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26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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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0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264화
264화. 드디어 얻다 (2)
어느새 모용세가에 온 지 삼 개월이 훌쩍 지났다. 그동안 적운상은 오로지 수련만 했다. 오전에는 계속 칼을 휘둘렀고, 오후에는 명상을 했다. 우형승은 적운상이 뭘 하던 그냥 놔두고 모용화에게만 정성을 쏟았다.
하지만 여자에게 자신 있다던 말은 다 거짓이었는지 여전히 모용화는 우형승을 냉랭하게 대했다. 그런데도 우형승은 혼자만의 상상에 빠져 그녀가 조금씩 넘어오고 있다며 사람들에게 자랑을 하고 다녔다.
“후욱…….”
아침수련을 위해서 방을 나온 적운상은 추위에 몸을 한 번 움츠렸다. 이제는 완전히 겨울이었다. 강추위에 콧물이 그대로 얼어버릴 정도였다.
이에 적운상은 두터운 털옷에 목도리를 칭칭 감고 머리에는 털모자를 쓰고 있었다. 손도 천을 한 번 감고 그 위에 장갑을 꼈다.
태룡도를 뽑아든 적운상이 평소처럼 풍뢰십삼식을 펼치기 시작했다. 반복, 반복, 또 반복…….
이제는 한 시진 정도 해서는 지겹지도 않았다. 습관이 되어 버려 묵묵히 칼을 휘두를 뿐이다. 몇 번을 반복해도 같은 움직임으로 같은 곳을 디디고, 같은 곳을 벤다. 그것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다.
누군가가 옆에서 보고 있었더라면 너무나 완벽한 그 모습에 숨이 턱턱 막혔을 것이다. 그런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적운상은 열세 개의 동작을 계속 반복했다.
“후우…….”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적운상이 이번에는 낙연검법을 펼쳤다. 한때는 풍뢰십삼식보다 낙연검법의 성취가 더 높았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낙연검법을 소홀히 하게 됐다.
그도 그럴 것이 금안뇌정신공은 낙연검법보다는 풍뢰십삼식과 더 잘 맞았다. 그러다 보니 깨달음이 늘고 금안뇌정신공이 완성되어 갈수록 풍뢰십삼식을 더 수련하게 되었다.
한참 동안 낙연검법을 펼치던 적운상이 갑자기 태룡도를 거뒀다. 이렇게 수련해봐야 얻는 것이 없었다. 그걸 알고도 그저 습관처럼 몸을 움직였다.
그래서는 안 된다. 그래서는.
뭔가 방법을 달리해야 한다. 문득 우형승이 전부 버리라고 했던 것이 생각났다.
버린다. 버린다. 버린다. 버린다…….
그 말이 계속 적운상의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나중에는 버린다가 아니라 버려야 한다는 강압적인 생각으로 바뀌었다.
후웅!
적운상이 아무렇게나 태룡도를 휘둘렀다. 그럼에도 풍뢰십삼식의 초식이 나왔다. 이게 아니었다. 다시 크게 태룡도를 휘둘렀다.
후웅!
바람소리가 세차게 일며 태룡도가 허공을 갈랐다. 방금 쓴 것도 풍뢰십삼식의 초식이었다.
훙훙훙훙!
적운상은 지금 아무 생각 없이 마구잡이로 태룡도를 휘두르고 있었다. 그런데도 계속 풍뢰십삼식이나 낙연검법의 초식이 나왔다.
일부러 동작을 짧게 해도 마찬가지였다. 버릴 수가 없었다. 초식이 완전히 몸에 배어서 반 초식조차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적운상은 계속 이리 뛰고 저리 날며 태룡도를 휘둘렀다. 그러다 신경질적으로 태룡도를 내팽개쳐버렸다.
탱!
태룡도가 얼어붙은 땅에 튕기며 날아갔다. 맨손으로 날뛰어도 분명 풍뢰십삼식이나 낙연검법이 나올 것이 분명했다. 적운상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버릴 수 없으니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답답했다. 답답함에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순간 눈이 황금색으로 변했다. 생각하면 기가 일고 몸이 따른다. 심검의 경지에 오르면 그것이 자연스럽게 된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은 좋지가 않았다. 적운상의 답답한 마음에 반응해 금안뇌정신공의 뇌기가 몸을 타고 돌고 있었다. 주화입마(走火入魔)였다.
이래서 무공이 상승의 경지에 오르면 항상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한다. 기와 연관이 큰 하단전(下丹田)에 이어 마음의 영향을 많이 받는 중단전(中丹田)이 조금씩 열리기 때문이다.
적운상은 목구멍으로 치밀어 오르는 무언가로 인해 가슴이 옥죄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동시에 금안뇌정신공의 뇌기가 몸 안에서 제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크윽…….”
‘주화입마인가?’
뒤늦게 그 같은 사실을 깨닫고 도움을 청하려고 했다. 지금 방 안에서는 우형승이 이불을 덮어쓰고 누워서 모용화를 상상하고 있을 것이다. 소리쳐 부르면 금방 나올 텐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한쪽 무릎이 풀썩 꺾였다. 이제는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몸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이 위기를 넘기려면 뇌기를 전부 쏟아내야 했다. 하지만 통제할 수 없는 뇌기를 어떻게 밀어낸단 말인가?
그래도 되든 안 되든 해보는 수밖에 없었다. 적운상이 양손을 땅에 대고 필사적으로 뇌기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몸 안에서 이리저리 날뛰는 뇌기는 쉽사리 밀려나가지 않았다.
오히려 더 날뛰며 심맥에 충격을 주고 있었다.
“크윽!”
적운상의 입에서 얕은 신음소리가 새어나왔다. 이대로 있다가는 심맥을 모두 다쳐 폐인이 될 수도 있었다. 그걸 생각하자 정신이 아찔했다.
자신이 폐인이 되면 그걸로 끝나지 않는다. 죽은 사부의 원수는 누가 갚고, 형산파는 누가 지킨단 말인가?
사형제들의 모습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다 마지막에는 주양악과 백수연이 떠올랐다.
‘이대로는… 이대로는…….’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었다. 그러자 고통 때문에 조금 정신을 차릴 수가 있었다. 냉정해야 했다. 냉정하게 방법을 찾아야 했다. 무슨 방법이 있을 것이다. 분명 방법이 있을 것이다.
“쿨럭!”
갑자기 코피가 왈칵 쏟아져 나왔다. 입에서도 피가 넘어왔다. 날뛰는 뇌기 때문에 내상을 입은 것이다.
“크아아아아아아!”
사자의 포효가 저러할까?
적운상의 입에서 주위를 뒤흔드는 소리가 크게 터져 나왔다. 살고자 하는 절규였고, 막혀있는 것을 억지로 뚫고자 하는 의지였다.
생각이 일면 기가 따르고 몸이 움직인다. 적운상의 의지가 몸 안에서 폭주하는 뇌기를 쫓아버렸다. 이에 몸이 따랐다.
콰콰콰콰콰콰콰콰쾅!
적운상의 양손에서 엄청난 양의 뇌기가 폭사되어 나왔다. 그 뇌기를 감당하던 땅이 마치 지진이 난 듯 뒤흔들렸다. 귀가 얼얼할 정도의 폭음이 울렸고, 주위로 자욱한 흙먼지가 확 번져나갔다.
“뭐야? 무슨 일이야?”
우형승이 잠결에 놀라서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러고는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어디서 화탄이 서너 개 날아와 터진 것 같았다. 직경이 삼 장은 됨직한 구덩이가 푹 파여져 있었고, 그 중심에서 적운상이 엉망인 몰골로 멍하니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우형승은 잠시 넋이 나간 얼굴로 적운상을 쳐다보다가 그의 코와 입가로 흐르는 핏물에 눈이 갔다.
“너 주화입마에 빠진 거냐?”
적운상에게서는 대답이 없었다. 그는 여전히 멍하니 하늘만 올려다보고 있었다.
“적 아우!”
우형승이 다급하니 적운상에게 달려갔다. 그러고는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보아하니 주화입마에 빠졌던 것 같은데 다행히 위기를 넘긴 모양이다. 만약 주화입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대로 미쳐서 날뛰었다면 어떻게 됐을지, 정말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심검의 경지에 오른 광인(狂人)이 검을 휘두른다고 생각해보라! 그걸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모르긴 몰라도 모용세가가 휘청했을 것이다.
“너… 괜찮은 거냐?”
괜찮지 않았다. 적운상은 대답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넘어갔다. 그걸 우형승이 재빨리 잡아 세웠다. 하지만 적운상은 축 늘어진 채 완전히 정신을 잃었다.
* * *
그날 아침에 있었던 사건은 많은 사람들에게 의혹을 제기했다. 커다란 폭음을 들은 사람들이 제법 되었고, 그걸 확인하러 왔다가 푹 파여진 커다란 구덩이를 본 사람들이 기겁을 하며 소문을 냈기 때문이다.
그래봤자 모용세가 안에서만 이야기가 돌았지만, 그 여파가 만만치 않았다. 가주인 모용백중이 직접 찾아와서 어찌된 일인지 연유를 물은 것이다.
우형승이 아는 대로 다 대답을 했지만 모용백중은 쉽게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슬쩍 말을 돌리며 혹시 벽력탄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물었다.
벽력탄이란 휴대용 화탄을 뜻한다. 한 손에 잡힐 정도의 둥근 공 모양으로 되어 있는데 그 위력이 굉장했다. 대포에 쓰이는 화탄만큼이야 되지 않았지만 그거 하나면 작은 집 하나쯤은 박살을 낼 수가 있었다.
그런 위력을 가지고 있다 보니 관(官)에서 철저하게 관리를 했다. 혹시라도 화탄을 가지고 있으면 무조건 반역죄로 몰아서 일족을 참형했다. 그래서 웬만한 세력가들조차도 화약은 절대로 건드리지 않았다.
그러니 모용백중이 두려울 만도 했다. 우형승과 적운상이 객이니 나 몰라라 할 수도 있었지만, 꼬투리를 잡고 늘어지면 방법이 없었다.
우형승은 절대로 아니라고 부정을 했다. 천하제일의 검객이라고 불리는 자신이 뭐가 아쉬워서 그런 것을 가지고 다니겠냐고 설득을 했다. 들어보니 또 그런지라 모용백중은 일단 의심을 접었다.
그가 돌아간 후에는 모용세천이 몇몇 사람들과 같이 찾아왔다. 그들이 가고 나자 이번에는 모용세가에 같이 객으로 있는 사람들이 찾아왔다.
적운상은 계속 정신을 잃고 누워있었기 때문에 우형승이 그들을 일일이 상대해야 했다. 귀찮았지만 걱정이 되어서 온 사람들을 내칠 수도 없었다.
하루가 지나고 다음날이 되어도 적운상은 깨어나지 않았다. 외상은 없었지만 내상이 심했다. 게다가 기가 너무 가늘어져 있었다. 끊어질 듯하면서 간간이 이어지는 것이, 위태위태했다.
우형승이 어떻게 도움을 주려고 해도 내공의 성질이 워낙에 달라서 방법이 없었다. 그저 지켜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