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263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3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263화
263화. 드디어 얻다 (1)
요녕은 북쪽지방이라서 굉장히 추웠다. 아직 겨울이 아닌데도 찬바람이 한 번씩 불 때면 몸을 한 차례씩 떨어야 했다. 이에 우형승은 크게 후회를 했다.
모용세가에 가서 편하게 지낼 생각만 했지, 날씨가 이리 추울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하아… 춥다. 추워.”
말을 하자 허연 입김이 나왔다. 우형승은 투덜대면서 두꺼운 털옷을 바짝 여몄다. 그걸 보고 적운상이 미소를 지었다.
“형님 정도 되면 한서불침(寒暑不侵)의 경지에 올라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한서불침의 경지란 내공이 깊어져서 추위와 더위가 느껴지지 않는 경지를 뜻한다. 그런 경지에 오르려면 적어도 일갑자(一甲子) 이상의 내공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우형승은 이제 중년의 나이였다. 천하제일의 검객이라 불리는 것도 검에 대한 이해와 깨달음이 높아서였지, 내공이 높아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한서불침 좋아하네. 그러는 적 아우는 왜 그리 추위를 타나?”
적운상 역시 무공은 대단하지만 이제 약관을 넘어섰고, 금안뇌정신공의 특정상 한서불침과는 거리가 멀었다. 금안뇌정신공은 파괴적인 성향 빼고는 특별한 것이 없었다.
“형님도 떠는데 제가 어떻게 안 떱니까?”
적운상의 말을 들으면서 우형승이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항상 어디 가서 사람 너덧은 해치우고 온 것 같은 분위기에 말투도 그랬는데, 이제는 농담을 주고받는 사이라 그런 분위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조금만 더 가면 본가가 있습니다. 그러니 조금만 참으십시오. 두 분.”
모용세천이 두 사람을 달래며 말했으나 우형승은 잔뜩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이봐 자네.”
“네. 말씀하십시오.”
“그게 지금 몇 번째 하는 말인지 아나?”
“네? 하하. 그랬던가요?”
모용세천이 멋쩍은 미소를 지으면서 되물었다.
“말해 무엇 하겠는가? 빨리 가세나.”
“알겠습니다.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모용세천이 천천히 말을 몰았다. 사실 말을 달려서 갔으면 벌써 모용세가에 도착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형승이 한 번 달리고 나서 맞바람에 기겁을 하고는 춥다고 자꾸 천천히 말을 모는 바람에 이리 늦어지고 있었다.
한참을 가자 요녕의 중심지인 심양(沈陽)이 나왔다. 북방사람들은 모두 키도 크고 체격도 건장했다. 남녀를 불문하고 그랬다. 그래서 여자들이 모두 늘씬해 보였다. 두꺼운 옷을 입어도 몸매가 느껴질 정도라서 우형승이 눈을 빛내며 두리번거렸다.
모용세천의 누이동생인 모용혜가 얼굴은 어려 보여도 몸매는 풍만한 이유도 전형적인 북방인이기 때문이었다.
“하하. 북방에는 미인들이 많죠. 하지만 성격이 강해서 취하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호오… 아름다운 꽃일수록 가시가 있기 마련이지.”
우형승은 오히려 더 흥이 나는 것 같았다. 대로를 따라 계속 가자 보기에도 으리으리한 커다란 장원이 보였다. 그곳이 바로 모용세가였다.
정문 앞에는 몇몇 사람들이 나와서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모용대수가 먼저 가서 연락을 취해놓은 것이다.
“숙부님.”
모용혜가 풍채가 좋은 오십대의 사내를 보고는 말에서 폴짝 뛰어서 달려갔다.
“그래. 잘 다녀왔느냐?”
“네.”
“다녀왔습니다. 숙부님.”
모용세천도 말에서 내려 그에게 인사를 했다. 그러자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고했다는 뜻으로 모용세천의 어깨를 몇 번 두드렸다. 그러고는 우형승과 적운상을 봤다.
“어서 오십시오.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모용학이라고 합니다.”
그가 포권을 하면서 먼저 인사를 했다.
“우형승이라고 하오. 이쪽은 내 아우인 적운상이오.”
“처음 뵙겠습니다.”
“반갑습니다. 안으로 들어갑시다.”
모용학이 앞장서자 모두가 뒤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모용세가는 굉장히 넓었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분주하게 오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하지만 내원으로 들어가자 사람들이 뜸해졌다.
모용학은 대청으로 그들을 안내했다. 안에는 학자풍의 노인이 중심에 앉아있고 양옆으로 두 명의 중년사내들이 서있었다. 그리고 늘씬한 몸매에 조금은 날카로워 보이는 인상의 여인도 보였다.
“어서 오시오. 모용백중이라고 하오.”
태사의에 앉아있던 학자풍의 노인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그가 바로 이곳 모용세가의 가주였다. 그래서인지 검성이라 불리는 우형승을 대하면서도 그리 예의를 차리지는 않았다.
“반갑습니다. 당분간 신세를 지겠습니다.”
우형승이 인사를 받으면서 말하자 모용백중이 웃으면서 말했다.
“신세랄 것이 뭐 있겠소. 편하게 지내다 가시구려.”
“감사합니다.”
“먼 길 와서 몸이 얼었을 테니 앉아서 차라도 한 잔 합시다.”
모용백중의 권유에 우형승과 적운상이 자리에 앉았다. 차탁에는 이미 따뜻한 차가 준비되어 있었다. 우형승과 적운상이 그걸 마시면서 몸을 좀 녹이는 동안 모용세천과 모용혜가 모용백중과 그 곁에 있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눴다.
모용백중과 함께 있는 두 명의 중년사내들은 모두 모용세천의 숙부들이었다. 그리고 이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늘씬한 몸매의 여인은 모용세천이 고모님이라고 불렀다. 그녀는 조카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힐끔힐끔 우형승과 적운상을 쳐다봤다. 관심이 많다는 뜻이었다.
“저 여자가 나한테 반했나 보다.”
우형승이 목소리를 낮춰서 하는 말에 적운상은 마시던 차를 뿜어낼 뻔했다.
“형님이 검성이라 불리니까 그저 흥미가 있을 뿐이겠죠.”
“아니야. 저 눈빛을 봐. 분명 나한테 관심이 있는 거야.”
“괜히 사고 치지 마십시오. 모용세천에게 고모님이라고 불리는 것을 보니 가주의 직계인 것 같으니까요.”
“사고라니? 선남선녀가 만나는데 뭔 놈의 사고야?”
두 사람 딴에는 안 들리게 속삭인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내공이 중후한 모용백중에게는 또렷이 들렸다. 물론 그의 나이 어린 누이동생인 모용화도 마찬가지였다.
“하하하. 듣자하니 화에게 관심이 있는 것 같구려.”
모용백중이 크게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모용화는 성격이 하도 괄괄해서 인근에서는 감당할 수 있는 사내들이 없었다. 호쾌한 성격의 북방사람들이 그럴 정도이니 다른 곳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래서 이미 혼기를 놓친 지 오래였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닌 검성이라 불리는 우형승이 관심을 보이자 반가울 수밖에.
“험! 사내대장부가 꽃 같은 미인에게 관심을 갖는 거야 당연하지 않습니까?”
혀에 기름칠을 했는지 말이 술술 나왔다. 그러나 모용화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그걸 보고 우형승이 한마디를 던졌다.
“인상 쓰는 것도 예쁘구려.”
순간 모용화의 눈에서 살기가 쏟아져 나왔다. 그걸 느낀 모용백중이 다급하게 웃음소리를 냈다.
“하하하하. 맞소이다. 우리 화 정도면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지요. 지금껏 계속 혼처를 거부하기에 모두 인연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아마 우 대협을 만나기 위해 그랬던 것 같구려.”
처음에야 모용화가 사내들을 얕잡아보며 혼인을 거부했지만 나중에 가서는 남자들이 거부를 했다. 세력이 큰 모용세가와 사돈을 맺으면 여러모로 이점이 많은데도 거부를 할 정도니 모용화의 성격이 어느 정도인지 알만한 일이었다.
“오라버니!”
모용화가 소리를 꽥 질렀다. 그러자 모용백중이 큰 소리로 그녀를 나무랐다.
“어허! 어디에서 큰 소리냐? 손님들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안 보이느냐?”
모용화는 어이가 없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지금껏 모용백중이 그녀에게 이렇게 소리를 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그런지 어떤 때는 부모님보다 더 귀여워하며 아껴줬었다. 그런데 지금은 왜 저러는 걸까?
“하하. 너무 나무라지 마십시오. 부끄러워서 그러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형승의 말에 모용화가 그를 무서운 눈으로 째려봤다. 웬만한 사람이라면 그 눈빛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겠지만 우형승이 누구던가?
그는 그 시선을 받으면서도 차를 한 모금 마신 후에 미소까지 지었다. 그러자 기가 찬다는 표정으로 모용화가 고개를 홱 돌렸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 즐거운 일이 많을 것 같군요. 여러모로 신세를 지겠습니다.”
우형승이 자리에서 일어나 포권을 취하자 모용백중이 벌떡 일어나서 마주 포권을 취했다. 처음과는 사뭇 다른 태도였다.
* * *
“어떠냐?”
“뭐가 말입니까?”
머물 방에 오자마자 우형승이 묻자 적운상이 시큰둥하니 되물었다.
“모용가주의 태도가 확 바뀌었잖아.”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그럽니까?”
“그 여자 말이냐? 흐흐. 걱정 마라. 내가 이래 봬도 여자 다루는 데는 도가 텄다.”
“저한테까지 화가 튀지 않게 잘 하십시오.”
“그런 걱정일랑 마라. 넌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어.”
“그럼 전 나가서 수련이나 하렵니다.”
“그래. 너도 적적하면 한 명 꼬셔봐. 내가 가만히 보니까 모용혜인가? 그 아이가 너한테 관심이 있는 것 같더라.”
“전 지금 있는 사람들만으로도 벅찹니다.”
“뭐야? 자네 혼인했나? 가만, 사람들? 그럼 한 명이 아니라는 말이잖아.”
적운상이 대답 없이 그냥 밖으로 나가려는데 뒤에서 기가 찬다는 듯이 중얼거리는 우형승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허 참… 그렇게 안 봤는데 역시 인물값을 하는군.”
적운상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우형승과 있으면 웃게 되는 일이 많았다. 사부인 임옥군이 죽은 이후로 우울했던 마음이 우형승으로 인해 많이 풀어지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고맙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불안하기도 했다. 임옥군의 죽음이 그대로 희석될까 봐 두려운 것이다. 복수라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옛말에 군자의 복수는 십 년이 지나도 늦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인지 정말 십 년이나 이를 갈고 있다가 복수를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그런 일을 해내는 사람들은 정말 독한 사람들이다. 웬만한 원한과 마음가짐이 아니면 그렇게 몇 년 동안 원수를 미워하면서 이를 간다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다.
적운상은 예전에 주양악이 끌려가고 나서 이를 갈며 이 년 동안 조사동에서 수련을 했다. 그리고 몇 달 동안 혈마승들을 찾아다니면 끔찍하리만큼 잔인하게 복수를 했었다.
그때 받은 심적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컸었다. 무려 천여 명을 베었다. 아무리 원한이 있고 그들이 악인들이었다지만 모두가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미워해야 했고 죽여야 했기에 칼을 휘둘렀었다. 마지막까지, 혈마승들의 우두머리인 혈불을 죽일 때까지 적운상의 정신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졌었다. 그래서 혈불을 죽이고 나서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하지 않았던가?
복수는 그런 것이다. 원한을 갚는다는 건 원수를 죽일 때까지 자신도 죽이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해야 하는 일, 그것이 복수였다.
행복을 느끼거나 즐거움에 빠져 마음이 해이해지면 절대로 복수를 할 수 없다. 적운상은 그걸 알기에 우형승으로 인해 자꾸 마음이 풀어지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다.
“하아…….”
적운상이 한숨을 내쉬자 허연 입김이 새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