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305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63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305화
305화. 우연찮은 만남 (2)
그는 사람 목숨을 가볍게 여겨 기분에 따라 죽이는 자였다. 강서에서 주로 활동을 하는데 하는 짓이 너무나 악랄해서 무림공적으로 찍힌 지 오래이건만, 무공이 대단해서 거대문파에서도 쉽게 건드리지 못했다.
“왜 그래요?”
“내 생각이 맞는다면 저자는 흉신악살(凶神惡殺)이라 불리는 사도공이오.”
사내의 말에 같이 앉아 있던 세 사람이 깜짝 놀라며 객잔의 입구를 보려고 했다. 그러자 사내가 급히 그들을 말렸다.
“그만! 그냥 모른 척하시오. 자칫 시비가 일면 감당하기가 힘드오.”
“강서에서 활동하는 자가 이곳까지는 무슨 일로 왔을까요?”
“쉿! 목소리를 낮추어라.”
그 말을 끝으로 그들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다고 사도공의 눈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러기에는 여인들의 미색이 너무나 뛰어났다.
사도공은 점소이의 안내로 그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았다. 하지만 시선을 여인들에게서 떼지 않았다. 사도공의 나이는 이미 환갑이 넘었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오십대 중반으로 보였다. 그 나이에도 여자를 밝히고 정력도 좋아서 하룻밤에 두 명이나 끼고 잘 정도였다.
그런 사도공이다 보니 흔하게 볼 수 없는 미인을 보자 마음이 동했다. 하지만 오늘은 중요한 약속이 있었다. 이곳에서 누군가를 만나기로 한 것이다.
그때 마침 만나기로 한 사람이 객잔 안으로 들어왔다. 붉은 경장을 입은 사십대 후반의 여인이었는데 몸에 착 달라붙는 옷과 매혹적인 생김새 때문에 상당히 요염해 보였다.
“저 여인은 독심혈화(毒心血花) 설요원이군. 아무래도 빨리 이곳을 나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사내가 여자를 보더니 놀란 눈으로 목소리를 낮춰서 모두에게 말했다. 독심혈화라 불리는 설요원은 남자들을 고문하다가 죽이기로 유명했다. 무공도 사도공보다 더 강했으면 강했지, 결코 떨어지지 않았다.
“지금 나가요.”
“그러자.”
네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는데 사도공의 목소리가 조용히 들려왔다.
“어딜 가려는 거냐?”
순간 네 사람이 자리에서 엉덩이를 떼다 말고 멈칫했다. 그리고 사도공이 앉아 있는 곳을 봤다. 사도공의 눈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주위 사람들은 전혀 느끼지 못하고 그들에게만 느껴지는 살기였다. 그만큼 사도공은 자신의 의지대로 기를 다룰 수가 있었다.
“명성은 익히 들었습니다. 저는 북진마문(北辰魔門)의 동호영이라고 합니다.”
사내는 먼저 자신의 사문을 밝혔다. 북진마문은 사파 중에서는 일, 이 위를 다툴 정도로 세력이 강한 곳이었다. 드러나지 않은 문파로는 호천마궁이 제일이었지만 드러난 곳으로는 북진마문이 제일이었다.
자신이 그런 북진마문 사람이라는 것을 알면 사도공이 함부로 건드리지 못할 것이라 여겨서 먼저 선수를 친 것이다.
“흥. 동 늙은이의 자식 놈이었더냐?”
“아버님께서 이야기하는 것을 몇 번 들었었습니다.”
“웃기는 소리! 동 늙은이와는 일면식도 없거늘, 나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고?”
“사해가 동도라고 하지 않습니까? 아버님께서 말하기를 사 선배님은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할 수 있을 정도로 무공이 강하니 이미 일가를 이루었다라고 했었습니다.”
“흥!”
사도공은 동호영이 슬쩍 띄워주기 위해 그러는 것을 알면서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적당한 칭찬은 누구를 막론하고 듣기에 좋은 법이었다.
“어린것이 제법 아부를 할 줄 아는구나.”
설요원이 동호영을 관심 있게 보면서 한 마디 던졌다. 그러고는 사도공이 앉아 있는 맞은편에 다리를 꼬고 앉자 늘씬한 다리가 슬쩍 드러났다. 그걸 보고 주위에 있던 사내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사도공이 여자를 밝히듯이 그녀는 남자를 밝혔다. 특히 동호영처럼 젊고 잘생긴 남자를 좋아했다.
“보기에 괜찮지 않소?”
“그런 것 같군요.”
“바쁘지 않은 것 같으니 이리로 오너라.”
“아닙니다. 감히 폐 끼치기가 두렵군요. 후배들은 그냥 이대로 물러갈까 합니다.”
“네가 동 늙은이를 믿고 그러나 보구나. 동 늙은이의 얼굴을 봐서 너를 죽이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손을 아예 안 댈 거라는 생각은 말아라.”
“호호. 저 아이는 이미 제가 점찍었어요.”
“클클. 그래서 이리 부르는 것 아니오? 어서 오지 않고 뭐하느냐?”
사도공의 협박에도 동호영은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자신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이 없었지만, 같이 있는 여인만은 지키고 싶었다.
동호영이 망설이고 있자 같이 있던 사내가 사도공과 설요원을 힐끗 보면서 말했다.
“동 형. 차라리 싸웁시다. 우리 두 사람이 죽기 살기로 덤비면 백리 소저와 용 소저가 도망갈 수 있는 시간은 벌 수가 있을 것이오.”
그의 말에 동호영이 잠시 망설이는 기색을 보였다. 동호영과 함께 있는 사내는 사문구룡회(死門九龍會)의 부회주인 정운경의 아들이었다.
이름은 정안문이었고, 젊지만 나이에 비해 무공이 뛰어났다. 하지만 아버지의 힘을 믿고 약간 오만한 구석이 있었다.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살아서 강호의 경험도 그리 많지 않았다.
만약 그가 조금만 더 상황판단을 정확히 할 줄 알았더라면 감히 사도공을 상대로 싸우자는 말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사도공의 진정한 무서움을 모르고 있었다.
그럼에도 동호영이 그의 말에 망설인 것은 눈앞에 있는 여인 때문이었다. 그녀와는 알게 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우연찮은 만남이었지만 동호영에게는 평생의 가치관을 충분히 바꿀 만큼 의미가 있었다.
여자라면 그저 성적욕구를 푸는 정도로만 생각하며 가볍게 여기던 동호영이었건만 그녀를 만난 후로는 그 생각이 완전히 바뀐 것이다.
지금만 해도 그가 여자 때문에 목숨을 버릴 생각까지 하고 있다면 예전의 그를 아는 사람들은 크게 놀라거나 농담이라고 여길 일이었다.
“백리 소저와 용 소저는 틈을 봐서 도망가시오. 정 형과 함께 내가 시간을 끌어 보겠소. 나중에 장사에서 다시 만납시다.”
동호영이 결단을 내리며 비장한 어투로 말했다. 그러자 용 소저라고 불린 용보아가 불안한 얼굴로 옆에 있는 여인의 옷깃을 잡았다.
“그렇게 해요. 백리 언니.”
“그럴 수는 없어. 나도 돕겠어요.”
“안 돼요. 나와 정 형이 어떻게든 할 테니까 어서 가시오.”
“맞소. 백리 소저. 저들은 우리를 함부로 죽일 수 없으니 안심하고 가시오.”
네 사람이 그렇게 목소리를 낮추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사도공의 비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클클클. 가소로운 것들. 너희들이 내 손을 벗어날 수 있을 거라 여기느냐? 이미 늦었다.”
말을 마치는 순간 사도공이 그들에게 몸을 날렸다. 그러자 동호영과 정안문이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다급하게 뽑아들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이 채 칼을 뽑기도 전에 어느새 사도공은 바로 앞까지 와 있었다.
그때 놀랍게도 그들과 같이 있던 백리 소저라 불리는 여인이 앞으로 튀어나가면서 사도공을 향해 양팔을 휘둘렀다.
쉬이이이익!
“헛!”
사도공은 동호영과 정안문은 경계를 했지만 그 여인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었다. 동호영과 정안문이 무조건 그녀를 내보내려는 것으로 봐서 무공이 약할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동호영이나 정안문보다 그녀가 먼저 반응해 오자 크게 놀랐다.
사각!
사도공이 피한다고 피했지만 그만 소맷자락이 베이고 말았다. 그제야 사도공은 그녀의 손에 들린 무기를 보았다. 반달 모양의 반월도였다.
그녀는 그걸 양손에 들고 크게 돌리면서 재차 공격을 해왔다.
“어딜!”
처음에야 방심을 했다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사도공은 그녀의 팔을 발로 차올리면서 몸을 한 바퀴 빙글 돌렸다. 그리고 다른 쪽 손에 있던 반월도를 팔로 쳐 내렸다. 이어서 손가락을 구부려서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그 모든 동작이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사도공의 무공은 용아수(龍牙手)라는 금나법이었다. 그의 손은 강철보다도 더 단단하게 단련이 되어 있어서 나무에 손을 박아 넣어도 마치 솜에 쑤셔 넣는 것처럼 쉽게 뚫고 들어갔다.
지금도 그의 다섯 개의 손가락은 여인의 어깨를 거침없이 파고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손가락이 완전히 박히기도 전에 그는 뒤로 훌쩍 물러나야만 했다.
여인이 잡힌 어깨를 버릴 생각을 하며 반월도로 그의 목을 베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살을 내주고 뼈를 부수는 수법이었다. 누구나 아는 수법이었지만 그걸 실행하려면 웬만한 실전경험과 독한 마음이 없으면 흉내도 낼 수 없었다.
당하는 순간 극심한 고통을 참아내면서 상대를 공격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고통이 오는 순간 동작이 주춤거리고 그러면 반격은커녕 그대로 죽고 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여인은 정말 어깨 하나가 망가져도 사도공을 죽일 기세였다. 그런 기세였기에 사도공이 물러난 것이다.
“제법!”
사도공은 여인이 생각보다 강하자 더욱이 마음에 들었다. 그냥 꺾어지는 꽃보다는 이렇게 가시가 있는 꽃이 더욱이 꺾는 맛이 있는 법이었다.
“물러나시오!”
뒤늦게 동호영과 정안문이 칼을 뽑아들고 사도공에게 덤벼들었다.
“하압!”
쉬쉬쉬쉬쉬쉭!
동호영과 정안문이 휘두르는 칼이 사도공의 목을 노리고 어지럽게 날아들었다. 그러자 사도공이 가벼운 몸놀림으로 이리저리 피하면서 반격을 가했다.
동호영과 정안문의 무공이 뛰어나기는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 나이 대를 기준으로 했을 때였다. 사도공에 비하면 몇 단계나 하수였다.
그래서 사도공은 그들이 휘두르는 칼 사이를 누비며 발로 다리를 툭툭 찼다. 그때마다 동호영과 정안문의 무릎이 풀썩풀썩 꺾였다.
두 사람 다 사도공이 자신들을 놀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실력 차이가 너무 나니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하앗!”
그때 백리 소저라고 불린 여인이 공중으로 몸을 날려 두 개의 반월도를 사도공에게 던졌다. 그러고는 천장을 발로 차고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사도공은 동호영과 정안문을 상대하다가 갑자기 무서운 기세로 날아오는 두 개의 반월도를 보고 다급하게 몸을 틀어서 피했다. 그러자 뒤이어 백리 소저라고 불린 여인이 날아오며 쌍장을 쭉 뻗어냈다.
“타핫!”
“합!”
퍼어어어어어엉!
두 사람의 손바닥이 맞부딪치자 여인이 뒤로 확 튕겨져 천장에 등을 부딪쳤다. 사도공은 밑으로 푹 꺼지면서 발목까지 바닥에 박혔다.
생각보다 강한 장력에 사도공은 또 한 번 놀랐다. 저 정도의 내공이라면 자신과 그리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이제 스무 살이나 되었을까 싶은 여인이 어찌 그런 대단한 내공을 가지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도공은 양쪽에서 칼을 휘둘러오는 동호영과 정안문의 팔을 잡아서 비틀고, 살짝 뛰어올라 양발로 그들의 등을 내려찍었다. 그러자 두 사람이 마치 개구리처럼 바닥에 철퍼덕 뻗어버렸다.
이어서 사도공은 그들의 마혈을 짚었다. 그리고 발로 옆구리를 차버리자 두 사람의 몸이 탁자와 의자를 마구 밀어젖히면서 기둥에 가서 부딪쳤다.
쿵!
“커헉!”
“흥! 죽이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까 말했듯이 무사하지는 못할 것이다.”
사도공이 코웃음을 치면서 말하고는 여인을 봤다. 객잔 안에 있던 사람들은 싸움이 시작되자 모두들 몸을 사리며 우르르 밖으로 도망쳐버렸다. 그래서 지금 객잔 안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오로지 그들밖에 없었다.
사도공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한쪽 탁자에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는 사람이 있었다. 적운상이었다.
사도공이 여인을 보고 있듯이 적운상도 여인을 보고 있었다. 여인은 울렁거리는 속을 진정시키며 사도공을 보다가 옆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그쪽을 힐끔 봤다. 그러고는 놀라서 눈을 커다랗게 떴다.
“저…… 적 오라버니…….”
그녀의 입에서 나지막하게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그녀는 예전에 백수연과 함께 적운상을 따라다녔던 백리난수였다. 백리세가를 재건하기 위해서 모질게 마음먹고 구혁상의 묘를 파헤쳤던 그녀였다. 그리고 적운상을 속이며 거기서 가져온 성화신공을 익혔었다.
그녀는 소림사에서 적운상을 만난 이후로 많은 갈등과 후회 속에 거의 삶을 포기하다시피 하며 지금까지 지내왔었다. 이미 그녀는 백리세가의 재건 같은 건 포기한 지 오래였다.
무공이 아무리 뛰어나도 여자이고, 혼자의 힘으로는 무리라는 것을 경험한 것이다. 나름 노력을 했건만 기껏 장원을 하나 유지하는 것이 다였다.
동호영이나 정안문을 만난 것이 그때쯤이었다. 두 사람은 사파이기는 했지만 백리난수를 극진하게 대했다. 동호영이 자신을 마음에 두고 있어서 그렇다는 것을 알았지만 굳이 신경 쓰지 않았다.
뭐가 어떻게 되건 상관이 없다고 여겼다. 아까 사도공과 싸울 때 어깨를 내주면서 그의 목을 베는 독한 수법을 거침없이 쓸 수 있었던 것도 그래서였다.
그런데, 적운상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