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342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59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342화
342화. 움직이는 황궁 (1)
황궁.
팔백여 개의 건축물과 구천여 개의 방이 있을 정도로 넓고 넓은 곳이다. 삼 장의 높이에 달하는 담은 황제의 권위와도 같다. 그런 황궁을 짓는 데 십사 년 동안 무려 백만 명의 인부들이 동원되었다.
그 모든 것이 오로지 황제를 위한 것이었다. 구천 명에 달하는 궁녀들과 천 명의 내시들도 마찬가지다. 황궁을 지키는 어림군의 수만 해도 몇만이니, 황제의 위엄이 어느 정도인지 알 만하다.
그 황궁에서 거대한 체구의 사내가 당당하게 황제가 있는 건청궁으로 향하고 있었다. 외모로만 보자면 무관이 분명하건만 입고 있는 관복을 보면 문관이었다.
몇몇 관리들이 그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런 자가 있었는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복에 표시되어 있는 품직이 자신들보다 높은지라 차마 묻지 못하고 그냥 지나쳐야 했다.
건청궁에 도착한 사내는 활짝 열려진 집무실 앞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만세. 만세. 만만세. 소신 조황인이 지엄하신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놀랍게도 그는 호천마궁의 궁주인 조황인이었다. 그가 조정의 관리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아들인 조비조차도 몰랐다.
“안으로 들라.”
나이 지긋한 황제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조황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집무실 가까이 갔다. 그러자 그곳을 지키고 있던 어림군이 가까이 오더니 간단하게 조황인의 몸을 살폈다. 혹시 황제를 암살할 수도 있기 때문에 무기가 있는지 확인한 것이다. 황제를 만나기 전에 의례적으로 하는 절차였다.
조황인이 안으로 들어가자 뒷짐을 지고 서서 책을 보고 있는 황제가 보였다. 조황인은 다시 한 번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소신의 능력이 미흡하여 불충을 저질렀습니다.”
“됐다. 일어나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조황인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황제가 몸을 돌렸다. 그는 화려한 곤룡포만 입고 있지 않다면 훈훈한 옆집 할아버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정도로 인상이 좋은 노인이었다. 하지만 눈빛만큼은 정광이 가득했다.
“뜻한 대로 일이 잘 되지 않았더구나.”
“어떤 벌이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됐다. 벌을 내리자고 한 말이 아니다. 이걸 보거라.”
황제가 그렇게 말하면서 두루마리 하나를 내밀었다. 조황인은 두 손으로 그걸 공손하게 받아서 펼쳐봤다. 거기에는 적운상이 역모를 꾀하려고 한다는 내용이 그럴듯하게 적혀 있었다. 이에 조황인은 절로 인상이 살짝 찌푸려졌다.
“어떻게 생각하나?”
“적운상은 그럴 자가 아니옵니다. 그는 권력에는 뜻이 없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위협이 되기는 하지. 어떤 이유로든 사람의 마음은 변할 수가 있지 않나?”
“그렇기는 하오나 신이 장담하건대 그의 마음을 흔들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세상일은 모르는 법. 허나 네가 그리 호언장담을 하는 경우는 처음이로구나. 어찌했으면 좋겠느냐?”
“그를 죽이려면 막대한 피해를 예상하셔야 합니다. 누구를 보내든 몇 명을 보내든 십에 칠 할은 잃을 것입니다.”
“호오… 그가 그리 대단한가?”
“솔직히 말씀드리면 칠 할도 적게 잡은 것입니다.”
“금의위를 보내면 어떻겠느냐?”
금의위(錦衣衛)는 황제의 직속부대였다. 죄인을 체포하고 목을 치는데 형부(刑部)의 법률절차를 밟지 않아도 될 정도로 권력이 막강했다. 또한 하나같이 무공이 뛰어나서 황제의 신임을 받는 자들이 많았다.
“전멸입니다.”
조황인이 딱 잘라 말하자 황제의 눈썹이 꿈틀했다. 자신을 따르는 최고의 무인들이 겨우 한 명을 당해내지 못한다고 하니 은근히 자존심이 상했다.
“그럼 동창이나 서창을 보내면 어떻겠느냐? 아무리 무공이 대단해도 잠은 잘 것이 아니냐?”
동창(東廠)과 서창(西廠)은 황제가 드러내놓고 처리하지 못하는 일을 맡아서 암암리에 처리하는 단체였다. 적운상도 잠은 잘 거라고 말한 것은 암살을 하겠다는 뜻이었다.
“폐하, 소신이 거느렸던 호천마궁에는 뛰어난 자들이 많았사옵니다. 감히 말씀드리옵건대 금의위나 동창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신이 봉문을 한 이유는…….”
잠시 말끝을 흐리던 조황인이 이내 말을 뱉어냈다.
“…그가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뭐라? 그대가?”
황제는 생각지도 못한 말이 조황인의 입에서 나오자 적지 않게 놀랐다. 조황인은 그가 가장 아끼는 신하 중의 한 명이었다. 그는 관직을 드러내지 않고 물밑에서 활동하면서도 목숨을 걸고 충성을 다했다. 그것도 수십 년 동안 말이다. 어디 그뿐이랴?
무공은 천하에 견줄 자가 몇 없을 정도로 대단했고 호천마궁과 같은 대단한 세력을 독자적으로 거느리고 있으면서도 단 한 번도 충심이 변하지 않았었다.
그런 그가 두렵다고 한다. 너무나 황당한 나머지 황제는 허탈하니 웃음이 다 나왔다.
“허허. 그대가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었군.”
“그동안 소신은 황제 폐하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두려워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자만큼은 두렵습니다. 폐하께옵서 천군만마를 보낸다 해도 그는 살아남을 사람입니다. 오히려 이곳까지 와서 왜 그랬냐고 따질 사람입니다. 상소문을 올린 자들도 그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감히 황궁의 힘을 이용하려는 겁니다. 그러니 적으로 만들지 마시고 안으로 품으시옵소서.”
“그는 권력에 욕심이 없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렇사옵니다. 하지만 그도 이 나라의 백성입니다. 폐하께옵서 관직을 내리시고 회유를 하면 마지못해 들어줄 것입니다. 다만…….”
“뭔가 말하라.”
“그에게 관직을 주되 자유도 주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네 말은 짐이 그를 두려워해야 한다는 말이냐?”
“그런 것이 아니옵니다. 폐하. 그는 의를 알고 협을 아는 자이옵니다. 폐하께서 그를 얻으시면 호랑이가 날개를 달고 용이 여의주를 무는 것과 같사옵니다.”
“허 참… 그대의 말만 듣고는 짐이 판단을 내리지 못하겠구나. 일단 그를 봐야겠다. 그냥 오라고 하면 오지 않을 테지? 그러니 그대 말대로 일단 관직을 빌미로 해야겠구나. 무슨 관직이 좋겠느냐?”
“정삼품의 무령통보사가 어떻사옵니까?”
정삼품이면 적지 않게 높은 직위였다. 하지만 무령통보사라는 직책은 가진 힘이 아무것도 없었다. 지방군과 황궁의 정예군들 사이의 연락책을 관리하는 직책이었는데, 전시가 아니다 보니 단순히 서찰을 전하는 자들을 관리하는 한직(閑職)이었다.
“네 말은 직위는 주되 직책은 주지 말자는 게로구나.”
“그렇사옵니다. 직위가 너무 낮으면 움직이지 않으려 할 겁니다. 그렇다고 높은 직위에 맞춰 직책을 주면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 해도 대신들이 그를 이용하려 할 겁니다.”
“알았다. 그럼 그곳의 도지휘사에게 연락을 해서 그를 불러들이도록 하라.”
“폐하.”
“또 뭐냐?”
“그냥 불러들이면 안 오려 할 겁니다.”
“감히 짐이 부르는데 안 온단 말이냐?”
“무림인들의 특성이 원래 그러하옵니다. 그러니 삼천 명 정도의 정예를 보내십시오. 그리고 반드시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폐하의 칙명(勅命)을 전하게 하십시오. 그럼 폐하의 명을 거역하지 못할 것입니다.”
“흠, 알았다. 그렇게 하마. 그가 오면 차후에 다시 논의를 하자꾸나. 물러가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조황인이 고개를 숙이고 황제의 집무실에서 물러났다.
* * *
“으음…….”
가슴이 답답해서 잠이 깬 적운상은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하지만 뭔가 묵직한 것이 가슴을 누르고 있어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상체를 조금 들어 그게 뭔지 봤더니 주양악이었다.
잠버릇이 심한 주양악과 함께 자면 이런 일이 종종 있었다. 그래도 이건 귀여운 축에 속했다. 어떤 때는 다리로 머리를 차는 바람에 깜짝 놀라서 깬 적도 있었다. 또 어떤 때는 주양악이 가슴으로 얼굴을 압박하는 바람에 숨이 막혀서 죽다 살아난 적도 있었다.
적운상은 주양악이 깰까 봐 조심스럽게 옆으로 밀어놓고 이불을 끌어올려줬다. 창문을 통해 밖을 슬쩍 보니 아직 이른 새벽이었다.
간단히 세면을 한 후에 적운상은 밖으로 나갔다. 아침수련을 하기 위해서였다. 적운상은 어디에 있든 아침수련만큼은 빼먹지 않았다.
태룡도로 풍뢰십삼식을 몇 번 펼친 후에 백운검으로 낙연검법을 펼쳤다. 그리고 맨손으로 풍뢰십삼식을 연습한 후에 자리에 앉아 운기조식을 했다.
꾸준히 수련을 해왔기 때문에 요즘은 금안뇌정신공으로 인해 연성되는 뇌기의 기운이 몰라보게 강해졌다. 뇌기의 양은 더 이상 늘지 않았지만 농도가 짙어진 것이다. 그래서 예전보다 적은 양의 뇌기로도 충분한 위력을 낼 수가 있었다.
“후우…….”
마지막 숨을 토해낸 적운상이 자리에서 일어나 뒤를 봤다. 언제 왔는지 백수연이 서 있었다.
“일찍 일어났네.”
“응. 난수는 어때?”
백수연은 어제 백리난수와 함께 잤다. 그녀의 상태가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백리난수는 섭혼술이 풀리면서 잠이 든 상태 그대로 아직까지 깨어나지 않고 있었다.
“밤에 잠시 깨어났었는데 다시 잠들었어.”
“그래?”
“괜찮을 거야. 걱정 마.”
“싫어하지 않는구나.”
“훗! 난수에게는 오히려 미안해하고 있어. 난수나 나나 똑같이 널 좋아했지만 결국 나만 너랑 이어졌잖아.”
“그게 어째서 미안해할 일이야?”
“그래도.”
백수연이 조금 씁쓸한 표정을 짓다가 생긋 미소를 지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바로 나왔기 때문에 화장도 하지 않고 조금 부스스한 모습인데도 너무나 아름다웠다.
적운상은 가만히 다가가서 백수연을 꼭 안아줬다.
“그런 생각 하지 마.”
“응. 그럴게. 양악이는? 아직 자지?”
“일어나려면 한참 있어야 될 거야.”
“풋! 그렇게 게으른데 그런 무공은 언제 익혔나 몰라.”
“나도 깜짝 놀랐어. 노력하면 되는데 안 하려고 해서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나도 가르쳐줄 거지?”
“물론이지.”
“어제 맹주랑은 무슨 이야기했어?”
“나보고 마도연맹에 들라고 하더군.”
“그래서? 그런다고 했어?”
“생각해본다고 했어.”
“왜?”
백수연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적운상의 성격상 딱 잘라 거절을 해야 정상이건만 생각해보겠다고 했다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 혼자서 언제까지 해나갈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마도연맹 같은 세력을 이용하면 여러모로 좋잖아.”
“그럼 차라리 다른 곳을 알아보지 그래?”
“다른 곳?”
“그래. 마도연맹은 어쨌건 사파의 무리들이잖아. 모두가 그런 건 아니겠지만 옳은 일을 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을 거야. 네 평판이나 형산파의 명성이 더럽혀질 수도 있어.”
백수연이 걱정하며 하는 말에 적운상은 미소를 지었다.
“걱정 마. 충분히 생각하고 결정할 테니까.”
“그래.”
“잠깐 여기서 기다려.”
“응?”
백수연이 뭐라고 대답을 하기도 전에 적운상이 훌쩍 몸을 날렸다. 뒤늦게 백수연이 적운상의 모습을 눈으로 쫓았을 때는 이미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