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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형산파 276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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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아! 형산파 276화

276화. 무당삼현과 화산이로 (1)

 

넓은 대청에 형산파 사람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그런데 어제와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어제는 적운상이 무사히 돌아온 것에 기뻐하며 웃고 떠들기에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완전히 착 가라앉아 있었다. 적운상이 한 한마디 때문이었다.

“노엽이가 죽었습니다.”

“그게… 정말이냐?”

막정위가 되물었다. 적운상이 그런 일로 농담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되물은 것이다.

“정말입니다.”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하는 적운상을 보면서 모두 그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았다. 표정이 없는데도 적운상은 슬퍼 보였다. 슬픔과 분함을 꾹 눌러 참고 있다는 것이 확연하게 느껴졌다.

은서린을 비롯한 몇몇 사람들이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소리 내서 크게 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조용히, 소리죽여 흐느꼈다. 그만큼 한이 되어 가슴에 맺힐 거라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울었다. 오히려 그걸 바랐기 때문이다.

“어쩌다가 그리 된 거냐?”

넋이 나간 얼굴을 하고 있던 막정위가 한참 만에 물었다. 적운상은 박노엽을 만나서 마지막을 지켜봤던 것까지 모두 이야기했다. 모두 숨소리조차 죽여 가며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이야기가 끝났을 때에는 다시금 눈물을 흘렸다.

“혼자 보내는 것이 아니었는데…….”

초사영이 후회가 가득한 모습으로 중얼거렸다. 박노엽을 너무 믿었다. 늘 의지가 되어 왔기 때문에 그랬던 것인데, 오히려 그로 인해 죽게 될 줄이야.

쾅!

분을 참지 못하고 초사영이 차탁을 내려쳤다. 그러자 차탁의 다리가 부서지면서 위에 있던 찻잔이 바닥으로 떨어져 깨졌다. 그 바람에 모두의 주의가 그리로 모였다.

“내 잘못이다. 내가 무림맹으로 가겠다.”

“관둬. 너 혼자 가서 뭘 어떻게 하겠다고.”

막정위가 말렸지만 초사영은 여전히 분을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계속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잖아!”

“시끄러워!”

“대사형!”

“시끄럽다고 했지!”

막정위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모두 막정위가 이렇게까지 화내는 모습은 처음 봤다. 평소의 막정위는 아무리 화가 나도 그것을 밖으로 표출하지 않았다. 성격이 그랬고, 대사형으로서 그래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임옥군과 도지림에 이은 박노엽의 죽음에 충격을 많이 받은 것이다.

“대사형이 말려도 저는 갈 겁니다. 가서 그들에게 물을 겁니다. 왜 사부님을 죽였는지! 왜 사제를 죽였는지! 왜 형산파를 적으로 돌리는지!”

“닥쳐! 바보 같은 놈아!”

“겁먹고 웅크리고 있으면 또 당한다고요!”

초사영이 크게 소리치자 막정위가 그의 멱살을 잡아당겨 얼굴을 가까이 했다. 그러고는 초사영보다 더 큰 목소리로 절규하듯이 소리쳤다.

“너마저 죽게 할 순 없어! 그걸 몰라? 난 더 이상 아무도 죽게 하고 싶지 않아!”

두 사람으로 인해 대청 안의 분위기가 급격하게 굳어버렸다. 모두 입을 다물고 조용히 두 사람을 지켜보기만 했다.

“가려거든 날 죽이고 가라. 난 네가 죽는 걸 볼 자신이 없다.”

막정위가 나직이 하는 말에 초사영은 더 이상 화를 내지 못했다. 가겠다고 소리칠 수도 없었다. 초사영이 멱살을 잡고 있는 막정위의 손을 풀고 자리에 앉았다.

“당분간 모두 자숙해라. 남악현 밖의 일은 일절 신경 쓰지 마. 멀리 나가있는 사람들은 모두 불러들이고. 운상이 네 말대로라면 그대로 끝나지는 않을 것 같다. 무당파와 화산파에서 고수들을 보냈다고 하니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그 외에 무림맹에서 또 뭔가 움직임을 보일지도 몰라. 그러니 일단 지켜보고 대응한다.”

막정위가 말을 끝내고 모두를 봤다. 모두 어깨가 축 처져 있었다.

“왜 대답이 없어? 알겠냐?”

“네.”

그제야 모두 입을 모아 대답을 했다.

“정위야.”

그때까지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던 나한중이 막정위를 불렀다.

“네. 사숙.”

“내 생각에는 그러지 않는 것이 좋겠구나.”

뜻밖의 말이었다. 문파에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문인들부터 단속해야 한다.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더욱이 그래야 했다. 그런데 왜 반대를 하는 건지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째서입니까? 고견이 있으시면 듣겠습니다.”

“조금 있으면 네 혼인식 아니냐? 게다가 그날 장문인 취임식까지 함께 하지 않더냐? 이미 청첩장을 인근 문파에 모두 돌린 상태인데, 웅크리고 있으면 보기에 안 좋을 것 같구나. 어차피 벌어진 일이고 금방 소문이 날 게다. 게다가 무림맹으로서도 떳떳한 일은 아니니 대놓고 행동하지는 못할 거다. 그러니 일단은 평소대로 행동하는 것이 좋을 것 같구나.”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잠시 생각을 하던 막정위가 나름 납득을 하고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사숙님의 말에 따르겠습니다.”

“그래. 잘 생각했다. 그리고 운상이는 나와 잠시 이야기 좀 하자구나.”

“네.”

나한중은 적운상과 함께 대청을 나와 천천히 걸었다. 지나가는 몇몇 제자들이 그들을 보며 고개를 숙였다.

“모두가 네 덕이구나. 지금의 형산파를 생각하면 예전의 일은 정말 아득한 옛날 일처럼 느껴진다. 불과 몇 년 전의 일이거늘.”

“아닙니다. 모두가 노력한 덕입니다.”

“하지만 네 덕이 가장 컸다.”

적운상은 묵묵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계속 말해봐야 스스로의 얼굴에 금칠을 하는 것일 뿐이었다.

“지금 네 경지가 정확히 어느 정도냐?”

잠시 뜸을 들이며 나한중이 물었다. 적운상은 갑작스러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입을 열지 못했다. 자신이 심검의 경지에 올라있다는 것은 나한중도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런 것을 묻는 것이 아니었다.

나한중은 좀 더 구체적인 대답을 원하고 있었다.

“너무 뜬금없었나 보구나. 현 무림에서 가장 강한 곳이 소림사이니 그곳을 기준으로 잡아보자. 소림사의 십팔나한과 붙는다면 몇 명까지 상대할 수 있느냐?”

“그들이 십팔나한진(十八羅漢陣)을 펼치지 않는다면 몇 명이든 상대할 수 있습니다.”

굉장한 자신감이었다. 적운상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이 그 같은 말을 들었다면 그가 오만하고 방자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나한중은 적운상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었다.

지금 한 말은 거짓도 아니었고, 과장된 말도 아니었다. 적운상은 스스로를 냉정하게 볼 줄 안다. 그러니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렇구나. 허, 정말 놀랍구나. 놀라워. 형산파에서 너 같은 절세의 고수가 나올 줄 누가 알았겠느냐? 먼저 간 사숙이나 사형도 충분히 만족을 하실 게다. 허허.”

나한중이 칭찬을 하면서 허탈한 웃음을 터트렸다. 적운상이 그 같은 실력을 가지고 있다니 한없이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했다. 형산파에서는 지금껏 적운상에게 이렇다 하게 해준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열악한 환경만 안겨줬었다. 그런데도 적운상은 스스로의 노력으로 그 같은 경지를 이루었다. 이에 나한중은 만약 자신도 적운상처럼 노력을 했다면 지금과 같이 이렇게 약하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후회감이 들었다.

“운상아.”

“네. 사숙님.”

“우리는 무림맹과 맞서 싸울 수 없다.”

“알고 있습니다.”

무림맹은 정파 무림의 연합체였다. 소림사나 무당파는 차치하더라도 화산파 정도 되는 대문파 하나만 움직여도 형산파는 끝장이었다.

적운상의 무공이 대단하기는 하지만 혼자였다. 형산파의 다른 사람들은 적운상의 발뒤꿈치도 따라가지 못했다. 실례로 무상지검의 경지에 오른 이조차 한 명도 없었다.

그에 비해 전통이 오래된 대문파에는 무상지검의 경지에 오른 고수들이 수두룩했다. 적운상 정도 되는 고수도 찾아보면 없지 않았다. 전대의 은거고수들을 찾아보면 그 수가 제법 됐다. 다만 그들은 나이가 많고 속세의 일에 관여를 하지 않을 뿐이었다.

그러니 그런 문파들이 손을 잡고 모여 있는 무림맹이야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들이 명분을 세워 형산파를 쓸어버리고자 한다면 하루도 버티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도 모두 무림맹과 맞서려 하고 있다. 너로 인해 이제야 형산파가 빛을 발하고 있건만 나는 참으로 안타깝구나.”

“하지만…….”

“알고 있다. 도 사숙과 사형이 그리 비명에 갔고, 노엽이까지 죽었지 않느냐? 허나 그 원수를 어찌 갚을 생각이냐? 무림맹을 상대로 뭘 어떻게 하려는 것이냐?”

나한중이 묻는 것은 적운상도 스스로에게 몇 번이나 던졌던 질문이었다. 그래서 이미 답을 내린 상태였다.

“그저… 보여 주고 싶을 뿐입니다.”

“무엇을 말이냐?”

“형산파를 보여 주고 싶습니다. 그들이 무엇을 버렸는지, 누구를 죽였는지, 그걸 알게 해주고 싶을 뿐입니다. 다른 사람들도 그럴 겁니다.”

“후우…….”

나한중이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형산파는 이제야 간신히 다시 일어서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위기였다.

임옥군의 죽음은 큰 흐름에 의한 것이었다. 피하려고 했다면 애초에 더 준비를 단단히 했어야 했다. 그러지 못해서 죽은 것이다. 그것을 모두 알면서도 복수를 생각하고 있었다.

자칫 형산파가 멸문을 할 수도 있건만, 그걸 감수하면서까지 위험한 길을 가려고 한다. 나한중은 큰 흐름에 거스르기보다는 묻혀가거나 비껴가기를 바랐다. 지금껏 형산파는 그렇게 명맥을 유지해 왔다.

그래서 막정위와 초사영를 불러놓고 이야기를 해봤지만 그들은 막무가내였다. 그만큼 임옥군에 대한 정이 깊었던 것이다. 더 이상 그들을 설득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에 적운상을 불러서 잠깐 이야기를 나눠보니 그들보다 더한 것 같았다. 자기 주관이 더 꽉 박혀있어서 대화가 되지 않았다.

“정위와 사영이에게도 했던 말이지만, 너희가 하려는 일로 인해 형산파의 다른 사람들이 크게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다. 노엽이처럼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적운상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걸 모르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이대로 숨죽이고 지낼 수도 없었다. 이미 일은 벌어진 상태였다. 이쪽에서 가만히 있는다고 해서 그들이 그냥 넘어갈 리가 없었다.

“그럼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적운상의 말에 나한중의 얼굴에 기쁜 빛이 스쳤다. 생각 외로 대화가 조금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생각 같아서는, 힘만 있다면 그들을 모두 무릎 꿇리고 싶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건 요원한 일이 아니더냐. 그러니 오히려 그들을 따르는 것이 어떻겠느냐?”

“따르다니요?”

“무림맹의 일을 돕자는 말이다. 그들에게 맞서며 우리의 가치를 인정받고 장문사형의 죽음에 대해서 후회를 하게 만들지 말고, 그들의 기대 이상으로 부응해서 스스로 부끄러워지게 만들자는 거다. 그러자면 더 힘이 들 테지만, 최소한 형산파가 멸문하는 일은 피할 수가 있다.”

잠시 생각을 하던 적운상이 물었다.

“사형들은 뭐라고 합니까?”

“그 녀석들은 듣지도 않으려고 한다.”

나한중이 다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럴 것이다. 그들을 따르다가 그렇게 됐는데 어떻게 다시 그들을 따른단 말인가?

게다가 적운상은 이번에 박노엽이 죽는 것을 보고 십팔나한과 매화검수, 무당십걸을 몇 명씩 죽여 버렸다. 무림맹의 실세 중 가장 강한 세 곳을 적으로 만든 것이다. 그런 그들이 적운상이 온다면 가만히 둘 리가 없었다.

“생각해보겠습니다.”

적운상은 그렇게 대답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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