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260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23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260화
260화. 멀고 먼 길 (1)
다음날이 되자 우형승이 돌아왔다. 옆에는 약간 벗겨진 머리에 순하고 착하게 생긴 사내가 서있었다. 그가 바로 우형승이 데리러 갔던 배유철이라는 사람이었다.
원래는 전문추적꾼이었지만 그 일에서 손을 떼고 이제는 어엿한 상인으로 행세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옛날의 그를 잊지 못하고 우형승처럼 찾아오는 사람들이 가끔 있었다.
물론 이제는 그 일을 안 한다고 정중히 거절을 하지만, 우형승은 그런 말을 들을 사람이 아니었다. 배유철에게 우형승은 오랜 지기이면서 원수나 마찬가지였다. 항상 이런 부탁이 있을 때만 찾아오거나 그도 아니면 벗겨 먹으려고 찾아오기 때문이다. 우형승은 배유철의 천적이었다.
“이게 뭐야? 뭔 난리가 있었나?”
“제대로 싸웠군.”
아직 정리되지 않은 객잔을 둘러보며 우형승이 혀를 차자 옆에 있던 배유철이 간단하게 답을 내렸다.
“보나마나 적 아우가 한바탕한 걸 거야.”
“이제 옵니까?”
마침 이층에서 내려오던 적운상이 우형승을 반겼다. 그러자 우형승이 답례로 웃으면서 손을 한 번 슥 들었다가 내렸다.
“네가 한 거냐?”
“반 정도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올라가서 얘기합시다. 손님도 있으니까.”
적운상이 배유철을 힐끗 보면서 하는 말이었다.
“그게 좋겠군.”
우형승이 배유철과 함께 올라가니 적운상의 방에는 먼저 와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모용세천 일행이었다. 그들은 우형승과 배유철을 보자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했다.
그리고 우형승이 검성이라는 사실을 알고 굉장히 놀란 얼굴을 했다. 우형승에 대해서는 말로만 들었지 실제로 보기는 처음이었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생각도 못했습니다. 하하.”
모용세천과 모용대수는 기쁜 마음에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검성은 한때 그들의 우상이었다. 삼류문파 출신인 우형승이 명성이 쟁쟁한 문파들을 돌며 비무행을 한 이야기는 이미 전설이나 다름없었다. 더구나 그 많은 비무를 했으면서 한 차례도 패하지 않았으니 젊은 사람들의 심장을 뜨겁게 하기에 충분했다.
아마 적운상도 새외로 가지 않고 중원에 남아있었다면 우형승을 대하는 것이 조금은 달랐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인사가 오고가자 적운상이 어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그걸 가만히 듣고 있던 우형승이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좋지 않군. 그건 적 아우가 실수를 했어.”
“저희들 때문입니다.”
모용세천이 끼어들며 이야기하자 우형승이 손가락을 좌우로 흔들면서 말했다.
“아니야. 자네들 때문이 아니야. 적 아우가 정말 그를 죽이려고 마음먹었다면 그렇게 내빼지 못했을 거야. 그러지?”
마지막 질문은 적운상을 향해 있었다. 적운상은 순순히 수긍했다.
“맞습니다. 일부러 놓아줬습니다.”
“이유가 뭔가? 쓸데없는 감상 때문인가?”
“요즘 사람 죽이는 것에 회의가 들더군요.”
“믿을 수가 없군. 정말 그런 이유 때문에 그를 놓아줬단 말이오?”
이야기를 듣고 있던 배유철이 황당하다는 듯이 말했다. 적염도인 같은 자들은 야비한 짓을 서슴지 않고 한다. 강호가 험한 것은 그런 자들 때문이다. 항상 뒤에서 휘두르는 칼이 무서운 법이다.
“그가 익힌 것이 채음보양을 하는 사술이었지? 지금쯤 어딘가에서 여자들이 희생을 당하고 있을지도 모르겠군.”
우형승의 말에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적운상을 보는 모용세천의 머리는 조금 복잡했다. 자신들 때문이 아니라 살인이 싫어서 그를 놓아줬단 말에 충격을 받은 것이다. 그러려면 더 이상 나쁜 짓을 못하게 무공을 폐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뭐, 이미 벌어진 일이니 어쩔 수 없지. 앞으로 움직이면서 조심하면 될 걸세. 제까짓 게 뭘 어떻게 하겠나?”
적염도인을 제까짓 거라고 할 수 있는 건 우형승 정도나 되니까 가능한 일이었다.
“이제부터는 고진명을 찾는 이야기를 하지. 찾는 건 이 친구가 할 건데 같이 동행을 할 건지 찾고 나서 연락을 줄 건지 그게 문제더군. 비용도 상의를 해야 하고.”
“편한 대로 하십시오. 비용은 얼마가 들든 괜찮으니 최대한 빨리 찾아주십시오.”
“사람 찾는 게 그리 쉬운 줄 아나? 게다가 이야기를 들어보니 은거기인인 것 같은데, 그런 사람을 찾는 일은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고. 자네 내가 일 년에 벌어들이는 수익이 얼마인 줄 아나?”
“목숨 값보다는 덜하겠지요.”
적운상의 냉랭한 한마디에 투덜대던 배유철이 입을 꽉 다물었다. 분위기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아마 적운상이 그렇지 싶었다.
“나, 나는… 여기 있는 이 친구의 막역지우일세.”
배유철이 우형승을 가리키며 말했다. 적운상이 우형승과 형님아우 하는 사이니까 우형승이 방패가 돼 줄 거라 생각한 것이다. 그러자 뜻밖의 말이 적운상의 입에서 새어나왔다.
“그래서 이 정도로 말하고 있는 겁니다.”
“…….”
배유철은 할 말이 없었다. 봐주는데 저 정도라니, 만약 우형승 없이 일대일로 만났다면 어땠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분위기로 봐서는 일단 칼질부터 한 번 하고 나서 이야기를 풀어갈 것 같았다.
배유철이 도움을 바라는 눈으로 우형승을 봤다. 사람을 찍어 누르는 저 박력을 대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너무 딱딱하게 그러지 말게. 그래도 해준다고 하지 않나? 그를 찾는 데는 얼마나 걸릴 것 같나?”
“아까 말했지 않나? 그런 사람을 찾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일단 사흘의 시간을 주게. 인근에서 그에 대한 정보를 모아보고 타진을 해보겠네.”
“그러게.”
우형승이 흔쾌히 승낙하며 적운상을 봤다. 적운상의 생각을 묻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이곳에서 사흘을 더 묵죠.”
“그럼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당장에 나가보겠네.”
배유철이 그렇게 말하면서 휑하니 방을 나갔다. 그걸 보고 우형승이 쿡쿡 웃음을 터트렸다.
“너무 그러지 말게나. 이득을 많이 따지고, 인간관계에서는 여러모로 실패했지만 능력만은 좋은 친구일세.”
적운상은 말없이 살짝 고개만 끄덕였다.
“잠시 상의드릴 게 있습니다.”
“뭔가?”
“여기서 나눌 대화가 아니니 후원으로 가죠.”
“헛! 이런, 저희가 실례를 했군요.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저희가 밖으로 나가겠습니다.
적운상의 말에 모용세천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당황했다. 그러자 적운상이 그를 제지하며 말했다.
“그래서가 아니오. 방 안이 좁아서 그럴 뿐이오.”
“그럼…….”
“당신들이 들어도 상관없는 이야기요. 같이 갑시다.”
“알겠습니다.”
모용세천이나 모용대수는 적운상과 조금이라도 친분을 쌓고 싶었다. 그래야 검성 우형승과도 뭔가 연결고리가 깊어지기 때문이었다. 모용혜는 조금 귀찮기는 했지만 모두 다 같이 움직이니 어쩔 수 없이 따라갔다.
* * *
후원으로 나온 적운상은 먼저 사부인 임옥군을 구해줄 때의 일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어제 적염도인과 싸울 때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을 이야기했다. 그걸 듣고 우형승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잘 이해가 안 가는군. 거리가 어느 정도였나?”
“삼 장(三丈) 정도였습니다.”
“그럼 저기 가서 서봐.”
우형승이 지시하자 적운상이 그만큼이 거리를 벌리고 섰다.
“거기서 칼을 내려치는 짧은 시간에 여기까지 왔다는 거지?”
“그렇습니다.”
“그럼 한 번 해봐.”
검을 뽑는 우형승을 보면서 적운상은 금안뇌정신공을 끌어올렸다. 그러자 눈에 황금색의 뇌기가 어른거렸다.
“준비해.”
우형승이 그렇게 말하면서 검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적운상을 힐끗 한 번 보고는 빠르게 내려쳤다. 동시에 적운상이 자리를 박차고 날아왔다. 하지만 우형승의 검은 이미 밑으로 그어진 상태였다.
“늦군.”
“지금보다 몇 배는 더 빨랐습니다.”
“그랬겠지. 내가 검을 내려치기 전에 여기까지 도달하려면.”
고개를 끄덕이며 우형승은 생각에 잠겼다. 경험도 많고 무공도 뛰어난 그였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한순간에 이 정도의 거리를 움직일 수 있다는 건, 단순히 경공신법만 뛰어나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었다.
“내 생각에는 이형환위(移形換位)가 아닐까 하는군.”
이형환위란 잔상이 남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는 것을 뜻하는 경공신법의 최고경지였다. 하지만 경공의 대가들조차도 이형환위의 경지에 오른 사람들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그런데 뒤늦게 경공신법을 배운 적운상이 이형환위를 했다는 건 뭔가 이상했다.
“아닙니다. 저는 경공신법을 배운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형산파의 경공신법은 그리 뛰어나지 않습니다.”
“음… 그럼 이형환위는 아니로군.”
우형승과 적운상이 고민하고 있는데 눈치를 보던 모용세천이 끼어들었다.
“제 생각에는 벽을 깬 것이 아닌가 싶군요.”
의외의 말에 우형승과 적운상이 모용세천을 봤다. 그러자 모용세천은 괜히 나섰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적운상이나 우형승의 무공은 그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했다.
그런데 자신이 끼어들어 이야기한다는 것이 어째 좀 그랬던 것이다. 하지만 이왕지사 말을 꺼냈으니 할 말은 해야겠기에 계속 이야기를 했다.
“왜 그런 것 있잖습니까? 갑자기 무공이 한 단계 확 올라서는 그런 거 말입니다. 그러니까… 고수가 하수를 상대하면 모든 것이 느리게 보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허를 찌르며 공격을 해도 모두 읽히고 말죠. 제 생각에는 그런 것이 아닐까 합니다.”
“호오…….”
우형승이 제법이라는 듯이 감탄사를 뱉어내며 주먹으로 손바닥을 탁하니 쳤다. 적운상이 듣기에도 제법 일리가 있었다.
“내 말보다는 더 설득력이 있군. 저 친구의 말대로라면 자네는 심검의 경지를 넘어설 수 있는 실마리를 잡은 걸세. 아니 이미 두 번에 걸쳐 심검의 경지를 넘어선 거지.”
“방금 시, 심검의 경지라고 했습니까?”
어찌나 놀랐던지 모용세천이 말까지 더듬으며 물었다. 적운상의 무공이 뛰어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심검의 경지에 올라서 있었단 말인가?
더구나 거기서 한 단계 더 올라선다니, 놀라움이 굉장히 컸다.
“맞네. 만약 적 아우가 그 같은 빠르기로 계속 움직일 수 있다면, 내 장담하건대 천하의 그 누구도 막지 못할 걸세. 하하. 축하하네.”
“아닙니다. 얼결에 해내기는 했지만 정확히 어떻게 하는지 방법을 모릅니다. 뜻대로 하지도 못하고요.”
“두 번이나 했으니 또다시 할 수 있을 걸세.”
우형승이 기뻐하면서 말했지만 적운상의 표정은 여전히 밝지 않았다. 과연 그것으로 심검의 경지를 넘어선 건지 의문이었기 때문이다.
적운상이 보기에 우형승이 보여줬던 강기도 굉장했다. 하지만 우형승은 심검의 경지와 비슷할 뿐, 벽을 깬 건 아니라고 했었다. 그러니 자신이 한 것 역시 그런 건 아닐지 의문이 든 것이다.
“자네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겠지. 그러면 이렇게 하세나. 자네가 그 움직임에 대해서 깨닫는 동안 내가 강기를 쓸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하지만 제 무공과는 맞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하지만 세상일은 항상 정공법만 있는 것이 아닐세. 편법이라는 것도 있지. 자네 역시 심검의 경지에 올라있으니 배우고자 하면 금방 배울 수 있을 걸세. 물론 영원히 안 될 수도 있고 말이야. 어쨌건 지금은 뭐라도 해보는 수밖에 없지 않나?”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래. 대신에 자네도 그 움직임에 대한 깨달음이 있으면 나한테 가르쳐줘야 해.”
“그게 목적이었군요.”
“흐흐.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지.”
우형승이 웃으면서 적운상의 어깨를 탁탁 두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