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288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68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288화
288화. 혼인식 겸 취임식 (1)
이른 아침, 형산파의 정문이 활짝 열렸다. 오늘이 바로 막정위의 혼인식 겸 취임식이 있는 날이었다. 밤잠을 설친 형산파의 제자들은 새벽부터 부지런히 행사준비를 했다. 한 달 전부터 준비를 해왔는데도 막상 당일이 되자 또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시간이 되자 미리 오지 못했던 귀객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무림에 이름 난 고수들은 물론이고, 고관대작들과 일반양민들까지 구름떼처럼 몰려들었다. 형산파의 속가제자나 다름없는 남악현 사람들이 거의 태반이었는데, 그들로 인해 식이 거행되는 전각 앞은 발 디딜 틈조차 없을 정도였다.
“잠시들 조용히 하시오! 지금부터 장문인 취임식이 진행될 거요!”
초사영이 내공을 실어서 크게 소리치자 그제야 웅성거리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입을 다물었다. 어수선한 장내가 좀 조용해지자 취임식이 시작됐다.
현재 형산파에서 가장 배분이 높은 사람은 나한중이었다. 그가 죽은 임옥군을 대신해서 막정위가 장문인이 되었음을 인정하고 모두에게 알렸다.
그러자 형산파 제자들과 남악현 사람들이 장내가 떠나가라 함성을 지르며 박수를 쳤다. 그 같은 기백에 손님으로 온 몇몇 사람들이 깜짝 놀라기는 했으나, 곧 같이 즐거워하며 미소를 지었다.
“이거 내가 문주가 될 때와는 완전히 다르니까 살짝 샘이 나는걸.”
혁강운이 농담조로 하는 말에 옆에 있던 혁무한이 웃으면서 말했다.
“통천문도 현 사람들을 위해서 밤낮으로 헌신하면 이런 분위기가 나올지도 모르죠.”
“그게 가능할 거라 생각하는 거냐?”
“당연히 불가능하죠. 다른 문파에서 몰라서 안 하겠습니까? 해도 안 되니까 안 하는 거죠.”
사실이 그랬다. 호왕문이 형산파에 쳐들어왔다가 분개한 현 사람들 때문에 그냥 돌아간 사건은 호남에 있는 여러 문파에 상당히 큰 충격을 안겨줬었다. 그 후로 많은 문파들이 형산파처럼 양민들과의 관계를 돈독히 해서 유사시에 이용할 생각을 했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형산파 같은 경우는 패악룡이나 흑곰 등, 금벽도문의 패거리들이 있었기에 양민들에게 다가가기가 쉬웠다. 거기다 박노엽이라는 뛰어난 책사까지 있었다. 그런데도 처음에는 삐걱대면서 고생을 하지 않았던가?
그런 것을 모르고 다른 문파들은 마냥 양민들을 구워삶으려고만 했으니 당연히 반발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초기에는 수많은 문파들이 형산파를 따라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손을 터는 문파들이 많아졌고 지금은 한 곳도 남아있지 않았다.
“이로써 취임식을 마치고, 오후에는 혼인식을 할 예정입니다. 그때까지 잠시 휴식을 취하시기 바랍니다.”
밝은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던 취임식이 끝났음을 알리는 초사영의 목소리가 크게 장내에 울렸다. 막정위는 사람들에게 묻혀서 축하를 받으며 간신히 방으로 돌아왔다.
“후우…….”
정신이 없어서 어떻게 취임식을 했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어쨌든 취임식은 끝났으니 한시름 덜었다. 이제는 혼례식만 잘 치르면 된다.
‘사부님. 제가 이제 형산파의 장문인이 됐습니다.’
막정위는 임옥군을 생각하면서 마음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만약, 임옥군이 살아있었다면 무슨 말을 했을까?
아마 네 덕에 나도 이제 좀 편하게 살아보자고 하면서 허허롭게 웃었을 것이다. 그런 임옥군의 모습을 생각하니 눈물이 조금 차올랐다. 그때 누군가가 방문을 두드렸다.
탕탕.
“대사형.”
적운상이었다.
“들어와.”
“죄송합니다. 쉬고 있는데.”
적운상이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생긋 웃었다. 말은 미안하다고 하고 있었지만 얼굴은 아니었다.
“아니야. 잘 왔다. 앉아라.”
“네.”
“사실 혼자 있으니까 조금 불안했다. 뭐랄까…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잘해낼 수 있을지 불안감이 드는구나.”
“잘해낼 수 있을 겁니다. 지금까지 잘해 왔잖아요.”
한쪽에 있는 의자를 당겨서 앉으며 적운상이 말했다. 그 말을 듣자 막정위는 왠지 마음이 안정되었다. 다른 사람이 그런 말을 했다면 그냥 하는 말이겠거니 했을 것이다. 하지만 같은 말이라도 적운상의 입에서 나오니 훨씬 힘이 되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냐?”
“네.”
“하아… 나는 아니다. 당장에 닥친 일부터가 쉽지 않으니, 앞이 깜깜하다.”
“죄송해요. 저 때문에…….”
“이게 왜 너 때문이야? 그리고 넌 미안해 할 거 하나도 없다. 네가 한 일은 모두 옳았어. 네가 그런 말을 하면 나는 쥐구멍이라도 찾아서 들어가고 싶다.”
“대사형.”
“옷 입는 거나 좀 도와줘라.”
“네.”
막정위가 겉옷을 벗고 혼례복을 챙겨 입기 시작했다. 짙은 붉은색의 혼례복이었다. 그 위에 붉은색의 띠를 둘러야 하는데 옆에서 누가 도와주면 훨씬 수월했다. 막정위가 도와달라는 말은 그거였다.
“호천마궁의 소궁주하고는 이야기가 잘된 거냐?”
“네. 그동안 마음에 걸렸던 걸 모두 털어냈습니다.”
“앞으로는 어쩔 생각이냐?”
막정위가 하고 있던 영웅건을 풀고 붉은색 영웅건을 두르며 물었다.
“지금 남악현 인근에 호천마궁의 정예 삼천이 와 있다고 하더군요.”
적운상이 하는 말에 영웅건을 묶던 막정위의 손이 멈칫했다. 그리고 상당히 놀란 눈으로 적운상을 쳐다봤다.
“그게 사실이냐?”
“네.”
“그걸 왜 이제야 말하는 거냐?”
“어제 말했으면 오늘 행사를 모두 취소했을 거 아닙니까?”
“그거야 그렇지만…….”
“오늘은 안전합니다. 사형의 혼례식이 끝날 때까지는 서로 피 보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 후에는?”
“모르겠습니다. 저도.”
“이곳에 온 손님들이 다쳐서 돌아가면 사람들이 우리를 욕할 거다. 그렇다고 우리끼리 싸울 수도 없는 일이고… 후우… 삼천이란 말이지.”
막정위는 절로 한숨이 나왔다. 다른 곳도 아니고 호천마궁이었다. 그곳에서 온 정예라면 무공도 상당할 터, 게다가 삼천 명이나 된다. 그들이 일시에 공격해온다면 형산파는 끝장이었다.
“지금은 혼례식에만 신경 쓰십시오. 이 일은 저녁 때 모여서 의논하는 게 좋겠습니다.”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구나. 그때까지 다른 사람들에게는 말하지 않는 게 좋겠다.”
“네.”
“그럼 이제 나가볼까?”
막정위는 일부러 밝은 표정을 지었다. 어쩌면 내일 형산파는 멸문을 당할지도 몰랐다. 그런데도 웃어야 한다니, 쉽지 않은 일이기는 했지만 인상을 찡그리고 있는다고 뭔가 해결책이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오늘은 장문인 취임식에 혼례식까지 하는 날이었다. 웃을 수밖에 없었다.
막정위가 밖으로 나가자 사람들이 축하를 하며 길을 내줬다. 잠시 후 홍은령이 화려한 붉은색 옷을 입고, 붉은색 면사로 얼굴을 가린 채 막정위에게 다가왔다.
“아름답구나.”
막정위의 말에 홍은령의 얼굴이 살짝 달아올랐지만 면사 때문에 보이지 않았다. 막정위는 손을 내밀어 그녀의 손을 잡고 한껏 꾸며져 있는 대청 안으로 들어갔다.
그 안에는 홍은령의 부모들과 나한중이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은 그들에게 고개를 숙여 절을 하고 천지신명께 부부가 되었음을 맹세했다.
예식이 끝나고 나자 사람들이 준비해온 선물을 건네기 시작했다. 막정위는 그들에게 일일이 고마움을 표하며 사제들에게 선물을 한쪽에 가져다 놓게 했다. 그 자리에서 선물을 풀어보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져온 선물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렇게 별일 없이 지나가나 했는데 대청 밖이 시끌시끌했다. 이에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제가 가보겠습니다.”
초사영이 막정위에게 말하고는 대청 밖으로 향했다.
* * *
“오랜만이구나. 늙은 괴물들아.”
무당삼현 중 이현이 조비와 함께 있는 두 명의 노인들을 노려보며 말했다. 함께 있는 일현과 삼현, 그리고 화산이로도 곱지 않은 눈으로 그 두 명의 노인들을 쳐다봤다.
그들은 손에 끝부분에 해골이 달려 있는 기다란 지팡이를 들고 목에는 뼈 조각들로 꿰어진 목걸이를 걸고 있었으며, 머리를 총총히 모두 땋아 내린 이상한 모습이었다.
과거에 모산쌍괴(茅山雙怪)라고 불렸던 전대의 고수들로 덩치가 큰 사람이 양괴, 삐쩍 말라서 해골 같은 사람이 음괴였다. 두 사람은 사이하고 괴이한 술법을 연구하느라 사람들을 마구 죽이는 바람에 무림의 공적으로 몰려 멸문한 모산파의 마지막 생존자였다.
당시에 무당파와 화산파에서도 모산파를 공격했었다. 그리고 그때 앞장을 섰던 것이 무당삼현과 화산이로였다. 모산쌍괴는 그들과 몇 번이나 부딪치며 싸웠었다. 하지만 항상 끝을 보지 못했다.
무당삼현이나 화산이로가 무공은 더 뛰어났지만, 모산쌍괴가 쓰는 요사스러운 술법은 당할 수가 없었다. 이에 그들과 싸울 때마다 무당삼현과 화산이로는 체면을 구겼었다.
그 일로 인해 무당삼현의 막내인 삼현은 그 후로 거의 맥이 끊겨가는 무당파의 법술을 연구하며 익히기까지 했었다. 하지만 모산쌍괴는 어느 날 갑자기 강호에서 모습을 감췄고, 그 후로는 만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이곳에서 모산쌍괴를 보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크큭. 명줄 놓지 않고 있기를 잘 했구나. 네놈들 상판대기를 보니 반가워 죽을 지경이다.”
이현이 한껏 이죽거리면서 내공을 끌어올렸다. 그러자 마치 맞바람을 맞은 것처럼 그의 허연 수염과 도포자락이 크게 펄럭거렸다.
그러자 모산쌍괴 중 양괴가 앞으로 나왔는데 그는 생긴 것만큼이나 보법이 상당히 괴이했다. 사람이 움직이면 당연히 다리의 관절이 굽혀져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그의 다리는 쭉 펴져있는 상태 그대로 몸이 앞으로 슥 움직였다.
이현이 내공을 끌어올리고 양괴가 앞으로 나서자 나머지 사람들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일현과 삼현이 이현의 양옆으로 움직이며 내공을 끌어올렸다. 화산이로는 조금 거리를 두고 여차하면 끼어들 준비를 했다. 그리고 음괴는 양괴의 뒤에서 들고 있던 지팡이를 앞으로 내밀며 언제라도 뛰어나갈 자세를 잡았다.
무공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한 일곱 명의 고수들이 그렇게 대치를 하자 한순간에 주위로 기세가 확 번져나갔다. 숨이 턱턱 막히는 긴장감에 내공이 약한 사람은 가까이 서 있을 수도 없었다. 이에 사람들을 밀치며 후다닥 뒤로 물러났다.
이쪽이 소란스러워서 와본 초사영도 그들을 보고는 가까이 다가갈 수가 없었다. 마치 커다란 바위가 위에서 짓누르는 것 같은 위압감에 저절로 다리가 멈춰 섰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막정위의 혼례식을 축하해주며 왁자지껄했던 분위기가 그들로 인해 한순간에 착 가라앉았다. 사람들은 숨소리조차 죽여 가며 그들을 주시했다. 자칫 입을 열었다가는 큰일이 벌어질 것 같아서 아무도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지금 저들을 말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조비도 모산쌍괴가 작심을 한 듯 나서자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모산쌍괴가 조비를 따르기는 했지만 수하는 아니었다.
두 사람이 무림의 공적으로 몰려서 쫓겨 다닐 때 도움을 준 것이 호천마궁이었다. 그래서 신세를 갚기 위해 조비를 따라온 것이었다. 모산쌍괴는 호천마궁의 궁주인 조황인도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난처하게 됐군.’
조비는 지금 소란을 피울 생각이 전혀 없었다. 적운상과의 약속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게 잠시나마 적운상을 친구라고 생각했던 그의 마지막 배려였다.
“거기까지만 합시다.”
그리 크지 않은 목소리였다. 하지만 워낙에 정적이 감돌던 터라 그 목소리는 모두에게 똑똑히 들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모산쌍괴와 무당삼현, 그리고 화산이로는 서로를 노려보는 시선을 거두지 않았었다.
하지만 갑자기 후끈한 기운이 확 몰아쳐오자 그쪽을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정도의 기세를 뿜어낼 정도라면 절대로 자신들의 아래가 아니었다. 무시할 수가 없었다.
거기에는 흑의를 입은 잘생긴 청년이 서 있었다. 적운상이었다. 그는 언제라도 도를 뽑을 수 있게 허리에 있는 태룡도의 자루에 한 손을 걸쳐 놓은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