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257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59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257화
257화. 적염도인 (1)
적운상과 우형승은 당산에 도착하자 묵을 객잔부터 찾았다. 다행히 좀 허름하기는 했지만 음식도 맛있고 가격도 괜찮은 곳을 바로 찾을 수가 있었다.
“일일객잔이라… 하루만 묵고 가라는 뜻인가?”
방을 잡은 우형승이 우스갯소리를 하며 밖으로 나왔다. 이인객방이라 적운상과 같이 쓸 수가 있었다.
“일단 자네는 여기서 기다리게. 내가 가서 그를 데리고 오지. 한 이틀 정도 걸릴 걸세.”
“알겠습니다.”
우형승은 그길로 배유철이라는 자를 데려오기 위해 객잔을 나섰다. 혼자 남은 적운상은 객잔의 후원으로 향했다. 이틀 동안 특별히 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수련이나 할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후원은 생각 외로 잘 꾸며져 있었다. 좁은데도 작은 연못과 나무나 바위, 등이 조화를 잘 이루고 있었다.
적운상은 거기서 태룡도를 뽑아 들고 풍뢰십삼식을 펼쳤다. 내공을 운용하지 않고 순전히 근력으로만 계속 반복적으로 수련했다. 하지만 머릿속에는 우형승이 펼쳤던 강기를 생각하고 있었다.
어차피 얻을 수 없는 것이었다. 생각지 않는 것이 좋았다. 하지만 자꾸 생각나는 것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문득 우형승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우형승은 사람마다 다 각자의 방법으로 깨달음을 얻고 경지를 높여간다고 했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예전에 심검의 경지를 깨닫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때 도움을 줬던 벽로검객 왕대곡도 그런 말을 했었다.
휘두르던 태룡도를 거두고 적운상은 골몰히 생각에 잠겼다. 자신만의 방식은 뭘까? 자신은 어떻게 무상지검의 경지에 올랐고, 어떻게 심검의 경지에 올랐던가?
그런 생각을 하며 답을 찾다가 임옥군을 구할 때의 일이 떠올랐다. 당시에 한복이 임옥군을 죽이려고 하자 적운상은 다급한 마음에 상상도 못할 힘을 냈었다.
몇 장이나 떨어진 거리를 단박에 좁히며 칼을 휘둘렀던 것이다. 그 먼 거리를 어떻게 그렇게 움직였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람은 위급한 순간이 되면 자신도 모르게 엄청난 힘을 발휘할 때가 있다. 다급한 마음에 선천지기(先天之氣)를 격발해서 쓰면 그렇게 된다. 그때도 위급한 순간이기는 했지만 선천지기를 쓰지는 않았었다. 그럼 어떻게 그런 속도를 낼 수 있었던 걸까?
몸 안에서 휘돌던 뇌기가 몸 밖으로까지 터져 나왔던 것까지는 기억이 났다. 그리고 세상은 정지해 있는데 오로지 자신 혼자만 움직이고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었다. 그렇게 찰나의 시간이 지나고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태룡도로 한복을 뒤로 날린 상태였다.
적운상은 그때의 일을 떠올리면서 금안뇌정신공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몸 밖으로 쏟아내면서 빠르게 앞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그때처럼 그런 속도는 나오지 않았다.
한참 동안 원인을 생각하던 적운상은 바닥에 쭈그리고 앉았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금안뇌정신공의 구결을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지우고 다시 쓰기를 반복했다.
무의미한 동작이었지만 적운상은 묵묵히 그 짓거리를 계속 했다. 그러다 귓가에서 느껴지는 숨결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 바람에 뭔가 싶어서 적운상의 등 뒤에서 허리를 굽혀서 내려다보던 여자의 얼굴에 입술이 살짝 닿았다.
“앗!”
여자가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놀라기는 적운상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생각에 깊이 잠겼기로서니 생판 모르는 여자가 등 뒤로 접근해 있는 것도 몰랐다니 어이가 없었다.
여자는 이십대 초반으로 보였는데 예쁘장하고 귀엽게 생긴 얼굴과는 달리 몸매는 굉장히 풍만했다. 비싼 재질로 된 경장차림을 하고 등 뒤에 제법 좋아 보이는 검을 차고 있는 것으로 봐서 무림세가의 여식인 것 같았다.
하지만 예법을 배우지 못했는지 입이 굉장히 험했다.
“갑자기 무슨 짓이야? 죽고 싶어?”
“기척도 없이 등 뒤로 접근한 건 당신이지 않소?”
“그렇다고 볼에 입을 맞추면…….”
입이 거칠어도 여자는 여자였다.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고 얼굴을 확 붉혔다. 솔직히 그녀는 기척 없이 다가간 것이 아니었다.
적운상이 태룡도로 풍뢰십삼식을 펼칠 때부터 와있었다. 초식은 단순하지만 박력 있는 연무에 정신이 팔려 있는데 적운상이 갑자기 중얼거리면서 쭈그리고 앉아서 땅에 뭔가 낙서를 하자 궁금증에 다가간 것이다. 적운상은 너무 생각에 몰두하고 있어서 그런 걸 전혀 몰랐었다.
“사고였소. 원해서 한 게 아니오.”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냐?”
여자가 발끈하면서 등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아 들었다. 적운상은 생각지도 못한 난처한 상황이라 저절로 미간이 좁혀졌다.
“그 표정은 뭐야? 이 재수 없는 자식아!”
“당신 잘못도 있지 않소?”
“지금 잘못을 따지자는 거야?”
“어찌됐건 미안하게 됐소.”
적운상은 귀찮게 실랑이를 벌이고 싶지가 않았다. 그래서 포권을 취하면서 사과를 했다. 여자가 그걸 알아차리고 더 화를 냈다.
“필요 없어! 죽여 버릴 거야!”
여자가 들고 있던 검을 쭉 뻗어왔다. 적운상은 가볍게 몸을 돌려 피하면서 그녀의 손목을 잡으려고 했다. 그러자 그녀가 재빨리 손을 당기며 검을 빙글 돌렸다.
적운상이 그대로 계속 그녀의 손목을 잡으려고 하다가는 검에 팔을 베이고 만다. 간단하면서도 교묘한 초식이었다. 무공의 기초가 탄탄하다는 뜻이기도 했고, 그녀가 상승의 무공을 제대로 배웠다는 뜻이기도 했다.
하지만 적운상의 상대는 아니었다. 적운상이 손을 거둬서 그녀의 팔꿈치를 가볍게 쳤다. 그러자 그녀가 깜짝 놀라서 검을 떨어트리고 말았다. 혈을 맞은 것도 아닌데 팔이 찌르르 하니 울려서 검을 잡고 있을 수가 없었다.
적운상은 이쯤에서 그녀가 그만둘 줄 알았다. 하지만 그녀는 더욱 화를 내며 발로 적운상의 사타구니를 올려 찼다. 상대에게 수치심을 주는 수법이었다.
하지만 적운상은 무표정하니 무릎을 살짝 틀어서 그녀의 발을 막았다. 그러자 그녀의 발이 기다렸다는 듯이 크게 반원을 그리며 적운상의 관자놀이를 찼다.
타탁!
발을 막은 팔에 제법 묵직한 충격이 왔다. 적운상이 반격을 하려다가 급히 팔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그녀의 발이 뚝 떨어지며 적운상의 팔에 걸렸다. 사타구니와 관자놀이를 차고 정수리를 내려찍는 동작이 하나의 초식이었던 것이다.
흔히들 강북과 강남의 무공을 가리켜 남권북퇴(南拳北腿)라고들 한다. 남쪽지방은 권법이 뛰어나고 북쪽지방은 퇴법을 잘한다는 뜻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남쪽지방은 날씨가 매우 더워서 많이 움직이면 금방 지치고 만다.
그래서 발차기 같이 큰 동작은 하지 않는다. 반면에 북쪽지방은 그 반대다. 날씨가 춥기 때문에 주먹질이나 해대는 작은 동작으로는 수련하다가 얼어 죽는다. 북쪽지방의 무공이 발로 차고, 뛰고, 날고 하는 큰 동작이 많은 이유가 그래서였다.
지금 적운상을 몰아붙이려는 여자도 그랬다. 동작이 호쾌하고 발차기가 많았다. 예전에 구혁상과 돌아다닐 때 잠시 들렀던 북해의 무공도 이랬었다.
쿵!
적운상은 여자가 제대로 발을 차기 전에 먼저 발을 가져다댔다. 그러자 여자가 발을 뒤로 물리며 주먹을 뻗어왔다. 이번에도 적운상은 여자의 주먹이 완전히 뻗어오기 전에 팔을 뻗어 먼저 차단을 했다. 그러면서 어깨로 슬쩍 그녀의 어깨를 밀었다.
이에 여자가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보통은 이쯤 되면 실력차이를 알고 물러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여자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오히려 더 화를 내며 다시 덤벼들었다. 적운상은 어쩔 수 없이 옆구리를 노리고 들어오는 그녀의 발을 한 손으로 걷어내고 다른 손을 그녀의 겨드랑이에 넣어서 그대로 뒤로 날려버렸다.
“꺄악!”
공중으로 붕 떠오른 그녀가 비명을 질렀다. 그것과 거의 동시에 두 명의 사내들이 나타나서 한 명은 그녀를 안아들고 다른 한 명은 적운상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보아하니 그녀와 일행인 것 같았는데 이렇게 무작정 달려드니 일단은 공격에 대응을 해야 했다.
타타타타탁!
사내의 발과 적운상의 손이 빠르게 대여섯 번 부딪쳤다. 그러다 사내의 모습이 갑자기 밑으로 쑥 꺼지더니 발로 적운상의 하체를 쓸어왔다. 이렇게 공격을 하면 열에 아홉은 위로 뛰어오르거나 뒤로 물러난다.
하지만 적운상은 오히려 앞으로 나오면서 힘껏 땅을 찍었다. 그러자 사내의 허벅지가 와서 적운상의 발에 부딪쳤다. 원래는 발로 찼어야 하지만 적운상이 갑자기 앞으로 나오자 허벅지로 찬 것이다.
그러다 보니 위력이 전혀 없었다. 타점이 달라지니 위력이 죽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사내는 노련했다. 앉은 자세에서 몸을 뒤집으며 다른 발로 적운상의 무릎을 후려 찼다.
적운상이 어쩔 수 없이 훌쩍 뛰어서 물러났고, 사내는 그 사이에 벌떡 일어나서 거리를 좁히려고 했다. 하지만 적운상이 태룡도를 뽑아 들자 그 자리에서 멈칫했다.
단순히 칼을 뽑아 들었을 뿐인데 기도가 확 달라졌다. 방금까지는 비무를 하듯이 살기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눈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내려앉을 만큼 강렬한 살기가 느껴졌다.
사내는 생각지도 못한 살기에 자신도 모르게 바짝 긴장을 했다. 이 정도의 살기를 보일 정도면 결코 자신의 밑이 아니었다.
“계속 하겠다면 더 이상 참지 않겠소.”
적운상이 무표정하니 하는 말에 사내가 슬쩍 고개를 돌려 여자를 부축하고 있는 사내를 봤다. 어떻게 할지를 묻는 것이다. 그는 사내에게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적운상을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입을 뗐다.
“혹시 형산파의 무적일검 아니오?”
“맞소.”
“하, 이거 실수를 했군. 소림사에서 당신을 봤었소. 미처 못 알아보지 못하고 무례했소이다.”
그가 포권을 취하면서 예의를 차렸다. 그리고 스스로를 밝혔다.
“나는 부끄럽지만 옥면환검(玉面幻劍)이라 불리는 모용세천이오. 아버님께서 모용세가의 가주이시오.”
모용세천은 모용세가의 둘째로 외모도 뛰어났지만 무공도 대단해서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 하지만 소림사에서 열린 무림대회에 참여했다가 백리난수에게 패하는 바람에 한동안 세가에서 두문불출(杜門不出)했었다. 그렇지 않고 소림사에 계속 남아있었다면 호천마궁을 치는데 한몫 단단히 하고 있었을 것이다.
“적운상이오.”
“내 누이동생이 실례를 했으나 나쁜 뜻은 없었을 거요.”
모용세천이 옆에 있는 여자를 힐끗 보며 말했다. 그녀의 이름은 모용혜였다. 어렸을 때부터 귀여움을 받고 커서 성격이 천방지축이었다. 하지만 남에게 해코지를 하지 않기 때문에 모두 애교로 보아 넘겼다.
“아니에요. 오라버니! 제가 그런 것이 아니라 저자가 먼저 그랬어요.”
“그가 뭘 어떻게 했다고 그리 화를 내는 거냐?”
“저자가… 저자가…….”
모용혜는 씩씩거리면서도 끝내 말을 하지 못했다. 볼에 입을 맞췄다는 것을 말하려니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만둬라. 뭔가 오해가 있었을 것이다. 저 사람은 네게 해를 입힐 사람이 아니다. 분명 네가 먼저 뭔가를 잘못했겠지.”
“아니에요! 오라버니는 만날 나만 뭐라 그래!”
모용혜가 모용세천을 향해 소리를 빽 지르더니 적운상을 확 째려봤다. 그러다 몸을 홱 돌려서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런 모용혜의 행동에 모용세천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해 바랍니다. 원래 저러지 않는데 단단히 화가 난 모양입니다.”
“아니오. 내게도 잘못이 있었소.”
“아, 저쪽은 모용대수라고 합니다. 내 사촌입니다.”
모용세천이 같이 온 사내를 소개하자 그가 적운상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반갑소. 명성은 익히 들었소.”
“반갑소.”
“그런데 이곳에는 무슨 일로 온 겁니까? 혹시 이 객잔에서 묵고 있는 겁니까?”
“그렇소.”
“우리도 이곳에서 묵고 있는데, 어떻습니까? 같이 식사라도 하는 것이.”
잠시 생각하던 적운상이 승낙을 했다. 어차피 우형승이 올 때까지는 특별히 할 일도 없었다.
“그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