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289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83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289화
289화. 혼인식 겸 취임식 (2)
모산쌍괴는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보아하니 이제 갓 약관을 넘긴 것 같은 젊은 놈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저런 기세를 뿜어냈단 말인가?
“혼례식장에 와서 싸움질을 할 생각이오?”
적운상이 싸늘하게 묻는 말에 일곱 명의 고수들이 서로 눈치를 봤다. 확실히 혼례식에 손님으로 와서 싸우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다. 시정잡배들이나 하는 짓이었다.
“형산파를 그리 만만하게 봤다면, 생각을 바꿔야 할 거요.”
적운상이 말을 하면서 천천히 태룡도를 뽑아 들었다. 그러자 후끈했던 기운이 진득진득한 살기로 바뀌었다. 등골이 오싹해지는 살기였다.
이 정도의 살기를 뿜어낼 정도라면 사람 몇 명 죽인 걸로는 어림도 없었다. 전쟁터에서 굴러먹었거나, 수도 없이 살인을 해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살기였다.
모산쌍괴는 자신들도 모르게 바짝 긴장을 했다. 뿜어내는 기세가 심상찮더라니 이런 살기는 또 뭐란 말인가?
슬쩍 옆을 보니 믿을 수 없게도 무당삼현과 화산이로도 자신들처럼 바짝 긴장을 하고 있었다. 아직 겨뤄본 것도 아니고 실력을 보지도 않았지만 인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저놈은 강했다. 그것도 자신들과 견줄 정도로.
파직! 파지직!
적운상이 금안뇌정신공을 극한까지 끌어올려서 돌리자 눈에 황금색의 물결이 일렁거렸다. 그러자 태룡도의 길게 뻗은 도신에 뇌기가 맺히기 시작했다.
“해봅시다. 보아하니 서로 백중지세(伯仲之勢)인 것 같은데, 양패구상(兩敗俱傷)해서 다치거나 하면 내가 목을 벨 것이오. 상대를 이겨도 틈을 보이지 마시오. 그래도 내가 베어버릴 테니까.”
상황이 안 좋았다. 싸워서 상대를 이겨도, 어느 쪽이 이기든 적운상까지 상대해야 했다. 하지만 그럴 여력을 남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적운상의 말대로 이들의 무공은 서로 비슷비슷했다.
“설마, 우리까지 공격할 거냐?”
이현이 약간 뭉그적거리면서 물었다.
“당연한 것 아닙니까? 지금껏 제 앞에서 형산파를 무시하고 멀쩡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사실이 그랬다. 한때 적운상은 어린 나이에 무상지검에 오른 후유증으로 인해 한 번씩 확확 돌아버리곤 했었다. 그러면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 물불을 안 가리고 덤벼들어서 끝장을 봤다. 그렇게 돌아버리게 만드는 가장 주된 요인이 바로 누군가가 형산파를 무시하는 것이었다.
“음… 오늘은, 참읍시다. 어린 것들이 이리 많은데 나이 값도 못한다는 소리를 듣기는 싫소.”
제일 먼저 발끈해서 이런 분위기를 만들었던 이현이 의외로 물러나는 것도 가장 먼저였다. 이현이 기세를 거둬들이자, 일현과 삼현이 잠시 망설이다가 이내 내공을 가라앉혔다.
모산쌍괴는 묘한 눈으로 적운상을 응시하다가 지팡이를 거뒀다. 그걸 보고 그제야 화산이로도 기세를 거뒀다.
“흥! 오늘 하루만이다. 성질 더러운 도사놈들아.”
음괴가 냉랭하니 말하자 이현이 그에 질세라 눈을 부라렸다.
“어디 도망이나 가지 마라. 늙은 괴물들아.”
“네놈들이나 도망치지 마라. 그랬다가는 무당파고 화산파고 싹 쓸어버리겠다.”
“행여나 그러겠다. 겁먹고 지금까지 숨어있었던 주제에.”
“누가 겁을 먹었다는 거냐? 문 걸어 잠그고 숨어있었던 건 네놈들이지 않으냐?”
음괴와 이현은 서로 헐뜯고 욕하면서 목청을 높였지만 아까처럼 한판 붙으려고 하지는 않았다. 적운상이 걸렸기 때문이다.
“미안하네. 저들과 저리 원한이 있는 줄은 나도 몰랐네. 이럴 줄 알았으면 나만 올 걸 그랬군.”
조비가 적운상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했다.
“별일 없었으니 됐다. 축하행사 정도로 여기지.”
“후후. 그리 말해주니 고맙군. 예식이 모두 끝났으니 같이 술이나 마시는 게 어떤가?”
“좋지.”
“저쪽으로 가세나.”
사람들은 조비와 적운상이 친근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고 상당히 의외였다. 그걸 보고 혹시 적운상이 호천마궁에 붙은 건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그렇다면 무당삼현과 화산이로가 여기에 와 있는 것도 어느 정도 납득이 되는 일이었다.
* * *
잠깐의 소란이 있었지만 그 후로는 특별한 일 없이 모두 웃으면서 먹고 마셨다. 밤이 깊어지자 막정위는 형산파 사람들을 모아서 낮에 적운상이 했던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호천마궁이 그리 작심을 하고 왔을 줄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의견이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하나는 손님들을 그냥 보내고 형산파 제자들의 힘만으로 어떻게 해보자는 거였고, 또 하나는 손님들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도움을 청하자는 것이었다.
첫 번째의 경우 손님들의 안전을 우선시해서 후일을 도모하자는 뜻이었다. 다른 곳도 아니고 호천마궁이었다. 그곳의 정예가 삼천 명이나 왔는데 무슨 수로 당하겠는가?
지금 그들은 남악현 밖에 있다고 했다. 이곳을 버리고 빠져나가려고 하면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그렇게 하면 오랫동안 일궈온 것들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형산파를 따르는 남악현 사람들에게도 좋지 않았다. 위에서 그렇게 도망을 치면 아무래도 믿음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두 번째의 경우는 사람들과 힘을 합쳐서 호천마궁과 맞서자는 것인데, 그건 그것대로 문제였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합쳐 봤자 채 오백 명도 되지 않았다. 그중 반 이상은 무공이 미미한 남악현 사람들이었다.
게다가 사정을 말하면 몇 명이나 함께 싸워줄지 의문이었다. 승산이 없기 때문이다.
막정위는 신방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한 시진이 넘게 사람들과 어떻게 할지를 의논했지만 쉽게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운상이는 아직도 호천마궁의 소궁주와 함께 있는 거냐?”
초사영이 약간 짜증 섞인 말투로 물었다. 적운상은 오라는데도 오지 않고 계속 조비하고 술만 마시고 있었다.
“혹시 그 사람을 인질로 잡으려는 거 아닐까요?”
은서린의 말에 모두 그녀를 봤다. 생각해보니 그럴 수도 있었다.
“음… 소궁주가 인질로 잡혔다고 그냥 물러나지는 않을 거다. 게다가 그건 일시적인 방법일 뿐이야. 근본적인 해결책은 안 돼.”
막정위가 부정적으로 이야기하자 초사영이 침울하니 입을 열었다.
“호천마궁을 상대로 근본적인 해결책 같은 건 없습니다.”
맞는 말이었다. 무림맹을 상대로도 버티고 있는 호천마궁이었다. 형산파같이 작은 문파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때 문이 덜컹 열리면서 적운상을 부르러 갔던 나연오가 혼자 돌아왔다.
“운상이는?”
막정위가 묻는 말에 나연오가 머리를 긁적이면서 대답했다.
“안 온대요. 여기서 결정하는 대로 따를 테니까 나중에 결과만 알려 달래요.”
“그래. 알았다. 그렇게 말했으니 그리 하겠지. 우선 싸울 건지 도망갈 건지, 그것부터 결정을 하자.”
“일단 피하는 것이 좋을 것 같구나. 우리가 살아있으면 형산파도 살아있는 거다. 하지만 죽으면 다 소용없지 않느냐?”
나한중이 그렇게 말하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모두 호천마궁을 상대로 싸울 자신이 없었다. 그나마 적운상이 있기에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었다. 만약 적운상이 없었다면 아예 싸운다는 것은 생각지도 않고, 어떻게 도망칠지만 상의했을 것이다.
모두 일단 피하자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었다. 그걸 보고 막정위가 작게 한숨을 쉬며 모두를 향해 말했다.
“나는 생각이 달라. 지금 도망치면 우리는 다시 일어서기 힘들어. 사부님이 돌아가신 이유가 뭐냐? 무림맹이 우리를 얕잡아 봤기 때문이야. 지금 무림맹과 맞서고 있는데 호천마궁을 피해서 달아난다면 그들은 우리를 더욱이 우습게 볼 거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호천마궁을 물리친다면 생각을 달리 할 거다. 승산이 없다는 것은 나도 알아. 하지만 이곳은 형산파다. 우리 앞마당이야. 개도 자신의 구역에서는 서푼은 먹고 들어가는 법이다. 무조건 진다고는 할 수 없어. 우리는 예전의 형산파가 아니야. 강한 놈들에게 이리 휘둘리고 저리 휘둘리던 형산파가 아니다. 싸우자. 되든 안 되든 붙어보고 나서 정 안 되면 그때 도망치자. 싸우기도 전에 도망치자니 화가 난다.”
막정위가 말을 끝내자 방 안에 침묵이 흘렀다. 그러다 초사영이 그 침묵을 깨며 크게 소리쳤다.
“좋습니다. 사형. 싸웁시다. 놈들에게 형산파의 힘을 보여줍시다. 죽더라도 백 명은 베고 죽겠습니다. 너희들. 장문인이 된 사형이 처음으로 하는 명령이다. 안 따를 테냐?”
“쳇! 누가 안 한다고 했나요? 전 진즉부터 한 번 붙어보려고 했었다고요.”
도자명이 투덜대는 투로 말하자 모두 미소를 지었다.
“훗! 네가 그렇게 정했다면 나도 따르마. 하는 데까지 해보자.”
반대를 하던 나한중이 그렇게 말하자 모두 서로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럼 이제부터 어떻게 놈들과 싸울지 세세한 계획을 세워보자.”
“나도 끼워줘요.”
갑자기 방문이 벌컥 열리며 들어온 홍은령이 들어왔다. 그러자 모두 난처한 듯이 그녀를 바라봤다.
“은령아.”
“됐어요. 빠지란 말은 하지 말아요. 저는 오늘부터 금검문 사람이 아니라 형산파의 식구예요. 안 그런가요?”
“그건…….”
“맞습니다. 형수님. 당연히 그래야지요.”
패악룡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면서 소리치자 모두 맞다고 박수를 치며 환호를 질렀다.
안에서 그렇게 호천마궁에 맞설 계획을 세우는 동안 적운상은 텅 빈 공터에 불을 피우고 앉아서 조비와 술을 마시고 있었다.
“하하하하. 맞아. 그때 그랬지. 그때는 얼마나 놀랐던지.”
“자네가 와주지 않았다면 나는 그녀들한테 겁탈을 당했을 걸세.”
“큭큭. 그 아이들이 대가 좀 세기는 하지.”
적운상과 조비는 호천마궁에서 같이 지내던 이야기를 하며 즐거워했다. 불을 피웠다지만 날이 상당히 추웠다. 그런데도 두 사람은 그러고 앉아서 웃고 떠들며 술을 마셨다.
그렇게 밤이 새고 날이 밝았다. 그때까지도 적운상과 조비는 술잔을 나누며 이야기를 했다.
그때 타종소리가 연속으로 울렸다.
땡땡땡땡땡!
적운상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걸 보고 조비가 뭔가를 짐작한 듯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결정을 한 모양이군. 가보세나. 어떤 결정을 했는지 궁금하군.”
조비의 말에 적운상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