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300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08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300화
300화. 형산파에서 (2)
운암과 황보인영의 말을 들은 수호대의 사람들은 황당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들은 어딜 가던 지금까지 항상 대접을 받아왔었다. 어느 문파건 그들과 어떻게든 줄을 대기 위해서 노력했었다.
특히 이런 시골에 있는 문파라면 더욱이 그랬다. 그런데 돈을 내라니.
하지만 당장 내지 않으면 쫓아내겠다는데 어쩔 수가 없지 않은가?
“이 사실을 무당삼현 어르신들과 화산이로 어르신들도 알고 있습니까?”
현성이 묻는 말에 운암이 고개를 저었다.
“아마 모르고 계실 거다.”
“이건 돈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 자존심의 문제입니다. 그깟 돈 몇 푼이야 아까울 것이 없지만 꺾인 자존심은 쉽게 회복되지 않습니다. 일단 어르신들과 상의를 하는 게 어떻습니까?”
“음, 그거 좋은 생각이구나. 그럼 내가 가서 이야기하고 오마.”
운암은 그길로 무당삼현을 찾아갔다. 무당삼현은 운암의 이야기를 듣더니 배꼽을 잡고 웃었다.
“그렇게 웃으시기만 할 일이 아닙니다.”
“됐다. 가서 그가 원하는 대로 해주거라.”
“하지만…….”
“네놈들 자존심이 그리 대단하더냐? 직접 눈으로 보고도 모르겠느냐? 이들을 무시하지 마라. 형산파는 너희가 생각하는 시골의 작은 문파가 아니다. 장문인은 젊지만 과감한 결단력과 통솔력이 있다. 거기에 적운상이라는 절대고수도 있고, 사천 명에 달하는 현 사람들이 한가족처럼 따르고 있다. 무림 어디에 그런 문파가 있느냐? 적운상 그놈 하나만 해도 웬만한 문파 하나와 맞먹을 정도로 가치가 있느니라. 겉으로 보이는 것만 보지 말고 그 이면에 있는 것을 봐야지. 쯧쯧, 어찌 그리 아둔하냐? 가봐라. 내가 혼쭐을 내기 전에.”
“알겠습니다.”
운암은 침울하니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이현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전했다. 그러자 더 이상 반대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날 수호대 사람들은 돈을 탈탈 털어서 적운상에게 건넸다. 적운상은 그걸 받아서 막정위에게 줬다. 그러자 막정위의 입이 귀에 걸렸다.
* * *
수호대 사람들은 형산파에서 계속 지내면서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다. 호천마궁과의 전투에서 식객들 대부분이 크게 다치고 죽었지만 멀쩡한 사람들도 제법 됐다. 그들은 늘 그렇듯이 아침마다 연무장에 모여 서로 무론을 주고받으며 수련을 했다.
이해가 안 되는 건 그들의 방식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비기를 숨기지 않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일이었다.
유일하게 운산만은 예전에 왔을 때 봤던 일이라서 별로 신기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 외에도 또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있었다. 모두 자신들의 무공 말고도 형산파의 무공인 풍뢰십삼식을 죽어라고 연습한다는 것이었다.
하도 열심히 연습을 하기에 뭔가 대단한 무공인가 싶어서 욕먹을 걸 각오하고 한참동안 유심히 지켜봤지만 단순하기 짝이 없는 도법일 뿐이었다. 상승무공은 절대로 아니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열심히 연습을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게 궁금해서 풍뢰십삼식에 대해서 좀 알아보니 남악현 사람치고 그걸 못하는 사람이 없었다. 막말로 개나 소나 다 알고 있는 무공이었다.
“허 참…….”
연무장 한쪽에 쭈그리고 앉아서 고개를 갸웃거리던 무량이 혀를 찼다. 식객 몇 명이 아침부터 그가 보는 것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풍뢰십삼식을 죽어라고 연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뭐하세요?”
서서희가 팽고은과 함께 다가오며 물었다. 그녀들은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아침수련을 하고 오는 길이었다. 형산파 사람들이나 이곳에서 머무는 식객들처럼 무공을 다 보이면서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저들을 보고 있었소.”
“호호. 끈질기시네요. 운암 도사님이 이미 아무것도 없다고 했잖아요. 저희가 보기에도 그리 뛰어난 무공은 아닌 걸요.”
“그런 것치고는 너무 열심히 하고 있지 않소? 이유를 물어도 대답해주지도 않고.”
“그게 궁금한 거예요. 그래봤자 별 볼일 없는 무공이잖아요.”
팽고은이 하는 말에 무량이 고개를 저었다.
“저기 있는 저자가 누군지 아시오?”
무량이 연무장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풍뢰십삼식을 연공하고 있는 중년사내를 가리켰다. 그러자 서서희와 팽고은이 그 사내를 빤히 쳐다봤다.
서서희는 멀리 청해에 있는 곤륜파에서 왔기 때문에 아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팽고은은 아니었다. 그녀는 아버지와 오라버니들에게 들은 것이 많았다. 특히 하북팽가는 도법으로 유명했기 때문에 도를 잘 다루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파악을 하고 있었다.
“혹시 인의대도(仁義大刀) 사영걸 대협 아닌가요?”
“맞소. 그가 바로 사영걸이오.”
“몰랐어요. 휘두르는 칼에 수실이 세 개나 달려 있지 않았다면 정말 못 알아봤을 거예요.”
“나도 그렇소. 그의 광뢰도법(光雷刀法)은 꽤나 절기에 속하는 무공이오. 아까 잠시 봤는데 정말 대단했소. 그런 그가 자신의 도법보다는 풍뢰십삼식을 연마하는데 더 심혈을 기울이고 있소. 정말 이해가 안 가는 일이오.”
“그러지 말고 운산 도사님에게 물어보는 게 어떨까요?”
서서희의 말에 사영걸을 보고 있던 무량이 시선을 돌려 그녀를 봤다. 생글생글 웃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예뻤다.
“험! 그가 뭔가 알고 있소?”
“듣기로는 운산 도사님은 예전에 여기에 한 번 왔었다고 해요. 그때도 저랬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니 뭔가 아는 게 있을지도 몰라요.”
“그래요. 같이 가서 물어봐요.”
팽고은도 동의하며 나서자 무량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엉덩이를 털었다.
“그럽시다. 함께 가봅시다.”
“호호. 갈 필요 없겠네요.”
서서희가 웃으면서 한쪽을 봤다. 무량과 팽고은이 그쪽을 보니 덩치가 커다란 도사 한 명이 어기적거리면서 걸어오고 있었다. 운산이었다.
“좋은 아침이에요.”
서서희가 생긋 웃으면서 인사를 건네자 운산이 머리를 긁적이며 인사를 받았다.
“밤사이에 더 예뻐진 것 같군요.”
“호호. 칭찬 고마워요. 운산 도사님은 더 멋져지신 것 같아요.”
“나는 항상 멋있었소.”
“어머, 그랬나요?”
서로 주고받는 농담에 분위기가 밝아졌다. 그러자 서서희가 궁금한 것을 물었다.
“실은 운산 도사님에게 물어볼 것이 있었어요. 대답해 주실 거죠?”
“어려운 것만 아니라면 그렇게 하겠소.”
“저 사람들이요. 왜 저렇게 풍뢰십삼식을 열심히 연습하는 거죠. 그리 뛰어난 도법인 것 같지도 않은데 이해가 안 가요.”
“난 또…….”
운산이 머리를 긁적이며 그 자리에 쭈그리고 앉아서 턱을 괴고 연무장에서 수련 중인 사람들을 쳐다봤다. 그러자 무량과 서서희, 팽고은도 그 옆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나도 처음에 저들을 봤을 때는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았었소. 저런 삼류도법을 왜 저리 열심히 익히는지 알 수가 없었지.”
“맞아요. 혹시 저기에 뭔가 숨겨진 것이 있나요?”
“아니오. 보는 그대로 저건 그저 그런 도법일 뿐이오. 하지만…….”
운산이 말끝을 흐리자 세 사람이 모두 귀를 기울였다. 운산의 다음 말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적운상이 저 도법으로 무상지검의 경지에 올랐소.”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러다 세 사람이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에엑!”
“말도 안 돼!”
“믿을 수 없소.”
그들의 반응을 예상했던 운산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그랬소. 하지만 적운상이 펼치는 풍뢰십삼식을 보면 이해가 갈 거요.”
“도대체 어떻기에 그러죠?”
서서희가 물음에 운산은 뭐라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했다.
“그냥 보면 알 거요. 아무튼 저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적운상이 펼치는 풍뢰십삼식을 봤었소.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예전의 형산파는 가난하고 변변한 고수 한 명이 없어서 벌모세수나 진기도인, 영약 같은 건 꿈도 못 꿨소. 무공도 저런 것들뿐이었소. 그런데도 적운상은 노력만으로 지금의 경지에 올랐소. 그러니 저들에게는 확실한 동기부여가 되지 않겠소? 저들 역시 가진 것 없고, 받쳐주는 사람 하나 없이 스스로의 노력으로 뭔가를 이루려는 사람들이오. 적운상은 저들에게 우상과 같은 존재요. 저들이나 적운상을 보면, 내가 얼마나 혜택을 받고 편하게 지금의 것들을 이뤄왔는지를 돌아보게 되오.”
“그렇군요. 그런 줄은 전혀 모르고 있었어요.”
“이야기가 길어졌군. 내가 아는 건 그게 다요.”
“아니에요. 궁금증이 많이 풀렸어요. 그런데요.”
“또 궁금한 것이 있소?”
“적 대협에게 풍뢰십삼식을 보여 달라고 하면 그가 보여줄까요?”
“그럴 필요가 뭐가 있소?”
“네?”
“새벽에 이곳 말고 저쪽 형산파의 제자들이 머무는 숙소 앞으로 가면 적운상이 수련하는 걸 볼 수 있을 거요.”
“정말이요?”
“그렇소.”
“하지만… 다른 문파가 수련하는 걸 보는 건 실례 아닌가요?”
“숨어서 보면 싫어하지만 대놓고 보면 뭐라고 하지 않는 사람이오.”
“네?”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생각나는 것이 있어서 손바닥을 짝 하고 쳤다.
“그렇군요. 어차피 저들도 우리가 지켜보는데 아무 말도 안 하는 것처럼 적 대협도 그런가 보죠?”
“그렇소.”
“훗! 그럼 우리 내일 새벽에 그리로 가 봐요.”
서서희가 눈을 빛내면서 하는 말에 무량과 팽고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이른 새벽, 일곱 명이 조심스러운 걸음걸이로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어제 적운상이 수련하는 걸을 보러 가자고 한 서서희와 팽고은, 무량이었다. 거기에 서서희와 팽고은의 이야기를 듣고 따라온 황보인영과 운암, 현성이 함께였다. 그리고 단순히 적운상과 약간의 친분이 있다는 이유로 끌려온 운산도 있었다.
“어디죠? 저긴가요?”
“그렇소.”
서서희가 묻는 말에 운산이 하품을 하면서 대답했다. 운산은 정말이지 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운암까지 합세해서 어찌나 닦달을 하면서 깨우는지 어쩔 수가 없었다.
길을 따라가다가 오른쪽에 있는 전각의 모퉁이를 돌자 윽박을 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 봐도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적운상이라는 사실을 모두 알 수 있었다.
“이 바보야! 그게 아니라니까! 좀 더 집중을 해야지! 내공만 쏟아 붓는다고 되는 게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
“알아! 안다고! 하지만 잘 안 되는 걸 어떻게 해!”
“내 얼굴 보지 말고 집중해!”
“사형 얼굴 보는 게 어때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 얼굴 본다는데 왜 그래?”
“쓸데없는 소리 자꾸 할래?”
“헤에… 사형. 우리 수련 그만하고 방으로 갈까? 나 요즘 밤마다 외로웠는데… 사형은 바쁘다고 오지도 않고.”
모퉁이를 돌아서 모습을 보이려던 사람들이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적운상과 주양악이 나누는 이야기가 낯 뜨거웠기 때문이다. 젊은 남녀가 함께 있다 보니 더욱이 그랬다.
“안 돼. 빨리 다시 해봐.”
“그러지 말고. 하자. 응.”
주양악이 적운상의 목을 잡고 매달렸다. 적운상은 머리를 긁적였다. 예전에는 주로 자신이 원했었다. 그런데 요즘은 가끔 이렇게 주양악이 적극적일 때가 많았다. 그런 주양악이 귀여워서 싫지 않았다. 하지만 수련시간에만 이러니 그게 문제였다.
주양악 딴에는 수련을 하기 싫어서 꾀를 쓰는 건데, 그걸 알면서도 자꾸 마음이 흔들렸다.
“안 돼. 저리 떨어져. 강기를 제대로 터득할 때까지는 절대로 안 돼.”
“치, 사형도 강기는 제대로 못 쓰잖아.”
“말했지. 그건 내가 익힌 내공 때문이라고.”
“흥! 핑계인지 누가 알아?”
“한 대 맞을래? 꾀부리지 말고 빨리 연습해.”
“싫어! 사형은 만날 수련만 하래. 수련, 수련, 수련! 이제는 지긋지긋해! 이 바보야!”
주양악이 소리를 빽 지르고는 후다닥 방으로 가버렸다. 혼자 덩그러니 남은 적운상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너무 다그쳤다는 생각에 조금 미안하기도 했다.
“이제 그만 나오지.”
적운상의 말에 전각 뒤에 숨어있던 일곱 명이 어물쩍거리면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