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274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94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274화
274화. 형산파에서 (2)
사실 적운상이 얼마나 대단한지 일영진인은 정확히 몰랐다. 그가 아는 건 무림대회 때 봤던 적운상의 강함과, 이번에 벌어졌던 사건에 대한 약간의 정보뿐이었다. 무림대회 때 봤던 정도라면 무당삼현 중 한 명만으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이번에 벌어진 일을 들어보니 소림사의 십팔나한 넷과 화산파의 매화검수 셋에 삼십 명의 고수들이 있었는데 일각도 되지 않아 모두 죽었다고 한다. 그것도 일검에 죽었다.
그 와중에 무당십걸이라는 두 놈은 도망까지 쳤다. 나중에야 진실이 밝혀졌지만 한 번 돈 소문을 뒤집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쨌든 그렇다 해도 무당삼현 두 명만 움직인다면 된다. 굳이 세 명까지 갈 필요가 없었다. 그럼에도 세 명 모두 가게 한 것은 그래야 그들이 움직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듣자니 화산파의 매화이로까지 온다고 한다. 옛 추억을 떠올리며 서로 한 번 붙어보는 것도 좋으리라.
일영진인은 생각한 대로 일이 잘 풀리자 웃으면서 청죽림을 나왔다. 하지만 세상일이라는 것이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않은 법이다.
그가 가고 나자 청죽림에 흐릿하니 세 개의 인영이 나타났다. 모두 지금 당장 무덤에 들어간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나이를 먹은 노도사들이었다.
그들은 허연 눈썹과 수연을 길게 기르고 다 해진 도복을 입고 있었다. 주름은 자글자글하니 나이를 짐작도 할 수 없었다.
“저놈이 머리를 쓰는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지.”
“아니야. 나갈 때 웃는 거 못 봤어? 분명 뭔가 꿍꿍이가 있어.”
“그렇지. 말이야 바른 말이지 우리 셋이 감당해야 할 놈이 무림에 있긴 있나?”
“그렇지. 그렇지.”
두 노도사가 말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데 입을 꾹 다물고 있던 노도사가 나직이 말했다.
“그리 수행하고도 못 깨달았더냐?”
“왜 그러시오? 사형.”
“우리가 뭐 없는 말 한 것도 아닌데.”
“멍청한 놈들.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기인이사들이 얼마나 많더냐? 그 중에는 우리네가 가진 능력을 일천하게 보며 비웃는 이들도 많아.”
“에이… 사형도 참.”
“되는 말을 해야지.”
“시끄럽다. 입 다물고 떠날 채비들이나 해.”
“그러죠.”
“오랜만에 나가 보네.”
“어떤 놈이 안내를 할지는 몰라도 놀리는 맛이 있는 놈이면 좋겠군.”
“큭큭. 갔다 와서 별거 없었으면 장문인 그놈부터 혼을 좀 내줍시다.”
“그래야지. 그래야지.”
무당삼현이 그렇게 움직일 준비를 하고 있을 때 화산파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사백님. 부탁 좀 드립니다.”
장문인의 체면에도 불구하고 적양진인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는 노도사 앞에 무릎을 꿇고 애원을 하고 있었다.
“아, 일없대도 그러네. 빨리 가. 귀찮아 죽겠어.”
“그러지 말고 힘 좀 써주십시오. 화산파의 명예가 달려있단 말입니다.”
“그럼 네가 직접 가면 되잖아. 장문인이라고 자리에 앉아서 만날 목에 힘만 주고 있지 말고 이럴 때 한 번씩 힘을 써야지. 그래야 밑에 애들이 따를 것 아니야?”
“그러니까 사백님이 먼저 솔선수범해 달라는 것 아닙니까? 사백님. 한 번만 도와주십시오!”
“저리 안 가! 안 간다는데 아침부터 와서 왜 이 난리야!”
적양진인은 더 이상 그를 설득하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들자 이번에는 그의 옆에 앉아있는 노도사를 붙잡고 매달렸다.
“사숙님! 사숙님은 이 사질의 안타까운 마음을 헤아려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노도사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는 원래 말이 없었다. 일 년에 두어 마디 하면 많이 한 거였다.
“사숙님! 제발 부탁입니다! 한 번만 도움을 주십시오!”
그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가만히 눈을 감고 못 들은 척 그대로 있었다.
“사숙님…….”
이렇게 되면 최후의 수를 꺼내는 수밖에 없었다.
“사실 무당파에서는 무당삼현 어르신들이 간다고 하더군요.”
적양진인이 말을 끝내는 순간 깐깐하게 거절하던 노도사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그리고 눈을 감고 들어도 못 들은 척하던 노도사는 눈을 부릅떴다.
“정말이냐?”
팔 개월 만에 처음으로 그가 입을 열었다.
“제가 어찌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형산파라고?”
“네.”
“적운상이라고 했지?”
“네.”
“그가 그렇게 대단하냐?”
“그러니까 제가 이렇게 체면불구하고 찾아와서 매달리고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아마 일양 그 친구도 무당삼현 어르신들을 움직이느라 진땀을 빼고 있을 겁니다.”
“아직 그들이 움직인다고 결정이 난 게 아니로구나.”
“아닙니다. 아까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분들이 모습을 보여서 무당파가 발칵 뒤집힌 모양입니다.”
“음…….”
매화이로가 서로를 보며 시선을 교환했다.
“예쁜 아이가 있느냐?”
“아, 가주실 겁니까?”
“예쁜 아이가 있냐고 물었다.”
“물론입니다. 사매의 제자 중에 현인이라는 아이가 있습니다.”
“그래. 그 아이로 길안내 시켜라. 가자. 사제.”
말을 안 하는 노도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만의 외출이었다.
* * *
어느새 겨울이 거의 지나가고 봄이 오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늦추위가 남아있었다. 적운상이 옷을 한 번 여미며 상관보연을 봤다.
며칠 동안 쉬지 않고 달려왔는데도 그녀는 피곤한 기색이 전혀 없었다. 이런 여행이 익숙하다는 뜻이었다. 상관도백이 상관보의 후계자로 생각하고 키운 그녀였다. 이 정도는 가뿐했다.
“이제 조금만 가면 남악현이군요. 저도 한동안 안 가서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해요.”
“나도 마찬가지요.”
“어? 저게 뭐야?”
적운상과 상관보연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방인걸이 뭘 봤는지 크게 소리를 질렀다. 두 사람이 그쪽을 보니 앞에 두 명의 노인이 바둑판을 놓고 앉아서 길을 막고 있었다. 생긴 것이 신선과 같고 현기가 느껴져서 감히 말을 붙이기가 꺼려졌다.
적운상은 말없이 말 머리를 돌려서 돌아서 가려고 했다. 그러자 바둑을 두던 삐쩍 마른 노인이 말했다.
“길이 막혔는데 가려고 하는구나.”
적운상이 말고삐를 잡아서 말을 세웠다.
“흘흘. 어딘들 가면 길이지. 굳이 길이 정해져 있더냐?”
그렇게 말하면서 왜소한 체구의 노인이 들고 있던 돌을 바둑판에 내려놓았다.
딱!
“허! 그런 수가 있었나?”
“절묘하지? 이래서 세상사는 모른다는 거다.”
적운상은 두 사람의 대화를 듣다가 무표정하니 다시 말을 몰았다. 그러자 삐쩍 마른 노인이 바둑돌을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딱!
“잠시만 기다리거라. 아이야. 시작한 바둑이라서 끝을 내야 하는구나.”
“저한테 볼일이 있는 겁니까?”
“그렇지. 안 그럼 이런 데 앉아서 바둑을 둘 리가 없지 않으냐?”
“무슨 볼일입니까?”
“어허, 성격 급하긴. 조금 기다리라고 하지 않았더냐! 옳지 찾았다.”
딱!
“헛! 이런…….”
방금 그 한수로 인해 대마가 곤경에 처했다. 왜소한 체구의 노인이 눈을 부릅뜨고 활로를 찾았지만 길이 보이지 않았다.
“허허… 다 이긴 바둑을 졌구나.”
혀를 차며 그리 말하던 왜소한 노인이 적운상을 보며 물었다.
“바둑을 둘 줄 아느냐?”
“기본은 압니다.”
“그럼 네가 한 번 와서 봐라. 내가 이기고자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노인의 말에 적운상이 말에서 내려 그리로 다가갔다. 바둑판의 형세를 보니 왜소한 노인의 흑돌이 백돌을 둘러싸고 있지만 실속은 하나도 없었다. 난전만 치르다가 한수에 판세가 뒤집힌 것이다.
“어떠냐? 이길 방법이 있겠느냐?”
“어떤 바둑이던 훈수는 금지되어 있는 것 아닙니까?”
“이미 진 바둑이다.”
“헐! 그럼 나도 허락을 하마.”
왜소한 노인이 먼저 패배를 인정하자 삐쩍 마른 노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리 두면 될 것 같군요.”
적운상이 흑돌을 들었다. 그리고 아까 삐쩍 마른 노인이 형세를 역전시켰던 백돌 위에 흑돌을 놓고 지그시 눌렀다. 그러자 믿을 수 없게도 백돌이 바둑판을 파고들어가며 흑돌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이런, 그건 정당한 방법이 아니지 않으냐?”
“두 분께서 처음에 미리 합의를 하셨습니까?”
“그건 아니다만 그런 방법이 정상이 아니라는 건 누구나 아는 일 아니냐?”
“바둑을 두는 건 그들이 아니라 두 분입니다. 두 분이 인정을 한다면 남들이 뭐라 하건 신경 쓸 일이 없지 않습니까?”
“그럼 자네는 다 이긴 바둑을 그런 식으로 지게 되었는데 내가 인정을 할 거라 생각하나?”
“모릅니다. 그것 역시 두 분이 해결할 문제지, 제 문제는 아닙니다. 저는 단지 방법을 묻기에 제 나름의 방법을 알려드렸을 뿐입니다.”
“허 참…….”
“하하하하. 멋진 변론이군. 정말 멋져. 내 지금껏 혀에 기름칠 하고 사는 많은 자들을 만나봤지만 너 같은 사람은 처음이다. 어떠냐? 우리와 함께 가는 것이.”
“싫습니다.”
“어딘지 묻지도 않느냐?”
“저는 지금 가고자 하는 곳이 있습니다. 그러니 굳이 물을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이 네게 기회가 될 수도 있다. 평생에 한 번뿐인 그런 기회 말이다.”
“관심 없습니다.”
“그럼 다르게 말해야겠구나. 너는 이대로 가면 죽는다. 오해하지는 말거라. 우리 손에 죽는다는 것이 아니니까. 무당파의 무당삼현과 화산파의 매화이로가 너를 만나기 위해 오고 있는 걸 알고 있느냐?”
노인이 하는 말에 상관보연이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그들에 대한 건 이야기로만 들었지만,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인지는 알고 있었다. 그들에 비하면 그 대단하다는 무당십걸이나 매화검수는 그저 어린애들에 불과했다.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지금 이렇게 알려주는 거다. 너를 손봐주기 위해 작심을 하고 떠났다고 하는구나. 우리와 함께 가면 그들로부터 너를 보호해주마. 그들이 대단하기는 하지만 우리와 함께 있으면 경거망동하지 못할 게다.”
상관보연은 또 한 번 놀랐다. 도대체 저 노인들은 누구일까? 누구이기에 저렇게 호언장담을 하는 것일까?
무당삼현과 매화이로를 누를 수 있는 이들이 누가 있는지 상관보연은 필사적으로 기억을 더듬었다.
“거절하겠습니다.”
“호오… 이유가 뭐냐?”
“이유 없는 선행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제게 원하는 것이 있으니까 도와주려는 것 아닙니까?”
“그렇지. 하지만 네게 해가 될 것은 하나도 없다.”
“그것은 스스로 판단하는 겁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금덩이를 준 사람은 그를 도와줬다고 생각할 겁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강도가 그 사람을 죽이고 금덩이를 가져갈 수도 있는 일입니다.”
“음… 네 말이 틀리지 않구나.”
“말씀이 끝났으면 이만 가보겠습니다.”
“기다려라. 아직 하나 더 남았다.”
적운상이 가려다 말고 그 노인을 봤다. 그러자 노인이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나는 지금껏 칼질을 하는 무인들은 모두 무식한 사람들뿐이라 생각했다. 허나 너는 꽤 마음에 드는구나. 그래서 너를 조금 도와주고 싶구나.”
“괜찮습니다.”
“아니다. 대가 없는 도움이니 신경 쓰지 말거라.”
“들어보겠습니다.”
“허 참… 우리가 도움을 주며 이리 부탁을 하는 날도 다 있군.”
“그러게나 말일세.”
“칠 일! 딱 칠 일 동안 너와 함께 가겠다.”
노인의 말에 적운상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생각할 필요 없다. 그저 노인 둘이 밥이나 좀 얻어먹으려 한다고 생각하거라. 만약 그 안에 무당삼현이나 매화이로가 나타난다면 넌 운이 좋은 거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알겠습니다. 그럼 형산파로 같이 가시죠.”
“그래. 잘 생각했다. 자네는 바둑판 챙기게.”
삐쩍 마른 노인이 허리를 펴며 왜소한 노인에게 말했다. 그러자 그 노인이 방인걸을 봤다. 방이걸은 그 노인이 왜 쳐다보는지 재깍 눈치를 채고 재빨리 뛰어가서 바둑판과 바둑알을 챙겼다.
“자, 이제 가보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