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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형산파 267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0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아! 형산파 267화

267화. 또 한 명 (2)

 

왔다 갔다 겨우 엿새였다. 그런데도 모용화는 따라가겠다고 나섰다. 우형승은 흔쾌히 그녀의 동행을 허락했다. 네 명이 말을 몰아 더 북쪽으로 올라갔다.

그럴수록 한겨울의 추위가 더욱 심해졌다. 이틀을 이동한 후에 산을 탈 때는 그대로 얼어 죽는 건 아닌지 두려움이 일 정도였다.

그런데도 모용화는 활발했다. 그 정도 추위는 그녀에게 조금 추운 것일 뿐이었다. 아침나절에 산에 올라서 저녁때까지 걸었다. 어둠이 내려앉자 이제는 모용화도 조금 불안해했다.

그때 불빛이 보였다.

“저곳…이오.”

배유철이 떨어지지 않는 입을 간신히 열어 말을 했다. 몸이 떨리다보니 말도 자연스럽게 떨려서 나왔다.

네 사람이 가까이 가보니 낡은 오두막이었다. 적운상이 가서 문을 두드렸다.

탕탕!

“누구요?”

“하룻밤만 신세를 질까 합니다.”

문이 열렸다. 한 사내가 서있었다. 날렵한 체격에 까칠하게 수염을 기른 삼십대 초반의 사내였다. 눈빛이 굉장히 형형해서 일반인들은 감히 마주치지도 못할 것 같았다.

그는 그 형형한 눈빛으로 일행을 한 번씩 훑어봤다. 그러고는 문을 약간 더 열며 말했다.

“들어오시오.”

“고맙습니다.”

오두막 안은 훈훈했다. 중앙에는 모닥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고 그 위에는 작은 솥단지가 올려져있었다. 벽에는 사냥한 짐승들의 털이 걸려 있었고, 한쪽에는 약재로 보이는 풀들이 널려 있었다.

“앉으시오.”

그가 자리를 권하자 모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으… 춥구먼. 추워.”

우형승이 불에 손을 마구 비벼대며 엄살을 피웠다. 모용화가 그런 우형승을 귀엽다는 듯이 바라보며 얼어붙은 목도리와 모자를 벗겨줬다.

그러자 그가 약간 인상을 찌푸렸다.

“훗! 기억나나 보군. 고진명.”

우형승이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고진명은 이 반갑지 않은 손님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잠시 갈등했다. 쫓아내자니 손이 많이 가고 놔두자니 귀찮아질 것 같았다.

과거에 우형승과 고진명은 비무를 하면서 상대를 죽음의 끝까지 몰고 갔었다. 중간에 고진명이 검을 거두는 바람에 승부를 내지는 못했지만 우형승의 패배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도 우형승은 자신이 이긴 것처럼 고진명을 위로했었다.

“무슨 일로 찾아온 거요?”

“내가 아니라 내 아우가 용무가 있어서 말이지.”

우형승의 말에 고진명의 눈이 자연스럽게 적운상에게 향했다.

“겨루고 싶어서 왔소.”

적운상이 무뚝뚝하게 용건을 말했다. 그러자 고진명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오늘은 몸을 녹이시오. 내일 아침에 합시다.”

“알겠소.”

그날 밤 적운상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적운상뿐만이 아니었다. 배유철과 고진명도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우형승과 모용화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같이 누워서 속닥속닥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불이 붙어버렸다. 다른 사람들이 잔다고 생각했는지 달라붙어서 끈적끈적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그대로 놔두면 정말 거기서 일을 치를 것 같았다.

결국 참다못한 배유철이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그때뿐이었다. 두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모두 잠들기를 기다리며 밤새도록 사부작거렸다.

덕분에 퀭한 눈으로 아침을 맞은 적운상은 비무고 뭐고 만사가 귀찮았다. 고진명을 보니 그도 그런 것 같았다. 냉철한 얼굴에는 피곤이 잔뜩 묻어 있었다. 적운상이나 고진명은 모두 심검의 경지에 올라서 있는 고수들이었다.

그런 두 사람을 하룻밤 만에, 그것도 정신적인 타격으로 그렇게 피곤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천하에 우형승 한 명 뿐일 것이다.

아침을 희멀건 죽으로 대충 챙겨먹고 모두 밖으로 나왔다. 밤사이에 눈이 내려서 발목까지 푹푹 들어갔다.

“형산파의 적운상이오. 풍뢰십삼식과 금안뇌정신공을 익혔소.”

적운상이 입김을 뿜어내면서 포권을 취했다. 그러자 고진명이 예를 받았다.

“고진명이오. 매화검(梅花劍)을 익혔소.”

매화검은 그의 나라에서 일인전승(一人傳承)으로 전해지는 검법이었다. 정파의 검법이라기보다는 살수의 검법에 가까웠다. 그래서 쾌(快)를 위주로 한 일격필살(一擊必殺)이 특징이었다.

적운상은 태룡도를 뽑아 들고 자연스럽게 늘어트렸다. 그리고 고진명을 유심히 살폈다. 고진명은 검을 뽑지 않고 검자루를 잡은 채 자세를 낮췄다. 발검(拔劍)하는 그대로 베려는 자세였다.

저렇게 대놓고 ‘나 발검술을 할 거요.’라고 자세를 취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자세만 보면 어디로 어떻게 휘두를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걸 알 텐데도 저런 자세를 취하니 흥미가 일었다.

적운상은 고진명이 어떻게 나올지 보기 위해 가볍게 태룡도를 한 번 휘둘렀다.

훙!

태룡도가 고진명의 목을 노리며 바람을 갈랐다. 그 순간 고진명이 움직였다. 발검자세를 보자면 횡으로 베기였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하게 그는 역검(易劍)으로 밑에서 위로 베어왔다.

쉬익!

적운상은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그러면서 고진명의 손목을 내려쳤다.

치링!

고진명이 적운상의 공격을 막아내며 검을 밀어 넣었다. 만약 검을 바로 잡고 있었다면 이런 식의 공격은 어려웠다. 하지만 고진명은 지금 검을 거꾸로 잡고 있었기 때문에 간단히 손목을 트는 동작만으로도 가능했다.

적운상으로서는 역검술을 처음 대하는 거라 상당히 당황이 되었다. 중원에도 역검술을 쓰는 사람들이 있기는 있었다. 적운상도 두 개의 단도로 풍뢰십삼식을 펼칠 때면 단도를 거꾸로 잡고 휘둘렀었다. 그래야 상대를 찍기가 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검을 저렇게 거꾸로 잡고 휘두르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쉬쉬쉬쉿! 챙챙챙챙!

적운상의 태룡도와 고진명의 검이 수차례나 부딪쳤다. 숨을 들이쉴 여유도 없는 빠른 공방전이었다. 그러다 고진명과 적운상이 동시에 거리를 벌리며 뒤로 물러났다.

이때다 싶어서 적운상은 조사묘에서 익힌 베기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갑자기 고진명의 모습이 사라지자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눈을 크게 떴다.

순간 주위의 모든 것이 느려졌다. 하늘, 구름, 나무, 바위, 등 움직이지 않는 것들조차도 정지되어 있는 느낌이 들었다. 적막하고 답답했다. 세상과 분리되어 있는 또 다른 세계였다.

그 안에 고진명이 있었다. 그가 검을 휘두르며 거리를 좁혀오고 있었다. 적운상의 눈이 황금색으로 바뀌면서 그의 일검을 피했다. 그러자 고진명의 눈이 놀라움으로 인해 커다래졌다.

지금껏 이 공격을 피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적운상이 처음이었다.

쉭!

둘만의 세계가 사라지고 원래의 세상으로 돌아왔다. 그럼과 동시에 두 사람이 거리를 벌리고 떨어졌다.

고진명은 역으로 잡은 검을 늘어트린 채 섣불리 공격하지 못했다. 적운상도 놀란 얼굴로 그 자리에 굳어 있었다.

‘어떻게 피했지? 그도 무극의 영역에 들어설 수 있단 말인가?’

무극의 영역.

고진명은 자신이 다다른 경지를 그렇게 불렀다. 사람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쾌속의 경지. 지금까지 그 영역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은 자신뿐이었다.

수많은 사람들과 검을 섞어봤지만 단 한 명도 없었다. 심지어 천하제일의 검객이라는 우형승조차도 그 영역에는 들어오지 못했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배유철이 침을 꿀꺽 삼키며 물었다. 대답이 없기에 옆으로 보니 우형승은 아주 진중한 표정으로 두 사람의 대결을 지켜보고 있었다. 지금까지 실실거리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모용화는 처음 보는 우형승의 모습이 낯설어서 말조차 꺼내지 못했다. 두 사람은 전혀 모르고 있었지만 우형승은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알고 있었다.

‘적 아우만이 올라서 있었던 것이 아니었나?’

우형승이 그런 생각을 할 때, 고진명이 움직였다. 그러자 적운상도 움직였다. 하지만 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은 이미 눈으로는 쫓을 수 없는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느낄 수도 없었다. 그저 짐작을 할 뿐이었다.

두 사람이 아까처럼 다시 거리를 두고 떨어졌다. 그러자 그제야 두 사람의 무기가 부딪친 소리가 났다.

챙!

다시 한 번 두 사람이 부딪쳤고, 나중에야 바닥에 쌓인 눈이 치솟으며 검과 도가 부딪친 소리가 났다.

챙! 파핫!

세 번을 움직였다. 적운상은 세 번이 한계라고 했었다. 그 이상 하면 몸에 무리가 온다고 했던 것이 기억나자 우형승의 얼굴에 걱정이 스쳤다.

그때 고진명이 나직이 묻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확실히 무극의 영역에 들어섰군. 나 이외에는 당신이 처음이오.”

“무극의 영역?”

적운상이 되묻는 말에 고진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지되어 있는 세상 속에서 움직이는 것, 그것이 무극의 영역이오.”

“그렇게 부르는군. 당신은 언제 그 영역에 들어섰소?”

“사 년 전이오.”

“계속 그 영역에서 움직일 수 있는 겁니까?”

“아니오. 그랬다가는 몸이 버티지 못하오. 내가 무극의 영역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삼 초식을 펼치는 시간 정도요.”

고진명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적운상과 사생결단을 낼 것도 아니니 굳이 숨길 이유가 없었다.

“그럼 더 이상 싸울 의미가 없군. 나는 그 영역에 들어서면 겨우 반 초식밖에 못 펼치지 못합니다.”

적운상이 순순히 패배를 인정하고 태룡도를 거뒀다. 그러자 고진명도 검을 회수했다.

“좋은 비무였소. 괜찮다면 이곳에서 더 머무시오. 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소.”

사실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것이 아니라 비무를 더 해보고 싶었다. 그것을 돌려서 말한 것이다. 그리고 그건 적운상도 바라는 일이었다.

“폐가 안 된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적운상이 포권을 취하자 고진명이 예를 받았고, 첫 비무는 그렇게 끝이 났다.

* * *

 

적운상은 오두막에서 머물며 수시로 고진명과 비무를 했다. 무극의 영역에서 싸우는 것은 그냥 싸우는 것보다 몇 배나 더 힘이 들었다. 몸에 미치는 부담도 굉장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삼 초식 정도를 주고받으면 한 시진 가까이 운기조식을 하면서 쉬었다. 그리고 다시 삼 초식을 주고받았다. 그것도 적운상은 세 번에 나누어서 해야 했다.

고진명이야 한 번 무극의 영역에 들어서면 삼 초식을 펼칠 동안 계속 있을 수 있었지만 적운상은 일 초식을 펼치는 시간동안도 있지 못했다. 하지만 고진명이 여러모로 도움을 주며 방법을 일러주자 조금씩 시간이 늘어갔다.

두 사람이 그렇게 비무를 하는 동안 우형승은 모용화와 사냥을 하러 다녔다. 겨울이라 사냥감을 찾기가 쉽지 않았지만 아예 없지는 않았다. 멍하니 추위에 떨며 구경만 하는 것보다는 움직여 주는 게 좋았다. 더구나 둘이 사냥을 하다가 오붓한 시간을 나눌 수도 있었다.

가장 곤혹인 것은 배유철이었다. 그는 할 일도 없이 추위에 떨며 시간만 보내야 했다.

보름이 훌쩍 지났다. 적운상은 그동안 밤잠을 줄여가면서 노력한 결과, 고진명과 마찬가지로 무극의 영역에 들어서서 삼 초식까지 휘두를 수 있게 되었다. 굉장히 빠른 성취였다.

하지만 그 이상은 늘지 않았다. 십여 일을 더 지내면서 노력을 해봤지만 무리였다. 몸이 버티지 못했다.

고진명도 몇 년 동안 노력했지만 그 이상은 무리라고 했다. 한 번은 욕심을 내서 삼 초식을 펼치고도 더 버티다가 팔다리가 비틀어지는 바람에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고 한다.

아무래도 인간이 무극의 영역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그게 한계인 것 같았다.

“정말 같이 안 가실 겁니까?”

적운상이 묻는 말에 고진명이 고개를 저었다.

“원래는 내가 태어난 곳, 내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곳은 바뀌었다. 이미 내가 알던 곳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곳에 정착한 거다. 이제는 이곳이 내 고향이다.”

그렇게까지 이야기하는데 자꾸 같이 가자고 할 수는 없었다. 적운상은 어쩔 수 없이 체념하고 포권을 취했다.

“그동안 신세 많이 졌습니다.”

“나도 재미있었네. 자네나 나의 경지는 더 이상 오를 수 없이 높지만, 세상은 넓고 기인이사들이 수도 없이 많네. 드러난 것만 보지 말고 항상 조심하게나.”

고진명이 걱정에 당부를 했다. 적운상은 그런 고진명의 마음이 고마웠다.

“명심하겠습니다.”

“나중에 또 봅시다.”

우형승이 마치 친구 대하듯이 고진명의 어깨를 툭툭 치며 인사를 했다. 그러자 고진명이 못마땅한 듯이 보며 물었다.

“우리가 이렇게 친했던가?”

“한 달을 같이 산 사이인데 뭘 그러나? 그럼 이만 가보겠네.”

적운상과 함께 모두 떠나자 고진명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오두막의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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