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309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4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309화
309화. 천응방에서 (3)
“백 누이는 어디에 있느냐?”
“네?”
“안내해라.”
“하, 하지만…….”
시녀가 말끝을 흐리면서 난처한 기색을 보였다. 적운상은 그런 시녀를 가만히 쳐다보기만 했다. 단지 그렇게 보고만 있는데도 시녀는 안절부절못하면서 울상을 했다.
그녀는 적운상이 무서웠다. 잘생기기는 했지만 풍기는 분위기가 너무 위압적이었다. 간신히 서찰을 건넸는데 백수연에게 안내를 하라니 겁이 났다. 결국 그녀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적운상은 백수연에게 안내하라니까 겁먹은 얼굴로 눈물을 뚝뚝 흘리는 시녀를 보면서 어이가 없었다.
“잠시 이쪽으로 앉아라.”
“네?”
“앉아.”
“네.”
시녀가 후다닥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적운상이 차를 따라서 그녀에게 내밀었다.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그걸 받아서 마셨다. 덕분에 조금 진정되면서 마음이 차분해졌다.
“몇 가지만 물어보자. 잘 대답하면 더 이상 너를 곤란하게 하지 않겠다.”
“네.”
시녀가 용기를 내서 고개를 끄덕였다.
“백 누이가 너를 보냈나?”
“네.”
“백 어르신이 위독하다고 들었다. 정말이냐?”
“네.”
“왜 사람들이 일을 안 하고 있지?”
“저도 몰라요.”
“일을 안 한 지는 얼마나 됐나?”
“음…… 한 달이 조금 넘은 것 같아요.”
“그동안 뭔가 특별한 일은 없었나? 누가 찾아왔었다든가…….”
“아니요. 달리 특별한 일은……아! 그러고 보니 두 달쯤 전에 무서운 사람들이 잔뜩 왔었어요.”
“어디서 온 사람들인지 알아?”
“아니요. 모두들 공자님처럼, 합!”
말을 하던 시녀가 재빨리 손으로 입을 막았다. 적운상처럼 무서웠다는 말을 하려다가 말실수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훗! 신경 쓸 것 없다. 몇 명이나 왔었지?”
“다섯 명이었어요.”
“옷차림이나 생김새라든가 기억나는 것이 있나?”
“자세히는 못 봤는데 한 명은 굉장히 잘생긴 공자님이었어요.”
시녀가 얼굴을 살짝 붉히면서 대답했다.
“그 외에는 없고?”
“네. 먼발치에서 봐서…….”
“알았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묻자. 지금 백 누이와 같이 있는 사람이 누구냐?”
시녀는 우물쭈물하면서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보고 적운상은 대충 지금의 상황이 짐작이 갔다. 장인들이 일을 안 하는 것을 보고 ‘설마’ 했었는데 자신의 생각이 맞았다.
천응방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장인들이 한 달씩이나 쉴 이유가 없었다. 아무리 백구환이 위독하다지만 그들이 그렇게 쉰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자신이 찾아왔는데 백수연이 이렇게 서찰 하나만 달랑 보내서 돌아가라고 하는 것도 이상했다. 정말 그럴 이유가 있다면, 이런 어린 시녀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왔었어야 했다.
이건 완전히 적운상을 무시하는 처사였다. 그런데 그걸 백수연이 직접 시켰다고 하지 않는가?
그렇다는 건 적운상에게 뭔가를 전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적운상은 그것이 뭔지 금방 알아챘다.
지금 천응방에는 누군가가 와 있을 것이다. 그들은 백수연을 비롯한 모두에게 위협이 되고 있을 터. 그래서 백수연은 자신이 그냥 돌아가기를 바라고 있었다. 나가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백수연은 착각하고 있었다. 지금의 적운상은 백수연이 알고 있던 예전의 적운상이 아니었다. 탈인의 경지를 깨달은 이상 적운상의 적수는 천하에서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그걸 모르고 적운상이 무사히 나가서 도움을 청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적운상은 잠시 갈등했다. 자신이 백수연에게 가고자 한다면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서 천응방의 식구들이 다칠지도 몰랐다.
미간을 좁히고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적운상은 자신의 뜻대로 밀고 나가기로 결정을 했다. 그냥 이렇게 돌아갈 수는 없었다.
“가서 백 어르신을 뵙고자 한다고 전해라. 병세가 위독하시다던데 여기까지 와서 그냥 갈 수는 없지 않으냐?”
“……네.”
시녀가 방을 나가고 잠시 후에 백묘묘가 왔다. 그녀는 적운상을 보고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오랜만이에요. 적 공자. 할아버님이 위중하셔서 뵈러 오셨나요?”
그녀는 애써 태연한 척하고 있었지만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게다가 말투도 이상했다. 적운상이 온 건 백구환이 위중해서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백수연 때문이었다.
그걸 알고 있을 텐데도 저리 말하는 것은 백수연이 어린 시녀에게 서찰을 쥐여 보내서 축객령을 내린 것과 같은 이유이리라.
천응방에 있는 자들이 눈치 채기 전에 빨리 나가서 도움을 청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렇소. 먼 길을 왔으니 보고 가야 하지 않겠소? 오자마자 축객령이라니 너무하지 않소?”
“왔었다는 것은 전해드릴 테니까 그냥 돌아가세요.”
“처제.”
“으앗! 누가 처제예요! 처제는! 그 말을 지금 하면 어떻게 해요? 왜 그렇게 눈치가 없어요!”
백묘묘가 놀라서 소리를 지르더니 방문을 열고 고개를 빠끔 내밀어 밖을 살폈다.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 보이지 않을 뿐 그곳에는 사람이 있었다.
“후우…….”
한숨을 쉬며 문을 다시 닫은 백묘묘가 적운상에게 바짝 다가갔다.
“왜 이제야 온 거예요?”
말하는 투를 들어보니 백묘묘는 형산파가 호천마궁과 싸운 일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조금 바빴다.”
“지금 여기는 정체도 모르는 사람들한테 완전히 장악되었어요. 뒷간도 마음대로 못 간다고요.”
“백 누이는?”
“무사해요. 아직까지는.”
“어떻게 된 일인지 상세하게 말해봐.”
“지금은 시간이 없어요. 그들이 아직 적 공자의 정체를 모르고 있을 때 빠져나가야 해요. 나가서 도움을 청해줘요.”
“내가 왔는데 무슨 도움이야?”
“에? 그거 농담이죠? 하하.”
웃으면서 되묻던 백묘묘는 적운상의 말이 농담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맙소사. 당신 혼자 뭘 한다고요? 당신이 강하기는 하지만 혼자서는 무리예요.”
“알았으니까 앉아서 이야기나 해봐.”
“형부!”
소리를 지르던 백묘묘가 재빨리 양손으로 입을 막고 아무도 없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런 백묘묘를 보고 적운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신경 쓸 것 없어.”
“네?”
“저들은 내가 온 걸 이미 알고 있어.”
백묘묘가 무슨 말이냐는 듯이 쳐다봤다. 그녀는 아직까지 저들이 적운상의 정체를 모른다고 여기고 있었다.
“처제가 오는 순간 정체가 드러났어.”
“내, 내가 왜요?”
“내가 그들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내가 이곳에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별다른 의심은 없었어. 아마 정말로 백 어르신의 병환 때문에 온 줄로만 알았겠지. 백 누이가 어린 시녀를 보냈을 때도 마찬가지야. 하지만 난 가지 않았고, 처제가 왔어. 이제는 슬슬 의심이 들겠지. 그래서 저렇게 밖에서 엿듣고 있는 거고.”
“네?”
백묘묘가 놀라서 눈을 크게 뜨는데 적운상이 갑자기 태룡도를 뽑아서 벽을 후려쳤다.
콰아아아아아앙!
“크아아악!”
벽에 휑하니 구멍을 나며 밖에 있던 사내가 피를 쓸리며 나가떨어졌다. 그걸 보고 백묘묘가 뭐라 말이 나오지 않아서 멍하니 있는 동안, 적운상은 문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지붕 위에서 다섯 명의 사내들이 뛰어내렸다. 복도 양쪽에서도 각기 다섯 명씩, 총 열 명이 순식간에 달려왔다. 그들은 경공술이 보통이 아니었다.
적운상은 천천히 정원으로 나갔다. 그들은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며 함부로 덤벼들지 못했다. 적운상이 풍기는 분위기 때문이었다.
기세를 뿜어내는 것 같지는 않은데,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위압감이 느껴졌다. 그들이 주춤거리건 말건 적운상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벽에 붙어서 몰래 이야기를 엿듣다가 피를 철철 흘리며 쓰러져 있는 사내에게 다가가 그의 멱살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일어나.”
“끄으…….”
사내는 정신이 없는지 비틀거리면서 적운상의 손에 딸려서 일어났다.
“누구냐?”
“무슨…….”
“뭐하는 놈인데 여기에 와 있냐고 묻는 거다.”
적운상이 하는 짓을 보고 그를 둘러싸고 있는 열다섯 명의 사내들은 어이가 없었다. 쓰러진 그에게 다가가기에 뭐를 하나 싶었더니 정체를 묻고 있다. 자신들을 완벽하게 무시하면서 말이다.
사내 하나가 차고 있던 검을 천천히 뽑았다. 그러자 적운상이 고개를 돌려 그를 봤다. 순간 사내는 검을 모두 뽑으면 죽을 거란 생각에 자신도 모르게 멈칫했다. 검은 반밖에 뽑히지 않은 상태였다.
“뽑으면 죽는다. 네놈뿐만이 아니라 저기 있는 놈들 전부 죽는다.”
꿀꺽!
침 넘어가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적운상의 말에는 힘이 있었다. 정말 그렇게 될 것만 같았다. 이미 기세에서 눌려버린 그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는 반쯤 검을 뽑은 상태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계속 그대로 있어야 했다.
그러자 적운상이 그에게서 시선을 떼고 잡고 있는 사내를 봤다.
“말해. 너 누구냐? 왜 이곳에 왔어?”
“미친…….”
사내는 지금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랬으니 적운상에게 욕을 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말을 모두 내뱉기도 전에 머리에서 피가 확 솟았다. 적운상이 태룡도의 자루로 머리를 찍어버린 것이다.
“커헉!”
“다시 묻지. 너 누구냐?”
“끄으…….”
적운상은 다시 한 번 그의 머리를 찍었다. 그러자 그의 눈이 뒤집어지면서 거품을 물고 기절했다.
“쳇!”
그제야 적운상은 잡고 있던 그의 멱살을 놓았다. 그걸 보고 사내들은 이제 적운상이 자신들에게 덤벼들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적운상은 잔인하게도 정신을 잃은 그 사내의 옆구리를 힘껏 걷어찼다.
우득!
뼈가 부러지는 섬뜩한 소리가 났다. 적운상이 다시 다리를 들었다. 이번에는 팔이었다.
콰득!
그는 이미 눈이 뒤집혀서 정신을 잃었기 때문에 갈비뼈와 손목뼈가 부러지는데도 비명소리조차 지르지 못했다. 어떻게 보면 차라리 그게 나았다. 제정신이었다면 그 고통에 미쳐버렸을지도 몰랐다.
“이, 이 자식!”
참다못한 한 사내가 검을 뽑았다. 그 순간 적운상이 그의 눈앞에 나타났다. 뽑히던 검은 완전히 뽑히지 않고 다시 들어갔다. 적운상이 검을 뽑던 그의 손목을 잡아 눌렀기 때문이다.
쾅!
“커억!”
그의 머리에서도 피가 솟았다. 다시 한 번 적운상이 태룡도의 자루로 그의 머리를 찍자 기세가 눌려 굳어 있던 자들이 일제히 검을 뽑아들었다.
“쳐라!”
“안 돼! 멈춰!”
열네 명의 사내들이 적운상을 향해 덤벼든 것과 누군가의 외침에 들려온 것은 거의 동시였다.
후우우우웅! 파가가가가가각!
횡으로 휘두른 일격에 네 명이 깔끔하게 베어져 나갔다. 이어서 한 걸음을 내디디면서 밑에서 위로 그어 올린 이격에 세 명이 피를 뿌렸고, 그 자리에서 몸을 회전시키며 휘두른 삼격에 다섯 명이 쓰러졌다.
딱 세 번 태룡도를 휘둘렀고, 그것은 하나의 초식일 뿐이었다. 그 일 초식에 열두 명이 쓰러졌다. 멀쩡히 서 있는 건 끝내 용기를 내지 못해서 차마 덤벼들지 못하고 검만 뽑아든 채 어정쩡하니 서 있던 두 명의 사내들뿐이었다.
“이……일검무적…….”
누가 있어 저 일 초식을 막아내겠는가?
덤벼들던 사내들 중 여섯 명은 무기까지 함께 뭉텅이로 잘려나갔다. 정말 직접 보지 않았다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완벽한 베기였다.
“멈추시오!”
그제야 아까 소리를 질렀던 사내가 다시 소리를 질렀다. 그를 보고 살아남은 두 명이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그가 누군지 알기 때문이었다.
마뇌총관(魔腦總管) 금극영.
총명한 이들이 모여 있는 제갈세가에서도 맞서기를 꺼려한다는 사람으로 북진마문의 총관이었다. 북진마문에서 행하는 대소사를 모두 관리하기 때문에 오히려 문주인 동중성보다 더 알려져 있었다.
적운상은 무표정하니 금극영을 바라봤다. 그러자 달려오던 금극영이 멈칫하며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그는 방금 본 적운상의 거리 밖에 서 있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의도한 바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