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258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3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258화
258화. 적염도인 (2)
밤이 되자 객잔 안은 의외로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허름한 외관과는 달리 음식이 맛있어서 제법 장사가 잘되는 모양이었다.
적운상이 다가오자 모용세천과 모용대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용혜는 여전히 뚱한 얼굴로 적운상을 본체만체하며 앉아있었다.
“이쪽으로 앉으십시오.”
적운상이 자리에 앉아 그제야 두 사람이 자리에 앉았다. 모용혜는 자신의 오라버니들이 적운상을 그렇게 조심스럽게 대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모용세가하면 무림에서는 제법 알아주는 세가였다. 동북지방의 패자로서 이곳에서 조금만 위로 올라가면 누구도 그 이름을 무시하지 못했다. 모용세천은 그런 모용세가의 적자였다.
다른 문파의 후기지수들조차도 모용세천을 보면 그쪽에서 먼저 예의를 차렸었다. 그런데 지금 모용세천이 반대로 그러고 있으니 영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적운상에 대한 것을 모용세천으로부터 대충 듣기는 했다. 하지만 세가 밖으로 나와 본 적이 거의 없는 모용혜는 별로 와 닿는 것이 없었다.
시킨 술과 요리가 나오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세 사람이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소림사에서 있었던 무림대회 이야기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화제가 현 무림의 정세로 바뀌었다.
“듣자니 무림맹이 호천마궁의 지부를 하나씩 찾아서 응징을 하고 있다고 하오. 그런데도 호천마궁에서는 전면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더군.”
모용대수의 말에 모용세천이 고개를 끄덕이며 술잔을 비웠다.
“무림맹은 지금 단단히 뭉쳐있는 상태야. 그에 비해 호천마궁은 곳곳에 흩어져 있지. 내 생각에는 한동안 호천마궁은 계속 그런 소모전만 할 것 같군.”
“겁을 먹고 계속 숨어있을 거라 보는 겁니까?”
“아닐세. 무림맹이 지금이야 저리 결속이 대단하지만 그리 오래 가지는 못할 거야. 만약 네가 위에서 내려온 명령 때문에 혜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면 너는 어떻게 할래?”
“에?”
모용대수가 끔찍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걸 본 모용혜가 발끈해서 소리쳤다.
“왜 표정이 그래?”
“아니, 그냥… 술이 좀 쓰군. 하하.”
모용대수가 어물쩍 넘어가자 모용세천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그게 지금 무림맹의 현실이야.”
아주 적절한 예를 들어 설명하는 모용세천을 보면서 적운상은 그가 보통 인물이 아니란 생각을 했다. 모용세천은 그곳에 가보지도 않고 무림맹의 현실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통찰력이 그만큼 뛰어나다는 뜻이었다.
“적 형의 생각은 어떻소?”
모용세천이 적운상의 의견을 물었다. 그러자 모용대수와 모용혜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적운상에게로 향했다.
“무림맹은 더 결속이 단단해질 거요.”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오?”
“권력이란 한번 맛을 보면 놓지를 못하는 법이오. 그게 누구든.”
“음…….”
일리가 있다는 듯이 모용세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내 얕은 혜안으로 파악이 되는 문제를 무림맹에서 그대로 방치해 두지는 않겠지.”
“우와… 오라버니.”
갑자기 모용혜가 감탄사를 내뱉더니 목소리를 낮추고 상체를 숙이며 한쪽을 가리켰다.
“저기 봐요.”
뭔가 싶어서 모용세천은 물론이고 모용대수와 적운상도 모용혜가 가리키는 곳을 봤다. 그곳에는 노도사와 두 명의 중년인, 그리고 열대여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녀가 탁자에 앉아있었다.
그중 노도사는 정말이지 신선의 풍모가 느껴지는 외모였다. 단정하게 넘긴 백발과 가슴까지 오는 하얀 수염, 거기에 풍채도 좋아서 입고 있는 도포가 너무나 잘 어울렸다. 객잔 안에 있는 다른 사람들도 신선과 같은 그 노도사를 힐끔거리며 수군거리고 있었다.
“누구죠?”
모용혜가 나직이 물었지만 아무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왜 그러나 싶어서 모용세천을 올려다보자 그의 얼굴은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잔뜩 굳어 있었다.
“오라버니.”
“응? 아, 그래.”
“왜 그러세요?”
“아니다. 대수야. 저 사람이 누군지 알아?”
“확신할 수는 없지만 예전에 숙부님이 이야기했던 그자 같습니다.”
“음…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도대체 두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모용혜는 자기만 놔두고 모용세천과 모용대수가 뜻 모를 말을 주고받자 짜증이 났다.
“혜야. 저 사람은 적염도인(赤髥道人)이라 불리는 풍계오다.”
“처음 들어요. 그리고 저 할아버지 수염은 하얀색인데 왜 적염도인이라고 해요?”
“하아… 저 사람은 도사가 아니다. 수많은 여자들을 납치해다가 채음보양(採陰補陽)을 한다고 들었다. 수염이 하얀데도 적염이라 불리는 이유는 그가 사람을 많이 죽였기 때문이야.”
“설마 하얀 수염이 붉어질 정도로 죽였다고 해서 붙은 별호인가요?”
“그래. 네 말이 맞다.”
“으…….”
모용혜가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몸을 한 번 움츠렸다. 그러다 적염도인의 시선을 느끼고는 재빨리 고개를 푹 숙였다.
“어떡해요? 오라버니. 날 봤어요.”
“걱정하지 마라.”
모용세천이 모용혜의 어깨를 다독이며 안심시켜주는데 조용하고 나직한 목소리가 울려왔다.
“어린 아이들이 혀를 놀려대는구나.”
“심기를 어지럽혔다면 죄송합니다. 어르신.”
모용세천이 침착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그쪽을 향해 포권을 취하면서 말했다. 그러자 흥미롭다는 듯이 적염도인이 그를 봤다.
“어디의 아이냐?”
“모용세천이라고 합니다.”
“흥! 모용 늙은이의 후계였더냐?”
못마땅한 듯이 적염도인이 코웃음을 쳤다. 자신에 대해서 알면서도 겁을 먹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믿는 것이 있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물어봤던 건데 하필 모용세가였다. 만약 모용세가보다 세가 약한 곳이거나, 혹여 비슷한 세를 가지고 있다 해도 이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세가라면 손을 좀 봐줄 생각이었다. 모용혜가 탐이 났기 때문이다.
모용혜는 얼굴은 어린데 몸은 풍만해서 적염도인의 색욕을 자극했다. 그래서 이 객잔에 들어설 때부터 눈여겨보고 있었다.
“누이동생이 잘 몰라서 그런 것이니 이해를 해주십시오.”
“좋아. 그러지. 대신 직접 와서 술을 한 잔 따라라.”
적염도인이 입가에 웃음을 띠며 말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인자해서 모르는 사람들은 그가 채화음적(採花淫賊)이라는 사실을 절대로 믿지 않을 것 같았다.
“죄송합니다. 어르신. 누이동생이 지금 몸이 조금 안 좋은 것 같습니다. 제가 한 잔 올리겠습니다.”
모용세천이 재치 있게 핑계를 대며 술병을 들고 적염도인이 앉아있는 탁자로 다가갔다. 그러자 적염도인이 탁자에 있던 술잔을 들어올렸다. 모용세천은 당연히 그가 술을 받으려고 그러는 줄 알고 술병을 가져다댔다.
그때 갑자기 잔이 깨지면서 파편이 모용세천에게 튀었다. 모용세천이 깜짝 놀라며 다급하게 팔을 들어 올리며 몸을 틀었다. 그러자 그의 팔에 깨진 술잔의 조각이 박혔다.
일부는 모용세천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 얇은 혈선(血線)을 남겼다. 처음부터 적염도인은 그럴 생각이었다. 옥면환검이라고까지 불리는 그의 잘생긴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상처를 내주고 싶었다.
“꺅! 오라버니!”
“형님!”
모용혜와 모용대수가 놀라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나 모용세천이 걱정 말라는 듯이 손을 들어 그들을 말렸다. 그걸 보고 아쉬운 듯이 적염도인이 입맛을 다셨다.
“됐다. 나는 사내가 따르는 술은 받지 않는다.”
“그럼 이대로 물러나겠습니다.”
“흥! 방금 내가 한 말을 듣지 못했느냐? 나는 사내가 따르는 술은 받지 않는다고 했지 않느냐?”
모용세천은 잠시 갈등을 했다. 자신에게 이렇게 대하는데 모용혜가 와서 술을 따르면 무슨 짓을 할지 몰랐다. 물론 크게 다치게 하거나 죽이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용혜에게 술을 따르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한 번 겨뤄보려는 생각을 했다. 하는 짓이 악랄한데도 많은 문파들이 적염도인을 그대로 놔두는 건 그의 무공이 대단했기 때문이다. 그를 잡자면 웬만한 고수들로는 어림도 없었다. 무당십걸 두 명이 협공을 하고도 크게 패한 이후로는 모두 아예 그를 피해 다녔다.
그와 모용대수만 있었다면 그런 생각은 절대로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적운상이 함께 있었다. 적운상은 소림사의 십팔나한은 물론이고 화산파의 매화검수, 그리고 무당파의 무당십걸까지 꺾은 사람이었다.
모용대수와 함께 셋이서 협공을 한다면 한 번 해볼 만할 것 같았다. 그렇게 마음을 정하자 모용세천은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그리고 적염도인을 노려보면서 목소리에 힘을 줬다.
“우리가 모용세가 사람인 것을 알면서도 이리 핍박을 하다니 저의가 뭡니까?”
“난 어린 것들의 버르장머리를 좀 고쳐주려는 것뿐이다. 하지만 네가 먼저 용서를 비니 술 한 잔을 받는 걸로 그냥 넘기려고 했다. 그런데 너는 그럴 생각이 없는 것 같구나.”
모용세천의 몸에서 풍겨오는 투기를 느낀 적염도인이 입가를 올리면서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저쪽에서 먼저 덤벼들면 조금 손을 봐줘도 모용세가에서는 할 말이 없다. 하지만 그런 것을 모를 모용세천이 아니었다.
“어린 저희를 잡고 자꾸 그러시니 상대할 가치를 못 느끼겠습니다.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모용세천이 냉랭하게 말하고는 몸을 돌렸다. 그러자 적염도인과 같이 있던 중년인 하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손을 뻗었다.
“거기 서라!”
모용세천은 적염도인과 싸우기로 마음을 정했을 때부터 이미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중년인의 공격에 당황하지 않고 옆으로 피하면서 발로 그의 옆구리를 찼다.
그러나 중년인도 만만찮았다. 그는 모용세천의 발을 팔로 막아내며 연이어 세 번이나 장(掌)을 뻗어냈다.
타타타탁!
모용세천의 몸이 살짝 떠올랐다. 그리고 몸을 휘돌리며 중년인이 뻗어내는 장을 모두 발로 차올렸다. 그러다 마지막에는 다리를 하늘로 쭉 올렸다가 힘껏 내려쳤다.
콰아아앙!
탁자가 박살이 나면서 그 위에 있던 술과 요리가 사방으로 튀었다. 거기에 앉아있던 또 한 명의 중년인과 소녀가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적염도인은 뒤로 물러나지 않고 여전히 앉은 상태 그대로 오른팔을 크게 한 번 돌렸다. 그러자 도포의 긴 소맷자락이 원을 그리며 날아오는 요리와 술을 모두 튕겨냈다.
이어서 다시 한 번 원을 그리며 모용세천의 정수리를 내려쳤다.
치링!
아주 미약한 소리였다. 그러나 적염도인은 그 소리를 놓치지 않고 상체를 뒤로 젖혔다. 그러자 밑에서부터 뭔가가 튕겨져 올라왔다.
연검이었다. 모용세천이 허리에 두르고 있던 연검을 풀어서 휘두른 것이다.
낭창낭창 휘는 연검이 마치 뱀처럼 적염도인의 목을 노리고 뻗어갔다. 적염도인은 마냥 앉아서만 상대할 수 없다는 생각에 뒤로 뛰어오르며 앉아있던 의자를 걷어찼다.
모용세천은 연검을 회수하지 않고 내기를 주입했다. 그러자 낭창거리던 연검이 뻣뻣해지면서 쭉 뻗어나가 의자를 갈랐다.
파가가각!
그사이에 뒤에 있던 탁자에 내려선 적염도인은 몸을 뒤로 튕기는 힘을 이용해서 이번에는 탁자를 걷어찼다. 그러자 탁자가 무서운 기세로 회전하면서 모용세천을 덮쳐갔다.
모용세천은 다급하게 왼손바닥을 쭉 뻗어서 날아오는 탁자를 쳤다.
콰아아아앙!
탁자가 부서지면서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 와중에 어느새 적염도인이 모용세천의 바로 앞까지 와있었다. 탁자를 발로 차서 잠시 시야를 가린 사이에 바짝 접근한 것이다.
“놈!”
쉬쉬쉬쉿!
적염도인의 손끝이 모용세천의 목을 노리고 빠르게 움직였다. 모용세천이 몸을 틀어 피하자 적염도인이 뻗었던 손을 그대로 눌러서 내려쳤다.
퍼엉!
“커헉!”
어깨를 맞은 모용세천이 비틀대면서 물러났다. 하지만 적염도인은 연이어 공격하지 않고 얼굴에 비릿한 웃음을 띠었다. 그러면서 다른 쪽을 힐끗 봤다.
그의 수하인 중년이 두 명이 모용대수와 모용혜를 상대로 싸우고 있었고, 같이 온 소녀는 겁먹은 얼굴로 한쪽 구석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그 소녀는 적염도인이 채음보양을 하기 위해서 이곳으로 오는 길에 돈을 주고 사왔다. 세끼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가난한 집에 돈 몇 푼 던져주고 데려온 것이다.
소녀에게서 시선을 떼고 모용세천을 보려는데 눈에 거슬리는 자가 보였다. 모용세천과 함께 있던 사내였다. 객잔 안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도망가거나 숨었다. 그런데 그는 느긋하게 앉아서 계속 술을 마시고 있었다.
모용세천과 한패가 아니었단 말인가?
어쨌든 자신이 누군지 알고 있을 텐데도 저리 앉아서 술을 마시고 있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적염도인은 옆에 있는 의자를 들어서 모용세천을 향해 던졌다. 모용세천이 옆으로 몸을 날려 피하자 그 의자가 그대로 적운상을 향해 날아갔다.
적운상은 한 손으로 그 의자를 받아서 옆에 내려놓았다.
쿵!
적염도인이 눈을 빛냈다. 아무리 가볍게 던진 거라지만 저리 쉽게 받아서 내릴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무공이 보통이 아니었다. 하지만 젊었다. 한가락 할지는 몰라도 자신의 상대는 아니라 여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