보고 첫눈에 반해서 그녀에게 계속 열렬하게 구애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조혜는 그를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무공이 뛰어나고 대주이기는 하지만 조황인의 딸인 그녀에게는 별 매력이 없었다. 게다가 저 추하게 못생긴 얼굴은 혐오스럽기까지 했다.
“무슨 일이죠?”
“아, 아니오. 나는……. 당신에게 볼일이 있어서 온 것이 아니오.”
“그럼 여기에는 무슨 일로 온 거죠?”
“나는 저자에게 볼일이 있어서 왔소.”
이마대가 적운상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면서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조혜는 이마대가 왜 왔는지 짐작이 갔다. 그는 아마도 자신이 적운상을 보러 간다는 사실을 누군가에게 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저렇게 질투심에 눈이 뒤집혀서 달려온 것이 분명했다.
“내게 무슨 볼일이오?”
“흥! 네가 십대의 대주가 된다는 소리를 들었다. 나와라. 네가 그럴 자격이 있는지 확인해봐야겠다.”
“싫소.”
“겁먹은 거냐?”
“아니오. 쓸데없는 싸움을 하고 싶지 않을 뿐이오.”
“닥치고 나와라!”
“그만둬요!”
보다 못한 조완이 나섰다.
“당신이 나설 자리가 아니오. 이건 사내들끼리 해결할 문제요.”
“뭐가 사내들끼리 해결할 문제라는 거죠? 혜 언니 때문에 와놓고는.”
조완이 직설적으로 이야기하자 이마대가 얼굴을 살짝 붉혔다. 그걸 보고 조완이 코웃음을 쳤다.
“당장 나가요. 그렇지 않으면 비 오라버니에게 다 이를 거예요.”
“소궁주님이 온다고 해도 확인할 건 확인해야겠소.”
“그럼 나중에 해요. 적 오라버니는 아직도 아프다고요.”
“내 알 바 아니오.”
막무가내였다. 적운상은 그런 이마대를 보자 문득 사자왕이 생각났다. 그도 저런 식으로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일이 많았었다.
‘잘 지내는지 모르겠군.’
적운상이 잠시 딴생각을 하자, 그것을 알아챈 이마대가 벌컥 화를 냈다.
“당장 나오지 않고 뭘 하는 거냐? 여자들 치마폭에 숨어 있을 테냐? 부끄러운 줄을 알아라!”
“그만두세요.”
그때 조혜가 나서자 이마대가 몸을 한 번 움찔거렸다.
“이 대협, 당신이 이러는 건 아버님의 말에 불복종을 하겠다는 뜻이란 걸 알고 있나요?”
“그게 무슨 말이오?”
“적 공자는 아버님께 직접 인정을 받았어요. 그런데 당신이 그걸 인정하지 못하고 시험을 하겠다고요? 그 말은 아버님의 결정을 당신이 번복하겠다는 뜻인가요?”
“아, 아니오. 나는 그냥…….”
“게다가 적 공자는 지금 상처도 다 낫지 않은 상태예요. 그런데 겨루자니요? 그렇게 해서라도 이기고 싶은 건가요?”
“아니오. 그게 아니오. 나는 당신이…….”
말을 하던 이마대가 급히 입을 닫았다. 하지만 그 방 안에 있는 여인들은 모두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차렸다. 적운상은 그제야 그가 조혜 때문에 왔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러지들 마시고 앉으시오. 같이 술이나 한잔합시다. 혜 소저도 앉으시오.”
적운상은 은근슬쩍 조혜에게 자리에 앉을 것을 권했다. 그래야 이마대가 앉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니에요. 전 이대로 가겠어요.”
“안 되오.”
“어째서죠?”
조혜가 확 째려보면서 물었다. 적운상이 자신을 이용해서 이마대를 붙잡으려 한다는 걸 알아챈 것이다.
“이대로 가면 내 체면이 어떻게 되겠소?”
“지금 당신 체면 때문에 나를 붙잡는 건가요?”
“그럼 솔직히 말하겠소. 나는 당신이 따라준 술이 마시고 싶소.”
적운상이 웃으면서 하는 말에 조혜가 아미를 살짝 찡그렸다. 그러다 화난 기색을 지우며 물었다.
“그 말, 정말인가요?”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그냥 가도 좋소. 더 이상 잡을 이유가 없으니까.”
“좋아요.”
조혜가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적운상이 이마대를 봤다.
“당신은 어떻게 할 거요? 같이 술을 마시겠다면 자리에 앉고 싫다면 가시오. 계속 대주로서 내 능력이 의심된다면 같이 궁주님에게로 갑시다. 어떻게 하겠소?”
이마대는 잠시 망설이며 조혜를 힐끔힐끔 쳐다봤다. 그러다가 한쪽 자리에 털썩 앉았다.
“잘 생각했소. 자, 한 잔씩들 합시다.”
적운상이 그렇게 말하면서 잔을 들자 모두가 잔을 들었다. 이마대는 영 못마땅한 표정이었지만 분위기가 그러니 어쩔 수가 없었다.
“모두들 만나서 반갑소.”
적운상이 먼저 술잔을 비웠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도 술잔을 비우고 내려놓았다. 그렇게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술자리는 계속 이어졌다.
그러다 밤이 깊어지자 여인들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마대도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걸 적운상이 잡았다. 그러자 이마대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적운상을 봤다.
“뭐냐? 이제 와서 내게 아부라도 하려는 거냐?”
“아부라……. 어떻게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겠군. 어쨌든 나랑 한 잔 더 합시다. 모처럼 술기운이 좀 오르려고 하는데 혼자 마시기가 그렇군.”
“그럼 내가…….”
조완이 남겠다고 말하려고 하자 적운상이 손을 들어 말렸다.
“됐어. 완 매는 그냥 가.”
“치이……. 가요, 우리.”
“호호. 나중에 또 봐요, 적 공자.”
“오늘 즐거웠어요.”
“그럼.”
“살펴들 가시오.”
그녀들이 모두 가고 나자 적운상이 잔을 비웠다. 그리고 이마대에게 내밀었다.
“무슨 뜻이냐?”
“술을 따르라는 뜻이오.”
“네가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흠, 보아하니 혜 소저를 좋아하는 것 같던데.”
쾅!
적운상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마대가 탁자를 내려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잔뜩 흥분한 모습으로 적운상을 무섭게 쏘아봤다.
“한 번만 더 입을 나불거렸다간 죽여 버리겠다.”
“이제부터가 중요한 말인데 듣지 않겠다는 거요? 조혜 소저의 마음을 돌릴 수 있는 방법을 말해 주려고 했는데, 말라고 하니 그만두겠소.”
“뭐?”
생각지도 못한 적운상의 말에 이마대가 되물었지만 적운상은 입을 열지 않았다. 조용히 술을 마시고 요리를 집어 먹었다.
그러자 이마대가 안달이 났다.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기를 반복하면서 적운상을 보다가 술을 비웠다. 잠시 그러다가 도저히 안 되겠던지 적운상의 잔에 술을 따르면서 물었다.
“방법이 뭐냐? 네게 정말 그럴 방법이 있는 거냐?”
“물론이오.”
“음……. 말해 봐라.”
“여기서는 안 되오. 말해도 이해하지 못할 거요.”
“지금 나를 놀리려는 거냐?”
“아니오. 내일 나와 함께 밖으로 좀 나갑시다. 그럼 알려주겠소.”
“좋다.”
잠시 망설이던 이마대는 술잔을 단숨에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적운상을 보면서 말했다.
“허튼 수작을 하는 거라면 가만두지 않겠다.”
“내일 봅시다.”
“흥!”
이마대가 가고 나자 적운상은 술잔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봤다. 아직 내상이 다 낫지 않아서 얼굴색이 좋지 않았다. 어딘가 푸석푸석해 보였다. 그런데도 여인들이 그 난리들이라니 웃음이 나왔다.
“내일은 좀 바쁘겠군.”
낮게 중얼거린 적운상이 술잔을 마저 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