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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형산파 303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898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아! 형산파 303화

303화. 느긋한 일상 (3)

 

“이 서찰이 여기에 오기까지 며칠 정도 걸렸으니 비무 날짜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소이다. 그전에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하오.”

일영진인이 모두를 향해 묵직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는 지금 기분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착잡했다. 그때 임옥군을 처리한 일에 대해 때늦은 후회가 들었고, 그 뒷감당을 하려니 자존심을 굽혀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일은 없겠지만 그가 만약 무당삼현 어르신들과 화산이로 어르신들을 이긴다면, 그 후에 벌어질 일이 상상이 되지 않소이다.”

“이제라도 회유를 해보는 것이 어떻소? 그렇지, 무룡대와 봉화대를 지휘할 수 있는 대장의 자리를 주면 되지 않겠소?”

“턱도 없소. 그는 우리를 적대시하고 있소. 사부가 죽었고, 사제가 죽었소. 그리고 그를 정확히 보시오. 형산파는 이제 더 이상 지방의 작은 문파가 아니오. 더구나 그는 나이는 어리지만 그 이상의 것을 계속 보여주고 있소. 일처리 능력은 우리에 버금가고, 무공은 그 이상이오. 그를 회유하려면 아마 무림맹의 맹주 자리를 내줘야 할 거요.”

맞는 말이었다. 다른 걸 다 떠나서 무당삼현과 화산이로를 이기게 되면 겨우 후기지수들의 대장 자리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나는 그 어르신들이 패한 다는 걸 염두에 두지 않겠소. 그러니 일단 갑시다. 그곳으로 가서 직접 눈으로 보고 결정을 합시다.”

“음, 시간이 촉박하오.”

“여기서 형산까지 며칠 만에 간다는 건 불가능하오.”

적양진인의 말에 일영진인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맞소. 하지만 형산파에 있는 아이들에게 어떻게든 비무를 좀 늦추고, 말이 최대한 달릴 수 있는 거리마다 미리 말을 준비시켜서 쉬지 않고 간다면 가능하오. 누가 함께 가겠소?”

일영진인의 말대로라면 보통 고생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의 비무는 그런 고생을 감수할 만큼 충분히 가치가 있었다. 지금 아니면 언제 탈인의 경지를 직접 볼 수 있을 것인가?

“허허. 오랜만에 출타를 해야겠구려. 사대금강(四大金剛)을 데려가면 되려나?”

구지선사가 웃으면서 먼저 같이 갈 뜻을 밝혔다. 그러자 모두들 너도 나도 함께 가기를 원했다.

“우리가 함께 움직이면 분명 호천마궁에서 공격을 해올 것이오. 그렇다고 너무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가면 제때에 도착하지 못할 수도 있소. 그러니 최소한의 인원으로 가야 하오.”

“알겠소. 그리하리다.”

“촌각을 다투는 일이니 오늘 밤에 출발을 하겠소.”

“그럼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군.”

“자자, 움직입시다.”

무림맹이 분주해졌다.

* * *

 

특별한 일 없이 십여 일이나 시간이 흘렀다. 형산파 사람들은 호천마궁과 싸움을 한 이후에 그 뒤처리를 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부서진 곳을 수리하고 다친 사람들은 치료를 받았다.

그러는 동안 운암은 여기에서 생긴 일을 상세하게 무림맹에 보고하고 받은 답장을 읽고 있었다. 무림맹의 수뇌부들이 이곳으로 올 테니 그때까지 어떻게 해서든 적운상과 무당삼현, 화산이로의 비무를 막으라는 내용이었다.

혼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당장에 무량과 현성, 그리고 황보인영과 서서희, 팽고은을 불렀다.

“봐라. 무림맹에서 온 서찰이다.”

운암이 내민 서찰을 모두가 돌려가면서 읽었다. 그러고는 인상을 팍 찌푸렸다. 원래 이들은 여기 일이 끝나면 느긋하게 무림맹으로 향하면서 여기저기 둘러볼 생각이었다.

올 때야 시간이 없어서 잠자는 시간까지 줄여가며 달려왔다지만 갈 때만큼은 좀 즐기고 싶었다. 하지만 무림맹에서 수뇌부가 오면 그들의 시중을 들며 곧바로 돌아가야 했다.

게다가 비무를 연기시킬 방법도 없었다.

“어르신들에게 말을 해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무량의 말에 운암이 잠시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마 이야기해도 소용없을 거야. 차라리 적운상에게 이야기를 해보는 것이 더 나을 것 같군.”

“하지만 들어줄까요? 무림맹을 상당히 적대시하잖아요.”

황보인영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물었다.

“그래도 어르신들을 설득하는 것보다는 나을 거요.”

“음…… 그럼 운산 도사님을 불러오죠. 적 공자와 친분이 있으니 뭔가 방법을 알지도 몰라요.”

운산에 대해서 잘 아는 운암은 별로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밑져야 본전이었다. 잠시 후 운산이 불려왔다.

“사형.”

“그래. 왔구나.”

운산은 방에 있는 사람들을 슥 한 번 훑어보고는 미간을 살짝 좁혔다. 이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니 분명 뭔가 골치 아픈 일에 휘말릴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운암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니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적운상과 어르신들의 비무를 늦추려고 한다. 무림맹에서 사부님과 여러 장문인들이 온다는구나. 뭔가 방법이 있겠느냐? 우리는 어르신들을 설득하기보다는 적운상을 설득시키기로 했다.”

“차라리 어르신들을 설득하는 것이 나을 겁니다.”

“나와는 생각이 다르구나.”

“적운상을 직접 봐서 알잖습니까? 그는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너를 부른 거다. 너는 적운상하고 친분이 있으니 혹시 참고할 만한 것이 있나 해서 말이다.”

“없습니다.”

운산이 딱 잘라 말하자 이번에는 운암이 인상을 살짝 썼다. 무성의한 운산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제.”

운암의 분위기가 바뀌자 운산이 약간 긴장을 했다. 그러다 서서희와 눈이 마주치자 도움을 바라며 불쌍한 얼굴을 했다.

“호호. 운암 도사님. 이러면 어떨까요?”

서서희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자 운산이 살았다는 듯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말해보시오.”

“뭔가 일을 만들면 되지 않을까요? 그럼 그 일을 처리하느라 비무를 늦출 거예요.”

“좋은 생각이기는 한데 비무를 늦출 만큼 중요한 일을 어떻게 만드느냐가 문제요.”

“음…….”

모두들 머리를 굴리느라고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겼다.

“아미타불. 빈승에게 생각이 있습니다.”

무량의 말에 모두가 그를 봤다.

“말해보시오.”

“적 시주가 사매인 주 시주를 아끼니 둘이 같이 어딘가로 가게 만드는 것이 어떻습니까?”

“가려고 할까요?”

황보인영이 회의적으로 물었다. 적운상은 중요한 비무를 앞두고 놀러 다닐 사람이 아니었다.

“물론 처음에는 전혀 모르게 비무 전에 갔다 올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일단 형산파를 나서면 사건을 만드는 건 쉽지요.”

“그도 그렇군. 그럼 어떻게 형산파를 나서게 하느냐가 문제인데…….”

“아! 그러고 보니 백 소저가 할아버님이 위독하셔서 천응방에 가 있다고 들었는데.”

운산이 백수연의 일을 생각해내고 말하자 운암이 눈을 빛내면서 쳐다봤다.

“백 소저가 누구냐? 자세히 말해봐라.”

“백수연이라고 천응방의 장녀입니다. 적운상하고는 장래를 약속한 사이죠.”

“에? 적 공자는 그때 본 사매하고 사귀는 것 아니었어요?”

팽고은이 놀라면서 묻자 운산이 웃으면서 대답을 했다.

“하하. 적운상 정도 되면 모두들 딸을 못 줘서 안달이죠. 두 명은 적은 겁니다.”

“흥! 그래도 그렇지 생긴 것하고는 딴판이네요. 아직 정식으로 혼인한 것도 아닌데 두 명이나 사귀다니.”

남자가 능력이 좋으면 정실 말고도 첩을 들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여자 입장에서는 그리 반갑지가 않았다. 아무리 능력이 좋아도 한 여자만 보며 사는 사람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오해는 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팽 소저. 적운상 그 친구가 몇 년에 걸쳐서 혈마사를 싹 지워버린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갑자기 혈마사 이야기가 나오자 팽고은 말고도 모두가 궁금증이 일었다. 적운상이 천 명이 넘는 혈마승들을 죽이고 마지막에는 혈불까지 베어버린 이야기는 아주 유명했다.

하지만 과정과 결과만 있을 뿐, 적운상이 왜 그랬는지 그 이유를 아는 사람들은 극히 적었다.

“의협심 때문에 그런 게 아닌가요?”

“아닙니다. 사매인 주 소저 때문입니다.”

생각지도 못한 운산의 말에 팽고은이 약간 놀란 눈을 했다.

“정말인가요?”

“그렇습니다. 혈불이 주 소저를 납치해가자, 되찾기 위해서 뼈를 깎는 노력을 했습니다. 그 당시 적운상은 무상지검의 경지에 머물러 있었는데, 이 년 동안 폐관수련을 해서 심검의 경지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주 소저를 찾아다니면서 혈마승들을 모두 베어버렸습니다. 그렇게 마지막에는 혈불까지 죽이고 결국 주 소저를 구해냈죠. 그때의 적운상을 생각하면 소름이 끼칩니다. 세상 다 산 표정으로 혈마승들을 베어 넘기는데 마치 야차와 같았죠. 지금의 그는 예전에 비하면 정말 많이 부드러워진 겁니다.”

팽고은은 운산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뭔가 뭉클한 것이 느껴졌다. 사랑하는 여자를 구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결국 구해냈다는 것에 감동을 받은 것이다.

그건 황보인영과 서서희도 마찬가지였다. 세 명 모두 나이가 젊기 때문에 그런 지고지순한 사랑이야기에 마음이 설레었다.

“그럼 백 소저라는 여자는 어떻게 된 사귀게 거예요?”

“주 소저가 없을 때 적운상의 옆을 지키면서 마음을 잡아준 사람이 백 소저였습니다. 내가 알기로 적운상은 끝까지 백 소저에게 마음을 열지 않았습니다. 주 소저를 찾고 나서도 한동안 그랬었는데 백 소저의 정성에 결국 마음을 허락했다더군요.”

“아!”

이것 역시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였다. 팽고은은 자신이 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입을 열었다는 생각에 약간 후회가 됐다. 적운상이 여자를 두 명이나 사귄다기에 인물값하려나 보다, 그렇게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제가 오해하지 말라고 한 겁니다. 제가 말을 꺼냈는데 소저가 오해를 하면 제 입장이 난처해질지도 모르잖습니까? 하하.”

“죄송해요. 저는 그런 사연이 있는 줄 몰랐어요.”

“아닙니다. 적운상의 능력을 보면 누구나 소저처럼 생각할 겁니다.”

“흐음, 그 이야기는 거기까지만 하고, 운산 네 말은 적운상이 백 소저를 찾아가게 하자는 거지?”

“네. 사형. 제 생각에는 그게 가장 좋은 방법 같습니다. 가짜로 서찰이라도 하나 쓰면 될 겁니다. 적운상의 성격상 당장에 달려갈 겁니다.”

“좋았어. 그럼 그렇게 하자.”

운암이 결정을 내리고 다 같이 세세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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