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252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09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252화
252화. 검성 우형승 (2)
잠시 후 요리와 술이 들어왔다. 요리는 비싸지는 않지만 정성이 들어있어서 맛깔스럽게 보였다. 최고급 술은 싸구려 분주였다. 다만 늘 타던 물을 안 탔을 뿐이다.
“마시지. 한 잔 받게.”
우형승이 적운상의 잔을 채워줬다. 우형승의 잔은 옆에 있던 기녀가 채워줬다. 몇 번 술이 오가고 나자 우형승이 옆에 있는 기녀의 옷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가슴을 주물럭거리면서 물었다.
“소림사에서 있었던 비무대회 이야기는 들었네. 그때 이야기나 좀 해주게. 십팔나한과 매화검수, 거기에 무당십걸까지 모두 꺾었다지?”
“에에? 이 오라버니가 그렇게 강해요?”
기녀들이 놀라면서 적운상과 우형승을 번갈아가면서 봤다. 그녀들은 무림에 대해서는 잘 몰라도 이런 곳에 있다 보니 듣는 것은 많았다. 그래서 십팔나한과 매화검수, 무당십걸이 소림사와 화산파, 그리고 무당파를 대표하는 사람들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정말 대단해요. 난 강한 남자가 좋더라.”
“내가 먼저 찜했다니까!”
그렇잖아도 적극적이던 기녀들이 더 적극적이 됐다. 적운상은 웃으면서 술잔을 비웠다. 그러자 기녀들이 자지러지면서 난리를 쳤다. 한 명은 치마를 마구 걷어 올리며 그 자리에서 적운상을 덮치려고 했다. 적운상이 난처해하자 그걸 보고 우형승과 기녀들이 배를 잡고 웃었다.
적운상은 지금껏 많은 여자를 보아오고 기루에도 몇 번 가봤지만 이렇게까지 적극적인 여자들은 처음이었다. 덕분에 연거푸 술잔을 비우게 돼서 다른 때보다 취기가 빨리 돌았다.
“자네 말이야.”
우형승도 취기가 좀 도는지 혀가 약간 꼬이려 했다.
“심검의 경지에 올랐지?”
“그렇소.”
“그 이상을 바라고 있나?”
“그렇소.”
적운상은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그러자 우형승이 킬킬거리면서 웃었다.
“나도 예전에 그랬었지. 오로지 검밖에 몰랐다네. 이 망할 년을 한시도 내 곁에서 떨어트려 놓지 않고 밤낮으로 휘둘렀네. 그랬더니 열다섯에 무상지검의 경지에 오르더군.”
우형승이 하는 말을 들으면서 적운상은 잠시 올라왔던 취기가 싹 가시는 느낌이었다. 적운상 역시 그 나이 때에 무상지검의 경지에 올랐었다.
“그 후로 수없이 많은 사람들과 검을 섞었네. 처음에는 나름 의미를 부여하면서 기억을 했지만 시간이 지나니까 하도 많아서 한 놈도 기억이 안 나더라고.”
적운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그랬었기 때문이다. 우형승이 말을 계속 했다.
“그러다 어느 날 뒤돌아보니 심검의 경지에 올라있더군. 사람들은 천하제일검이니 뭐니 하면서 나를 떠받들고 있고 말이야. 그때는 혈기가 너무 왕성했어. 사람들이 대단하다, 대단하다 하니까 정말 그런 줄 알고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다녔었거든.”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부끄러웠던지 우형승은 술잔을 단숨에 비워버렸다. 그러자 옆에 있던 기녀가 조용히 술을 따라 잔을 채웠다. 그러고 보니 아까까지만 해도 시끌벅적 떠들던 기녀들이 지금은 귀한집의 여식들처럼 다소곳하니 입을 다물고 있었다. 적운상은 우형승의 이야기에 집중하느라 그런 것도 전혀 몰랐다.
“그러다 한 노인을 만났네. 다짜고짜 찾아와서는 한 번 겨루자고 하더군. 겨뤘지. 난 겨우 한 번 칼질을 했네. 그리고 흠씬 두들겨 맞았지. 그 노인 정말 사람 팰 줄 알더군. 칼을 잡은 이후로 그렇게까지 누구에게 맞아본 적은 그때가 처음이었네.”
적운상은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심검의 경지에 오른 사람을 그리 간단하게 제압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안 믿겨지지? 나도 그랬네. 맞으면서도 믿기지가 않았지. 엉망이 되어서 누워있는데도 꿈같더란 말일세.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을 때는 그 노인은 보이지 않았네. 처참한 패배였지.”
“그 노인이 누구였습니까?”
“모르네. 이름도 성도 몰라. 그 당시 나의 오만은 하늘을 찌를 때였다. 생긴 것과 허름한 옷차림만 보고 나는 노인의 이름이나 성조차도 묻지 않았었지. 내 평생 가장 후회되는 일 중의 하나일세.”
“그 후로 어떻게 됐습니까?”
“어떻게 되긴? 스스로 얼굴에 똥칠을 했으니 살맛이 날 턱이 있나? 만날 술과 여자를 끼고 살았지. 딱 일 년을 그렇게 지냈더니 내 주위에 사람이 한 명도 남아있질 않더구먼. 그때야 깨달았지. 내가 얼마나 바보 같았는지를. 그 후로 이를 악물고 검을 휘둘렀네. 초심으로 돌아가고자 했지.”
“심검의 경지를… 넘어섰습니까?”
적운상이 궁금해 하던 것을 물었다. 그러자 우형승이 묘한 눈빛으로 적운상을 똑바로 쳐다봤다.
“아직 이야기가 더 남았네. 조급해 하지 말게.”
그렇게 말하면서 우형승이 술잔을 비우자 옆에 있던 기녀가 안주를 집어서 입에 넣어줬다.
“그래서 말이야… 다시 비무행을 시작했네. 강하다는 사람을 모두 찾아다녔지. 그 노인과 다시 겨루고 싶었거든. 하지만 찾을 수가 없었네. 사실 만난다고 해도 이길 수 있는 자신은 없었어. 그저 가르침을 받고 싶었을 뿐이지. 심검의 경지를 넘어설 수가 없었네. 너무나 커다란 벽이라서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안 되더란 말일세.”
적운상이 가장 공감하는 이야기였다. 호천마궁의 궁주인 조황인과 겨루고 나서 심검의 경지를 넘어서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던가?
하지만 여전히 제자리걸음이었다. 약간의 실마리를 잡았으나 그뿐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동굴을 손으로 더듬거리면서 통과하려는 것과 같았다.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이놈의 검이 지겹더군. 그리 노력을 해도 안 알아주니 화가 났지. 그래서 검을 버렸네. 그리고 이곳으로 왔지. 흐흐. 안 그랬으면 이 예쁜 것들을 만나지 못했을 거야.”
우형승이 음흉스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옆에 있는 기녀를 꼭 껴안고 얼굴을 비볐다.
“아이 참. 오라버니도…….”
기녀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싫지 않은 표정이었다. 하긴, 상대는 천하제일의 검객이었다. 그에게 안기고 싶어 하는 여자들은 수두룩했다. 그녀들에게는 감지덕지(感之德之)한 상대였다.
게다가 이곳은 어쩌다 한 번씩 들러서 돈을 왕창 풀고 가는 우형승 덕분에 문을 안 닫고 있었다. 만약 우형승이 없었다면 벌써 망해서 문을 닫고 기녀들은 뿔뿔이 흩어져야 했을 것이다.
“그 후로 이렇게 살고 있지. 그러니 자네는 헛걸음을 한 거네. 사실 아까 자네를 봤을 때 한눈에 자네가 심검의 경지에 올라 있다는 걸 알아차렸네. 싸우기가 겁이 나더군. 그래서 이리로 데리고 온 걸세. 하하하하. 자넨 제대로 나한테 속은 거야.”
우형승이 한참을 웃었다. 그러나 적운상은 웃지 않고 술잔을 비웠다. 우형승의 말이 사실이라면 적운상은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반응이 왜 그러나? 재미없군.”
적운상이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술만 마시자 우형승이 손을 휘휘 저으면서 같이 잔을 비웠다. 그러자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웃고 떠들던 기녀들도 그 분위기에 눌려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사연이 많은 모양이군.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모두가 자신이 처한 상황이 가장 힘든 법이지. 나는 이제 거지들의 돈이나 뜯어서 이렇게 기루나 전전하는 인생이야. 검성이라는 명성은 오래전에 그 의미를 잃었네. 자네도 낮에 보지 않았나? 도움을 주지 못해서 미안하네.”
“미안할 것 없소.”
“사람 참 재미없군. 자네 이야기나 좀 해보게. 어떻게 살아오면 가만히 앉아있어도 그런 박력이 뿜어져 나오는지 궁금하군.”
적운상은 잠시 날들을 떠올렸다. 그러나 피식 웃고 말았다. 자조적인 웃음이었다.
“심검의 경지를 넘어선 고수가 있소?”
적운상이 대답 대신 말을 돌리자 우형승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
“있지. 당연히 있고말고.”
“누굽니까?”
“그들을 찾아갈 생각인가? 찾아가서 겨루려고? 그럼 뭔가 얻어질 거라 생각하나? 아니야. 자네의 벽은 겨룬다고 해서 깰 수 있는 것이 아닐세. 그리고 그들이 자신들의 심득을 아무 상관도 없는 자네에게 순순히 전해줄 리도 없지.”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절실하군. 일단 오늘은 아무 생각 말고 즐기세나. 내일 술이 좀 깨면 내가 알려주지.”
그렇게 말하면서 우형승이 잔을 들었다.
“만나서 반갑네. 자네가 더 높은 경지로 나아가기를 바라면서, 건배하세나.”
적운상이 우형승의 잔에 가볍게 자신의 잔을 부딪친 후에 단숨에 비워버렸다.
* * *
“으…….”
적운상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간신히 일어났다. 어제 우형승과 너무 많이 마셨다. 중간까지 대화를 나눈 것은 생각이 나는데 그 이후로는 무슨 말을 했고 어떻게 행동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괜찮으세요?”
옆에 누워있던 기녀가 물었다. 적운상이 인상을 살짝 쓰며 기억을 더듬었다. 여자를 안은 기억은 없었다. 술에 취한 자신을 이 방에 옮겨놓고 옆에서 같이 잔 것 같았다.
“목이 마르군.”
“잠시만요.”
기녀는 아무것도 입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도 거리낌 없이 일어나서 탁자 위에 있는 물을 가지고 왔다.
적운상이 그걸 받아 마시고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숙취로 인해 머리가 아프고 속이 울렁거렸다. 술을 가끔 즐기기는 했지만 이렇게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과음한 적은 없었다. 자제력을 잃었다는 뜻이다.
우형승과 마음이 맞아서 그런 것도 있었지만 사부인 임옥군의 죽음 때문이기도 했다. 적운상은 그동안 임옥군의 죽음에 대한 슬픔을 꾹꾹 눌러놓았었다.
그것이 술을 계기로 터져 나왔고, 그 때문에 과음을 한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한순간이나마 방심을 했다는 사실에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그때 만약 누군가가 나쁜 마음을 먹고 손을 썼다면 도리 없이 당했을 것이다.
정신도 다잡을 겸 밖에 나가서 땀을 좀 흘리려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옆에서 빤히 보고 있는 기녀의 시선에 고개를 돌렸다. 기녀는 기이한 열정이 일렁이는 눈으로 적운상을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아침에 하는 거 좋아하는데…….”
적운상은 술에 취해서 기억을 하지 못했지만 어젯밤에 기녀들이 그를 차지하기 위해서 벌인 쟁탈전은 굉장히 치열했다. 거기서 결국 그녀가 다른 기녀들을 누르고 승자가 되었는데, 적운상은 오자마자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대로 잠이 들고 말았다. 이에 그녀는 아침을 기약하며 그냥 옆에서 잘 수밖에 없었다. 지금 눈을 빛내면서 그런 말을 하는 이유가 그래서였다.
“머리가 아파서 안 될 것 같군.”
“그러지 말고…….”
기녀가 적운상의 무릎 위로 올라타며 얼굴을 가까이 했다. 기녀의 부드러운 살이 느껴지자 적운상은 그제야 자신이 아무것도 안 입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아…….”
기녀가 뜨거운 숨결을 내뿜으며 더욱이 적운상에게 몸을 밀착시켜왔다. 적운상은 그녀를 꽉 안아서 침상에 눕히고 그 위로 올라탔다.
‘그럼 그렇지.’
열 여자 마다하지 않는 것이 남자였다. 기녀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한껏 요염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적운상은 그녀를 그대로 놔두고 몸을 일으켰다. 잠시 멍해 있던 기녀가 적운상을 흘겨보면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