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285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0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285화
285화. 폭풍전야 (1)
객청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적운상에게 향했다. 적운상은 단지 서 있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존재감이 워낙에 강해서 무당삼현과 화산이로까지도 무의식중에 고개를 돌리게 만들었다.
“대사형.”
적운상은 담담하니 사람들의 시선을 무시하며 막정위에게 다가갔다.
“그래. 손님이 와서 너를 불렀다. 너를 만나러 왔다고 하는구나.”
막정위가 생글거리면서 말했다. 적운상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그제야 무당삼현과 화산이로, 그리고 운산과 현인을 봤다.
“적운상이오. 무슨 일들이오?”
말투가 건방지기 짝이 없었다. 이에 무당삼현과 화산이로의 눈빛이 바뀌며 분이기가 착 가라앉았다. 그러자 모두 바짝 긴장을 하며 적운상과 그들의 눈치를 살폈다.
“예의가 없는 놈이로고. 어른을 봤으면 먼저 숙여야지.”
이현이 하는 말에 적운상이 코웃음을 쳤다.
“나이만 처먹은 늙은이들이에 무슨 예의를 지키란 거요? 차라리 지나가는 개에게 포권을 취하겠소!”
“뭐라!”
“적 사제!”
탕!
이현이 순간 분을 참지 못하고 손을 쓰려는데, 막정위가 먼저 옆에 있던 차탁을 힘껏 내려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저분들은 내 혼인식 겸 장문인 취임식을 축하해 주기 위해서 먼 길을 오신 분들이다. 어찌 그리 예의를 지키지 않는 거냐? 지금 네가 무공 좀 높다고 나를 무시하는 거냐?”
“아닙니다. 대사형. 제가 어떻게 대사형을 무시하겠습니까? 저들은 객으로 온 사람들이 아닙니다. 저와 칼을 맞대러 온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대사형을 그리 무시했던 겁니다.”
“오면서 들었냐?”
“그렇습니다.”
“그래도 예의를 갖추어라. 예의라는 것은 상대를 존중하는 의미도 있지만 스스로를 높이는 일이다. 수양이 덜된 사람들은 상대를 봐가면서 예의를 차리지만, 진정 현인(賢人)이라면 지나가는 개에게도 예의를 갖추는 법이다. 그러지 않으면 결국 예의 같은 건 배우지도 못했다고 인정을 하며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일밖에 되지 않는다.”
말은 적운상에게 하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무당삼현과 화산이로에게 들으라고 하는 소리였다. 그런 것을 무당삼현과 화산이로가 모를 리가 없었다. 하지만 전부 옳은 소리여서 얼굴만 붉힐 뿐, 뭐라 말을 하지는 못했다.
‘보통 놈이 아니로구나.’
이현은 그제야 막정위를 다시 봤다. 그러고 보니 막정위는 자신들이 누군지 아는데도 전혀 위축됨이 없었다. 시종일관 잔잔하니 미소를 띠고, 감정을 다스리며, 교묘하게 하고 싶은 말은 다 하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대사형. 제가 실수를 했습니다.”
적운상이 그리 말하고는 몸을 돌려 무당삼현과 화산이로를 향해 정중하게 포권을 취하면서 말했다.
“방금은 제가 못나서 실수를 했습니다. 넓은 아량으로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상황이 이러자 아까 막정위를 무시하던 것처럼 가만히 앉아서 무시를 할 수가 없었다. 이현이 마지못해 예의를 차렸다.
“험, 아닐세. 됐네.”
“어르신들께서 저를 찾아오신 이유를 알고 있습니다. 무림맹의 멍청이들이 가서 저를 죽이라고 했겠지요. 맞습니까?”
“말을 조심하거라.”
화산이로 중 일로가 나직하니 말했다. 하지만 내공이 실려 있어서 목소리가 모두의 귀에 똑똑하게 들렸다.
“더 심한 말을 하고 싶은데 참고 있는 겁니다. 그들이 형산파에 한 짓을 알고 있습니까?”
“대충 들었다. 하지만 그건 오해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더냐?”
“오해라…….”
적운상이 잠시 말을 끊자 끈적끈적한 기운이 감돌았다. 살기였다. 적운상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를 느낀 운산과 현인이 자신들도 모르게 검을 뽑아 들려고 했다. 마치 수천 개의 바늘이 몸을 찔러 들어오는 느낌 때문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런 두 사람을 옆에 있던 무당삼현과 화산이로가 조용히 제지했다.
“제 사부님의 죽음은… 말씀하신 대로 오해라고 하겠습니다. 그럼 제 사제에 대한 건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그것도 오해입니까?”
“아니다. 그건 한 사람의 광기로 인해 벌어진 일이었다.”
“그래서 찾아온 겁니까?”
“…….”
“사제가 눈앞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사제가 저한테 가게 하기 위해서 뒤를 쫓으며 한 번씩 칼질을 했습니다. 그렇게 몇 리를 왔는지 아십니까? 한 사람의 광기로 벌어졌다고요? 그걸 지켜본 나머지 사람들은 뭡니까? 모두가 의와 협을 외치는 명문대파의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짓을 말리지는 못할망정 보고만 있었습니다. 그래서 베었습니다. 일대 삼십의 싸움이었습니다. 기습도 아니었습니다. 서로 칼을 뽑은 상태에서 정정당당하게 이루어진 싸움이었습니다. 무엇이 잘못되었습니까?”
적운상은 너무도 당당했다. 무당삼현과 화산이로는 설마 적운상이 이런 식으로 따지고 들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대단하다고는 들었지만 이건 생각 이상이었다.
“네 잘못은 네가 힘없는 문파의 제자라는 것이다.”
일로가 차갑게 말을 내뱉었다. 강호는 강한 자가 곧 법인 세상이었다. 의니 협이니 말들 하지만, 그것도 힘이 있을 때의 이야기였다. 약한 자는 그저 숙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그 말 그대로 돌려드리겠습니다. 그들이 죽은 건, 그네들 문파에서 그렇게 약하게 키웠기 때문입니다.”
적운상의 말에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일로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었다.
“할 말은 그것뿐이냐?”
“아니요. 무림맹의 멍청이들이 어디까지 손을 쓰라고 시켰는지 궁금하군요. 나 말고 형산파도 치라고 했습니까?”
순간 일로의 눈썹이 꿈틀했다. 적운상은 말을 나눌수록 은근히 사람 속을 긁어대고 있었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에 손을 쓰고 싶었지만 꾹 눌러 참았다.
“원래는 너만 처리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생각을 조금 해봐야 할 것 같구나.”
“그럼 저도 생각을 해봐야겠군요.”
“뭐를 말이냐?”
“형산파를 포기할지 말아야 할지를요.”
“네 마음대로 하면 되지 않느냐?”
“의미를 모르는군요. 내가 형산파를 포기하면 화산파와 무당파도 무사하지 못합니다. 당신들이 형산파를 상대하는 동안 나는 화산파와 무당파로 갈 겁니다.”
“너 혼자 가서 뭘 할 수 있겠느냐? 화산파가 그리 우습게 보이더냐?”
“우습습니다. 사파와 같은 짓거리를 하면서 잘난 척 명문정파라고 나대는 게 우습고, 힘없고 약하다 해서 힘으로 누르려는 게 우습습니다. 형산파는 힘은 없지만 그런 짓은 하지 않습니다. 그때 그들을 베었을 때 그길로 그네들 문파로 가고 싶었습니다. 정면대결은 힘들어도 숨어서 하나씩 죽인다면 충분히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러지 않은 건, 마음에 의와 협이 없이 휘두르는 칼은 인간백정과 다를 바 없다고 배웠기 때문입니다.”
잠시 말을 끊은 적운상과 일로의 눈이 허공에서 맞부딪쳤다. 다른 사람이 그 같은 시선을 받았다면 몸이 움츠러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적운상은 오히려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저 하나 가서 뭐를 할 수 있냐고 하셨죠? 그럼 묻겠습니다. 화산파에 저를 상대할 고수가 있습니까? 있다면 왜 두 분을 이리로 보냈을까요? 당시에 제가 벤 자들은 삼십 명이 넘습니다. 모두 일검에 베었습니다. 거기에는 매화검수와 십팔나한도 몇 명 있었습니다. 그들의 시체를 보고 무림맹의 멍청이들은 저를 자신들이 상대할 수 없다고 판단했을 겁니다. 그래서 어르신들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졌겠죠. 선택은 제가 아니라 당신들이 해야 합니다.”
“오만하구나. 그깟 알량한 재주만 믿고…….”
일로가 말을 하다 말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팡!
갑자기 공기가 터져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은 뭐가 어떻게 된 일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일로가 왜 자리에서 일어나서 저런 표정을 짓고 있는지, 또 방금 난 소리는 뭔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로와 무당삼현은 아니었다. 그들은 방금 일어난 일을 똑똑히 봤다. 적운상은 놀랍게도 탈인(脫人)의 경지에 올라있었다. 무극의 영역에 들어서는 경지를 그들은 탈인의 경지라 불렀다. 인간의 한계를 완전히 넘어선 경지였기 때문이다.
적운상은 무극의 영역에 들어서서 일로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일로가 자리에서 일어난 것은 그것을 막아내기 위해서였다. 무극의 영역에 들어선 것도 놀라운데 주먹에 실린 힘 또한 대단했다. 앉아서 막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에 그도 무극의 영역에 들어서서 적운상의 공격을 막아냈다. 아마 조금만 늦었더라면 그대로 가슴이 으스러졌을 것이다.
적운상은 그 일격만 날리고는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나서야 두 사람의 주먹과 손바닥이 부딪친 소리가 났고,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저 일로가 자리에서 일어난 걸로만 보였다.
단지 일로의 굳은 표정과 서로 맞부딪친 소리 때문에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뿐이었다.
“놈! 탈인의 경지에 올랐더냐?”
“어찌 그 나이에…….”
일로와 이현이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조차도 나이 육십이 넘어서야 겨우 탈인의 경지에 올랐었다. 그런데 적운상을 보니 이제 겨우 약관을 넘은 것 같았다. 한데 어찌 자신들과 같은 경지에 올라 있단 말인가?
“이제 제 말을 좀 믿을 것 같군요.”
“음…….”
이건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 대에 활동하고 있는 화산파나 무당파의 제자들 중에서는 탈인의 경지에 오른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기껏해야 심검의 경지에 머물러 있었고, 그것도 몇 명 되지 않았다.
그런데 적운상이 숨어서 그들을 기습을 한다면, 모르긴 몰라도 막대한 타격을 입을 것이 분명했다. 무상지검이나 심검의 경지에 오른 이들 간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았다. 무상지검의 경지에 오른 사람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협공을 한다면, 아무리 심검의 경지에 올라있어도 당할 수밖에 없었다. 경우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보통 열 명에서 스무 명 정도가 한계였다.
하지만 탈인의 경지는 달랐다. 심검의 경지에 오른 사람들이 열 명이든 백 명이든 큰 차이가 없었다. 완전히 다른 세상, 다른 영역에 들어서서 움직이는 경지이기 때문에 죽이고자 마음먹으면 누구든, 몇 명이든 벨 수가 있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적운상이 묻는 말에 일로가 잠시 생각을 하더니 대답했다.
“형산파에서 너를 파문시킨다면, 우리는 형산파를 칠 이유가 없다.”
사실 그들이 처리해야 할 대상은 어디까지나 적운상이었다. 형산파야 어찌되던 알 바 아니었다. 그런데도 적운상에게 형산파를 나오라고 엄포를 놓는 이유는 괘씸해서였다. 나이도 어린 것이 꼬박꼬박 말대꾸를 하면서 가르치려 드니 은근히 부아가 났던 것이다.
그렇게 듣고만 있을 수밖에 없게 만든 아랫것들한테도 단단히 화가 난 상태였다. 그래서 돌아가기만 하면 모두 혼쭐을 내줄 생각이었다.
그리고 사실 시샘이 일기도 했다. 적운상 같은 놈이 자신들의 문파가 아니라 이런 삼류문파에서 나왔다는 것이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말도 안 됩니다!”
막정위가 발끈해서 소리쳤다. 좀처럼 흥분하지 않는 그였지만 방금 일로가 한 말은 참을 수가 없었다. 일로는 그런 막정위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으며 적운상에게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선택권이 다시 너한테 넘어갔구나. 네가 탈인의 경지에 오르기는 했지만 어쨌든 너는 혼자다. 생각을 잘 하는 것이 좋을 게다.”
“기왕 이렇게 된 것 며칠 여기서 지내도록 하지. 곧 있으면 혼인식이라고 했느냐? 그때까지 생각을 정리하거라.”
일현이 그렇게 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자 이현과 삼현, 그리고 운산도 덩달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산이로도 현인에게 눈짓을 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도 그때까지 머물겠다.”
막정위는 일단 위기는 넘겼다는 생각을 했다. 잠시지만 시간을 벌었으니 그사이에 뭔가 대책을 세울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운상이 네가 객방까지 안내를 해드려라.”
“네. 사형.”
적운상이 대답을 하고 무당삼현과 화산이로를 힐끗 한 번 보고는 먼저 객청을 나갔다.
“성격이 누구를 닮았군.”
이현이 뜻 모를 말을 하며 적운상을 따라 객청을 나가자 나머지 사람들도 그 뒤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