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339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3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339화
339화. 마도연맹 (1)
드넓은 평야의 관도 위에 사두마차 한 대가 덩그러니 서 있었다. 그렇게 관도를 막고 있으면 오가는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련만, 이곳에서 제일 가까운 인가가 무려 백 리나 떨어져 있으니 사람이 올 턱이 없었다.
하지만 마부석에 타고 있는 비대한 체구의 여인은 멀리 시선을 두고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왜 이렇게 늦지? 지금쯤은 도착했어야 하는데. 좀 더 가서 기다릴까?”
혼잣말을 하듯이 말하던 여인의 질문에 마차 옆에서 쭈그리고 앉아 땅에 뭔가를 끼적이고 있던 사내가 대답을 했다.
“아서라. 기다리면 어련히 알아서 안 올까?”
“안 오니까 그러는 거 아냐?”
“때가 되면 오겠지.”
“걱정도 안 되냐?”
“걱정은 무슨…….”
쓸데없는 말을 한다는 듯이 사내가 말을 내뱉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땅에 끼적이던 것을 발로 슥슥 지웠다. 그런 사내의 얼굴에는 길게 칼자국이 나 있었다.
한때 혈겸야차(血鎌野次)라고 불리던 명세청이 바로 그였다. 그는 한 번 피를 보면 눈이 뒤집혀서 수십 명을 죽이고 나서야 진정을 했다. 강서성의 남쪽 지방에서 늘 혼자서 활동을 하던 그였건만 지금은 이곳까지 와서 마도연맹에 소속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와 같이 있는 뚱뚱한 체구의 여인은 인면지주(人面蜘蛛)라고 불리는 고연향이었다.
인면지주는 원래 얼굴은 사람이고 몸은 거미인 요물이었다. 운남 어딘가에 산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말로만 전해질 뿐 실제로 본 사람은 없었다.
고연향이 그런 인면지주란 별호를 얻은 이유는 그녀가 사람을 죽이는 방법이 거미와 닮았기 때문이었다. 거미가 거미줄을 쳐놓고 먹이가 걸리기를 기다렸다가 잡아먹는 것처럼 그녀도 함정을 만들어놓고 적을 유인해서 죽였다. 그때마다 은영사(隱映絲)라는 강철보다 질긴 얇은 실을 주로 사용했기 때문에 그런 별호가 붙은 것이다.
“오는군.”
명세청의 말에 고연향이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빼고 지평선을 바라봤다.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었다.
“어디?”
“조금 있으면 보일 거다.”
고연향에 비해 명세청의 무공이 더 뛰어났기 때문에 마차가 달려오는 소리를 먼저 들은 것이다. 잠시 기다리자 명세청의 말대로 마차 한 대가 관도를 따라 빠르게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그 마차에는 붉은색의 봉황이 그려진 작은 깃발이 꽂혀 있었다.
“맞네. 준비하자.”
“뭐를?”
“바로 옮겨 탈 수 있도록 준비를 해야지.”
“준비랄 게 뭐 있나? 문만 열고 옮겨 타면 되는데.”
“따지기는.”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는 동안에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던 마차는 금방 근처까지 다가왔다. 마차를 끄는 네 마리의 말들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같이 숨을 헐떡였다. 꽤나 오랜 시간 전속력으로 질주했기 때문이었다.
“어머! 연향 언니가 와 있었네요.”
마부석에 앉아 있던 진진랑이 웃으면서 고연향에게 말을 건넸다. 그리고 명세청을 향해서도 살짝 고개를 숙였다.
“조금 늦었잖아.”
“최대한 빨리 온 거예요.”
“그런데 왜 혼자야?”
“그럴 일이 있었어요.”
원래 진진랑과 함께 있던 사내가 마차를 몰기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적운상에게 한 방 맞고 기절을 하는 바람에 거기에 놔두고 오게 된 것이다.
“그는? 안에 있어?”
“네.”
고연향이 궁금해하면서 묻는데 마차의 문이 열리면서 적운상과 백수연들이 내렸다.
“어? 한 명이 아니네.”
“전서구에 분명 네 명이라고 했는데 잘 안 읽어본 거예요?”
“그랬나? 나야 그냥 가라고 하니까 왔을 뿐이니까. 적 대협이죠? 반가워요. 나는 고연향이라고 해요.”
고연향이 생긋 웃으면서 먼저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적운상이 포권을 취하면서 인사를 받았다.
“반갑소.”
“나는 혈겸야차 명세청이라고 한다.”
명세청도 인사를 건네왔으나 적운상은 그저 고개만 한 번 까딱이고 말았다. 고연향은 예의를 지키며 인사를 했지만 명세청은 그러지 않았기 때문에 똑같이 대해준 것이다. 그러자 명세청이 눈을 치켜뜨며 적운상을 노려봤다.
“이쪽에서 인사를 했으면…….”
콰앙!
명세청은 말을 끝까지 하지 못했다. 몸이 그 자리에서 빙글 한 바퀴 돌더니 머리부터 땅에 처박혔기 때문이다. 적운상이 목을 후려쳐서 그렇게 만든 것이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명세청이 당하자 고연향이 놀라서 허리에 차고 있던 박도를 뽑으려고 했다. 하지만 반쯤 뽑히던 박도는 다시 제자리로 쏙 들어가 버렸다. 적운상이 박도를 뽑던 그녀의 손을 잡아 누른 것이다.
“뽑으면 죽는다.”
고연향은 적운상의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박력에 눌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몸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리고 등 뒤로는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마도연맹의 맹주가 왜 그렇게 적운상을 탐내는지 이해가 갔다. 서른도 안 된 젊은 놈이 삼대마두를 꺾었다기에 믿지 않았었는데 이건 생각 이상이었다.
적운상은 고연향이 뒤를 공격할 수도 있는데 그냥 몸을 돌려버렸다. 마치 할 테면 해보라는 듯이 허점투성이였다. 하지만 고연향은 마른침을 삼키며 박도를 뽑지 못했다.
뽑았다가는 적운상의 말대로 정말 죽을 것 같았다. 단지 눈이 한 번 마주쳤을 뿐인데도 두려움이 각인된 것이다.
“옮겨 타면 되는 건가?”
“그래요.”
적운상이 먼저 마차로 가서 올라타자 백수연과 주양악이 뒤를 따라갔다. 적교희는 쓰러져서 정신을 잃고 있는 명세청과 아직도 창백하니 질린 얼굴로 서 있는 고연향을 힐끗 한 번씩 보고는 곧 마차에 올라탔다.
“언니, 괜찮아요?”
“응? 응. 괜찮아.”
진진랑이 묻는 말에 그렇게 대답했지만 고연향은 전혀 괜찮지 않았다. 박도를 잡았던 손에는 축축하니 땀이 배어 있었다.
“제가 왜 혼자 왔는지 알겠죠?”
“뭐? 설마 그럼…….”
“맞아요. 그 사람도 한 방에 기절했어요.”
“끙.”
“저 사람은 어떻게 하죠?”
“분수를 모르고 나서다가 저리되었으니 누구를 원망하지도 못할 거야. 저기다 그냥 놔두고 가자. 정신을 차리면 네가 타고 온 마차를 타고 오겠지.”
“알았어요.”
진진랑이 불쌍하다는 듯이 명세청에게 눈길을 한 번 주고는 마부석에 올라탔다. 그러자 고연향이 경공을 펼쳐서 그 옆에 탔다.
“이랴! 가자!”
그들이 가고 나자 적막한 평야에는 덩그러니 마차 한 대와 정신을 잃은 명세청만이 남았다.
* * *
적교희는 마냥 신이 났다. 이렇게 여행을 한 적이 거의 없었고 적운상과 함께였기 때문에 모든 것이 새로웠다. 게다가 마도연맹의 호의는 놀라울 정도로 대단했다.
배를 갈아타야 할 때나 마차를 갈아탈 때면 항상 미리 와서 사람들이 대기를 하고 있다가 지체 없이 옮겨 타게 했다.
식사를 할 때면 항상 고급객잔이나 식당을 이용했는데, 진진랑이 이끄는 곳으로 따라가면 항상 최고의 음식이 잔뜩 차려져 있었다.
잠을 잘 때도 마찬가지였다. 최고급 객잔의 가장 비싼 방을 미리 잡아놓았기 때문에 가서 잠만 자면 되었다.
다만 한 가지 조금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었다. 잠을 잘 때면 각자의 방이 따로 마련이 되어 있는데도 아침이 되면 백수연과 주양악이 적운상의 침상에서 함께 일어난다는 것이다. 처음에 그걸 보고 얼마나 기겁을 했던지, 지금도 생각만 하면 부끄러움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지금은 마차를 모는 진진랑 옆에 앉아서 맞바람을 맞고 있었다. 곱게 자랐기 때문에 이렇게 마부석에 앉아보는 건 처음이었다. 덕분에 고연향은 마차의 지붕 위에 타야 했다. 적교희가 마차 안으로 가라고 했지만 적운상과 같이 있어야 했기 때문에 그녀는 한사코 거절을 했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마도연맹이야.”
오는 동안 적교희는 진진랑과 많이 친해져서 이제는 자연스럽게 언니, 동생 하며 불렀다. 적운상은 그걸 탐탁지 않게 여겼지만 뭐라 하지는 않았다.
“마도연맹은 뭐하는 곳이에요? 오라버니한테 물으니까 관심 끄라고 하면서 가르쳐주지 않아요.”
“호호. 그래? 마도연맹은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하고 방황하던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곳이야.”
“왜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지. 무공이 아무리 강해도 혼자라면 세력에 눌리게 되잖아. 부당한 일을 당해도 스스로를 납득시키는 수밖에 없어. 아니면 맞서다가 죽거나.”
“오라버니는 그렇지 않잖아요.”
“훗! 네 오라버니는 예외야. 천하제일의 고수라 불리는 사람하고 우리를 비교하면 안 되지.”
“그도 그러네요. 어? 저기 협곡이 보여요. 저기죠?”
“맞아. 거의 다 왔어.”
적교희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은 마차 두 대 정도가 들어갈 수 있는 좁은 협곡이었다. 길 양쪽으로 솟아 있는 절벽은 십 장에 달했다.
그리로 들어가서 한참을 가자 곧 천애의 절벽이 나왔다. 그 절벽으로 이어진 길은 마차 한 대가 간신히 지나갈 수가 있었다.
적교희는 길 아래의 낭떠러지를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여기서 떨어지면 뼈도 못 추릴 것 같았다. 그 길을 따라 쭉 가자 거대한 성이 나타났다.
절벽 위에 지어진 천혜의 요새였다. 거대한 문이 열리고 마차가 안으로 들어갔다.
“다 왔다. 내리자.”
“네.”
진진랑과 고연향, 그리고 적교희가 마차에서 내리자 안에 타고 있던 적운상과 백수연, 주양악도 마차에서 내렸다.
“어서 오시게.”
“또 보네.”
예전에 봤던 독심혈화(毒心血花) 설요원과 흉신악살(凶神惡殺) 사도공이 기다리고 있다가 적운상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적운상이 사도공의 옆으로 돌아가 팔을 꺾으면서 무릎 뒤를 발로 찼다.
사도공은 생각지도 못한 공격이라 그대로 당하면서 무릎이 풀썩 꺾이며 제압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설요원의 처지도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그녀는 적운상이 사도공을 제압하는 순간 적운상을 향해 일장을 내지르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게 실수였다. 차라리 뒤로 몸을 빼서 도망을 갔더라면 이리 쉽게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적운상은 사도공을 단숨에 제압하면서 백운검을 뽑아서 설요원의 목에 댔다. 만약 설요원이 뒤로 빠졌다면 사도공을 잡고 있기 때문에 뒤따라가지 못했을 텐데, 공격을 해오니 순식간에 반격을 한 것이다.
“무, 무슨 짓이냐?”
적운상이 백리난수와 함께 있는 것을 본 사람은 사도공과 설요원뿐이었다. 그러니 백리난수가 이곳으로 끌려온 것은 두 사람 중 한 명의 짓이 분명했다.
“그건 내가 묻고 싶군. 난수를 데려온 것이 누구냐?”
살기가 잔뜩 배어 있는 물음에 사도공과 설요원은 서로를 보며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계획은 사도공이 세웠지만 백리난수를 이곳으로 데려온 것은 설요원이었다.
“그녀는 무사하다.”
“무사하지 않았다면 여기 있는 모두가 죽었을 것이다. 내가 알고 싶은 건 그게 아니야. 대답이나 해. 누가 난수를 데려왔지?”
사도공과 설요원은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대답하는 순간 죽음을 피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이대로 계속 있을 수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사도공이 대답을 하려는 순간이었다. 어디에선가 고운 미성이 들려왔다.
“적 오라버니!”
적운상이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백리난수가 웬 여인과 함께 서 있는 것이 보였다. 함께 있는 여인은 궁장 차림을 하고 면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는데, 풍기는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