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295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0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295화
295화. 연이은 사투 (2)
“양 대주를 불러와라.”
조비의 명령에 부하 하나가 재빨리 달려가서 양문의를 불러왔다.
“너는 삼백 명을 데리고 측면으로 돌아가라.”
“알겠습니다.”
양문의가 부하들과 함께 형산파 좌측으로 돌아갔다. 그걸 보고 있던 조비가 이마대에게도 지시를 내렸다.
“이 대주는 형산파의 후문을 맡게. 분명 저들은 형세가 불리하면 뒤쪽으로 달아날 거다. 삼백 명을 데려가도록.”
“알겠습니다.”
이마대는 곧바로 부하들을 이끌고 형산파의 후문으로 돌아갔다. 사실 조비가 형산파에 왔던 이유 중의 하나가 이것 때문이었다. 마지막으로 적운상을 회유하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미리 형산파의 지형을 파악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앞에 있는 자들을 뒤로 물리고 뒤에 있는 자들을 투입해. 그들도 지쳤다 싶으면 뒤로 빼고 새로운 자들을 투입해라. 저들의 수는 얼마 되지 않아. 지치게 만들면 금방 밀릴 거다.”
조비의 생각은 그랬지만 의외로 그들은 오래 버텼다. 조비가 그들을 지치게 할 생각으로 부하들을 돌리면서 차륜전을 생각했듯이, 막정위도 그런 식으로 맞섰기 때문이다.
“뒤로 빠지십시오! 뒤로! 이제 우리가 갑시다!”
“우오오오오오!”
무당삼현이 이끌던 사람들이 뒤로 빠짐과 동시에 중앙에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이 막정위의 지시에 따라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 바람에 정문 밖에서 벌어지던 싸움이 이제는 정문을 중간에 두고 싸우는 형세가 되었다.
“헉헉! 제기랄.”
“끄으…….”
“내 팔… 으…….”
부상을 당한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그들은 이렇다 하게 대단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고만고만한 실력인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았다.
그런 그들이 호천마궁의 정예를 상대로 싸웠으니, 이만큼 싸운 것만 해도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사상자나 부상자가 많은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빨리! 이쪽으로!”
“전각 안으로 부상자들을 옮겨요!”
정문에서 사람들이 치열하게 싸우는 동안 뒤로 빠진 사람들은 부상자를 옮기고 응급처치를 했다.
그때 좌측의 공터에서 커다란 함성소리가 일며 병장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적이다!”
측면을 맡은 건 화산이로였다. 다행인 것은 적들이 한쪽에서만 치고 들어왔다. 만약 양쪽에서 공격해 왔다면 막아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화산이로는 앞장서서 적들을 베었다. 그들의 검은 쉬지 않고 움직이며 화려한 궤적을 남겼다. 화산파의 자랑인 이십사식의 매화검법이었다.
그들의 검법은 쾌나 중보다는 변에 많이 치중되어 있다. 그래서 검이 매화를 그려나갈 때마다 눈이 현란했다. 두 사람이 등을 맞대고 적들을 섬멸하자 거기에 힘을 입은 사람들이 죽기 살기로 호천마궁의 무사들에게 덤벼들었다.
당장에는 걱정이 없었지만 아무래도 쪽수에서 밀리다 보니 오래 버티기는 힘들었다.
“여기는 내가 어떻게 해보겠소. 그러니 연 가주와 마 문주는 가서 화산이로 두 분을 도와주시오.”
홍문형이 하는 말에 연협성과 마조형이 잠시 갈등을 했다. 뒤쪽에는 적들이 없었다. 온다 해도 험한 산을 돌아서 와야 하니 시간이 걸렸다. 그동안은 화산이로를 도와줘도 괜찮을 것 같았다.
하지만 만에 하나 홍문형 혼자 있을 때 적들이 닥친다면 그대로 뚫리고 만다. 두 사람은 그게 불안해서 선뜻 자리를 뜨지 못했다.
“허허. 걱정하지 마시오. 몇 명이 몰려오든 일각 정도는 막아낼 수 있소이다. 그러니 저들을 도와주시오.”
“음, 알겠습니다. 그럼 뒤를 부탁합니다.”
“갑시다.”
연협성과 마조형이 어쩔 수 없이 동의를 하고 수하들과 함께 화산이로가 싸우고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사형. 여기.”
주양악이 면포를 건네자 적운상이 얼굴에 잔뜩 묻은 피를 닦아내면서 주위를 둘러봤다. 정문 쪽은 또 한 차례 사람들이 교대를 하는 바람에 이제는 호천마궁의 무사들이 정문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그리고 측면은 화산이로와 연협성, 마조형이 뭉쳐서 적들을 잘 막아내고 있었지만 그 반대쪽은 완전히 텅 비어 있었다. 만약 그쪽으로 적들이 치고 들어온다면 도리 없이 당하는 수밖에 없었다.
뒤쪽을 보니 거기에는 홍문형이 겨우 십여 명의 수하들과 함께 대기하고 있었다. 역시나 그쪽도 적들이 밀고 들어온다면 방법이 없었다.
여러모로 상황이 많이 불리했다. 이대로 계속 싸우면 결국에는 패하고 만다. 상황을 뒤엎을 뭔가가 필요했다.
적운상은 아까 조비를 놓친 것이 너무나 아쉬웠다. 그때 조비를 잡았다면 이런 상황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후우…….”
크게 한숨을 내쉰 적운상이 주양악을 봤다. 그러자 주양악이 생긋 미소를 지었다. 적운상은 말없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아, 말하지 못하게 있는데, 수연 언니, 할아버님이 위독해서 못 오고 있대.”
“그래?”
“응.”
“그래. 나중에 같이 그리로 찾아가자.”
“응. 그럼 수연 언니가 기뻐할 거야.”
한창 싸움 중인 지금의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 대화였다. 하지만 적운상은 주양악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더 대화를 나눴다. 그러다 주양악을 품에 꼭 안고 귀에 대고 속삭였다.
“사랑한다.”
“에?”
주양악이 멍한 얼굴로 있는 사이에 적운상은 훌쩍 몸을 날렸다. 그리고 텅 비어 있는 측면으로 가 담을 뛰어넘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주양악이 적운상이 간 곳으로 달려가려고 했다.
하지만 뒤쪽으로 밀린 사람들이 우르르 뭉쳐서 오는 바람에 길이 막히고 말았다.
“사형!”
주양악이 적운상을 불렀다. 하지만 적운상의 모습은 이미 보이지가 않았다.
* * *
담을 넘은 적운상은 숲을 가로지르며 빠르게 산을 내려갔다. 그러다 형산파의 뒤쪽으로 돌아가고 있던 이마대와 그의 부하들을 봤다. 적운상이 다급하게 몸을 숨기려고 했지만 늦었다. 이마대의 부하들 중 한 명이 적운상을 본 것이다.
“헛! 적운상이다!”
“어디?”
“저 위쪽에!”
부하들이 소리를 지르면서 위쪽으로 올라가려고 했다. 그러자 이마대가 내공을 실어서 쩌렁쩌렁하니 외쳤다.
“그만!”
그 목소리가 어찌나 큰지 소란스럽던 주위가 일시에 조용해졌다.
“누가 봤나?”
“네?”
“적운상은 누가 봤냐고 물었다.”
“제가 봤습니다.”
“어디냐?”
“저쪽 위에 분명히 있었습니다.”
“어디? 저 위에 누가 있냐?”
그가 가리키는 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적운상은 납작 엎드려서 숨어있었기 때문에 보이지가 않았다.
“저기 어딘가에 숨어 있을 겁니다.”
“이런 바보 같은 놈!”
이마대가 버럭 화를 내면서 그의 따귀를 후려쳤다. 그러자 그가 넘어질 것같이 옆으로 휘청하다가 다시 중심을 잡고 섰다.
“환영이라도 본 거냐? 적운상이 저기 있었으면 우리에게 벌써 덤벼들었지! 숨어 있다고? 아까 그가 날뛰는 것을 못 봤냐?”
“봐, 봤습니다.”
“그런 그가 우리를 피해 숨어있을 것 같냐?”
“아닙니다.”
“흥! 정신들 똑바로 차려! 이놈처럼 또 헛소리를 하는 놈은 가만두지 않겠다!”
“넷!”
이마대가 화를 내면서 소리치자 모두 바짝 얼어서 바로 대답을 했다.
“좋아! 그럼 계속 가! 뒤처지는 놈은 두고 간다!”
“넷!!”
부하들이 다시 산을 타고 이동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마대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적운상이 있는 곳을 힐끗 봤다. 사실 그도 적운상을 봤었다. 아주 잠시였지만 적운상이 확실했다.
‘적 아우.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이게 다야. 꼭 살아남게나.’
그런 생각을 하며 이마대도 부하들과 함께 발걸음을 옮겼다. 그들이 가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던 적운상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주 잠시지만 이마대와 눈이 마주쳤었다.
분명 이마대는 자신이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냥 저렇게 가버렸다. 그 이유를 적운상은 알고 있었다.
이마대의 배려였다. 아마 이게 마지막으로 마음을 써주는 것이리라.
괜히 코끝이 시큰해져왔다. 하지만 계속 여기서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었다. 빨리 조비를 잡아야 했다.
적운상이 이쪽으로 온 것은 적의 후위로 돌아가서 조비를 잡기 위해서였다. 조비는 적운상이 형산파에 남아있다고 여기며 계속 그쪽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적운상이 거기에 없다는 것을 알면 경계를 할 테고 그럼 붙잡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아니 그때는 포기를 해야 했다. 그러니 그전에 먼저 조비를 찾아서 잡아야 했다.
쉬이이익!
적운상은 비마보를 펼쳐서 나무와 나무 사이를 빠르게 달려갔다. 그렇게 잠시 가자 좌측에서 이동하고 있는 호천마궁의 무사들이 보였다.
‘저긴가?’
적운상은 나무 위로 올라가서 조비를 찾았다. 적들은 생각보다 많이 남아있었다. 아까 이마대가 끌고 간 무사들이 얼추 이, 삼백 명은 됐었다. 그리고 지금 이곳에 있는 이들의 수가 천 명이 넘었다.
적운상은 마음이 다급해졌다. 형산파에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전에 어떻게든 조비를 붙잡아야 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조비를 찾다가 드디어 발견했다. 조비는 십여 장 정도 떨어진 곳에 덩치가 커다란 사내와 함께 서 있었다.
* * *
넓은 관도를 따라 한적하니 수레 한 대가 가고 있었다. 수레를 모는 사람은 순진하게 생긴 장년사내였다. 고생을 많이 했는지 피부는 검고 주름살도 많았다.
하지만 얼굴에는 잔잔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하나밖에 없는 딸이 얼마 전에 혼인을 하더니 애를 낳은 것이다. 고 조그만 것이 꼼지락거리는 걸 생각하면 절로 웃음이 나왔다.
아직 할 일이 남아있는데도 벌써부터 손자 녀석의 얼굴이 눈에 아른거렸다. 그때 맞은편에서 뿌옇게 먼지가 일었다.
그는 무슨 일인가 싶어서 눈을 크게 떴다. 가끔 모래바람이 불기는 하지만 저렇게 자욱하게 이는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잠시 그렇게 멍하게 보고 있던 거의 눈이 더 커다래지면서 입이 쩍하니 벌어졌다.
사람들이 뛰어오고 있었다.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니라 몇 백 명은 되는 것 같았다. 그들로 인해 자욱하니 흙먼지가 일었던 것이다.
쉬쉬쉬쉬쉿!
그들은 마치 바람처럼 빠르게 그의 옆을 스쳐지나갔다. 어떤 사람들은 가볍게 그의 머리 위로 날아서 가기도 했다.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알 수가 없었다.
멍하니 넋을 잃고 있는 동안 그들이 모두 지나쳐갔다. 그제야 그는 자신의 바지가 축축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너무나 놀라서 겁을 먹고 오줌을 지린 것이다.
“이런…….”
그가 벌떡 일어나서 바지를 탈탈 털다가 뒤를 돌아봤다. 꿈일 것이다. 꿈이 분명했다. 그를 지나쳐갔던 사람들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