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318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3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318화
318화. 난전(亂戰) (3)
일영진인은 숨이 가빴다. 적들은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었다. 처음의 호기로운 마음은 온데간데없었다. 그는 도를 닦는 도인(道人)이었다. 사람을 죽이는 일이 좋을 리가 없었다.
살기 위해서 검을 휘두르고 있었지만 마음에 부담이 됐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구지선사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했다.
사람을 죽이는 업보를 지느니 자신이 죽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 때문에 끝까지 살계(殺戒)를 열지 않고 있었다.
그때 처참한 비명소리와 함께 머리를 산발한 노인이 나타났다. 쾌수난마 갈천기였다.
그를 알아본 구지선사가 눈을 부릅떴다. 저 악인이 왜 이 자리에 있단 말인가?
과거에 갈천기는 구지선사의 사제를 죽였었다. 그로 인해 그 당시 소림사에서는 갈천기를 죽이기 위해 무림 모든 방파에 무림첩을 돌려서 그를 단죄해줄 것을 부탁했다. 또한 추적대를 조직해서 갈천기를 쫓았었다.
그때 구지선사는 폐관수련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추적대에 끼지 못했었다. 구지선사가 폐관수련을 끝내고 나왔을 때 들은 소식은 추적대가 전멸했다는 것이었다.
구지선사는 뒤늦게 갈천기를 뒤쫓았다. 폐관수련을 통해 여래신장(如來神掌)을 대성(大成)한 구지선사는 두려울 것이 없었다. 하지만 갈천기를 만날 수가 없었다. 목숨에 위험을 느낀 갈천기가 종적을 감춘 것이다.
그 이후, 갈천기의 이름만 들려오면 구지선사는 소림사를 나와 그를 찾아갔다. 하지만 그때마다 번번이 허탕을 쳤다. 그러다 이제야 만난 것이다.
“은원은 풀라고 있는 법! 오늘 노납이 살계를 열리라!”
내공이 실린 목소리가 쩌렁쩌렁하니 울렸다. 그러자 목숨을 걸고 치열하게 싸우는 와중에도 사람들이 움찔하며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구지선사가 가사를 풀어놓고 펄럭거리는 승복을 금줄로 조여서 묶고 있었다. 그것은 소림승들이 싸움 전에 마음을 여미는 하나의 의식이었다.
“흥! 누군가 했더니 소림사의 땡중이었구만. 지랄 땡중 같으니라고. 고상한 척은 다 하지. 그러다 일찍 뒈지는 놈들을 많이 봤지.”
입이 험한 적마수 지철목이 구지선사를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 하지만 구지선사는 개의치 않고 갈천기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무시당했다고 생각한 지철목이 구지선사를 향해 몸을 날렸다.
“감히 날 무시하는 거냐! 땡중아!”
지철목의 붉은 기운 가득한 양손이 구지선사의 양쪽 관자놀이를 노리고 파고들었다. 그 기세가 어찌나 흉흉한지 근처에 있던 사람들의 몸이 다 떨릴 정도였다.
그럼에도 구지선사는 지철목의 적마수를 피하지 않았다. 발로 땅을 찍어 마보자세를 취하면서 양손을 합장하듯이 가슴 앞에 모았다.
“하압!”
쿵!
힘찬 기합소리가 사람들의 귀청을 때렸다. 사자후(獅子吼)가 따로 없었다. 뒤이어 지철목의 적마수와 구지선사의 여래신장이 부딪쳤다.
콰아아아아아앙!
손과 손이 부딪쳤는데 엄청난 폭음이 울렸다. 동시에 구지선사를 향해 달려들었던 지철목이 배는 빠르게 뒤로 튕겨나갔다.
“크윽!”
공중제비를 돌며 땅으로 내려선 지철목은 서너 걸음이나 더 밀려나서야 제대로 중심을 잡았다. 그에 비해 구지선사는 마보자세 그대로 서 있었다.
“오오…….”
사람들은 크게 감탄을 했다. 내공의 중후함만을 따지자면 소림이 제일이었다. 내공 하면 소림, 소림 하면 내공이었다. 그렇듯이 구지선사의 내공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그의 나이 올해 육십하고도 셋이었다. 그런데 가진 내공은 이미 삼갑자(三甲子)를 넘어서 있었다. 그것도 오로지 반야신공(般若神功) 한 가지의 정순한 내공이었다.
“나서라! 갈천기! 노납이 두려운가?”
내공이 실린 외침에 가까이 있던 사람들이 귀를 막고 괴로워했다. 그들의 무공이 뛰어났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내상을 입었을지도 몰랐다.
“땡중놈아! 아직 나하고의 싸움이 끝나지 않았다! 망할!”
지철목이 욕을 하며 다시 구지선사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자 검이 하나 불쑥 튀어나와서 그의 앞을 막았다. 지철목은 그대로 검을 잡아서 우그러트리려고 했다.
하지만 검을 잡을 수가 없었다. 검은 그가 뻗어내는 적마수와 딱 이촌(二寸)의 간격을 유지하며 뒤로 빠졌다. 그러다 그가 완전히 손을 뻗어내고 난 이후에 회수를 하자, 역시나 이촌의 간격을 두고 따라 들어갔다.
“헛!”
지철목은 상대의 절묘한 검술에 깜짝 놀라며 급히 몸을 틀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가슴에 구멍이 뚫렸을 것이다. 몸을 바로 한 지철목이 그제야 상대를 봤다.
그는 송문고검을 늘어트리고 있는 무당파의 장문인, 일영진인이었다.
“그대는 나하고 놉시다. 저들은 해결해야 할 은원이 있소.”
“웃기지 마라. 말코 도사놈아! 칼 든 놈치고 은원이 없는 놈이 어디 있단 말이냐? 육시랄 놈 같으니라고.”
“입이 거칠구려. 내 그 입부터 다물게 해주겠소.”
“닥쳐라!”
지철목이 일영진인을 향해 적마수를 펼치려다가 멈칫했다. 옆에서 들려오는 기합소리와 엄청난 기세와 위력이 담긴 장력이 서로 맞부딪치는 소리 때문이었다.
“흐압!”
“타핫!”
퍼퍼퍼퍼퍼퍼퍼퍼펑!
구지선사의 손바닥과 갈천기의 손바닥이 연속으로 부딪쳤다. 그때마다 커다란 가죽 북이 터져나가는 것 같은 소리가 크게 울렸다. 내공 대결이자 힘 대결이었다.
구지선사의 여래신장은 극양(極陽)의 내공을 밑바탕으로 한 강맹한 장법이었다. 하지만 상대를 타격하는 장법이 아니라 누르는 장법이었다.
그래서 보통의 장법을 맞으면 뼈가 부러지거나 근육이 파열되지만 여래신장에 맞으면 손바닥이 푹 파고 들어간다.
그에 비해 갈천기가 펼치는 흑살십이장법은 마치 폭약이 터지듯이 맞은 부위가 터져나갔다. 여래신장과는 극과 극이었다.
그런 두 사람의 장법이 계속 맞부딪치니 주위의 사람들은 그들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오히려 다칠까 뒤로 물러나며 거리를 뒀다.
“타합! 여래불선(如來佛宣)!”
구지선사의 입에서 사자후가 터져 나오면서 무지막지한 장력이 양손바닥에서 밀려나왔다. 갈천기는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기세에 깜짝 놀라 다급하게 피하려고 했으나 그럴 여유가 없었다. 이에 어쩔 수 없이 맞받아쳐야 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크윽!”
갈천기가 여섯 걸음이나 뒤로 밀리다가 간신히 중심을 잡고 바로 섰다. 구지선사는 다리가 발목까지 땅을 파고 들어갔다.
“갈!”
구지선사가 크게 일갈하며 갈천기를 향해 몸을 날렸다. 갈천기는 내공을 끌어올려 흑살십이장법의 절초를 펼쳤다. 흑살십이장법도 위력만큼은 강호일절이라고 할 수가 있건만, 구지선사의 여래장법은 당해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빠르기와 변화에 치중한 초식을 펼친 것이다. 갈천기의 손이 수없이 많은 잔영을 남기며 구지선사의 상체를 뒤덮어갔다. 그걸 보고 사람들이 크게 감탄을 했다.
삼대마두라더니 과연 그렇게 불릴 만했다. 저 장법은 피할 수가 없었다. 길이 있다면 뒤로 물러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손의 잔영이 더 많아진다.
갈천기가 펼치는 초식은 갈수록 손의 수가 늘어나서 나중에는 환영까지 보일 정도였다.
“여래현신(如來現身)!”
구지선사가 크게 소리치며 양손으로 크게 원을 그렸다. 그러자 놀랍게도 갈천기의 수많은 손이 그 원에 걸려 모두 튕겨나갔다.
“오오…….”
사람들은 갈천기가 절초를 펼쳤을 때만큼이나 크게 감탄을 했다. 구지선사가 장법을 펼치는 모습은 마치 천수관음보살을 보는 것 같았다. 그만큼 많은 손이 원을 그리며 갈천기의 손을 모두 쳐냈던 것이다.
“죽어라!”
갑자기 갈천기의 손이 구지선사의 팔을 감싸며 가슴을 쳐갔다. 교묘하고 실로 시기적절한 때에 펼쳐진 한 수였다.
구지선사가 그대로 손을 뻗으면 갈천기도 무사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갈천기의 손바닥이 구지선사의 가슴을 치게 된다.
갈천기의 흑살십이장법에 맞으면 그 부위가 터져나간다. 그런 충격을 받으면 구지선사의 장력이 한순간이나마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갈천기는 그렇게 생각하며 지금의 초식을 쓴 것이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콰콰아아아아앙!
“크흑!”
“커헉!”
갈천기가 구지선사의 가슴을 쳤고, 구지선사도 갈천기의 가슴을 쳤다. 이에 두 사람은 똑같이 대여섯 발자국이나 뒤로 밀려났다.
갈천기가 먼저 한쪽 무릎을 꿇으면서 한 움큼의 피를 토해냈다. 아무래도 가슴뼈가 으스러진 것 같았다. 숨을 쉴 때마다 극심한 통증이 몰려왔다.
하지만 갈천기는 웃었다.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기 때문이다. 자신은 이 정도지만 구지선사는 더한 내상을 입었으리라고 여겼다. 그러나 눈을 들어 구지선사를 본 순간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구지선사도 입가로 피를 흘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한 손을 가슴 앞에 대고 꼿꼿하게 서 있었다.
“왜 그렇게 놀라는가?”
“어, 어떻게…….”
“소림승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호신기공을 익히지. 내 몸의 고통을 인내하는 것, 그것이 소림사 무공의 시작이오.”
사실이 그랬다. 소림승들이 무공을 익히는 근본적인 이유는 그것이 수행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소림사에 입문하면 가장 기초권법인 나한권(羅漢拳)과 더불어 철포삼(鐵袍衫)과 같은 호신기공을 익히게 된다. 철포삼은 몸을 강철과 같이 만들어주지만 그만큼의 고통을 인내해야 하는 호신기공이었다.
그래서 소림승들은 기본적으로 철포삼을 어느 정도는 모두 익히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정도의 성취로 갈천기의 흑살십이장을 막아낼 수는 없었다.
다른 소림승들이 금종조와 같은 상승의 호신기공을 익힐 때, 구지선사는 꾸준히 철포삼을 수련했다. 그리고 남는 시간은 반야신공과 여래신장을 익히는 데 할애했다.
그랬기에 한 번 정도는 갈천기의 흑살십이장을 버틸 수가 있었던 것이다.
“일어서시오!”
구지선사가 크게 일갈했다. 갈천기는 그런 구지선사를 무서운 눈으로 노려보면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오늘 노납은 사십 년 만에 살계를 열 것이오!”
“크크! 죽이면 그냥 죽이는 거지 그런 말을 뭐하러 한단 말이냐? 혹시 날 죽이는 것이 두려운 것이냐?”
“그대는 죽어 마땅한 악인이오. 나는 망설이지 않겠소.”
“나 역시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 어서 와서 나를 죽여 봐라.”
“여래께서 말씀하시기를!”
후우우우웅! 훙! 훙!
구지선사가 팔을 크게 휘두르면서 갈천기와의 거리를 좁혀갔다.
“내가 지옥에 가지 않으면 누가 갈까 하시었다!”
훙! 후우우우웅!
“염불은 저세상에 가서나 해라!”
퍼어어어어엉!
“커헉!”
“크윽!”
서로의 양손바닥이 마주치자 두 사람이 신음을 흘리면서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동시에 피를 뱉어냈다.
“아직이다! 아직…….”
구지선사가 몸을 바로 세우며 마보를 취하고 합장을 했다. 또다시 여래신장을 펼치려는 것이다. 그걸 보고 갈천기도 이를 악물고 내공을 끌어올렸다.
그때였다. 두 사람이 다시 붙으려는 순간 동시에 멈칫했다. 옆에서 느껴지는 존재감 때문이었다. 도대체 누가 있어 이런 존재감을 드러낸단 말인가?
고개를 돌려보니 덩치가 큰 장년사내가 여섯 명의 노인들과 함께 서 있었다. 호천마궁의 궁주 조황인이었다.
* * *
적운상은 경공술을 펼쳐서 빠르게 움직였다. 북진마문을 따돌리는 건 일도 아니었다. 이미 기세를 한풀 꺾어놓은 상태였고, 숲도 제법 넓어서 몸을 숨기면 쉽게 찾아내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무와 나무를 밟고 이동하고 있는데, 앞에서 사람들의 기척이 느껴졌다.
금안뇌정신공을 끌어올려 주의를 집중하니 수많은 사람들의 움직임이 잡혔다.
‘설마 또 북진마문인가?’
적운상은 커다란 나무의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주위를 내려다봤다. 많았다. 적게 잡아도 삼백 명 이상이었다. 그들을 유심히 살펴보던 적운상은 어째 낯이 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그들이 예전에 상대했던 호천마궁의 패도육영대라는 사실을 알아챘다.
적운상은 그들이 자신을 처리하러 온 것이라는 생각을 잠시 했다. 하지만 뭔가가 이상했다. 그들의 움직임을 보니 일괄적으로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무림맹의 수뇌부들이 있었다.
그들이 왜 여기에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무림맹에 있어야 할 사람들이 왜 이곳에 있단 말인가?
어쨌든 호천마궁이 노리는 것은 자신이 아니라 그들이었다. 이에 조금 마음을 놓으며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멀리서 백여 명 정도의 사람들이 빠르게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적운상이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삼대마두를 비롯한 마도연맹 사람들이었으니 모르는 것이 당연했다. 그맘때쯤 북진마문이 그곳에 도착했다. 그러더니 서로 엉켜서 싸우기 시작했다.
네 개의 세력이 부딪치니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그 와중에 소림사의 구지선사와 마도연맹의 갈천기가 싸우자 모두들 잠시 싸움을 멈추고 두 사람의 대결을 지켜봤다.
적운상도 처음에는 그랬으나 두 사람의 무공이 아직 탈인의 경지에는 못 이르렀다는 것을 깨닫고는 백수연 일행을 찾기 위해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