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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형산파 287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06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아! 형산파 287화

287화. 폭풍전야 (3)

 

“대사형! 대사형!”

나연란이 다다다 뛰어오며 막정위를 불렀다. 막정위는 대청에서 통천문에서 온 혁강운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연란이 달려오는 것을 보고 경공신법을 펼쳐 그녀를 번쩍 안아들었다. 하도 급하게 달려오니까 넘어질까 봐 불안했던 것이다.

나연란도 이제는 적은 나이가 아니었지만 막정위에게는 마냥 어린아이일 뿐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보살펴왔고, 나이 차이도 많이 났기 때문이다.

“조심해. 넘어질라.”

“응. 아, 그게 아니라, 큰일 났어요.”

“무슨 일인데?”

“호천마궁에서 소궁주가 왔어요.”

나연란의 말에 막정위의 얼굴이 살짝 굳어버렸다. 호천마궁의 소궁주라면 아마 적운상이 이야기하던 조비일 것이다. 무당삼현과 화산이로가 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텐데도 오다니 무슨 생각인지 짐작이 되지 않았다.

“운상이는 어디 있냐?”

“연오가 이야기하러 갔어요.”

“알았다. 너는 걱정 말고 가서 사람들 도와줘.”

“싫어요. 나도 같이 갈래요.”

“그럴래?”

“응.”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는 나연란의 머리를 막정위가 한 번 쓰다듬어 줬다. 그러자 나연란이 입을 내밀면서 불평을 했다.

“나 이제 애 아닌데.”

“하하. 그래. 이제 다 컸지.”

막정위가 웃으면서 말하고는 혁강운을 봤다.

“가봐야 할 것 같소.”

“같이 갑시다. 나도 궁금하군.”

“그럽시다. 그럼.”

막정위는 나연란 혁강운과 함께 대청을 나와 손님을 맞이하는 객청으로 향했다. 그 앞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가득 모여 있었다. 모두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온 것이다. 그들은 혹여 조비가 무당삼현이나 화산이로와 한 수 겨룰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품고 있었다. 어쩌면 적운상과 싸울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사형.”

적운상이 부르는 소리에 막정위가 뒤를 돌아봤다.

“호천마궁에서 소궁주가 왔다고 하는구나.”

“이야기 들었습니다.”

“가보자.”

“예.”

막정위와 적운상이 객청으로 다가가자 그 앞을 막고 있던 오십여 명의 호천마궁 무사들이 앞을 막아섰다.

“조비를 만나러 왔소.”

적운상의 말에 무사들이 그제야 길을 비켜줬다. 적운상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들은 이야기는 많았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사람을 찍어 누르는 박력이 느껴진다는 이야기는 호천마궁에 있을 때 귀가 따갑게 들었었다.

그들은 적운상은 들어가게 했지만 막정위는 못 들어가게 막았다.

“뭐하는 거냐?”

적운상이 묻는 말에 사내 하나가 대답했다.

“소궁주님께서는 당신만 만나고 싶어 하오.”

“여기가 어딘지 알고 하는 말이냐?”

“어디건 상관없소. 우리는 받은 명령에만 따를 뿐이오.”

객이 주인을 놔두고 주인노릇을 하려고 하다니, 상당히 오만한 짓이었다. 순간 적운상의 눈빛이 바뀌자 주위에 있던 호천마궁의 무사들이 일제히 검을 뽑아 들었다.

차차차차차차창!

그걸 본 사람들이 놀라서 후다닥 뒤로 물러났다. 저들이 싸우는데 말려들었다가는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었다. 그때 막정위가 적운상을 말렸다.

“그만둬.”

“대사형.”

“난 괜찮으니까 가서 만나고 와. 너 혼자서도 충분하겠지만 혹시라도 도움이 필요하면 소리치고.”

웃으면서 말하는 막정위를 보며 적운상도 미소를 지었다. 호천마궁의 소궁주가 여기 있고, 그를 보호하기 위해서 온 오십여 명의 정예가 있었다. 그들을 상대로 보이는 여유로움에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적운상이라면 막정위 말대로 저들쯤은 문제없이 해치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적운상이 객청으로 들어가자 혼자 앉아서 느긋하게 차를 마시고 있는 조비가 보였다.

“여어.”

조비가 웃으면서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오랜만이군.”

적운상이 조비의 옆에 앉으며 털썩 말했다. 경계심 같은 건 전혀 없었다. 정말 오랜 지기를 만난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렇군. 오랜만이야. 어떻게 지냈나? 소문은 들었지만 직접 듣고 싶군.”

“바빴네.”

적운상이 한 말은 그게 다였다. 그런데도 조비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바빴겠지. 사부가 죽었다고 들었네. 유감일세. 상심이 컸겠군.”

“고맙네.”

“친구로서 당연한 거지.”

“아직도 친구인가?”

적운상이 찻잔을 들어서 후후 불면서 묻는 말에 조비가 멈칫하며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나를 보고 싶다고 했다지?”

“그래. 그런데 전달이 잘 안 되었던지 늙은이들이 부하들을 잔뜩 끌고 왔더군.”

“이야기 들었네. 아버님도 그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라시더군. 큭큭. 자네가 그 자리에 있었어야 했는데 말이지. 내 평생에 아버님이 그렇게 놀라는 모습은 처음 봤네.”

“볼만 했겠군.”

“듣자니 무림맹을 적으로 돌렸다던데, 어쩌자고 그런 짓을 했나?”

“어떻게 하다 보니 그렇게 되어버렸네.”

“나를 보자고 한 이유는 뭔가? 호천마궁으로 돌아올 생각인가?”

“그전에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

“말해보게. 뭐가 궁금한가?”

“자네의 진심.”

“내 진심이라…….”

조비가 생글거리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말할 생각이 없는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입을 닫았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조비는 적운상이 뭘 원하는지 짐작이 가지 않아서 열심히 머리를 굴리는 중이었다.

예전부터 적운상은 항상 그의 예상을 벗어나 있었다. 단 한 번도 생각대로 움직인 적이 없었다.

“어디까지가 자네가 한 일인가?”

적운상이 마시던 차를 내려놓고 조비를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그제야 조비는 적운상이 알고 싶어 하는 것이 뭔지 깨달았다.

적운상은 조비를 친구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용서를 해줄 여지를 남겨두고 싶었다. 임옥군과 도지림이 죽은 것은 호천마궁도 무관하지 않았다. 죽기야 무림맹의 사주를 받은 놈들에게 죽었지만 그 원인은 호천마궁에 있었다.

호천마궁에서 적운상을 떠보기 위해 임옥군을 이용하는 바람에 그리 된 것이었다. 적운상은 그게 궁주인 조황인의 지시였는지, 아니면 조비가 직접 나서서 한 일인지를 알고 싶은 것이다.

“어디까지 내가 한 일이라고 생각하는가?”

조비가 오히려 반문했다. 그러자 적운상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사실 적운상은 이미 어느 정도 짐작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짐작이 틀렸기를 바랐다. 고집스럽게 조비에게 직접 찾아오라고 한 것도 그래서였다.

“전부 다.”

또다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을 먼저 깬 것은 조비였다. 조비는 땅이 꺼져라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알고 있으면서 왜 묻는 건가?”

“확인하고 싶었다. 아니기를 바랐거든.”

“사실이네. 내가 직접 지시를 내렸지. 자네에 관한 일은 모두 내게 일임되었네.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 다 내가 시킨 일이야.”

“그렇군.”

“그렇지.”

잠시 입을 다물고 있던 적운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말했다.

“사실대로 이야기해줘서 고맙다.”

“굳이 숨길 이유가 없었네. 이제 우린 적인가?”

“아마도.”

“그렇군. 이리 될 거라 생각했었네. 후후. 알고 있나? 지금 남악현 밖에는 본 궁의 고수 삼천 명이 와 있다네. 내 한마디면 당장에 이곳으로 달려올 걸세.”

“내일은 대사형의 혼인식이다. 장문인 취임식이기도 하고. 피를 보고 싶지 않다.”

“나도 마찬가지일세. 그래서 제안을 하나 하고 싶네.”

“말해봐.”

“취임식이 끝나면 나랑 함께 호천마궁으로 가세나. 이번 제의가 마지막일세. 아버님은 이미 자네를 버리기로 결정을 하셨네.”

“자네가 친구로 있었다면… 그랬을 거다. 먼 길 와서 피곤할 테니 쉬어.”

적운상은 말하면서 조비를 보지 않았다. 보고 싶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비는 시선 한 번 주지 않고 객청을 나가는 적운상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 * *

 

그날 밤, 적운상은 숙소 앞의 계단에 앉아 안주도 없이 술을 마셨다. 조비에게 정이 깊었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어쨌건 친구라는 생각을 잠시나마 했었다.

항상 속내를 감추고 드러내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것도 그리 싫지 않았다. 자신에게 맞추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조비를 좋아했었다.

단지 사이가 틀어졌다면 안 보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적이 되어버렸으니 베어야 했다. 그것이, 괴로웠다.

“야밤에 청승이로군.”

뒷짐을 지고 천천히 걸어오는 노도사, 이현을 보고 적운상이 피식 웃었다.

“늙으면 잠이 없어진다더니 정말 그런가 봅니다.”

“지금 나한테 들으라고 하는 이야기더냐?”

이현이 인상을 팍 쓰면서 물었다.

“여기에 어르신 말고 또 누가 있습니까?”

“언제고 내가 네놈의 버르장머리를 단단히 고쳐주마.”

“하하.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말이나 못하면… 쯧.”

“술 한 잔 하시렵니까?”

“됐다.”

이현은 냉랭하게 말을 내뱉으며 적운상의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호천마궁에서 소궁주가 왔다고 들었다.”

“네. 한때 제 친구였습니다.”

“지금은 아니냐?”

“그런 것 같습니다.”

“확신이 없는 대답이구나.”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이 끊는다고 바로 끊어지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 감정이 어디에 있느냐?”

“네?”

“네가 말하는 그 감정을 한 번 보여 봐라.”

“무슨 말씀이 하고 싶으신 겁니까?”

“네 감정이나 괴로움이 모두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거라고 말하고 있는 거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클클. 무공에 대한 깨달음은 깊은데 삶에 대한 깨달음은 얄팍하구나.”

그때부터 이현은 도가에서 전하는 깨달음에 대해서 적운상에게 하나하나씩 풀어서 이야기해줬다. 적운상은 가끔 술을 들이켜면서 듣고만 있다가 의문이 드는 게 있으면 바로바로 물었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면서 이현은 적운상이 상당히 총명하다는 것을 알았다. 하나를 이야기하면 그걸 금방 이해하고 다음 걸 물어왔다. 게다가 저 나이 때의 젊은 놈들은 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 고리타분하게 여기며 듣지를 않으려고 하는데, 적운상은 오히려 하나라도 더 들으려고 했다.

‘이놈 봐라?’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이현은 적운상이 탐이 났다. 아직 서른도 안 된 놈이 무공은 탈인의 경지에 올라있고,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니 심지도 곧은 것 같았다. 거기다 총명하고 현기도 있어서 가르치는 맛이 났다.

그런데 이런 삼류문파에 얽혀 있으니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무당파에는 왜 이런 놈 하나 없는지 부아가 치밀었다.

“그만할란다.”

“네?”

적운상은 이현이 하는 도(道)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어느새 마음이 편안해지고 있었다. 그래서 조금 더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런데 이현은 갑자기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팔짱을 끼고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왜 그러십니까? 어르신.”

“배가 아파서 그런다.”

“그럼 뒷간에 갔다 오십시오.”

“멍청한 놈. 그런 게 아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몰라도 된다.”

“이야기를 더 듣고 싶은데 안 해주실 것 같군요.”

“당연하지 않으냐? 다른 사람들은 내가 하는 말 한마디라도 주워듣기 위해 천리를 마다 않고 온다. 그런데 네 녀석은 방금 공짜로 얻어가지 않았느냐?”

“그도 그렇군요. 어쨌든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덕분에 마음이 많이 편안해졌습니다. 밤이 늦었으니 이만 들어가야겠군요. 어르신도 이만 들어가서 쉬십시오.”

“흥, 늙으면 잠이 없어져서 계속 있을란다.”

“그럼 그렇게 하십시오.”

어린아이 같은 말투로 투덜대는 이현을 보면서 적운상이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이현이 힐끗 적운상을 보고는 허탈하니 같이 미소를 지었다.

“이놈아.”

“네. 어르신.”

“이건 그냥 하는 이야기니까 들어라.”

“네.”

“파문도 그리 나쁜 것은 아니다. 네가 원한다면 내가 너를 가르쳐보고 싶구나. 하지만 그랬다가는 아랫것들이 난리를 치지 않겠느냐? 그러니 일단 네가 형산파를 나오면 내가 너를 계도(啓導)한다는 핑계를 대고 가르침을 줄 수가 있다. 험, 어떠냐?”

“말씀은 고맙습니다. 하지만 제게는 형산파가 전부입니다. 이곳이 제 집이고,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제 가족입니다. 전 어렸을 때부터 형산파를 위해서 커왔습니다. 지금과 같이 무공이 높은 경지에 이른 것도 형산파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제가 형산파를 버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형산파가 너를 버린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그래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영원히 형산파의 제자입니다.”

“그래. 무슨 말인지 알았다. 그냥 해본 소리니 마음에 두지 말거라.”

이현이 그렇게 말하면서 엉덩이를 털며 일어났다.

“들어가십시오. 어르신.”

“그러마.”

발걸음을 옮기는 이현의 얼굴은 밝지 않았다.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괜히 이곳에 와서 이야기를 나눴다는 후회까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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