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277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85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277화
277화. 무당삼현과 화산이로 (2)
막정위의 혼인식 겸 장문인 취임식이 다가오면서 형산파는 물론이고 남악현도 분위기가 덩달아 들떴다. 남악현 사람들 대부분이 형산파의 속가제자나 마찬가지여서 그런 큰 행사를 나 몰라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뭐라도 보탬이 될까, 있는 거 없는 거 다 들고 왔고, 들고 올 것이 없는 사람들은 몸으로라도 때우려고 했다. 그로 인해 형산파는 정신없이 분주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행사 준비와 관계없이 한가한 사람도 있었으니, 바로 적운상이었다.
그는 숙소 앞의 돌계단에 멍하니 앉아서 분주하게 오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었다. 그러고 있으니 왠지 혼자만 다른 곳에서 온 이방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형!”
주양악이 뒤에서 적운상의 목을 꽉 끌어안았다.
“뭐야? 사람들이 보잖아.”
“흥, 언제부터 사형이 사람들 눈을 신경 썼다고 그래?”
“숨 막히니까 목부터 놔.”
적운상이 팔을 떼어내려고 하자 주양악은 오히려 더 세계 안으며 고개를 쑥 내밀었다.
“멍하니 뭐하고 있어?”
“그냥.”
“그냥 뭐?”
“아무것도 아니야.”
적운상이 일어나자 뒤에 매달려 있던 주양악의 몸이 붕 떠올랐다. 잠시 그러고 있던 주양악은 그제야 팔을 풀고 적운상을 빤히 쳐다보다가 손바닥으로 등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짝!
“큭! 갑자기 무슨 짓이야?”
“그냥.”
“뭐?”
“그냥 힘이 없어 보여서.”
“그래 보였어?”
“응.”
“너는 안 바빠?”
적운상이 말을 돌리며 물었다. 그러자 주양악이 귀엽게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응. 도와주려고 하면 사람들이 다들 괜찮대.”
적운상은 어찌된 일인지 안 봐도 알 것 같았다. 주양악은 제대로 할 줄 아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도와준다고 나서도 오히려 방해가 되곤 했다. 그러니 가만히 있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었다.
“수련은 어때?”
“뭐? 강기?”
“응.”
주양악은 천마의 내단을 취한 이후로 내공이 넘쳐나서 주체를 못할 정도가 되었지만, 그걸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못했다.
그래서 내공만 따지자면 무림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강했지만, 무공은 그렇지 않았다. 무상지검에 오른 사람들과 간신히 평수를 이룰 정도거나, 한 수 처졌다.
게다가 주양악의 성격상 깊은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주양악은 활발하고 대범한 성격이라 뭔가를 깊이 고민하거나 하지 않았다. 조금 생각하다가 훌훌 털어버리거나 금방 다른 것에 관심을 가졌다.
주양악이 그 엄청난 내공을 지니고도 계속 무공이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이유가 그것이었다. 적운상도 그것을 알고 있기에 고민을 하다가 강기를 가르치기 시작한 것이다.
강기는 깨달음을 우선으로 하지만, 꼭 그렇지 않더라도 내공만 밑받침되어 준다면 억지로라도 끌어낼 수가 있었다. 물론 그럴 경우 바가지로 물을 퍼다 버리는 것과 같이 내공의 소모가 심하지만, 주양악에게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내공이야 넘쳐나다 못해 주체를 못하고 있으니까.
지금 주양악의 수준은 무상지검의 경지에 오른 사람들과 평수를 이루거나 조금 처졌다. 하지만 만약 강기만 익힌다면 심검의 경지에 오른 사람들에게는 안 되겠지만, 무상지검의 경지에 오른 사람들은 충분히 상대하고도 남았다.
그걸 바라고 요즘 적운상은 주양악에게 심혈을 기울여 강기를 가르치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나 깨달음이 낮으니 가르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래도 요즘 분위기 때문인지 주양악은 나름 열심히 하고 있었다.
“그게… 잘 안 돼.”
“괜찮아. 당장에 되리란 생각은 하지도 않았어. 내가 가르쳐준 걸 시간이 날 때마다 되새겨. 그러다 보면 될 거야.”
“응. 해볼게.”
주양악이 웃으면서 대답하자 적운상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그러자 주양악이 싫지 않은 듯 어깨를 한 번 으쓱거렸다.
“그나저나 수연 언니가 많이 늦네. 올 때가 지났는데.”
백수연은 아버지인 백태정이 불러서 지금 천응방에 가있었다. 적운상이 오기 얼마 전에 갑자기 돌아오라고 서찰이 왔었다. 별다른 내용 없이 돌아오라고만 적혀 있어서 조금 이상하다 싶었는데, 그 후로 소식이 없었다.
“대사형 취임식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거기나 갔다 올까 봐.”
주양악이 적운상의 눈치를 슬쩍 살피며 혼잣말을 하듯이 중얼거렸다. 형산에서 천응방이 있는 장사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주양악의 말대로 부지런히 갔다 온다면 시간은 충분했다.
“어떻게 할 거야? 갈 거야?”
“글쎄…….”
순간 한 번 가볼까 하는 생각을 하던 적운상은 고개를 저었다. 막정위가 취임식을 하는 날까지는 자리를 지키는 것이 좋았다.
형산파로 오는 길에 만난 두 노인, 스스로를 동헌과 유백이라고 밝힌 그 노인들의 말에 따르면 조만간 무당파와 화산파에서 보낸 노고수들이 형산파로 온다. 혹여 백수연을 만나러 갔을 때 그들이 온다면 큰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며칠째지?’
동헌과 유백은 딱 칠 일만 머무르겠다고 했었다. 날짜를 새어보니 이제 하루가 남아 있었다.
“안 돼. 일이 있어서 조금 늦는 거겠지. 대사형 혼인식 날에는 올 거야.”
“그럴까?”
“응. 그럴 거야.”
“어? 어디 가?”
대화를 하다가 걸음을 옮기는 적운상을 보며 주양악이 옆에 가서 찰싹 달라붙었다.
“이거 좀 놔라. 사람들이 보잖아.”
“글쎄, 언제부터 사형이 사람들 시선을 신경 썼냐고? 그것보다 어디 가는데?”
“나랑 함께 온 노인들한테.”
“같이 가.”
“너는 가서 너 할 일 해.”
“없다니까 그러네.”
생글거리며 달라붙는 주양악을 밀쳐내던 적운상은 포기하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두 사람이 그렇게 붙어서 가자 지나가던 사람들이 부러운 눈길과 함께 환호를 한 번씩 했다.
* * *
동헌과 유백은 객청에 앉아서 바둑을 두고 있었다. 두 사람은 처음에 봤을 때도 바둑을 두더니, 이곳에 있는 동안에도 계속 바둑만 뒀다.
“오, 왔는가?”
동헌이 바둑판에 시선을 꽂은 채 쳐다보지도 않고 적운상과 주양악에게 인사를 건넸다.
“오늘도 바둑입니까?”
“그래. 늙으면 뭐 할 게 있나? 그저 시간이나 때우면서 죽을 날이나 기다려야지.”
“흘흘. 그러면서 아침저녁으로 한 시진이 넘게 운기를 하는 건 무슨 이유인가?”
딱!
유백이 비꼬듯이 말하면서 들고 있던 바둑돌을 소리 나게 바둑판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동헌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허! 또 허를 찔렸군. 기다리고 있었던 건가?”
유백의 바둑은 항상 그랬다. 치밀하고 계산적이었다. 그에 비해 동헌의 바둑은 무조건 부딪치고 보는 거친 싸움바둑이었다.
“자네 두는 거야 뻔하지. 나라면 거기에서 그렇게 안 뒀어. 우리도 이제는 언제 죽을지 모를 나이야. 젊은 날의 혈기는 좀 누르게나.”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가는 걸세. 자네 말대로 이제 죽을 날이 멀지 않았는데, 뭐하러 눌러?”
딱!
동헌이 투덜거리듯이 말하면서 바둑돌을 놓자 이번에는 유백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흐음… 그런 수가 있었나? 그럼 이쪽의 돌들이 모두 죽을 텐데?”
“그냥 죽지는 않지. 그쪽이 죽는 대신 이쪽을 취할 수가 있으니까.”
“그건 이겼을 때의 일이지 않나? 성급해.”
“빨리 두기나 해.”
두 노인은 적운상과 주양악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티격태격하면서 바둑을 두는 데만 집중했다. 그걸 보고 주양악은 나이답지 않게 그들이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늙으면 나이가 들어갈수록 애가 되어 간다더니 지금 눈앞에 있는 두 사람이 그런 것 같았다.
이에 슬쩍 장난기가 발동했다.
“어? 저게 뭐지?”
주양악이 갑자기 소리치자 바둑에 집중하던 동헌과 유백은 물론이고 적운상까지 그쪽을 봤다. 하지만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사이에 주양악은 바둑판 위에 있던 돌 두 개를 재빨리 치워버렸다.
“뭐가 있다는 거냐?”
“아니요. 제가 잘못 봤나 봐요. 분명 뭔가 있었는데…….”
동헌이 묻는 말에 주양악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능청스럽게 말했다.
“뭐가 있었다면 우리가 먼저 알아챘을 것이다. 음… 어디 보자…….”
동헌이 다시 바둑판에 시선을 두다가 미간을 살짝 좁혔다. 그러더니 고개를 기우뚱거렸다. 뭔가가 이상했기 때문이다.
“이보게. 여기에 분명 돌이 있지 않았었나?”
“어디? 거기? 무슨, 자네는 지금 내가 거기에 있던 돌을 슬쩍 치웠다는 말인가?”
“아닌가?”
“아니지.”
“그럼 자네로군.”
동헌이 적운상을 보며 말했다. 그러자 적운상이 주양악을 봤다.
“에? 왜 나를 봐요? 난 아무 짓도 안 했어요.”
주양악이 그렇게 말하면서 양손을 펼쳐보였다. 그것을 보고 적운상이 살짝 인상을 찡그리다가 피식 웃었다. 주양악은 바둑돌 두 개를 가져가자마자 내공으로 잘게 부숴버렸다. 그러니 그녀의 손에 바둑돌이 있을 리가 없었다.
적운상이 그걸 눈치 챈 것이다. 사실 동헌이나 유백도 주양악이 바둑돌을 가져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 내공으로 부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주양악의 나이 아직 스물도 되지 않았다. 그 어린 나이에 자신들의 눈을 속여 바둑돌을 가루로 만들 수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던 것이다.
“헐! 이번 판은 내가 졌군.”
동헌이 못마땅한 눈으로 적운상을 보며 말했다. 주양악이 한 짓이라는 걸 알면서도 적운상에게 그런 눈빛을 보냈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주양악이 발끈해서 소리쳤다.
“왜 사형을 그렇게 봐요? 설마 사형을 의심하는 건가요?”
“어린 것이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나서는구나. 이번 바둑의 내기가 뭐였는지 아느냐?”
“뭔데요?”
“쯧쯧. 됐다. 여기는 뭔 일로 온 거냐?”
“심심해서요.”
주양악의 말에 동헌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그러다 부드럽게 손을 뻗어 엉덩이를 한 대 때렸다. 빠르지는 않았지만 은밀하고 자연스러워서 알면서도 피할 수가 없었다.
팡!
“아야!”
주양악이 얼굴이 빨개져서 동헌을 노려봤다. 그러나 동헌이 껄껄 웃으면서 손을 내저었다.
“뭘 그리 보느냐? 어른을 놀렸으면 혼이 나야지.”
“그렇다고 다 큰 처녀의 엉덩이를 때려요?”
“보니까 아직 덜 컸구먼.”
“이익!”
화가 난 주양악이 동헌을 향해 오른쪽 손을 쭉 뻗었다. 동헌은 웃으면서 뻗어오는 손은 신경도 쓰지 않고 또 주양악의 엉덩이를 때렸다.
팡!
“아야!”
엉덩이가 화끈하자 주양악은 화들짝 놀라며 비명을 질렀다. 비록 엉덩이는 맞았지만 계속 손을 뻗었더라면 동헌을 때릴 수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손을 거둔 주양악은 엉덩이를 감싸며 훌쩍 물러났다.
“쯧쯧. 좀 더 살이 쪄야겠어. 엉덩이가 실해야 애를 쑥쑥 낳지.”
엉덩이도 아픈데 동헌이 애 낳는 이야기를 하자 주양악의 얼굴이 더욱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적운상을 좋아하고 잠자리도 함께 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아기를 가지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정식으로 혼인식을 치른 것도 아닌데 아기는 무슨 아기란 말인가?
“보아하니 무당삼현과 화산이로 때문에 온 것 같군. 아닌가?”
“예. 맞습니다.”
유백이 바둑판을 정리하면서 묻는 말에 적운상이 바로 대답을 했다.
“우리는 애초에 약속한 대로 내일까지만 있을 걸세.”
“알고 있습니다.”
“그럼 뭐가 궁금해서 온 건가?”
“그들에 대해 이야기를 좀 해 주십시오.”
“흐음… 무당삼현과 화산이로는 무당파와 화산파에서 내로라하는 고수들일세. 하지만 아주 옛날 일이지. 그들의 나이 벌써 백 세가 넘었거든. 무당파와 화산파에서 은거한 그들까지 불러낸 것을 보면 어지간히 자네가 무서웠나 보네.”
“그들의 무공은 어느 정도입니까?”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정도지. 무당파와 화산파는 역대이래로 그들만한 고수들을 배출해 내지 못했네.”
“혹시 말입니다.”
“말해보게.”
“무극의 영역에 대해서 아십니까?”
적운상이 묻는 말에 순간 유백의 눈이 빛을 발했다. 하지만 워낙에 찰나라 적운상은 그걸 알지 못했다.
“무극의 영역이라… 처음 듣는군. 그게 뭔가?”
“아닙니다. 말씀 고맙습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네. 우리와 함께 가세나. 그러면 그들로부터 자네는 물론이고 형산파도 보호를 해주겠네.”
유백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에게는 그만한 힘이 있었다. 무공이 뛰어나서가 아니었다. 동헌은 무공이 뛰어나지만 유백은 건강 삼아 무공을 익히는 정도였다. 하지만 그들이 속해 있는 단체는 어마어마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 힘은 무당파와 화산파를 누르고도 남을 정도로 강했다.
적운상도 그 같은 것을 짐작했다. 유백이 저렇게 호언장담하는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순간 그들이 속해 있는 곳이 궁금했지만 굳이 묻지 않았다.
물어도 대답해 줄 것 같지가 않았고, 어차피 그들에게 도움을 받을 생각은 없었으니 알아봐야 소용도 없었다.
“괜찮습니다. 제 힘으로 어떻게 해 보겠습니다.”
“허 참. 고집하고는. 그들이 정파인이라고 해서 손을 쓰는 것도 그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말게. 자파의 명예가 걸린 일에는 물불을 안 가리는 것이 그네들 생리일세.”
“알고 있습니다. 그럼 계속 노십시오. 저희는 가보겠습니다.”
적운상이 주양악과 함께 자리를 뜨자 동헌이 낮게 혀를 차며 말했다.
“쯧쯧, 아직 고생을 덜했구먼.”
“무극의 영역에 대해서 아는 것을 보니 그렇지도 않은 것 같더군.”
“흥! 그저 들은풍월이겠지.”
“그런데 위에서 그렇게 데려오지 못해 안달이겠나? 아닐 걸세. 어쩌면 벌써 그 영역에 들어섰을지도 모르네.”
“그건 두고 보면 알 일이지.”
“헌데 내일이면 약속한 칠 일 아닌가? 내일 안으로 그 늙은이들이 와야 할 텐데, 안 오면 어쩌나?”
“그러게 왜 약속을 칠 일로 잡았나? 한 두어 달 정도로 넉넉하게 잡지 않고선…….”
“그거에 대해선 할 말 없네. 안 되면 그냥 더 눌러 있으면 되지. 우리가 있겠다는데 설마 거절하려고?”
“시끄럽고. 바둑이나 한 판 더 두세나.”
“그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