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296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5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296화
296화. 연이은 사투 (3)
“대장! 이대로 가다가는 그들과 만나기도 전에 모두 지치고 말 겁니다.”
빠르게 경공을 펼쳐서 달리던 젊은 승려가 앞에서 달리고 있는 젊은 도사를 향해 소리쳤다. 그러자 그가 잠시 뒤를 돌아보며 사람들의 상태를 살폈다.
벌써 몇 리를 이렇게 전속력으로 달려왔는지 모른다. 모두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이대로 계속 가다가는 그의 말대로 적들을 만나기도 전에 지쳐서 쓰러지고 말 것이다.
“멈춰!”
젊은 도사가 크게 소리치자 그의 뒤를 따르던 자들이 일제히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반각이다! 딱 반각만 쉬고 간다!”
“후우…….”
“제기랄.”
사람들은 한숨을 쉬거나 투덜대기는 했지만 그 외에는 별다른 불만을 내비치지 않았다.
“연락이 온 게 한 시진 전인가?”
젊은 도사가 물었다. 그는 무당십걸의 맏이인 운암이었다. 무림맹에서는 젊은 사람들 위주로 수호무룡대(守護武龍隊)와 수호봉황대(守護鳳凰隊)라는 조직을 만들었다. 수호무룡대는 남자들 위주로 뭉친 단체로 운암이 대장을 맡고 매화검수의 수장인 현성과 십팔나한의 수좌인 무량이 부대장을 맡았다.
그리고 수호봉황대는 여자들 위주로 되어 있었는데, 황보세가의 여고수인 황보인영이 대장을 맡고 하북팽가의 팽고은과 곤륜파의 서서희가 각기 부대장을 맡았다.
이들은 그동안 노고수들이 호천마궁을 상대하는 동안 무림맹에 모여 서로 우의를 돈독히 하고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데 주력했다.
그러다 이번에 호천마궁의 정예 삼천 명이 형산파로 향하고 있다는 정보를 접하고는 위에서 내려온 명령에 따라 형산으로 가고 있는 중이었다.
가는 도중, 호천마궁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수시로 전서구가 날아올라 정보를 전해줬다.
남악현 밖에서 대기 중이던 호천마궁의 정예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어제였다. 그리고 오늘 아침 형산파에 있던 군웅들과 호천마궁의 정예들이 맞붙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호천마궁의 정예는 삼천 명인데 비해 형산파에 있는 군웅들은 오백 명도 되지 않았다. 모두 한 시진이면 형산파가 전멸할 거라 여겼다. 도와주고는 싶었지만 거리가 너무 멀어서 제때에 도착하기가 힘들었다.
형산파가 너무 빨리 무너져서 호천마궁의 정예들을 놓칠까 봐 그게 걱정이었다. 하지만 그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한 시진이 지나서 다시 날아온 전서구에는 이제야 형산파의 정문 앞에서 정면충돌이 일었다고 적혀 있었다.
그렇다면 아직 늦은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호천마궁과 붙을 거라면 자신들의 도움으로 그들이 살아있는 것이 더 보기에 좋았다. 게다가 이번 일을 잘만 처리한다면 수호무룡대와 수호봉황대의 명성은 천하를 울릴 터. 자연히 자신들의 명성도 올라가게 되어 있었다.
“반각이 지났다. 다시 출발한다!”
운암이 내공을 실은 목소리로 크게 외치자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자!”
운암이 앞장서자 이천 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 * *
형산파에서 호천마궁과 군웅들이 맞붙고, 밖에서는 무림맹에서 보낸 수호무룡대와 수호봉황대가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달려오고 있을 때 남악현 사람들도 하나둘씩 무기를 들고 모여들었다.
형산파에 일이 생겼다는 걸 이제야 전해들은 것이다. 하지만 워낙에 사람들이 많다 보니 정보전달이 그만큼 늦었고, 모이는 것도 늦었다. 하지만 모두 손에 칼을 하나씩 쥐고 애어른 할 것 없이 분개한 얼굴로 모여들었다.
“어떤 놈이여? 어떤 놈이 형산파를 건드려?”
“호천마궁이라던데, 뭐하는 데인지 모르것네.”
“아따, 들어본 적도 없는 곳에서 겁 모르고 왔구먼.”
“어여, 싸게싸게들 모여! 아, 거기 김씨는 뭐하는가? 어여들 와!”
북적북적하니 사람들이 모여서 너도나도 한마디씩 하자 정신이 없었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촌장들이 통솔을 하게 정해놓았지만, 그들도 이런 일은 익숙하지가 않아서 같이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거 대충 모인 것 같으니 출발하지.”
“그럽시다.”
“빨리 가서 해치우고 밭 매러 가야 하는디.”
“갑시다. 가.”
사람들이 아우성을 치자 앞쪽에 있던 사람들이 형산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때 현의 입구에서 흙먼지가 자욱하게 일며 수호무룡대와 수호봉황대가 도착했다.
남악현 사람들을 그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처음에 봤을 때는 저만치 멀리 있더니 눈 몇 번 깜빡이니까 어느새 현의 입구까지 와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보고 그들이 무림인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혼자가 아니라 잔뜩 모여 있다는 걸 믿고 겁 없이 말들을 쏟아냈다.
“저것들은 뭐여?”
“호천 머시기랑 한패 아녀?”
“아, 김씨는 이리 오랑께.”
그들이 당황하듯이 수호무룡대와 수호봉황대도 당황을 했다. 양민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손에 칼을 들고 잔뜩 모여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이게 무슨 일이죠?”
수호봉황대의 부대장인 팽고은이 대장인 황보인영에게 물었지만 그녀라고 어찌된 상황인지 알 리가 없었다. 이에 운암을 보니 그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하고 있었다.
형산으로 가려면 이들을 지나쳐가야 하는데 비켜주지를 않으니 문제였다. 그렇다고 경공을 펼쳐서 지나가자니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모여 있어서 무리였다.
“당신들은 뭐여? 혹시 형산파를 치러 왔는감?”
촌장 하나가 용기를 내서 물었다. 그러자 팽고은이 황당해하면서 말했다.
“우리는 형산파를 도와주기 위해서 무림맹에서 왔어요.”
“무림맹?”
촌장이 무림맹을 아는 것 같자 팽고은은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다행이 아니었다. 촌장이 갑자기 버럭 화를 냈다.
“무림맹에서 왔단 말이여? 전에 사형이 우리 사부님을 죽인 곳이 거기라 했제?”
“어? 맞지. 그랬었구먼.”
“오호라, 저것들 도와주러 온 것이 아니라 뒤통수치러 왔구먼.”
“보시게들! 저 잡것들이 형산파를 치러 왔다는구먼!”
그 한마디의 위력은 굉장히 컸다. 방금까지 왁자지껄하면서 산만하게 떠들던 남악현 사람들의 눈빛이 바뀌더니 살기등등해졌다.
“이놈들! 예가 어디라고 함부로 와!”
“그러지 말고 본때를 보여줍시다!”
“옳소!”
“옳소!”
사람들이 들고 있던 칼을 하늘 높이 치켜들며 소리치자 수호무룡대와 수호봉황대는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이들을 죽이고 형산으로 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양민이었다. 손에 칼을 들었다고 해서 모두 무림인은 아니었다. 더구나 어린 꼬맹이들도 있었고, 늙어서 허리도 제대로 못 펴는 할아버지도 있었다. 거기다 수가 너무 많았다. 못 잡아도 천여 명은 훨씬 넘는 수였다. 이들을 베어 넘기면서 가려면 아무래도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하죠?”
황보인영이 운암을 보며 물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난감하군. 그렇다고 그냥 물러날 수도 없으니…….”
“겁을 줘보는 건 어떻소?”
매화검수의 수장인 현성이 의견을 제시했다. 그의 말대로 겁을 주면 물러날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만약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더 발끈해서 덤벼들지도 몰랐다.
“좋은 방법이 아니다.”
“그럼 설득해야죠.”
옆에서 들려온 예쁜 목소리에 모두가 그쪽을 봤다. 거기에는 하늘하늘한 옷을 입고 있는 아리따운 여인이 서 있었다. 곤륜파에서 온 서서희였다.
수호봉황대의 대장인 황보인영이나 부대장인 팽고은도 예쁘기는 했지만 서서희만큼은 아니었다. 더구나 그녀는 무공이나 미모보다는 총명하기로 더 이름이 높았다.
“분위이가 이런데 어떻게 설득을 한단 말이오?”
운암이 묻는 말에 서서희가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그녀를 빤히 쳐다보던 몇몇 사내들이 얼굴을 살짝 붉혔다.
“예전에 호왕문이 형산파를 공격했을 때 이곳 사람들이 모두 몰려드는 바람에 그냥 돌아간 사건은 아주 유명하죠.”
그제야 사람들은 그 사건이 떠올랐다. 꽤나 유명한 사건이어서 한때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었고, 당연히 그들도 들은 기억이 있었다.
“이 사람들은 형산파를 위해서 이러는 거예요. 그러니 숙이고 들어가는 수밖에 없어요. 제가 알기로 형산파의 장문인은 산동에서 호천마궁과 싸울 때 죽은 걸로 알고 있는데, 왜 우리가 죽였다고 생각하고 있는 걸까요?”
“흥! 아마 적운상이 유언비어(流言蜚語)를 퍼트렸을 거요. 그래야 자신이 한 행동이 정당화될 테니까.”
“어쨌든 지금은 저들이 하는 말을 인정하고 달래야 해요.”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오?”
현성이 물었다. 그는 형산파, 아니 더 정확히는 적운상을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 소림사에서 비무를 했을 때는 대단하다고 여겼지만, 그 후로는 실망 그 자체였다.
게다가 적운상은 매화검수들을 죽였다. 그들은 모두 현성의 사제들로 어렸을 때부터 같이 지내 와서 친형제나 마찬가지였다.
“훗! 현성 도사님께서는 뭔가 더 좋은 방법이 있나 보군요.”
서서희가 현성에게 떠넘기자 그가 당황하며 손을 저었다.
“아니오. 내게 달리 생각이 있는 것이 아니오. 다만,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어서 해본 말이었소.”
“저는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여기서 이러고 있는 동안에 어쩌면 산 위에서는 싸움이 끝났을지도 몰라요. 그들이 우리와 싸울 생각으로 이리로 온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더 커요. 그럼 우리는 지금까지 헛일을 한 셈이에요. 이번일은 우리가 맡은 첫 번째 일이에요. 그런데 일을 잘 처리하지 못한다면 위에서 좋게 생각하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 한시라도 빨리 형산파로 가야 해요. 가서 한 명이라도 구하고 수호무룡대와 수호봉황대의 힘을 보여줘야 해요. 그렇지 않아요?”
논리 정연한 서서희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서 소저의 말이 옳소. 그렇게 합시다. 자존심을 굽히는 것은 잠시지만 명성은 오래가는 것 아니겠소?”
운암이 그렇게 말하면서 아우성을 치는 남악현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크게 소리쳤다.
“잠시만 조용히 해주시오!”
내공을 잔뜩 실어서 외친 목소리라서 사방으로 쩌렁쩌렁하니 울렸다. 그 기세에 웅성거리던 남악현 사람들이 깜짝 놀라며 입을 다물었다.
“당신들은 뭔가 잘못 알고 있소. 임 장문인을 해친 것은 무림맹이 아니라 호천마궁이오. 무림맹은 광명정대한 명문정파와 세가들이 모여서 만든 곳이오. 임 장문 역시 무림맹에서 큰 활약을 했던 분인데, 우리가 죽였을 리가 없지 않소. 아마 약간의 오해로 뭔가 잘못 전해진 걸 거요. 그보다 지금은 형산파를 도와주는 것이 급하오. 지금 호천마궁의 사악한 무리들이 형산파를 공격하고 있소. 한시라도 빨리 가지 않으면 모두 죽고 말 것이오.”
“당신 말을 어떻게 믿소?”
누군가가 외치는 소리에 운암이 좀 더 목소리에 힘을 실어서 소리쳤다.
“만약 우리가 형산파를 치러 왔다면 당신들이 이러는데 가만히 있을 것 같소? 우리는 형산파를 도와주기 위해서 온 거요. 그러니 길을 내주시오. 이렇게 부탁드리오!”
운암이 그렇게 말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남악현 사람들이 서로를 보면서 어찌할 바를 몰라 하다가 하나둘씩 옆으로 비켜섰다.
“먼저 가 있으소. 우리도 곧 뒤따라 갈 테니.”
“한 번 믿어 볼 거구먼.”
“거짓말이면 주리를 틀 텐께 알아서들 하소.”
“김씨, 김씨는 이리로 와.”
사람들이 너도 나도 한마디씩 하면서 비켜서자 운암이 그들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걱정하지 마시오! 반드시 형산파를 구하겠소! 갑시다!”
운암이 앞장서자 수호무룡대와 수호봉황대가 뒤를 따라 움직였다.
“감동적이었어요. 설마 고개까지 숙일 줄은 몰랐어요.”
서서희가 운암의 옆으로 와서 나직하게 속삭였다.
“후우… 그보다 정말 놀랍소.”
“뭐가요?”
“어떻게 이들의 마음을 이렇게 사로잡은 건지 놀랍소. 무당파도 그동안 양민들을 위해 꾸준히 힘써왔지만 이런 건 생각도 못할 일이오.”
“그러게요. 저도 양민들이 이렇게 무림문파를 따르는 건 처음 봐요. 이야기는 들었지만 실제로 보니 조금 감동이네요.”
“아미타불. 형산파가 그만큼 대단하다는 뜻이겠지요.”
무량이 불호를 외우면서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우뚝 솟아있는 형산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