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255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7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255화
255화. 숨은 실력 (1)
“어디로 갈 생각인가?”
“일단 북쪽으로 가볼 생각입니다.”
걸으면서 우형승이 묻는 말에 적운상이 잠시 생각을 한 후에 대답했다. 북쪽을 선택한 것은 별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남쪽에서 올라왔기 때문에 계속 북쪽으로 가려는 것뿐이었다.
“좋지. 북쪽은 추우니까 항상 따뜻하게 입고 다니게. 젊다고 몸을 함부로 굴리면 늙어서 후회하는 법이니까.”
우형승이 나이답지 않은 말을 했다. 그의 나이 이제 중년이었다. 늙어서의 사정 따위 알 리가 없었다. 적운상도 그걸 알기에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띠었다.
“그럼 여기서 헤어지지. 그동안 즐거웠네.”
대로의 끝까지 배웅을 한 우형승이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저도 즐거웠습니다. 그럼.”
적운상이 포권을 취하자 우형승이 고개를 끄덕이며 예의를 받았다.
“여행길이 평안하기를 빌겠네.”
적운상은 우형승과의 헤어짐이 조금 아쉬웠다. 처음 봤을 때부터 그랬지만 이상하게 끌렸다. 이에 돌아오는 길에 다시 한 번 들를 생각을 하면서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떼었다. 우형승도 적운상과 헤어지는 것이 못내 아쉬워 그 자리에 계속 서서 배웅을 했다.
적운상은 그렇게 그와 헤어지는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적운상이 야트막한 언덕의 소로를 따라 가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다급하게 소리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뜻밖에도 우형승이었다.
“적 아우! 기다리게!”
우형승은 뭐가 그리 급한지 옷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한 모습으로 한 손에는 작은 보따리를 들고 다른 손에는 싸구려 청강검을 든 채 달려오고 있었다. 가만히 서서 우형승이 오기를 기다리던 적운상은 곧 그가 왜 그렇게 급하게 오는지 이유를 알 수가 있었다.
그의 뒤로 약 사오 장 정도의 거리를 두고 거지들이 우글우글하니 쫓아오고 있었다. 그들은 오늘 사생결단을 내기로 작심을 했는지 손에는 몽둥이를 하나씩 들고 야차 같은 얼굴로 달려왔다.
“뛰어! 뛰라고!”
우형승이 휑하니 지나가면서 소리치자 적운상도 얼결에 같이 뛰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설명은 나중에! 일단은 무조건 달려!”
헐레벌떡 뛰어가던 우형승이 뒤를 힐끗 돌아보며 말했다. 거지들과의 거리가 많이 좁혀져 있었다. 이러다가는 조만간 따라잡힐 것 같았다.
“형님!”
적운상은 이유도 모르고 무작정 도망만 칠 수는 없었다. 그러기에는 그의 자존심이 용납을 하지 않았다. 적운상이 어깨를 잡아당기자 우형승이 어쩔 수 없이 멈춰 섰다.
“지금 뭐하자는 거야? 나중에… 이런 젠장!”
말을 하던 우형승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왔다. 적운상 때문에 잠깐 멈춰 선 사이에 거지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포위를 한 것이다.
먼저 도착해서 그렇게 포위를 한 거지들은 어림잡아 사오십 명 정도였다. 하지만 그 뒤쪽으로 계속 모여들고 있어서 정확히 몇 명이나 되는지는 짐작을 할 수가 없었다.
“너 때문에 잡혔잖아.”
“무슨 일로 저들에게 쫓기는 겁니까?”
“거짓말한 게 들켰거든. 그건 일단 나중에…….”
“야이! 시러배잡것아!”
우형승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니 울렸다. 보아하니 그럴 만했다. 덩치가 산만한 거지였다. 같이 있는 거지들보다 머리 하나 정도는 더 큰데다 바위같이 단단한 근육들이 자리를 잡고 있어서 보기에도 위압적이었다.
“나는 개방의 장로 거산이다!”
“으… 귀청이야!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소. 당신같이 덩치 큰 사람이 또 누가 있겠소.”
우형승이 인상을 쓰면서 손가락으로 귓구멍을 쑤셔댔다.
“알면 두말하지 않겠다. 꿇어라!”
덩치가 커서 그런지 뿜어내는 기백이 굉장했다. 그의 근처에 있던 거지들이 자신들도 모르게 몸을 움찔거렸을 정도였다. 하지만 우형승에게는 같잖게만 보일 뿐이었다.
“거 좀! 조용조용 이야기합시다. 사람 앞에 두고 뭔 소리를 그리 지르는 거요?”
“이런 개…….”
거산이 흥분하며 주먹을 말아 쥐고 휘두르려고 했다. 그러자 우형승이 재빨리 몸을 날려 적운상의 뒤로 숨었다.
“너 이 자식! 이리 안 와!”
“아쉬우면 자네가 오게나.”
“으아아아! 썅!”
화를 참지 못하고 거산이 온몸으로 달려들었다. 적운상이 태룡도를 뽑아 그의 어깨를 내려쳤다.
따앙!
분명 사람과 칼이 부딪쳤다. 그것도 태룡도는 도검을 만드는 천응방에서 대대로 전해지는 보도(寶刀)였다. 적운상이 태룡도를 휘두르면 가볍게 해도 아름드리나무 하나는 그냥 잘려나간다. 그런데 겨우 사람의 몸을 베어내지 못하고 튕겨 나왔다.
적운상은 뒷걸음질을 치며 계속 태룡도를 휘둘렀다.
타타타타탕! 땅! 땅!
무려 여덟 번을 휘둘렀고 그때마다 내기를 조금씩 더 실었다. 그러나 거산의 몸에는 생채기 하나 나지 않았다. 그야말로 강철몸이나 다름없었다.
적운상이 그렇게 뒤로 물러나자 그의 뒤에 있던 우형승도 덩달아 뒤로 물러나야 했다. 그는 적운상의 태룡도를 모두 튕겨내는 거산을 보며 눈을 크게 떴다.
“소림사의 금종조(金鍾?)다. 거지새끼가 어떻게 저런 걸 익혔지?”
소림사를 대표하는 일흔두 가지의 무공을 칠십이절예(七十二絶藝)라고 한다. 금종조는 그중 상위에 속하는 무공으로 몸을 강철과 같이 단단하게 만들 수가 있었다. 하지만 대성(大成)하기가 쉽지 않아서 맥을 잇기 위해 몇몇 사람들만이 익혔다.
거산도 그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그는 성질이 우악스럽고 급했다. 당연히 주위 사람들과 마찰이 잦았다. 보다 못한 그의 스승이 고행(苦行)을 명했고, 거산은 십 년을 떠돌았다.
고행을 하면서 거산은 많은 것을 깨달았다. 금종조는 십이성(十二成)까지 완벽한 성취를 이루었다. 그럼에도 아직 부족하다는 생각에 소림사로 돌아가지 않고 계속 고행을 했다.
그러다 우연찮게 개방과 얽히게 됐고 장로가 됐다. 한사코 거절하는데도 개방방주까지 와서 권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것이다.
그가 소림사를 떠나온 지 어느덧 이십 년 가까이 되던 해의 일이었다.
따다다다당!
적운상의 태룡도가 거산의 몸을 다시 다섯 번이나 쳤다. 그러나 여전히 거산은 끄떡도 하지 않고 적운상을 잡으려 들었다. 다행이라면 거산이 금종조는 완벽하게 익혔지만 다른 무공은 시원찮았다.
그래서 적운상의 재빠른 움직임을 어떻게 하지 못하고 쫓아다니기만 하고 있었다. 덩달아 같이 이리저리 피해 다니고 있는 우형승도 어떻게 하지를 못했다.
“이 쥐새끼 같은 놈들이!”
후웅!
거산의 주먹이 바람을 일으키며 날아왔다. 적운상은 뒤로 훌쩍 몸을 날려서 피하면서 거지들 틈으로 들어갔다. 우형승도 몸을 날려 땅을 구르면서 뒤를 따라 움직였다.
그러자 거지들이 당황하며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거산이 적운상과 우형승을 잡기 위해 달려들자 애꿎은 그들이 부딪치며 튕겨 나갔기 때문이다.
간간이 무공을 좀 아는 거지들이 적운상과 우형승을 공격했지만 두 사람이 슬쩍 피하면서 몸을 빼면 바로 거산의 주먹이 날아오는 바람에 두 번 공격하지 못하고 몸을 사려야 했다.
상황이 그러자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고 있던 장로들의 인상이 팍 구겨졌다. 그들은 아까 기루로 몰려왔었던 소걸개와 무한자, 그리고 공로였다.
“안 되겠소! 우리가 직접 나섭시다!”
소걸개의 말에 무한자와 공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갑시다!”
세 사람이 거지들의 머리 위를 뛰어넘어 어깨를 밟고 십여 장의 거리를 단숨에 단축시켰다. 그러면서 우형승을 향해 일제히 발을 후렸다.
우형승은 그들이 올 때부터 보고 있었기 때문에 당황하지 않고 세 사람의 공격을 피했다. 어이없게도 땅을 구르면서 말이다.
“이 더러운 놈아! 창피한 줄도 모르냐?”
소걸개가 공중제비를 돌며 발뒤꿈치로 땅을 구르고 있는 우형승의 머리를 내려찍었다.
쿵!
소걸개의 다리가 우형승의 귓가를 스치고 바닥에 꽂혔다. 뒤이어 무한자와 공로의 발이 계속 우형승의 머리를 노리고 내리 꽂혔다.
쿵! 쿵!
정신없이 굴러서 그들의 공격을 피해낸 우형승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는 바닥을 굴러서 꼴이 말이 아니었다. 누가 그를 보고 천하제일의 검객이라고 할 것인가?
아무리 검을 버렸다지만 하는 짓이 정말 꼴불견이었다. 사실 아까 나름대로 납득을 하고 돌아갔던 소걸개가 이렇게 다시 쫓아온 것도 다 이유가 있어서였다.
우형승이 하도 당당하게 나오기에 소걸개는 정말 그런가 보다 하며 어쩔 수 없이 물러났었다. 하지만 돌아가면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우형승의 말대로 기녀들을 희롱하며 수작을 부린 거지들은 그때 나섰던 십여 명이 다였다. 하지만 우형승에게 맞고 돈을 뜯긴 자들은 무려 백여 명에 달했다.
그들은 소걸개가 우형승을 닦달할 때 나서고 싶었지만 기녀들을 희롱한 동료들이 크게 혼이 나자 선뜻 나설 수가 없었다. 그들도 이래저래 나쁜 짓을 한 것이 많았던 것이다.
괜히 나섰다가 화를 당할까 봐 그게 꺼림칙했다. 그런데 바보 같은 놈 하나가 그 사실을 털어놓았다. 흥분한 소걸개는 그 자리에서 그 거지를 실신할 때까지 쥐어 팼다.
처음부터 제대로 알아보지 않은 자신의 잘못이 컸지만 겁을 먹고 몸을 사린 그들의 행동에 화가 났다. 그리고 그걸 교묘하게 넘긴 우형승에게도 단단히 화가 났다.
마침 거산이 이곳으로 오고 있다는 연락을 받고 인근에 있던 거지들을 싹 다 끌어 모았다. 그리고 오늘 되든 안 되든 우형승이란 인간을 묻어버리기로 작심을 하고 쫓아온 것이다.
파파파팡! 팡!
소걸개와 무한자, 그리고 공로가 우형승을 에워싸고 협공을 하기 시작했다. 우형승은 반격을 할 틈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리저리 피하면서 그들의 공격을 막기만 했다.
그들이 그렇게 싸우는 동안 적운상은 거산을 상대로 여전히 도망 다니고 있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적들을 상대해왔지만 이런 상대는 처음이었다.
태룡도가 안 먹히니 주먹으로 치고 장을 내질러도 끄떡도 하지 않았다. 방법이 있다면 몸 안으로 뇌기를 쏟아 붓는 것뿐인데, 그러자면 손을 접촉한 후에도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 약간의 시간이면 적운상은 저 무지막지한 주먹에 뼈가 으스러지기에 충분했다. 거산은 방어는 완전히 도외시한 채 오로지 공격만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힐끗 우형승을 보니 그도 고전을 하고 있었다. 머리는 헝클어지고 의복은 엉망이었다. 검은 아예 뽑지도 못하고 있었다.
아무리 검을 놓았다지만 심검의 경지에까지 올랐던 사람이 어떻게 저런 모습으로 싸울 수 있는지 의문이었다. 어쨌든 도움을 주기는 줘야 했다.
후웅!
적운상은 얼굴 바로 앞을 스치고 지나가는 거산의 주먹을 보다가 앞으로 세차게 한 걸음을 디뎠다. 그러면서 내력을 있는 대로 끌어올려 온 힘을 다해 거산의 배를 후려쳤다. 벤 것이 아니었다. 태룡도로 마치 몽둥이를 휘두르듯이 후려친 것이었다.
떠엉!
“크윽!”
태룡도를 잡고 있는 양손이 찌르르 하니 울려왔다. 거산은 적운상에게 배를 맞은 자세 그대로 뒤로 주르륵 미끄러졌다.
“타핫!”
기합을 내지르며 적운상은 다시 한 번 태룡도로 거산의 배를 후려쳤다.
떠엉!
촤아아아악!
이번에도 거산은 멀쩡했지만 뒤로 이 장(二丈) 가까이 미끄러졌다. 배에 제법 묵직한 충격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이 정도로 금종조는 깨어지지 않는다. 그걸 알기에 거산은 힘껏 한 걸음을 앞으로 디뎠다.
거의 동시에 적운상도 강하게 발을 내디디며 태룡도를 크게 휘둘렀다. 그러자 바람이 일며 뇌기가 뒤따라 터져 나왔다.
후우우우웅! 파지지직!
떠엉!
거산의 배에 태룡도가 작렬했다. 적운상의 혼신을 다한 일격이었다. 금종조를 깨지는 못했지만 그를 삼 장(三丈) 가까이 날려버렸다.
“흡!”
촤아아아아악!
처음으로 거산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그러면서 놀란 눈으로 적운상을 봤다. 그가 뭘 하려는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상대가 금종조 같은 호신기공을 익힌 것을 알면 대부분은 내기를 불어넣어서 몸 안에 충격을 주려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단련하지 못한 약점, 즉 조문을 찾으려고 한다.
하지만 그건 하급의 호신기공을 익혔을 때나 통하는 방법이었다. 금종조는 실전(失傳)되어 버린 금강불괴신공(金剛不壞神功) 다음으로 인정받는 호신기공이었다. 소림사의 모든 무공이 그렇듯이 금종조도 중후한 내공이 밑받침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내기로 몸 안에 충격을 주려 해도 오히려 반대로 내상을 입고 만다. 그리고 금종조는 애초에 조문이라는 것이 없다. 있다면 오로지 눈뿐이었다. 그 외에는 모두 강철과 같다.
그걸 모르고 그런 방법으로 금종조를 깨려는 자들은 모두 무사하지 못했다. 거산의 주먹에 뼈가 으스러지거나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그런데 적운상은 생각지도 못하게 힘으로 금종조를 부수려 하고 있었다. 이런 무식한 놈이 있을 줄은 몰랐다.
거산은 오기가 생겼다. 자신이 공들여 익힌 금종조를 무시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어디 한 번 부술 수 있으면 부숴보라는 듯이 양팔로 얼굴을 가린 채 마보(馬步)를 취했다. 그러자 지금까지 적운상이 세 차례에 걸쳐 공격을 했던 배가 그대로 노출되었다.
적운상이 거산의 의도를 알아챘다. 사람의 몸이 어디까지 단단해질 수 있는지를 흥미가 일었다. 도전은 받아준다는 것이 적운상의 철칙 중 하나였다.
후우우우웅!
떠엉!
촤아아아아악!
혼신을 다한 일격이었다. 그러나 거산은 아까처럼 삼 장이 아니라 겨우 한 걸음을 밀려났다.
적운상은 얼얼한 팔을 잡고 뒤로 물러났다가 다시 쇄도해 들어갔다.
떠엉!
촤아아아아아악!
몇 번이나 후려쳤지만 거산은 무너지지 않았다. 가만히 서서 적운상의 공격을 모두 받아냈다. 주위에 있던 거지들이 그걸 보고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살면서 별의별 일을 다 겪어봤지만 저런 싸움은 처음 봤다. 한 사람은 때리라는 듯이 가만히 있고, 한 사람은 사력을 다해 후려 팬다. 어떻게 보면 상당히 우스운 광경인데도 웃는 이들은 한 명도 없었다.
싸움의 긴장감이 지켜보고 있는 그들에게까지 전염이 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난투를 벌이던 소걸개와 무한자, 공로, 그리고 우형승까지도 잠시 싸움을 멈추고 그 두 사람을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