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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형산파 329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25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아! 형산파 329화

329화. 악안에서 온 소녀 (1)

 

형산파는 요 며칠간 많은 손님들을 맞아들이느라 분주했다. 적운상이 무당삼현, 화산이로와 비무를 한다는 소문을 듣고 몰려온 사람들이었다. 그중에는 생각지도 못하게 무림맹의 수뇌부들, 그러니까 거대문파의 장문인들까지 포함이 되어 있었다.

무림맹을 적대시하던 형산파였기 때문에 당연히 그들을 대하는 태도가 좋지 않았다. 몇몇 제자들은 대놓고 그들에게 뭐라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은 꾹 참으며 아무것도 못 들은 척 무시를 했다. 이번 비무는 그들에게 굉장히 중요했기 때문에 형산파의 제자들이 뭐라 하건 일체 상대를 하지 않았다.

게다가 비무를 코앞에 둔 무당삼현과 화산이로의 신경이 예민해져 있어서 작은 소란이라도 일라치면 그 화가 장문인들에게까지 미쳤다.

“어르신. 탈인의 경지라는 것이 그리 대단한 것입니까?”

화산파의 장문인인 적양진인이 조용히 눈을 감고 있는 화산이로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그러자 일로가 허허롭게 웃으면서 되물었다.

“뭐가 그리 궁금한 게냐?”

“이곳으로 오는 도중에 적운상이 호천마궁의 궁주와 겨루는 것을 봤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의 싸움은 순식간에 결정이 났는데 호천마궁의 궁주가 말하기를 그도 탈인의 경지에 올랐지만 적운상을 이기지는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순순히 패배를 인정하고 십 년 동안 봉문을 했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더냐?”

일로가 조금 관심을 보이면서 적양진인에게 묻자 지금껏 눈을 감고 있던 이로가 눈을 떴다. 하지만 워낙에 과묵한 이로인지라 말은 않고 조용히 적양진인을 쳐다보기만 했다.

적양진인은 그런 이로의 시선을 받자 잘못한 것도 없는데 기가 죽어서 고개를 돌렸다. 다른 사람들한테는 화산파의 장문인인 적양진인이 대단하게 보일지 몰라도 화산이로에게는 어린애나 마찬가지였다.

“큼, 그래서 말입니다. 그게 궁금해서 여쭤보러 온 겁니다.”

사실은 그것보다는 화산이로가 적운상을 이길 수 있을지 조금 불안해서 온 것이었다. 호천마궁의 궁주인 조황인이 스스로 패배를 인정하고 가버리는 것을 봤으니 불안한 것이 당연했다.

게다가 같은 탈인의 경지에 올라 있는데 패하지 않았던가?

“탈인의 경지에 오르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쾌속의 공간 속에서 움직이게 된다. 눈 한 번 깜빡일 시간에 수백 번의 검을 휘두를 수 있는 시공간이다. 그걸 적운상 그 아이는 무극의 영역이라고 하더구나. 틀린 말은 아니지. 그 영역에 들어서면 그 이상의 빠르기는 있을 수가 없으니까. 하지만 그런 쾌속의 공간에 머물다 보니 몸이 버티지를 못한다. 억지로 버티다가는 몸이 갈가리 찢기고 말아.”

“그렇습니까?”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라 적양진인이 조금 놀란 얼굴로 물었다. 그러자 일로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그렇지. 나나 사제가 무극의 영역에서 머물 수 있는 시간은 겨우 삼 초식을 펼칠 정도다. 말은 안 하고 있지만 무당삼현도 그게 한계일 게야. 세월이 아무리 지나도, 아무리 노력을 해도 그 이상의 시간을 머무는 것은 무리다.”

“그럼 적운상도 삼 초식이 한계이겠군요.”

“그럴 게다. 우리와 같은 경지에 올라 있다면.”

“허면 누가 먼저 그 무극의 영역에 들어가느냐로 승패가 갈리겠군요. 그리 빠르다면 같은 경지에 있어도 방어하기가 어렵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다. 상대가 무극의 영역에 들어가면 몸으로 알 수가 있다. 일전에 적운상이 무당삼현의 공격을 막아낸 적이 있지.”

“그렇다면 완전히 대등한 겁니까?”

“아니다. 같이 무극의 영역에 들어가면 서로 삼 초식을 펼칠 수 있지만, 그 초식은 모두 달라. 어떤 초식을 펼치느냐가 승부의 관건이지. 그리고 무극의 영역에서 나와서 다시 무극의 영역에 들어가기까지의 시간이 얼마나 적게 걸리느냐 또한 중요해.”

“그렇군요.”

이해가 간다는 듯이 적양진인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시 물었다.

“그럼 비무는 어떤 식으로 하실 생각입니까?”

“상의한 바는 없지만 무당삼현은 아마 일현이 나설 게다. 세 명이 한꺼번에 덤빌 수는 없겠지. 일단 일현이 먼저 싸우고 나면 내가 나설 생각이다.”

일로가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미 승패는 나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일현과 적운상이 싸우면 싫든 좋든 적운상은 자신이 가진 최고의 절기를 보여야 할 터, 충분히 쉬었다가 다시 싸운다고 해도 그다음에 싸우는 일로가 유리했다.

“알겠습니다. 그가 더 이상 날뛰지 못하도록 적절히 제재를 가해주십시오.”

“뭔가 착각을 하고 있구나.”

“네?”

“일현이 질 수도 있다. 나 역시 마찬가지고. 제재라니? 어림도 없는 일이다. 듣자니 그 아이를 적대시하는 것 같던데 당장에 그만두어라.”

“하지만 본문의 매화검수들이 적운상의 손에 죽었습니다. 이대로 그냥 넘어갈 수는 없습니다.”

“쯧쯧. 어찌 아직도 그런 것에 연연하더냐? 칼을 들고 다니면 언젠가는 칼에 목이 날아간다는 걸 몰랐단 말이더냐? 적운상이 매화검수들을 비겁하게 죽였느냐?”

“아닙니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허면, 이유도 없이 그랬더냐?”

“그건…….”

적양진인이 계속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하자 일로가 다시 혀를 찼다.

“쯧쯧. 사소한 복수심으로 인해 화산파의 기둥뿌리가 흔들릴 수도 있다.”

“어르신들이 계시는데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그 아이가 독한 마음 먹고 화산파의 제자들을 죽이고 다니면 누가 막을 수 있다더냐?”

“그야 당연히 어르신들이…….”

“어림없다.”

일로는 적양진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딱 잘라 말했다. 이에 적양진인이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일로를 봤다.

“적운상이 치고 빠지면 우리도 어쩔 수 없다. 나나 사제의 나이가 올해 몇이더냐? 늙으면 무공이 높아도 지구력이 떨어지는 법이다. 팔팔한 젊은 녀석을 무슨 수로 당해?”

일로가 약간 화를 내면서 말하자 적양진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게다가 나와 사제가 죽고 난 이후에는 어떻게 할 테냐? 내가 천년만년 살면서 네놈들 뒤치다꺼리를 했으면 좋겠지만 이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에 비해 적운상, 그 아이는 아직도 살날이 많이 남지 않았느냐? 무당삼현마저 죽고 나면 누가 그 아이를 막을 수 있느냐?”

생각해보니 그랬다. 거기까지 생각해보지 못했던 적양진인은 심각하게 얼굴이 굳어버렸다.

“아둔하구나. 아둔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그간의 은원일랑 모두 풀어버리고 절대로 적운상을 적으로 돌리지 말거라. 네 대에 화산파가 문을 닫는 꼴을 보고 싶지 않으면 시키는 대로 해야 할 게다.”

“알겠습니다. 따르겠습니다.”

그건 생각하고 자시고 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적운상은 화산이로가 인정을 하고 비무까지 하려는 상대였다. 게다가 화산이로가 지면 어차피 화산파는 십 년간 봉문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화산이로가 이긴다고 해도 적운상이 죽지 않는 이상 화산파는 안전하지 못했다. 그러니 일로의 말대로 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 같은 대화가 다른 곳에서도 이뤄지고 있었다. 무당파의 장문인인 일영진인과 몇몇 장문인들도 무당삼현에게서 화산이로가 하는 말과 비슷한 말을 듣고 있었다.

“화해를 하란 말씀입니까?”

“화해든 뭐든 알아서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란 말이다, 이 멍청한 놈아.”

성질이 괄괄한 이로가 한심하다는 듯이 일영진인을 보면서 말했다.

“적운상을 상대하기 위해서 우리를 부른 시점에서 이미 무당파는 패배를 한 것이다. 우리들이 적운상을 이긴다고 해서 얻는 것이 무엇이더냐?”

“…….”

일영진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잠시 생각을 하다가 대답을 했다.

“얻는 건 없어도 최소한 잃는 건 없습니다.”

“틀렸다, 이놈아. 그 머리로 어떻게 장문인 자리에 앉아 있는 게야? 쯧쯧.”

이현이 대놓고 일영진인을 구박했다. 보는 사람들이 있으니 부끄러워할 만도 하련만 일영진인은 묵묵히 감내해냈다.

“지금 네 눈에는 적운상의 비무를 보기 위해서 몰려든 저 많은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단 말이냐? 적운상은 이기나 지나 결국 커다란 명성을 얻게 될 거다. 우리가 인정하고 겨뤘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인데, 그걸 직접 눈으로 확인하면 어떻게 되겠느냐?”

“비무를 제의한 건 어르신들이잖습니까?”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운산이 눈치 없이 끼어들면서 말했다. 그는 이곳으로 오면서 무당삼현의 수발을 들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그들을 대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이런 멍청한 놈! 그럼 우리가 칼 들고 야밤에 찾아가 뒤에서 쑤시랴? 처음에 일영이 찾아와서 부탁을 하기에 우리는 적운상이 대악인인 줄 알았다. 그래서 나왔지 안 그럼 안 나왔어. 그런데 직접 만나보니 그놈은 성정이 곧다. 곧아도 너무 곧아. 보통은 그렇게 성정이 곧으면 부러지기 마련이다. 어떻게든 꺾여도 꺾이는 법이지. 하지만 그놈은 그 곧은 성정을 유지할 정도로 무공이 뛰어나다. 그게 아마 네놈들 비위를 건드렸겠지. 아니냐?”

운산은 적운상에 대해서 잠시 생각을 해봤다. 무슨 일이든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않고 거침없이 내키는 대로 밀고 나가는 성격이 곧은 거라고는 여겨지지 않았다. 어찌 보면 그저 막나갈 뿐이고 단지 그걸 받쳐줄 수 있을 정도로 무공이 뛰어날 뿐이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적운상이 그리 행동을 한 경우는 대부분이 비틀리고 꼬인 것을 보아 넘기지 못해서였다.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로 손을 쓸 때도 있었지만, 원인을 알아보면 항상 그가 옳았다.

‘그렇군. 곧은 성격이군.’

그제야 납득을 하며 운산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데 이현의 목소리가 또다시 들려왔다.

“적운상이 만약 그런 성격이 아니라 여자를 탐하고 재물을 욕심내며 사람 죽이기를 밥 먹는 것보다 쉽게 여긴다면 어땠을 것 같으냐? 하긴 그러면 우리들을 부르지도 않았겠지.”

맞는 말이었다. 적운상이 그랬다면 아무리 무공이 높아도 무림맹에서 충분히 감당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으니 무당삼현과 화산이로까지 부른 것이다.

“이만큼 이야기했으면 알아들었겠지? 지난일, 다 털어버리고 가서 친하게 지내. 그렇지 않더라도 적으로 두지 마라. 그랬다가는 그놈이 죽을 때까지는 평생 발 뻗고 못 자.”

“하아… 이리된 마당에 무얼 숨기겠습니까? 사실 아직 어르신들게 말씀드리지 않은 일이 있습니다.”

“뭔데?”

“그게 그러니까…….”

일영진인은 이곳으로 오는 도중에 생긴 일을 간략하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무당삼현이 비무에서 지면 무당파가 십 년 동안 봉문을 해야 한다는 것도 말했다.

무당삼현 중 이현의 성격이 제일 괄괄하기 때문에 일영진인은 이야기하는 내내 그의 눈치만 살폈다. 하지만 말이 끝나자 이현은 오히려 잘됐다고 껄껄 웃었고, 생각지도 못한 삼현이 버럭 화를 냈다.

“네 이놈! 봉문이라니! 어찌 그리 가볍게 입을 놀렸단 말이냐?”

내공이 실린 목소리가 쩌렁쩌렁하니 울리자 일영진인은 물론이고 같이 있던 사람들도 움찔하면서 몸을 떨었다.

“그, 그때는 어쩔 수가 없는…….”

“닥치거라! 거기서 한마디만 더 하면 네놈의 다리를 분질러놓겠다.”

“클클. 사제야. 왜 그리 흥분을 하느냐? 오히려 잘된 일이지 않으냐?”

“아니, 뭐가 잘됐다는 겁니까? 봉문이라니요? 그게 말이 되는 일입니까?”

“누가 죽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당파가 망한 것도 아니다. 그저 문을 걸어 잠글 뿐인데 도대체 뭐가 문제냐? 원래 무당파는 도문(道門)이다. 검문(劍門)이 아니란 말이다. 장삼봉 조사께서 무당파를 세운 이후로 수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존경해서 무당파를 높이 치켜세워줬다. 심지어 당신의 황제조차도 조사의 깊은 도력(道力)에 감탄을 하지 않았더냐? 그들 모두가 조사님의 깨달음에 이끌렸던 것이지 무공에 이끌렸던 것이 아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무당파의 면모가 어찌 되었더냐? 몸을 지키고 수행의 일종으로 수련하던 검을 마치 산적들처럼 자랑스럽게 가지고 다니면서 어깨에 힘을 주고 다니지 않았더냐? 예전에 우리가 그리 한탄하던 것을 잊었느냐? 사제, 그때 바꾸려 했으나 이미 우리도 거기에 물들어 있어 어떻게 할 수가 없었지. 또한 방법조차도 몰랐다. 그런데 적운상으로 인해 확실히 바꿀 수가 있을 것 같구나. 그렇지 않습니까? 사형.”

이현이 지금까지 입을 다물고 조용히 앉아 있기만 하던 일현을 봤다. 그러자 일현이 크게 한숨을 쉬면서 입을 열었다.

“하아… 네 말이 옳다. 무당파는 이번 비무의 승패와 상관없이 무조건 십 년 동안 봉문을 하거라. 그동안 자중하며 검을 닦기보다는 마음을 닦고 깨달음을 쫓아라. 무엇이든 꾸준히 노력하고 세대가 거듭되면 발전을 하는 법이다. 무당파의 무공이 그러하지 않더냐? 돌이켜 보건대 장삼봉 조사보다 뛰어난 무공을 지닌 이는 몇 명이나 있었다. 하지만 모두 잠깐의 명성만 얻고 사그라졌다. 그 이유가 무엇이냐? 무(武)는 높은데 도(道)가 낮으니 어찌 칭송을 받겠느냐? 일영아.”

“네. 경청하고 있습니다.”

일영진인이 고개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사제와 내가 하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네. 가슴에 깊이 새기어 두고두고 참고하겠습니다.”

“그래. 무당파가 진정한 도문으로서 거듭난다면 지금보다 몇 배는 더 부흥하게 될 게다. 형산파를 보아라. 형산파는 비록 지방에 있는 작은 문파에 불과하지만 수 년 동안 스스로를 희생하며 많은 사람들을 바른 길로 이끌어왔다. 그것이 무엇이냐? 나에게 도가 없다면 만인에게서 찾고 만인에게 도가 없다면 다시 내게서 찾아야 하는 법! 불교에서 말하는 대승의 법도가 그것이지 않더냐? 오늘날 무당과 소림사의 명성이 하늘 찌른다지만 모두가 다 허명이다. 무당파가 진정 어려움에 처했을 때, 이익을 바라지 않고 순수한 마음으로 도움을 줄 이들이 몇 명이나 있을 것 같으냐? 형산파는 수천 명이나 되는 이들이 오더구나. 그네들 중에는 무공의 일 초식조차 모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이가 들어 허리를 펴지 못하는 노인도 있었다. 그런데도 모두들 형산파가 위기에 처하니 곡괭이와 낫을 들고 모이더구나. 나는 그것을 보면서 참으로 부끄러웠다. 무당의 도가 높고 소림의 덕이 높다지만 형산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힘을 가졌으면 더 큰 힘을 가지기 위해서 노력하기보다는 약한 사람을 보살펴줘야 하거늘, 그 간단한 일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으니…….”

일현이 하는 말 때문에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도문의 장문인들이었다. 그들 역시 무당파와 마찬가지로 도(道)보다는 무(武)를 쫓았다.

사람들에게 베푼다고 베풀었지만 거기에 자기희생은 없었다. 그저 가진 것을 내놓았을 뿐이다.

“아미타불. 오늘 이 우매한 땡초가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여래가 말씀하시기를 자신이 지옥에 떨어지지 않으면 누가 지옥에 떨어져 우매한 자들을 건져내느냐 하셨건만…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 수가 없습니다.”

소림사의 방장인 구지선사가 한탄을 하듯이 말했다. 그러자 일현이 그를 보며 허허롭게 웃었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모든 일은 마음먹는 그 순간이 시작이지 않은가? 아침에 도를 깨우치면 저녁에 죽어도 여한이 없는 법. 지금부터라도 원대한 계획을 세워서 하나씩 이루어가면 될 것일세.”

“명심하겠습니다.”

“어? 모두 여기에 있었네요.”

갑자기 입구에서 들려온 맑은 목소리에 모두가 그쪽을 봤다. 객청의 입구에는 체구가 작은 여인이 한 명 서 있었다. 은서린이었다.

“무슨 일이오? 은 소저.”

운산이 숙연한 분위기에서도 부드럽게 묻자 은서린이 미소를 지었다.

“수연 언니가 왔어요. 적 사형의 서찰을 가지고 왔대요. 그래서 저 할아버지들한테 할 말이 있데요.”

무당삼현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은서린의 태도에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너무 친근감 있게 불렀기 때문이다.

“그래. 가보자꾸나.”

성격이 조금 까칠한 이현이 웃으면서 일현, 삼현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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