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254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7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254화
254화. 검성 우형승 (4)
적운상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니 사방으로 울렸다. 그러자 거지들의 얼굴에 수치심이 어렸다. 그들이 거지이기는 했지만 원해서 된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어떻게 하다 보니 거지가 된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그리고 그렇게 살다보니 거지생활에 익숙해졌을 뿐이었다. 거지들이 구걸을 한다고 해서 자존심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적운상이 그걸 콕 꼬집어서 말하자 모두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음… 어린놈의 기도가 대단하구나.”
소걸개가 조금 감탄한 듯이 말했다. 사실 그는 속으로 크게 놀라고 있었다. 거지들이 어떤 사람들이던가?
산전수전 다 겪으며 온갖 일을 다 당하면서 사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그들은 웬만해서는 기죽는 일이 없었다. 그런데 한두 명도 아니고 이 많은 거지들이 적운상의 기백에 눌리고 있었다.
“정녕 개방과 원한을 질 생각이냐?”
“그건 내가 할 말이다. 나를 적으로 삼으려면 그만큼 각오를 해야 할 거다.”
소걸개의 물음에 적운상이 그를 노려보면서 오히려 반문을 했다. 그러자 소걸개가 기가 찬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껏 개방을 상대로 이리 당당하게 나오는 자는 한 명도 없었다.
개방이 어떤 문파던가?
방도의 수만 해도 몇 천 명이었다. 중원 전역에 있는 거지들 중 둘에 한 명은 모두 개방사람이었다. 그들이 한자리에 모여 뜻을 세운다면 아닌 말로 나라도 엎을 수가 있었다.
적운상도 그걸 당연히 알고 있을 터다. 그런데도 저리 당당하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무공에 자신이 있다는 뜻이었다.
소걸개는 그를 적으로 돌렸을 때의 손실에 대해서 타진을 해봤다. 좋을 것이 하나도 없었다. 지금 보여주는 그의 기백으로 봐서 이중 반은 목숨을 내놓아야 할 것 같았다.
그래도 그를 죽일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물러나자니 체면이 서지 않았다.
그동안 개방에서는 우형승에게 몇 차례나 경고를 했었다. 아무리 검을 버렸다지만 상대는 검성이라 불리던 우형승이었다. 백번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우형승은 계속 개방의 방도를 두드려 패고 돈을 뜯어냈다. 참다 참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결국 소걸개가 나서게 된 것이다.
그때였다. 느릿하니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우형승이 걸어 나왔다. 그는 헝클어진 머리와 옷차림으로 허리에는 싸구려 청강검을 찬 채 하품을 하고 있었다.
개방 사람들이 이리 많은데 긴장감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흐아아아암! 뭐가 이렇게 시끄러워? 잠을 잘 수가 없네.”
우형승이 다시 한 번 하품을 하면서 손을 품에 넣어 배를 벅벅 긁었다. 그런 우형승을 소걸개가 노려봤다.
“어? 소걸개 장로 아니오? 이야… 언제 왔소? 이거 정말 오랜만인걸.”
“닥쳐라! 내가 언제 네놈과 그리 인사를 나눌 정도로 친분이 있었더냐?”
“허, 전에 몇 번 봤잖소. 반가워서 그런 건데 왜 그리 화를 내시오?”
“네놈이 한 짓을 생각해보고 말해라!”
“네가 뭐?”
“이런 죽일…….”
소걸개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화를 간신히 눌러 참았다. 그리고 손짓을 한 번 했다. 그걸 보고 주위에 있던 거지들이 포위를 바짝 좁혀왔다. 지붕과 담벼락 위에 있던 거지들도 모두 뛰어내려 기루 안으로 들어섰다.
거지들로 빽빽하니 주위가 꽉 찼다. 저들이 일시에 밀고 들어오면 아무리 무공이 대단해도 어떻게 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동안 몇 번이나 네놈한테 경고를 했었다고 들었다. 그런데도 본 방도들을 패고 돈을 뜯어?”
“아, 그 일 때문에 이리 몰려들 온 거요?”
“당연하지 않으냐?”
“내가 그놈들을 좀 팬 건 인정하오. 그리고 돈을 좀 가져간 것도 사실이오. 하지만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소.”
“만약 내가 납득하지 못할 이유를 댄다면 오늘 네놈과 사생결단을 낼 테다.”
소걸개가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하지만 우형승은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진중한 눈으로 소걸개를 봤다. 그 눈에는 강한 살의가 담겨 있었다.
생각지 못한 눈빛에 소걸개가 흠칫하며 약간 긴장을 했다. 우형승을 아는 사람들은 그가 검을 버린 후 흥청망청 인생을 허비하는 것을 두고 불쌍하다며 혀를 찼다. 실력도 예전만 못할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소걸개 만큼은 아니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우형승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그가 마음먹는다면 여기 있는 팔백 명으로도 모자랐다. 적어도 천 명 이상은 와야 했다. 그럼에도 오늘 이들만 데리고 온 것은 우형승과 사생결단을 내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저 개방의 힘을 좀 보여주고 혼을 내주고 싶었을 뿐이다. 그런데 우형승의 눈빛이 저리 바뀌니 조금 긴장이 되는 걸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만약 정당한 이유가 있다면 그들을 내가 죽이겠소. 그래야 공평하지.”
우형승의 말에 소걸개는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개방의 방도들이 우형승에게 당했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이유까지 소상이 물어보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안 봐도 어찌된 일인지 대충 짐작을 할 수 있었다. 우형승은 전부터 개방 사람들을 싫어했었다. 게다가 그는 검을 버린 이후로 안하무인(眼下無人)처럼 굴 때가 많았다.
필시 그런 이유일 텐데 우형승이 저리 당당하게 나오자 조금 꺼림칙했다. 더구나 혼을 내는 것도 아니고 죽인다니?
다른 문파에 그런 것을 요구할 때는 그만큼의 힘이 있어야 가능했다. 그리고 정말 큰 잘못을 한 경우가 아니면 문파에 이야기를 해서 자체적으로 해결하게 하는 것이 예의였다.
소걸개가 대답을 망설이자 우형승이 혀를 차며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오늘 당신이 온 것은 시비를 확실히 가리기 위해서가 아니오? 저리 많은 사람들을 끌고 왔다는 것은 나하고 끝장을 보기 위해서일 텐데, 그리 몸을 사리면 어쩌자는 거요? 빨리 가부를 결정하고 각자가 볼일들 봅시다. 당신들도 구걸해야 먹고살 텐데 이리 모여 있으면 일하는데 지장이 있을 거 아니오?”
쥐가 고양이를 생각해주는 격이었다. 소걸개는 인상을 한껏 찌푸리다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좋다. 말해봐라. 그 이유란 것을! 만약 내가 납득할 일이라면 네놈에게 그들의 처분을 맡기겠다!”
“남아일언(男兒一言)은!”
우형승이 내공을 실어서 크게 소리치자 소걸개도 그에 질세라 똑같이 크게 소리를 질렀다.
“중천금(重千金)이지!”
“좋소! 그때 내게 당했던 거지새끼들은 야밤에 기녀들을 속여서 끌고 가 돌아가며 겁탈을 했소. 내가 웬만해서는 참으려고 했는데 한두 번이 아니라 가만히 있을 수가 있어야지. 게다가 내가 단골로 오는 이곳의 기녀까지 당했소. 솔직히 거지새끼들이나 기녀들이나 같은 밑바닥 인생 아니오? 그런데 도움을 주지는 못할망정 그런 더러운 짓을 해대니 참을 수가 없었소.”
“음…….”
소걸개가 잔뜩 인상을 쓰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 말이 사실이냐?”
“사실이오! 거짓이 있다면 내 목을 치시오.”
“이놈에게 당한 놈들은 모두 이리로 나와라!”
소걸개가 크게 소리치자 잠시 후 열세 명의 거지들이 머뭇거리면서 나왔다.
“이놈이 한 말이 모두 사실이냐?”
“아닙니다. 사실이 아닙니다. 저는 그저 망을 봤을 뿐입니다.”
“망을 보다니! 그렇다면 정말 그랬다는 것이 아니냐?”
말실수했다는 것을 깨달은 거지가 고개를 푹 숙였다. 다른 거지들은 그를 무서운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어서 바른대로 대라! 거짓을 말한다면 네놈들의 혀를 뽑아버릴 테다!”
소걸개가 서릿발 같은 기세로 다그치자 거지들이 흠칫 몸을 떨었다. 소걸개는 한다면 정말 하는 사람이었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사람이었다.
“죄, 죄송합니다. 어르신. 그 기녀가 꼬리를 치는 바람에 참지 못하고 그만…….”
“죄송합니다.”
거지들이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으면서 고개를 숙였다. 잠시 그들을 노려보던 소걸개가 우형승을 봤다.
“저들의 처분은 네놈에게 못 맡기겠다. 들었다시피 기녀가 먼저 꼬리를 쳤고, 어차피 기녀인데 몇 놈에게 당했다고 해서 닳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 그리고 그런 일이 있었으면 직접 손을 쓰지 말고 본 방으로 찾아와서 시비를 가렸어야 옳다!”
“큭큭!”
우형승이 나타나자 지금까지 조용히 있던 적운상이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상당히 신경에 거슬리는 웃음소리였다. 소걸개가 못마땅한 눈으로 쳐다보자 적운상이 웃음을 멈추고 그를 봤다.
“그렇게 말한다면 당신이 이리 찾아와서는 안 되지. 기녀라고 해서 그런 일을 당해도 된다면, 당신들은 거지니까 몇 대 맞아도 상관없지 않소? 그런다고 해서 죽는 것도 아니고 사는데 지장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오.”
“하하하하. 맞다. 맞아. 하하하하.”
적운상이 한 말에 우형승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일리가 있는 말이라 소걸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얼굴만 붉으락푸르락했다.
“좋다. 오늘은 이만 물러가마.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건 또다시 이런 일이 생긴다면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겠다.”
소걸개가 엄포를 놓으며 우형승과 적운상을 노려봤다. 그러자 적운상이 그 시선을 받으며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만약, 그런 짓을 하다가 내 눈에 뜨인다면 그들을 관리하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거요.”
“건방진 놈 같으니라고… 그리 나대다가는 결국 제명대로 살지 못하고 죽을 거다.”
“구차하게 살 생각 없소. 짧게 살더라도 내 뜻대로 살 거요. 그것이 내 인생이오.”
소걸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잠시 적운상을 쏘아보다가 그대로 몸을 돌렸다. 그러자 주위를 빽빽하게 채우고 있던 거지들이 그 뒤를 따라 우르르 몰려나갔다.
“후우… 누가 거지들 아니랄까 봐. 다니는 꼬락서니하고는. 가세나. 가서 한잔 하지.”
우형승이 적운상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말했다. 그러나 적운상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저는 이대로 떠나겠습니다.”
“고진명을 찾아갈 생각인가? 개방과는 틀어졌으니 그를 찾아달라고 부탁할 수도 없지 않은가? 어떻게 찾으려고?”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일단 움직여야 마음이 편할 것 같습니다.”
“뜻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가세. 내가 큰 길까지 배웅을 하지.”
“아닙니다. 그러지 않아도 됩니다.”
“됐네. 그 정도는 해야지.”
우형승은 그렇게 말하며 먼저 성큼성큼 밖으로 나갔다. 그런 우형승의 뒷모습을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쉰 적운상이 뒤를 따라 기루를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