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306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0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306화
306화. 우연찮은 만남 (3)
사도공은 자신을 앞에 두고도 백리난수가 옆에 있는 적운상을 보자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무공이 좀 뛰어난 것만 믿고 저리 굴다니 아직 어리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워낙에 예쁘니 뭘 해도 마음에 들었다.
“너는 뭐냐? 죽고 싶지 않으면 썩 꺼져라.”
사도공이 적운상을 향해 위협적으로 말했다. 하지만 적운상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오랜만이구나.”
“네…….”
적운상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던 백리난수가 고개를 푹 숙였다. 더 이상 적운상과 시선을 맞출 수가 없었다. 그녀는 죄인이었다. 적운상이 모두 용서를 해주었다지만 스스로는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은 백리난수의 마음을 옥죄는 멍에였다. 평생을 가도 벗겨낼 수 없는 그런 멍에 말이다.
사도공은 적운상이 자신은 본체만체하며 백리난수와 이야기를 나누자 화가 났다.
“감히!”
사도공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꺼지는가 싶더니 어느새 적운상의 옆에 나타났다. 그리고 아까 백리난수의 어깨에 구멍을 낸 용아수를 펼쳤다. 노리는 곳은 적운상의 목이었다.
하지만 그의 손이 미처 적운상의 목에 닿기도 전에 매서운 칼바람 소리가 일었다. 그대로 사도공이 계속 팔을 뻗으면, 적운상의 목을 잡기도 전에 허리가 잘려나가고 만다.
사도공은 그대로 공중으로 뛰어올라 적운상의 칼을 피하면서 발을 두 번 내질렀다. 적운상은 그 자리에서 몸을 틀어 사도공의 발차기를 피한 후에 위에서 아래로 힘껏 태룡도를 휘둘렀다.
채앵!
사도공이 양팔을 겹쳐서 적운상이 내려치는 태룡도를 막아냈다. 그러자 쇳소리가 나면서 사도공의 몸이 뒤로 확 튕겨져 나갔다.
사도공은 객잔의 입구까지 날아가서야 중심을 잡고 바로 섰다. 그러고는 놀란 눈으로 적운상을 봤다.
양팔에 차고 있는 팔찌가 없었더라면 그대로 몸이 두 조각 났을 것이다. 적운상은 강했다. 사도공의 등줄기로 찌릿한 뭔가가 느껴질 정도였다.
그것은 호적수를 만났다는 흥분과 자칫 잘못하다간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었다.
“이름이 뭐냐?”
동호영이나 정안문에게는 이름조차 묻지 않았었다. 그럴 가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저놈은 달랐다.
“적운상이오.”
“일검무적!”
사도공이 자신도 모르게 나직이 적운상의 별호를 뱉어냈다. 그걸 듣고 놀란 사람은 설요원뿐만이 아니었다. 용보아는 물론이고 부상을 입고 마혈이 짚여 있던 동호영과 정안문도 의외라는 듯이 적운상을 봤다.
고개가 돌아가지 않아 최대한 눈동자만 굴려야 했지만 다행히 적운상의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그제야 세 사람은 아까 적운상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때 왜 백리난수가 그렇게 긍정적이었는지 이해가 갔다.
“네놈에 대한 소문은 익히 들었다. 하지만 세상 넓은 줄 모르고 날뛰지 마라.”
“쓸데없는 소리 말고 조용히 꺼지든가 아니면 빨리 덤벼라. 목 위에 있는 물건 간수 잘하고.”
적운상이 하는 말에 사도공의 눈썹이 꿈틀했다. 어린 나이에 이리 도발적으로 나오는 놈은 처음이었다. 다른 때 같았으면 흥분해서 먼저 달려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까 잠시 겨뤄본 적운상의 무공은 결코 자신의 아래가 아니었다. 흥분하면 자신만 손해였다.
사도공은 침착하니 지금껏 뽑지 않고 있던 검을 뽑았다. 그걸 보고 설요원이 눈을 빛냈다.
사도공의 어머니는 안휘제일세가라 불리는 남궁세가 사람이었다. 아름답고 고고했던 그녀는 세상물정을 너무 몰랐다. 겉멋만 부리는 사도공의 아버지에게 첫눈에 반해 한밤중에 남궁세가를 도망쳐나왔다.
사도공의 아버지도 그때만큼은 진심이었기에 감히 남궁세가를 상대로 같이 도망을 쳤었다. 몇 년간은 잘 숨어서 살았다. 그 와중에 사도공이 태어났다.
하지만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아버지가 다시 여자를 밝히기 시작했다. 그러다 결국 죽었다. 남궁세가에서 찾아온 사람이 일언반구도 없이 죽여 버렸다.
그리고 어머니 역시 죽었다. 남궁세가에서 치부를 남겨놓지 않기 위해 과감히 손을 쓴 것이다.
혼자 남은 사도공은 그때부터 갖은 고생을 했다. 만약 어머니한테서 무공을 배우지 않았더라면 그 고생을 견디지 못하고 죽었을지도 몰랐다.
사도공의 어머니는 남궁세가 출신이지만 무공이 그리 뛰어나지는 않았다. 남궁세가의 창궁무애검법(蒼穹無涯劍法)이나 천풍검법(天風劍法) 같은 상승무공은 배우지도 못했다. 남궁세가 사람이라면 누구나 익히는 대연검법(大衍劍法)과 대연심법(大衍心法)뿐이었다.
하지만 딱 하나 상승의 검법을 알고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고혼일검(孤魂一劍)이었다.
오로지 일 초식만으로 되어 있는 검법.
그래서 검법이라고 하기에도 뭐했지만 그 위력만큼은 상당했다. 일 초식이기 때문에 당연히 일격필살(一擊必殺)의 극의를 듬뿍 담고 있을 수밖에 없었고, 사도공은 그걸 완전히 터득한 상태였다.
사도공이 검을 뽑아들고 고혼일검을 쓰려는 자세를 취하자 적운상이 뒤로 훌쩍 물러났다. 그걸 보고 사도공이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고혼일검을 쓰기도 전에 거리를 알아채고 저렇게 물러나는 상대는 처음이었다. 사도공이 앞에 있는 탁자를 밟고 앞으로 날아올랐다.
그러자 적운상이 태룡도로 옆에 있는 탁자를 걸어서 사도공에게 던졌다.
콰아아아아앙!
사도공이 내지른 장을 맞고 탁자가 공중에서 박살이 났다. 그 사이에 적운상은 기둥 뒤로 이동했다. 사도공이 고혼일검을 펼치려면 기둥을 돌아서 적운상에게 다가가야 했다.
‘놈! 혹시 고혼일검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건가?’
그렇다손 치더라도 이런 식으로 대처하는 사람을 처음이었다.
“언제까지 도망만 다닐 셈이냐?”
“글쎄? 나도 모르겠는걸.”
적운상이 계속 피해 다닐 것 같아지자 사도공은 힐끗 백리난수를 봤다. 그녀를 인질로 삼으려는 것이다. 적운상이 사도공의 눈길에서 그걸 파악하고 살기가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관두는 게 좋을 거다.”
사도공은 흠칫하며 백리난수를 향해 움직이려다가 말았다. 적운상의 기세 때문이었다. 지금 움직이면 그대로 목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무서운 눈으로 적운상을 쏘아보던 사도공이 갑자기 물었다.
“심검의 경지에 올랐느냐?”
“이미 벗어났지.”
순간 사도공이 눈을 부릅떴다. 심검의 경지 그 이상이 있단 말인가?
지금 사도공은 심검의 경지를 눈앞에 누고 있었다. 꼭 경지가 높다고 해서 강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경지에 오른 사람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하고는 확실한 차이가 있었다.
그건 검로(劒路)를 하나밖에 모르는 사람하고 열 개나 아는 사람하고의 차이와 마찬가지였다. 검로를 하나밖에 모른다고 해서 꼭 지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열 개의 검로를 아는 사람이 훨씬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무상지검의 경지가 하나의 검로를 아는 것이고, 심검의 경지가 열 개의 검로를 아는 것이라면, 적운상이 체득한 탈인의 경지는 검을 휘두르는 것이 검로가 되는 것이었다. 수백, 수천 개의 검로를 알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심검의 경지를 벗어났다고? 더 높은 경지가 있단 말이냐?”
“시험해 보고 싶다면 해도 좋아. 대신에 대가는 아주 비싸.”
사도공은 갈등했다. 심검 이상의 경지를 보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지만 그걸 보는 순간 죽는다. 적운상의 눈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자신이 보고자 하면 죽일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고 이대로 물러나면 언제 그런 경지를 보겠는가?
잠시 갈등을 하던 사도공은 검을 거뒀다. 새로운 경지를 보기보다는 목숨을 더 이어가기로 결정한 것이다.
“오늘 일은 잊지 않겠다.”
사도공이 싸늘하니 말했다. 그러자 적운상이 피식 웃었다.
“잊어. 그게 오래 사는 길이야. 다음에도 내가 베지 않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마라. 오늘은 그저 사람을 죽이고 싶지 않은 변덕일 뿐이니까.”
자존심이 상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사도공은 이곳에서 죽을 생각이 없었다. 잠시 적운상을 노려보다가 객잔을 나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그러자 설요원이 옆으로 다가왔다.
“그냥 가는 건가요?”
“죽고 싶으면 계속 남아 있으시오.”
기분이 좋지 않아 차가운 말이 튀어나갔다. 사도공은 그 말만 남겨놓고 그대로 객잔을 나갔다. 설요원은 의미 있는 눈빛으로 적운상을 한 번 보고는 사도공의 뒤를 따라 가버렸다.
“여전히…… 강하군요.”
“어깨를 좀 보자.”
적운상이 백리난수를 의자에 앉히고 사도공에게 당한 어깨의 상처를 살피려고 했다. 그러자 백리난수가 몸을 움츠렸다.
“그자가 독공을 익혔다면 어깨를 영영 못 쓸 수도 있어.”
“왜 저한테 신경 쓰는 거죠? 그냥 모른 척해주세요.”
“내 눈에 안 뜨이면 그렇게 하지.”
적운상이 냉정하게 말하면서 어깨의 옷을 찢었다. 그러자 백리난수의 뽀얀 살결이 드러났고, 거기에는 다섯 개의 구멍이 뚫려 있었다. 상당히 고통스러웠을 텐데 백리난수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었다.
적운상이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서 어깨를 잡았다. 그러자 백리난수가 움찔하고 한 번 몸을 떨었다. 적운상은 이리저리 살피며 독기운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 금창약을 꺼내서 발랐다.
“다행히 독공을 익히지는 않았어. 뼈도 상하지 않았고. 한동안은 이쪽 어깨는 안 쓰는 게 좋겠다. 흉터가…….”
남을 거라고 이야기하려던 적운상은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그녀의 어깨 뒤쪽으로 흉터가 보였기 때문이다. 적운상은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옷을 내려서 등을 확인했다.
백리난수가 놀라서 옷을 다시 끌어올리려고 하자 적운상이 강하게 그녀의 손을 잡아서 제지했다. 백리난수는 등은 물론이고 팔에도 상처가 많았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상처들이었다.
“누가 이런 거냐?”
“왜요? 복수라도 해주려고요? 호호. 그럴 필요 없어요. 모두 내가 죽여 버렸으니까.”
자조적으로 말하는 백리난수를 보면서 적운상은 말없이 옷을 끌어올려줬다. 그리고 품에서 천을 꺼내 어깨의 상처를 감았다.
“가까운 의원에 가자.”
“됐어요. 이 정도 상처는 그냥 놔두면 금방 나아요.”
“고집부리지 마.”
“나한테 상관하지 마세요.”
백리난수가 적운상의 손을 뿌리치고는 동호영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는 쓰러진 상태에서 마혈이 짚여 있어서 꼴이 엉망이었다.
백리난수는 잠시 살펴보다가 그의 마혈을 풀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의 내공으로는 풀 수가 없었다. 옆에 있는 용보아가 지금까지 그냥 서 있기만 한 것도 그래서였다.
어쩔 수 없이 백리난수는 적운상에게 부탁을 했다.
“이 사람의 혈도를 풀어주세요.”
적운상은 말없이 동호영과 정안문의 혈도를 풀어줬다. 그러자 두 사람이 비틀거리면서 일어나 포권을 취했다.
“도움을 줘서 고맙소.”
“은혜는 잊지 않겠소.”
“난수 때문에 도와준 것이니 신경 쓸 것 없소.”
적운상이 하는 말에 동호영은 백리난수와 무슨 관계냐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 대답을 들을 용기가 없어서 차마 묻지 못했다.
“움직일 수 있겠어요?”
“괜찮소. 움직일 만하오.”
“그럼 가요.”
백리난수가 동호영을 부축하면서 잡아끌었다. 그러자 적운상이 그녀의 팔을 잡았다.
“먼저 의원으로 가서 치료부터 하자.”
“더 이상 저한테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아까 말했지. 눈에 뜨이지 않았다면 그랬을 거라고.”
적운상과 백리난수의 시선이 부딪쳤다. 백리난수는 적운상이 이대로 물러나지 않을 거란 것을 알았다. 겨우 마음을 정리하고 이제 잊을 만해졌는데 왜 하필 여기에서 만났는지, 정말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어차피 이들도 치료를 해야 한다.”
“하아…… 알았어요. 그럴게요. 치료만 받으면 되죠?”
“그래.”
적운상은 객잔 주인에게 은자 두 개를 던져주고는 그들과 함께 객잔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