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282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34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282화
282화. 드디어 온 사람들 (1)
부아악! 파아아앙!
“크윽!”
“끄아아악!”
칼에 베이는 소리와 장력에 얻어터지는 소리, 그리고 두 사람의 비명이 동시에 울렸다.
“무한 오라버니!”
은서린이 놀라서 소리치는 사이에 혁무한은 팔을 벤 사내의 목을 후려쳤다.
파앙!
사내는 제대로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뒤로 나가떨어졌다.
“오라버니! 괜찮으세요?”
은서린이 다급하게 혁무한을 부축했다. 조금 전에는 정말이지 아슬아슬했었다. 은서린을 잡고 있던 건 두 사람이었다. 그들은 혁무한이 동료를 쓰러트리자 망설이지 않고 은서린을 향해서 칼을 휘둘렀다.
너무 빠른 반응에 혁무한은 속으로 ‘아차’ 싶었다. 재빨리 그들을 향해 손을 뻗었지만 두 명을 모두 처리할 수는 없었다. 이에 혁무한은 한쪽 팔로 은서린을 감싸면서 한 명을 쓰러트린 후에, 남은 한 명을 쓰러트렸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베인 것은 혁무한의 팔이 아니라 은서린의 목이었을 것이다.
“지혈을 해야겠어요.”
은서린이 자신의 옷자락을 북 찢어서 혁무한의 팔을 감으려고 했다. 그러자 혁무한이 은서린을 밀어내며 말했다.
“아직 아니야. 놈들을 처리한 후에…….”
혁무한은 더 이상 말하지 못했다. 어느새 적운상의 널찍한 등이 그의 앞을 막아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지혈부터 해.”
“너…….”
분명 적운상은 방금까지만 해도 언월도를 휘두르는 사내들의 공격을 받아내느라 진땀을 빼고 있었다. 게다가 적운상이 있던 곳과 여기까지의 거리는 무려 오 장(五丈)이나 되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나타날 수가 있는 걸까?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다. 경공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이렇게 빨리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했다. 적운상은 저쪽에서 훅 꺼지고, 바로 여기에 나타났다. 한순간에 공간을 이동한 것 같았다.
하지만 인간에게 그런 일은 불가능하지 않은가?
잠시 주춤하던 혁무한의 눈이 아까 적운상이 있던 곳으로 향했다. 거기에는 적운상과 겨루던 자들이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었다. 그들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적운상이 갑자기 사라지더니 다섯 명이 쓰러졌다. 그리고 적운상은 혁무한과 은서린이 있는 곳에 서 있었다.
왜 그들이 쓰러졌는지, 뭐를 어떻게 당했는지 그 누구도 보지 못했다. 그냥 갑자기 쓰러졌고, 적운상은 원래 저곳에 있었던 것처럼 서 있었다.
“무슨…….”
일이학도 상황파악이 안 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여기까지만 하지. 계속하겠다면 모두 죽이겠다.”
“방금 뭐를 한 거냐?”
“말해줘도 당신은 몰라.”
“흥! 그따위 속임수에 넘어갈 줄 아는가? 뭣들 해!”
일이학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정확히 서른두 명의 사내들이 언월도를 휘두르며 적운상에게 달려들었다. 적운상은 침착하게 그들이 다가오는 것을 보다가 삼 장 안에 들어오자 무한의 영역으로 들어섰다.
주위의 모든 것들이 마치 정지해 있는 것처럼 느려졌다. 적운상을 향해 날아오며 언월도를 휘두르려던 서른두 명의 사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아주 느리게, 느리게 움직이고 있었다.
적운상은 그들 사이를 지나쳐가며 태룡도로 다리만 베고 지나갔다. 일 초식에 세 명의 다리가 베어졌다. 이어지는 초식에 다시 세 명이 베였고, 마지막 삼 초식에는 다섯 명의 다리가 갈라졌다.
그걸 끝으로 무극의 영역에서 튕겨져 나온 적운상은 눈앞에 있던 두 명의 다리를 베었다.
파가가가각!
“으아아악!”
“크아아악!”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적운상이 갑자기 그 자리에서 훅 꺼지더니 공격을 해가던 사내들의 중앙에 나타났다. 그러자 열세 명이 비명을 지르면서 쓰러졌다.
사람들이 본 건 적운상이 무극의 영역에서 나와 칼을 한 번 휘두른 것뿐이었다. 그 외에는 전혀 알지 못했다.
“저게 도대체…….”
일이학은 눈을 크게 뜨고 말을 더듬거렸다. 부하들이 쓰러지는 것을 보니 분명 적운상에게 당한 것이 확실한데 어떻게 당했는지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 뒤늦게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이형환위!”
저리 빠르게 움직인다면 이형환위가 분명했다. 일이학은 그렇게 생각했다. 무극의 영역이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는 그로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빠르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지. 움직여!”
지금까지 지켜보고만 있던 요석상이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백여 명에 달하는 자들이 그 자리에서 휙휙 사라졌다. 그들은 적운상을 공격하는 사 육영대 사람들 뒤에 넓게 포진했다.
그리고 적운상이 움직이기를 기다렸다. 이형환위가 대단하기는 하지만 연속으로 펼칠 수는 없었다. 한 번 움직이면 반드시 멈춰야 했다. 게다가 거리의 한계도 있었다.
경공신법이라면 오 육영대도 자신이 있었다. 이형환위를 따라잡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멈춰있는 그 잠깐의 틈을 노릴 정도는 되었다. 그것이 그들의 자신감이었다.
쉬이이이익!
적운상이 다시 한 번 무극의 영역에 들어갔다가 나왔다. 그러자 일곱 명이 뭐가 어떻게 된 건지도 모른 채 그대로 쓰러졌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적운상이 무극의 영역에서 나오는 그 순간을 노리고 오 육영대가 달려들었다. 그러나 너무나 조용했다. 소리 없는 암습이었다.
쉭! 파팍!
적운상이 두 명을 베었지만 그들은 신음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그러면서 적운상을 붙잡고 매달렸다.
“이런…….”
아주 잠시였다. 베인 두 명이 죽음을 각오하고 사력을 다해 붙잡는 바람에 적운상의 움직임이 아주 잠시 멈칫거렸다. 그 잠깐 사이에 스물일곱 명이 적운상을 완전히 둘러싸고 검을 휘둘렀다. 그 뒤를 따라 오십여 명이 몸을 날렸다. 그리고 그 뒤에는 백여 명이 더 있었다.
삼 겹의 완벽한 포위였다. 전후좌우, 위아래, 그 어디로도 피할 수가 없었다. 경공신법이 아무리 대단해도 저리 빽빽하게 포위하고 달려들면 방법이 없었다. 위기였다.
지켜보고 있던 은서린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혁무한도 이번만큼은 적운상이 어떻게 하지 못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일이학과 요석상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적운상의 태룡도에서 갑자기 눈부시게 밝은 빛이 터져 나오면서 사방팔방에서 빽빽하니 달려드는 적들을 향해 폭사되어 나갔다.
파지지지지직! 콰콰콰콰콰콰쾅!
“크아아악!”
“으아아악!”
마치 그 자리에 벼락이 떨어져 내린 것 같았다. 전력을 다해서 펼친 강기의 위력은 무시무시했다. 백 명이 넘는 적들의 반 이상이 태룡도에서 뿜어져 나온 뇌기에 의해 죽거나 기절해버렸다.
사실 적운상이 또다시 무극의 영역에 들어갔다면 어렵지 않게 그 포위망을 벗어날 수가 있었다. 무극의 영역에 들어서는 건, 이형환위와 같은 경공신법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경지였다.
이형환위는 그저 빠르게 움직이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상대가 베고자 하면 베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무극의 영역에 들어서는 것은 달랐다. 그건 그저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세상에서 움직이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영역에 들어서지 못한다면 어떤 방법으로도 이미 무극의 영역에 들어가 있는 사람을 벨 수가 없었다. 그러니 적운상이 아까 마음만 먹었다면, 몇 겹의 포위가 되었던 활로(活路)를 만들 수가 있었다.
하지만 적운상은 그러지 않았다. 무극의 영역에 들어서서 포위를 뚫었다면, 저들은 그게 얼마나 대단한 경지인지도 모르고 다시 덤벼들었을 것이다. 저들이 아는 한계는 이형환위까지였다. 그래서 수준을 조금 낮춰서 강기를 쓴 것이다.
과연 그랬다. 저들에게는 무극의 영역에 들어서는 것보다 방금 보여준 강기의 효과가 더 확실했다. 일이학과 요석상은 눈에 띄게 얼굴이 굳어 있었다.
“계속할 테냐?”
“…….”
일이학은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적운상이 보여준 강기 때문에 아직 제정신이 아니었다. 반쯤 넋이 나가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칼에서 뇌기가 뿜어져 나온다는 건 듣도 보도 못한 일이었다. 게다가 서너 명도 아니고 십여 명도 아니었다. 무려 팔십여 명이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일격에 모두 나가떨어지다니, 직접 눈으로 봤으면서도 믿어지지가 않았다.
무신(武神)!
그리 생각되었다. 저런 무위라면 당연히 천하제일이라 할 수 있었다.
오싹하니 소름이 돋았다. 찌릿하니 전율이 일었다. 일이학은 지금 자신의 다리가 떨리고 있다는 것도 의식하지 못했다. 그저 멍하니 적운상만 보고 있었다.
“계속할 거냐고 물었다.”
“아, 아닙니다. 우리는… 이대로 물러나겠습니다.”
일이학의 말투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공손했다. 진정 마음에서부터 승복을 한 것이다.
“좋아.”
적운상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태룡도를 집어넣었다. 그리고 혁무한과 은서린을 봤다.
“가지.”
혁무한과 은서린은 얼떨떨한 얼굴로 다가왔다. 그런 두 사람을 누구도 막아서지 않았다.
* * *
“왜 그런 말을 안 했던 거냐?”
초사영이 화를 내면서 소리쳤다.
“걱정을 할까 봐 그랬습니다. 그리고 그건… 제가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적운상이 침착하니 대답하자 초사영의 목소리가 더 높아졌다.
“호천마궁을 상대하는 게 어떻게 너 혼자 해결할 문제야! 지금도 봐! 서린이가 납치되었었잖아!”
적운상은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저번에 호천마궁에서 왔던 사람에게 확실하게 뜻을 전했는데, 그게 약했었나 보다. 조비가 왔으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학과 장로들, 그리고 패도육영대가 오는 바람에 은서린이 납치되었다. 해결이 잘 되기는 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무림맹을 상대해야 하는데 호천마궁까지 상대해야 한다면, 무림 전체를 적으로 두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진정해. 이미 벌어진 일이야. 운상이가 이야기 안 했다고 해서 그냥 있었던 우리 잘못도 있어. 운상이가 호천마궁과 얽혀 있다는 건 너나 나도 알고 있었던 일이야.”
막정위가 타이르듯이 말하며 초사영을 진정시켰다.
“하지만 사형.”
“지금은 그것보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가 문제야.”
초사영이 뭔가를 더 말하려고 하자 막정위가 말을 막으면서 적운상을 봤다.
“운상아.”
“네. 대사형.”
“그 조비라는 자가 오면 어떻게 할 생각이냐?”
“물어보고 싶습니다. 그때의 일에 관여를 했었는지 아닌지를. 조비가 직접 관여했었다면 그를 벨 겁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호천마궁으로 가야 합니다.”
“이유를 말해봐라.”
“조비는 호천마궁의 후계자 중 한 명입니다. 어쩌면 다음대의 궁주가 될지도 모르죠. 그런 조비가 저를 적으로 생각했다면, 어쩔 수 없이 호천마궁을 상대해야 합니다. 반대로 조비가 아직까지 나를 친구로 생각한다면 호천마궁으로 가서 타협을 해볼 여지가 있습니다.”
“뭐를 타협할 생각이냐? 혹시 그들을 이용해서 무림맹을 칠 생각이냐?”
“아닙니다. 그랬다가는 형산파는 정말 끝장입니다. 무림맹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그럼?”
“아직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입니다. 제게 생각이 있으니 호천마궁에 관한 일은 맡겨주십시오.”
“운상아.”
막정위가 안타깝다는 듯이 적운상을 불렀다. 그동안 적운상이 형산파를 위해서 얼마나 노력해왔는지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형산파가 어려울 때마다 항상 적운상이 나서서 해결을 했었다. 그런데 또 저렇게 혼자서 모든 것을 짊어지려고 하는 걸 보니, 왈칵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걱정 마세요. 대사형.”
“하아… 그래. 나가봐라.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