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310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5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310화
310화. 미인도 (1)
금극영은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저런 분위기를 풍기는 사내는 처음이었다. 머릿속에서 위험신호가 울렸다.
처음에 누군가가 천응방에 찾아왔다고 했을 때, 그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천응방의 식솔들이 알아서 돌려보낼 거라 여겼다.
하지만 백수연이 어린 시비를 보내고, 백묘묘까지 움직이자 그냥 넘길 일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금극영은 항상 완벽을 추구했다. 그래서 작은 일도 그냥 넘기는 법이 없었다.
뭔가 찜찜하면 반드시 확인을 했다. 이번에도 그런 이유였다. 그저 얼굴이나 확인하자는 마음에서였다.
부하들에게도 별다른 지시를 하지 않았었다. 부하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든 알아서 잘 대처하도록 훈련을 받았다.
그러나 적운상을 보는 순간 금극영은 뭔가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열 명이 넘는 부하들이 단 일 초식에 모두 쓰러졌다.
일검무적 적운상!
천응방의 일을 진행하면서 그를 염두에 두지 않은 건 아니었다. 백수연과의 관계도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만날 줄은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그대가 일검무적이구려. 반갑소. 나는 금극영이라고 하오.”
“백 누이는 어디 있나?”
“백 누이? 아, 백 소저 말이구려. 하하. 걱정하지 마시오. 우리가 잘 보살피고 있소.”
“그 말이 사실이어야 할 거다. 백 누이에게 손끝 하나라도 댔다면 태어난 걸 후회하게 될 테니까.”
‘무슨…….’
금극영은 속으로 크게 놀랐다. 적운상이 말을 마치는 순간 뜨거운 뭔가가 확 주위로 번져 나왔기 때문이다. 살기였다. 이렇게 광범위하게 살기를 뿜어내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여러모로 적운상은 계속 금극영을 놀래고 있었다. 바꿔 말하면 적운상은 금극영이 예상에서 자꾸 벗어나고 있다는 뜻이었다.
“후후. 지금까지 나를 상대로 그리 오만하고 무례하게 말하는 사람은 당신이 처음이오.”
“관심 없다. 백 누이한테나 안내해.”
“허 참. 내가 백 소저를 인질로 잡고 있다고는 생각해보지 않았소?”
“상관없다. 죽여 버리면 그만이니까.”
“안하무인이로군. 당신은 지금 내게 그럴 입장이 아니라는 걸 모르오?”
금극영이 조금 어이없어하면서 말할 때였다. 갑자기 세상이 빙글 돌았다. 그러더니 머리에 묵직한 충격이 왔다.
뭐가 어떻게 된 일일까?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났단 말인가?
정신을 차린 금극영은 그제야 자신이 땅에 누워 있음을 깨달았다. 적운상이 무극의 영역에 들어가서 그의 다리를 후려차면서 머리를 땅에 처박은 것이다.
“자신이 처한 입장을 모르는 건 너다. 북진마문이라고 했나?”
“이,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아시오? 아니, 당신이야 무사할 테지만 천응방 사람들은…….”
“닥쳐.”
적운상이 금극영의 말을 자르면서 머리를 잡고 있던 손에 힘을 줬다. 금극영은 머리가 빠개질 것 같은 고통이 밀려오자 덜컥 겁이 났다.
“누구 한 명이라도 죽었다간 병신으로 만들어서 죽을 때까지 끌고 다니겠다. 그리고 네놈의 가족들도 똑같이 만들어주마. 북진마문 역시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단순한 협박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이 그런 말을 했다면 금극영은 웃었을 것이다. 그리고 한 번 해보라고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 적운상의 입에서 그 같은 말들이 흘러나오자 정말 그렇게 될까 봐 겁이 났다.
“칼을 들었으면 무공으로 덤벼라. 사람 잡아서 협박할 생각하지 말고. 그런 짓은 뒷골목의 삼류들이나 하는 짓이다.”
적운상은 금극영의 고개를 돌려서 눈을 봤다. 그러자 금극영이 움찔 몸을 떨었다.
“일각이다. 정확히 일각의 시간을 주겠다. 그 안에 천응방을 떠나라. 일각 뒤에도 남아 있는다면 누구를 막론하고 베겠다.”
적운상은 그 말을 끝으로 입을 다물고 금극영을 잡아 누르던 손을 놓았다. 뒤늦게 북진마문의 무사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못 돼도 삼십 명은 되었다.
하나같이 무공이 뛰어났고 두려움을 몰랐다. 그들이 적운상을 향해 덤벼들려고 했다. 그러자 금극영이 다급하게 소리치며 말렸다.
“그만! 멈춰라!”
그들이 멈추자 태룡도를 뽑으려던 적운상이 금극영을 힐끗 보고는 구멍이 휑하니 뚫려 있는 객청으로 돌아갔다.
백묘묘는 다가오는 적운상을 보면서 뭐라 할 말을 잊었다. 거침없는 성격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완전히 예상 밖이었다. 들키지 않고 밖으로 나가서 도움이나 청하면 다행이라고 생각했건만 제대로 일을 저질렀다.
“도대체 어떻게 하려고 그래요? 할아버님하고 아버님, 그리고 언니까지 모두 잡혀 있다고요.”
“괜찮아. 차가 식었군. 가서 따뜻한 차나 한 잔 가져와.”
“적 공자!”
“호칭에 일관성이 없군. 형부라고 부르든지 적 공자라고 부르든지 하나만 해.”
“지금 그게 문제예요? 저들은 북진마문이라고요!”
“알아. 소리 지르지 말고 차나 가져와.”
“하아…… 참 나…….”
도대체 뭘 믿고 저리 여유로운지 알 수가 없었다. 저들이 가족을 해치면 어쩌려고 그런단 말인가?
자신의 가족이 아니라고 그러는 건가?
문득 그런 생각까지 들었지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적운상은 절대로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백묘묘는 일단 적운상이 시키는 대로 차를 가져왔다. 그동안 금극영은 부하들을 데리고 어딘가로 가버렸다.
적운상은 백묘묘가 가져온 차를 마시면서 말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해봐.”
“그들이 북진마문이었군요. 전 그것도 오늘 처음 알았어요.”
백묘묘가 그렇게 말문을 열었다. 북진마문이 천응방에 온 것은 약 두 달 전의 일이었다. 그들은 오자마자 방주인 백태정을 찾아가서 검 한 자루를 녹여서 그 안에 있는 것을 꺼내달라고 했다.
백태정이 금극영이 내미는 검을 보니 보검 중의 보검이었다. 늘씬하게 뻗은 새하얀 검신은 날카로움이 대단했고,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고급스러운 호수와 검병, 그리고 거기에 새겨져 있는 정교한 무늬는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쇠가 좋았다. 은은하게 묵빛을 띠는 것이 만년한철이 분명했다. 백태정은 그걸 들고 잠시 망설이다가 거절을 했다.
그 보검을 녹이려면 백태정 혼자서는 무리였다. 천응방 최고의 장인이자 그의 아버지인 백구환과 함께 해야만 했고, 뒤치다꺼리를 할 장인들도 몇 명 필요했다. 하지만 백구환은 최근 건강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요즘은 소일거리만 하고 절대로 대장간 일은 하지 않았다.
게다가 만년한철을 녹이려면 시일이 오래 걸린다. 적어도 두세 달 동안은 쉬지 않고 밤낮으로 작업을 해야 한다.
그러니 만약 하려고 한다면 미리 주문을 받아놓은 것을 모두 취소하고 당분간은 오로지 그 일에만 매달려야 했다. 그럼 손해가 컸다.
금극영이 어마어마한 금액을 제시했지만 그건 이번 한 번뿐이었다. 북진마문은 한 번 왔다 갈 손님이었지만 미리 주문을 받은 곳은 대부분이 단골들이었다.
그 외에도 백태정은 상대가 북진마문이라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북진마문은 사파세력 중에서는 손꼽히는 곳이었다. 정파로 말하자면 무당파나 소림사와 마찬가지였다.
그런 사파와는 아예 상종을 안 하는 것이 제일이었다. 좋게 어울려도 끝이 안 좋은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검 속에 들어 있는 거라면 굉장히 중요한 것임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다면 그 비싸고 단단한 만년한철로 만든 검 속에 넣었을 리가 없었다.
어쩌면 절세의 무공비급이 그 안에 들어 있을지도 몰랐다. 만약 그렇다면 입막음을 하기 위해 일이 끝난 후, 모두들 죽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백태정은 어린것이 북진마문이라는 배경만 믿고 오만하게 구는 금극영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림인들의 자존심보다 더한 자존심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바로 장인들이었다.
그들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하기 싫은 건 안 한다. 남들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자신이 아니면 아니다. 그래서 몇 달에서 몇 년, 심지어는 몇십 년에 걸쳐서 만든 것조차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냥 부숴버린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나서 이래라 저래라 하니 썩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백태정이 그렇게 거절하자 금극영은 강압적으로 나왔다. 화가 난 백태정은 장인들을 모두 집으로 보내버렸다. 그러면서 자신이 부를 때까지 절대로 오지 말라고 했다.
금극영은 백태정이 그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다. 이런 방식으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자 백묘묘를 인질로 잡았다. 그것도 모자라 형산파에 있는 백수연까지 불러들였다. 멋모르고 온 백수연은 금극영에게 잡혀버렸다.
상황이 그러자 백태정은 어쩔 수 없이 그 보검을 녹여야 했다. 그래서 일을 시작한 것이 한 달 전쯤의 일이었다. 지금도 그는 백구환과 함께 밤낮으로 만년한철로 된 보검을 녹이고 있었다.
그 이야기를 모두 들은 적운상이 미간을 살짝 좁혔다. 그 보검 안에 뭐가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금극영이 쉽게 포기하고 갈 것 같지가 않았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얼추 일각 정도 시간이 지난 것 같았다. 적운상은 마시던 찻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백 누이가 있는 곳으로 안내해.”
“방에 있을 거예요.”
“가자.”
적운상의 말에 백묘묘가 앞장서서 백수연의 방으로 안내를 했다. 가는 동안 북진마문의 무사들이 간혹 보였지만 모두들 무슨 명령을 받았는지 섣불리 움직이지 않고 그냥 서 있기만 했다.
“많군. 몇 명이나 온 거지?”
“백 명 정도 되는 것 같아요. 그중 열 명 정도는 엄청난 고수예요.”
적운상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걸어갔다. 그들 중에 탈인의 경지에 오른 사람은 없을 터, 그 정도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숫자였다.
“언니.”
백묘묘가 백수연을 부르면서 방문을 열었다. 하지만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없어요.”
“금극영이라는 그자가 데려갔겠지.”
“방주님이 작업을 하는 곳은 어디지? 그리로 가자.”
“알았어요.”
백묘묘가 다시 앞장서서 천응방 깊숙한 곳으로 갔다. 그곳은 백구환이 혼자서 쓰는 작업장이었는데, 적운상은 예전에 은서린과 함께 이곳에 한 번 와본 적이 있었다.
그곳에는 넓은 후원에 덩그러니 대장간 하나가 지어져 있었다. 그 주위에는 북진마문에서 온 무사들이 가득했다. 백수연을 잡고 있는 금극영도 보였다.
앞서 가던 백묘묘가 멈춰 섰지만 적운상은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
“여기서 기다려.”
“네.”
적운상은 백수연을 봤다. 백수연도 적운상을 봤다. 그녀는 조금 초췌한 모습이었다.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해서 그런 것 같았다.
적운상은 걸음을 멈추지 않고 태룡도를 뽑아들었다. 그걸 보고 금극영이 백수연의 목에 칼을 댔다.
하지만 그것이 실수였다. 그러지 않았다면 그는 한 팔을 잃지 않았을 것이다.
금극영이 백수연의 목에 칼을 대고 뭔가를 말하려는 순간 그의 팔이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적운상과 금극영의 거리는 삼 장이 넘었다. 그 거리를 순식간에 좁혀서 금극영의 팔을 베었는데도 아무도 적운상의 움직임을 보지 못했다.
금극영의 옆에 있는 열 명의 사내들은 북진마문에서도 알아주는 고수들이었다. 북진마문 최고의 무력단체인 북진단(北眞團)에 속해 있는 자들이었다.
그들도 마찬가지로 적운상의 움직임을 전혀 보지 못했다. 무극의 영역에 들어갔다 나온 적운상의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은 지금 이 자리에 아무도 없었다.
“크아아아아악!”
금극영의 비명소리가 크게 울렸다. 그러자 뒤늦게 주위에 있던 열 명의 북진단원들이 일제히 칼을 뽑아들었다. 그러나 적운상이 더 빨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