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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형산파 251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21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아! 형산파 251화

251화. 검성 우형승 (1)

 

“뽑았다!”

우형승이 검을 뽑자 거지들 중 하나가 크게 외쳤다.

“제기랄! 튀어!”

“어서 달려!”

순식간이었다. 우형승에게 금방이라도 덤벼들 것처럼 시비를 걸던 거지들은 그가 검을 뽑아서 휘두르는 것을 보고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개방은 항상 저런 식이었다. 지들 멋대로 행동하다가 안 되면 도망가고, 되겠다 싶으면 계속 엉겨 붙었다. 체면이고 뭐고 없었다. 명예 같은 건 아예 생각하지도 않았다. 어차피 밑바닥 인생이라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인간들이었다.

그래서 천하에 명성이 자자한 검성을 상대로도 전혀 기죽지 않고 그렇게 대들 수가 있었던 것이다. 비록 욕만 실컷 해대며 속만 긁다가 검 한 번 휘두르자 모두 도망쳤지만 그 용기만도 가상했다. 다른 이들은 검성 우형승이라고 하면 꼬리부터 내리기 바빴으니까.

우형승이 허탈하니 웃으면서 검을 다시 집어넣다가 멈칫했다. 강한 시선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고개를 돌려보니 웬 사내가 그를 보고 있었다.

깔끔한 옷차림에 허리에는 칼이 한 자루 걸려 있었다. 죽립을 눌러쓰고 있어서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굳게 다문 입이나 갸름한 턱선으로 봐서는 제법 생겼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존재감이 강했다. 기세를 뿜어내고 있는 게 아닌데도 그랬다. 그런 묘한 분위기 때문에 오가는 행인들이 그를 피해가고 있었다.

“나한테 볼일이 있나?”

“당신이 검성이라고 불리는 우형승이오?”

우형승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 저런 식으로 말을 꺼내는 놈들은 열이면 열 모두, 칼을 한 번 섞으러 온 자들이었다. 이름이 알려졌으니 명성을 쫓아, 또는 실력을 확인하기 위해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우형승도 그런 이들이 찾아와서 비무를 신청하면 굳이 거절하지 않고 모두 받아줬다. 하지만 실력도 없는 것들이 찾아와서 어깨에 힘주고 거들먹거리는 꼴은 절대로 못 봐줬다.

그런 자들은 팔 하나를 잘라 밥숟가락을 못 들게 만들어줬다. 존재감은 강하지만 어째 그도 그런 자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말투가 건방졌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자들은 일단 자기 자신부터 밝히며 예의를 차리는 법이었다.

“맞다.”

우형승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그가 비무를 청했다.

“한 수 겨루고 싶소.”

“여기서 말인가?”

여기는 행인들이 많이 오가는 다리였다. 비무를 하기에는 좋은 장소가 아니었다.

“원하면 그렇게 하겠소.”

그렇게 말하면서 그가 칼을 뽑았다. 새하얀 도신과 그걸 입에 머금고 있는 용의 머리모양으로 되어 있는 칼자루가 눈에 들어왔다. 보기에도 보통 칼이 아니었다.

‘주제넘게 칼은 좋은 걸 가지고 있군.’

우형승이 다리의 좌우를 살폈다. 사람들이 적을 때 빨리 끝내기 위해서였다. 마침 사람들의 걸음이 뜸해졌다.

“오게나.”

우형승은 재빨리 검을 뽑아 들고 그를 향해 말했다. 일검, 아니 어쩌면 두 번 정도는 검을 휘둘러야 할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내공을 끌어올리는데 갑자기 뜨거운 기운이 확 덮쳐왔다.

“…….”

우형승은 깜짝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에게 칼을 겨누고 있는 사내를 봤다. 틈이 없었다. 게다가 기세에서부터 눌리고 있었다. 단지 칼을 뽑아 들었을 뿐인데도 그 박력이 대단했다. 그냥 서있을 때와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이 자식, 실력을 숨기고 있었나?’

그런 생각을 하던 우형승은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는 그저 칼을 뽑아 들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무슨 실력을 숨기고자시고 할 것이 있단 말인가?

그는 실력을 숨긴 것이 아니라 내공을 안으로 갈무리할 수 있는 반박귀진(返璞歸眞)의 경지에 올라 있었다. 그래서 칼을 뽑고 기세를 드러내기 전까지는 그의 실력을 전혀 짐작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름이 뭔가?”

우형승은 웬만해서는 비무하는 상대의 이름을 묻지 않았다. 보통은 알아서 먼저 이름을 댔고, 그렇지 않을 경우 굳이 묻지 않았다. 어차피 칼 한 번 섞고 제 갈 길을 갈 사이였기 때문이다.

“적운상이오.”

“적운상이라…….”

우형승이 기억을 더듬었다. 얼핏 들어본 적이 있는 이름이었다. 적운상의 명성이 가장 잘 알려진 곳은 호남과 호북이었다. 소림사의 비무대회에서 크게 명성을 떨쳤지만 근간에 있었던 일이라서 아직 이곳 하북까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우형승은 천하에서 알아주는 고수답게 적운상에 대해서 조금은 알고 있었다. 오랜 지인과의 술자리에서 그의 이야기를 한 번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것을 기억해낸 것이다.

“무적일검인가?”

갑자기 별호를 묻자 적운상이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그러면서 공격할 틈을 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쉽지가 않았다.

고수들의 비무가 대게 그렇듯이 상대의 틈을 찾기란 굉장히 어렵다. 그래서 고수들의 대결은 기세싸움만 한참 하다가 한두 수만에 결판이 나는 경우가 많았다.

“들은 적이 있네. 소림사와 무당파, 그리고 화산파의 코를 납작하게 눌러줬다지? 그들은 한 번씩 그렇게 당해봐야 정신을 차리지. 아주 잘했네.”

“별로 그럴 생각으로 한 것이 아니오. 그저 비무였을 뿐이오.”

“어찌됐든 결과가 그리 됐으니 된 거지. 비무는 나중에 하고 술이나 한 잔 하세.”

우형승은 적운상의 의견도 묻지 않고 그냥 검을 거둬버렸다. 적운상은 잠시 멍하니 우형승을 보다가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태룡도를 집어넣었다. 우형승은 왠지 묘한 끌림이 있는 사내였다. 대화를 나눠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먼 길 찾아왔으니 술은 내가 사지. 가세나. 내가 아는 술집이 있네.”

이번에도 우형승은 적운상의 의견은 물어보지도 않고 마음대로 결정을 했다. 그러고는 당연히 따라올 거라 여기며 앞장서서 성큼성큼 걸어갔다. 말하는 거나 행동하는 거에 거침이 없었다.

우형승은 대로를 벗어나 좁은 골목으로 들어섰다. 그곳은 여자들이 몸을 파는 홍등가였다. 골목 양쪽에 있는 기루마다 홍등이 걸려 있었다.

하지만 고급기루가 많아서 호객행위를 하는 곳은 거의 없었다. 그곳을 지나 좀 더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자 허름하기 짝이 없는 기루들이 보였다.

이곳은 아까 지나왔던 기루의 퇴기(退妓)들이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술값이나 화대가 굉장히 쌌고, 어떻게든 손님을 잡으려고 필사적이었다.

“어머! 우 오라버니! 오늘은 우리 집에 안 와?”

“무슨 소리야? 우리 집으로 와야지!”

“오라버니! 저 잊었어요? 이쪽으로 와요!”

기녀들이 야시시한 옷차림으로 호객행위를 했다. 그러자 우형승이 얼굴에 환하게 웃음을 띠면서 그녀들의 몸을 마구 주물러댔다.

“오늘은 아니야. 너희들 집은 나중에 가마.”

“아잉.”

“그러면서 왜 만져요!”

싫지 않은 듯 기녀들이 요사스러운 웃음을 흘리면서 교태를 부렸다. 적운상에게도 몇몇 기녀들이 다가왔지만 그의 분위기에 흠칫하며 아무 말도 못하고 물러났다.

경험으로 아는 것이다. 저런 분위기를 풍겨대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우형승은 달라붙는 기녀들을 일일이 상대하며 골목 끝까지 갔다. 그리고 좌측에 있는 기루로 들어갔다.

“앗! 오라버니!”

삼십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기녀가 우형승을 보고 맨발로 뛰어나와 안겼다. 나이에 비해 아직 몸매는 탱탱하고 얼굴은 고왔다. 퇴기라고는 하지만 제법 급이 높았다.

“왜 이렇게 오랜만에 오셨어요?”

“그래서 이렇게 왔지 않으냐? 들어가자.”

“그래요.”

그녀는 우형승의 목에 두른 팔을 놓지 않고 기루 안쪽을 향해 소리쳤다.

“얘들아! 우 오라버니 오셨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녀와 비슷한 나이 또래의 기녀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꺄아아악!”

“오라버니!”

“왜 이제야 왔어요!”

난리도 아니었다. 우형승을 끌어안고 팔에 매달리는 건 기본이었다. 폴짝 뛰어올라 등에 업히며 입까지 맞췄다. 그렇게 다섯 명의 여자들이 호들갑을 떨며 소리를 지르자 적운상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미간을 살짝 좁히며 인상을 쓰고 있는데 한 여자가 적운상을 보며 우형승에게 물었다.

“어머, 이 잘생긴 오라버니는 누구예요?”

“멋있다…….”

“어쩜! 저 눈빛 좀 봐. 아… 녹을 것 같아.”

확실히 달랐다. 아까 골목에서 호객행위를 하던 기녀들은 적운상의 분위기에 겁을 먹고 말도 제대로 걸지 못했었다. 하지만 여기 있는 여자들은 닳고 닳은 여자들이었다.

그동안 별의별 손님들을 다 상대해왔고, 그 중에는 적운상과 비슷한 분위기의 사람들도 많았었다. 아니 그보다 더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니 단지 분위기에 겁을 먹고 물러날 그녀들이 아니었다.

“내 동생이다.”

우형승이 툭 던진 말에 기녀들이 마구 부정을 했다.

“에이… 거짓말.”

“맞아요. 오라버니보다 훨씬 잘생겼는걸요. 어쩜 몰라. 나 벌써부터 흐르는 것 같아.”

“이년이 미쳤나. 저리 가. 내가 벌써 찍었으니까.”

기녀들이 너도나도 한마디씩 하면서 깔깔대자 적운상도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어머, 웃는다. 멋져라.”

“나 정말 반했어.”

기녀 세 명이 적운상에게 착 달라붙어서 안으로 잡아끌었다.

“빨리 들어가요!”

“안에 들어가서 이야기해요. 호호.”

적운상은 못이기는 척 그녀들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허름한 기루의 외관과는 다르게 방 안은 깔끔하고 넓었다. 알맞게 배치되어 있는 집기들이라든지 비싸지는 않지만 안정감을 주는 족자와 도자기들이 제법 그럴듯하게 보였다.

“자! 이거 가져가라. 거지 놈들이 지랄들을 하기에 좀 빼앗아왔다. 거지면 거지답게 살아야지, 거지같은 놈들.”

자리를 잡고 앉은 우형승이 탁자에 주머니 하나를 던져놓으면서 말했다. 옆에 붙어 있던 기녀가 그 주머니를 재빨리 챙기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어머, 이거 모두 금자야! 호호호. 문 걸어 잠가야겠네.”

“당연하지. 내가 왔는데 다른 손님 받으려고 그랬냐? 당장 가서 잠가. 요리는 알아서 가져오고 술은 최고급으로, 알지?”

“그럼요. 호호. 금방 갔다 올게요.”

기녀 하나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다가 뒤를 돌아보며 다른 기녀들을 살짝 째려봤다.

“거기 내 자리야.”

적운상의 옆자리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흥! 먼저 앉으면 임자지.”

“어머 어떻게 해? 나 벌써 앉았는데.”

“저것들이 정말…….”

나가려던 기녀가 다시 돌아오려고 했다. 그러자 우형승이 손을 휘휘 저었다.

“걱정 마라. 오늘 내 동생과 함께 잘 여자는 내가 정해 줄 테니까.”

“정말?”

“그런 게 어디 있어? 놀다가 마음 맞으면 가는 거지.”

“맞아요!”

“우…….”

“하하하하. 그러니까 나한테 잘 보이면 되지 않으냐?”

우형승이 기녀들의 반응을 즐기면서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우형승은 생긴 것과는 다르게 호탕하고 사내다운 기질이 다분했다. 저런 사람은 스스로를 숨기지 않는다.

손해를 볼지언정 있는 그대로를 보여준다. 명문가에서 자라 고고한 척 말조심하고 행동 조심하면서 점잖 떠는 그런 자들과는 대조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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