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304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23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304화
304화. 우연찮은 만남 (1)
“그게 아니야! 좀 더 힘 있게 팍팍 질러야지!”
이른 새벽, 적운상의 목소리가 연무장에 크게 울렸다. 그 앞에는 오십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풍뢰십삼식을 펼치고 있었다.
원래는 초사영이 사제들을 가르쳤었지만 이삼 일 정도 형산파를 떠나 일처리를 하러 가는 바람에 적운상이 가르치게 된 것이다. 그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형산파의 제자가 아닌데도 대거 참여를 했다.
적운상의 실력이야 이미 어느 정도인지 모르는 사람이 없었고, 사람을 가리면서 가리킬 성격도 아닌지라 우르르 몰려든 것이다.
하지만 모두들 크게 후회를 하는 중이었다. 적운상은 무서웠다. 가르치는 방식이 결코 부드럽지 않았다.
벌써 한 시진째 똑같은 초식만 죽어라고 반복 연습시키고 있었는데 눈이 얼마나 날카로운지 조금만 실수를 해도 금방 잡아냈다. 게다가 그렇게 걸리면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몸이 움찔할 정도로 악을 써대며 금방이라도 후려칠 것 같은 기세를 뿜어냈다. 그러니 모두들 몸이 힘든 건 둘째치고라도 정신적으로 너무나 피로했다. 그런데도 바짝 집중을 해야 하니 정말 죽을 맛이었다.
중간에 빠지려고 해도 눈치가 보여서 그럴 수가 없었다.
“거기! 똑바로 못해! 뒷다리가 덜 틀어졌잖아! 장동오! 누가 시선 돌리라고 했어!”
“네, 네!”
잠시 지켜보고 있던 적운상이 다시 소리를 질렀다.
“그게 아니야! 겨우 한 시진 움직이고 왜들 그래?”
답답한 마음에 적운상은 태룡도를 뽑아들고 그들이 연습하는 초식을 펼쳤다.
후우우우웅!
세참 바람이 일며 군더더기 없는, 완벽한 초식이 펼쳐졌다.
“이렇게 해야 할 거 아냐?”
누가 그걸 모르나?
하고 싶어도 안 되는 걸 어쩌란 말인가?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전혀 모르는지 적운상은 다시 윽박을 질러댔다.
“디디는 다리는 확실하게! 허리는 힘을 받아서 틀고! 칼은 날카롭게! 정신 똑바로 차리고 해야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악을 써대는 적운상과 죽을상을 하고 수련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던 황보인영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도 다른 사람들이 저 무리에 끼어들 때 마음이 동했었다. 하지만 봉황대의 대장이고, 황보세가의 무공이 더 뛰어나다는 믿음으로 간신히 발을 잡아 묶었다.
그게 그렇게 다행일 수가 없었다.
“정말 사람 잡네요. 안 하기를 잘했어요.”
옆에 앉아 있는 서서희가 웃으면서 말하자 황보인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불쌍한 시선으로 팽고은을 봤다. 그녀는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사람들 틈에 끼어서 수련을 하다가 욕을 바가지로 먹고 있었다.
“서찰은 어떻게 됐지?”
운암이 현성에게 물었다. 그럴듯한 가짜 서찰은 그가 알아서 전달하기로 되어 있었다.
“저기 오는군요.”
현성이 가리키는 곳을 보자 나이가 어려 보이는 소녀가 적운상에게 쪼르르 달려가고 있었다. 은서린이었다.
“적 사형.”
“무슨 일이야?”
“수연 언니한테 연락이 왔어요.”
“뭐?”
“여기 서찰이요.”
은서린이 서찰을 건네자 적운상이 그걸 받아서 펼쳐봤다. 할아버님이 위독해서 오지 못하니 천응방으로 와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필체가 백수연이 적은 것 같지가 않았다.
“서찰을 가져온 사람은 어디 있어?”
“벌써 갔는데.”
적운상은 어떻게 해야 할지 잠시 망설였다. 백수연의 필체가 아니라서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경황이 없어서 누군가에게 시켰을 수도 있었다.
게다가 며칠만 있으면 무당삼현, 화산이로와 비무를 한다. 그들은 적운상이 지금껏 상대해온 그 누구보다 강한 사람들이었다. 비무를 하다가 자칫 크게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었다.
백수연은 아마 비무를 한다는 것도 모르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할아버지가 그리 위독하다니 다른 데 신경 쓸 겨를이 없을 것이다.
‘가봐야겠군.’
결국 그렇게 결정을 내리며 적운상이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그렇잖아도 백수연이 마음에 걸렸었다. 이참에 갔다 오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다만 비무를 약속한 날이 얼마 남지 않아서 그 안에 천응방까지 갔다 올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적운상이 크게 소리치자 사람들이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한숨을 푹푹 내쉬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만큼 수련이 힘들었다. 한 시진 수련을 한 것이 아니라 하루 종일 수련을 한 것 같았다.
* * *
“천응방에 간다고?”
방에서 장부를 정리하던 막정위가 적운상의 말을 듣고 되물었다.
“네. 장문사형.”
“흐음, 그래. 갔다 와야겠지. 날짜가 촉박한데 비무를 좀 늦추는 것이 어떠냐?”
“일단 가려고 합니다. 조금 늦으면 기다리겠죠. 뭐.”
“훗! 무당삼현과 화산이로를 기다리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너밖에 없을 거다.”
막정위가 웃으면서 농담을 했다. 그러고는 품에서 주머니를 꺼내서 적운상에게 줬다.
“이게 뭡니까?”
“백 소저의 할아버님이 위독하다고 들었다. 가면 돈이 좀 필요할지도 몰라. 경비도 필요하잖아.”
“고맙습니다. 장문사형.”
“고맙기는. 조심해서 갔다 오고.”
“네. 얼굴만 보고 바로 오겠습니다.”
“그래. 양악이랑 같이 갈 거냐?”
“아니요. 혼자 가려고 합니다.”
“내 생각에도 그게 좋을 것 같다.”
“네.”
적운상이 방을 나와 떠날 채비를 하는데 어떻게 알고 주양악이 왔다.
“수연 언니한테 간다면서?”
“응.”
“잘 갔다 와.”
같이 가자고 떼를 쓸 줄 알았는데 의외의 반응을 보이자 짐을 챙기던 적운상이 멈칫하며 주양악을 봤다.
“왜?”
“아니야.”
“가면 수연 언니한테 안부 전해줘. 내가 보고 싶어 한다고.”
“그러지.”
짐을 다 챙긴 적운상이 다시 한 번 주양악을 봤다. 그러자 주양악이 생긋 미소를 지었다.
“가. 내가 배웅해줄게.”
“어? 어. 그래.”
두 사람은 말없이 방을 나와 계속 걸었다. 몇몇 사람들이 적운상의 차림을 보고 어디를 가냐고 물으며 말을 건네왔다. 적운상은 개인적인 일로 장사에 갔다 온다며 간단하게 대답했다.
그러면서 힐끗 주양악을 보자 그녀가 웃으면서 어깨를 으쓱 거렸다.
형산파를 나서서 산 중턱까지 내려오자 적운상이 주양을 보며 말했다.
“이제 돌아가.”
“응. 잘 갔다 와.”
“그래. 나 없는 동안 수련 열심히 하고.”
“피이, 왜 그 말 안 하나 했다.”
“나 없으면 네가 제일 강하잖아. 혹시 무슨 일 생길지 모르니까…….”
“그만! 거기까지만. 걱정 말고 다녀오기나 해.”
적운상이 하는 말을 잔소리로 여긴 주양악이 손을 척하니 내밀어 말을 끊었다.
“갔다 올게.”
“응.”
적운상은 뭔가 찜찜함이 계속 남았지만 애써 무시하며 산을 내려갔다.
‘저게 철이 들었나?’
너무 산뜻하게 보내주니 그런 생각까지 드는 적운상이었다.
* * *
산을 내려온 적운상은 말을 한 마리 구해서 타고 관도를 따라 장사로 향했다. 비무 전에 돌아오려면 시일이 촉박했지만 서두르지는 않았다. 며칠 늦어진다고 해서 뭐가 잘못되는 것도 아니었고, 어차피 그들은 적운상이 올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며칠을 가자 상담현(湘潭縣)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는 말을 타고 관도로 가는 것보다 배를 이용해서 수로(水路)로 가는 것이 훨씬 빨랐다.
하지만 밤이 늦어서 배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근처의 객잔으로 향했다.
“방이 있나?”
“네. 물론입니다.”
어린 점소이가 싹싹하게 굴며 대답했다.
“하룻밤만 묵을 거다. 식사를 하고 싶군. 화주 한 병하고 간단한 소채요리를 가져와라.”
적운상이 품에서 돈을 꺼내 점소이에게 조금 쥐여 주면서 말했다. 그러자 점소이가 환하게 웃으면서 자리로 안내를 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술과 요리는 금방 내오겠습니다. 그리고 방은 제가 깨끗한 곳으로 준비해 놓겠습니다.”
“그래.”
적운상이 자리를 잡고 앉자 점소이가 휑하니 안쪽으로 사라졌다. 밤이 늦었는데도 객잔 안에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적운상은 쉬지 않고 이곳까지 오느라 조금 피곤했다. 그래서 그들에게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는데, 조금 떨어진 곳에서 두런두런 나누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그 사람이 그렇게 대단해요?”
“그렇다더군. 후기지수들 중에서는 최고라고 하잖아.”
여자가 묻는 말에 남자가 그렇게 대답했다. 그러자 또 다른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뜬소문일 수도 있지 않아요? 아직 서른 살도 되지 않았다면서요?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강할 수가 있죠? 믿을 수가 없어요.”
“나도 만나보지 못했으니 정확히는 모르지만, 소문만으로는 대단한 것 같다. 듣자니 이번에는 호천마궁의 고수들까지 물리쳤다고 하잖아. 혼자서 몇백 명을 베었다고 하더구나.”
“그러니까 믿을 수 없죠. 아마 조금 과장되어서 소문이 돈 것뿐일 거예요.”
“아니다. 무림맹에서는 쉬쉬하고 있지만 그와 반목했던 고수 오십 명이 모두 당했다더라. 그중에는 화산파의 매화검수와 소림의 십팔나한, 그리고 무당파의 무당십걸도 있었고 하지 않느냐?”
“그것도 소문만 무성하지 정확히 어떻게 된 일인지는 아무도 모르잖아요. 안 그래요? 언니는 어떻게 생각해요?”
지금까지 부정적으로만 이야기하던 여자가 묻자 고운 미성이 들려왔다.
“모두 사실일 거야.”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응. 그는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거든.”
“마치 그를 아는 것처럼 이야기하는구려.”
“아니요. 예전에 소림사에서 있었던 비무대회 때 먼발치에서 한 번 봤었어요.”
적운상은 피곤해서 눈을 감고 있는 와중에 그 여자의 목소리를 들었다. 귀에 많은 익은 목소리였다. 혹시 아는 사람인가 싶어서 슬쩍 고개를 돌려서 뒤를 봤다.
하지만 그 여자는 등을 보이고 있어서 누군지 알아볼 수가 없었다. 대신에 그 맞은편에 앉아 있는 여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그녀는 상당한 미인이었다.
적운상과 시선이 마주치자 미간을 살짝 좁히며 고개를 돌려버렸다. 적운상도 그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와서 그쪽을 봤을 뿐, 그 외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때 점소이가 술과 요리를 가지고 와서 탁자에 내려놓자 적운상도 자연스럽게 시선을 거뒀다. 그러자 아주 낮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제 딴에는 조용히 말한다고 하는데 적운상에게는 아주 똑똑히 들렸다.
“저 사람이 자꾸 훔쳐봐요. 기분이 좋지 않아요.”
“하하. 네가 예뻐서 그런 것이니 크게 신경 쓰지 말거라. 너를 보는 게 저 사람뿐이겠느냐?”
사내의 말에 여자가 싫지 않은 듯, 웃으면서 입을 삐죽이 내밀었다. 사내의 말대로 지금 객잔 안에 있는 남자들은 모두 한 번씩 그들을 훔쳐보고 있었다.
그들은 사내 둘과 여인 둘이었는데 여인들의 미모가 상당히 뛰어났다. 적운상과 시선이 마주친 여인도 예뻤지만 그 맞은편에 앉아 있는 여인은 그보다 더했다.
같이 있는 사내들 중 한 명은 주위의 남자들이 그녀를 힐끔거리며 훔쳐보는 것이 기분 좋았다. 그녀와 특별한 관계가 아닌데도 마치 그런 것처럼 어깨가 으쓱거렸다.
그러다 객잔의 입구로 들어서는 누군가를 보고 얼굴이 굳었다. 그는 오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사내였는데 청의무복에 역시나 청색의 장포를 입고 허리에는 장검을 한 자루 차고 있었다.
그것만 보자면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차림의 무인이었다. 하지만 그의 눈에 길게 세로로 나 있는 상처와 양 팔목에 끼고 있는 정교한 용이 새겨진 팔찌를 보자면 절대로 그렇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