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337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5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337화
337화. 적교희 (2)
그때 백수연과 주양악이 대청으로 들어오자 모두가 놀란 눈으로 그녀들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건 적운상도 마찬가지였다.
백수연이야 가끔 꾸미고 다녔지만 털털한 성격의 주양악은 그런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심지어 치마를 입는 일조차도 거의 없었다. 남자들처럼 항상 무복을 입고 머리는 대충 올려서 묶고 다녔었다.
그런데 지금은 명문가의 여식처럼 곱게 치장을 하고 있었다. 그런 모습은 모두들 처음 보는 것이라 뭐라 말이 나오지 않았다.
주양악은 백수연처럼 그리 뛰어난 미인은 아니었지만 천마의 내단을 복용한 이후로 남다른 범상함이 묻어났다.
특히 피부가 몰라보게 깨끗해져서 자꾸만 눈이 가게 만들었었다. 하지만 스스로 꾸미고 다니지를 않으니 그런 미모가 빛을 발하지 못했었다.
두 사람은 사람들의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은서린과 함께 있는 적교희를 봤다. 생김새가 어딘지 모르게 적운상을 닮아 있었다. 이에 자신들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적교희는 자신을 보고 미소를 짓는 두 사람을 보면서 눈을 크게 떴다. 대부호의 여식이다 보니 나름 예쁘다는 여자들을 많이 봤었지만 저렇게 예쁜 여자들은 처음이었다.
“인사해요. 저쪽은 주 사저와 백 소저예요. 두 사람 다 조금 있으면 적 사형과 혼인을 할 사이에요. 그러니 적 소저한테는 올케가 되네. 풋!”
말을 하며 은서린은 마지막에 웃음을 터트렸다. 백수연이야 당연하게 여겨졌지만 주양악은 왠지 적응을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네? 오라버니가요?”
적교희는 많이 놀랐는지 백수연과 주양악을 멍하니 보다가 적운상을 봤다. 적운상은 무표정하니 차만 마셨다.
“반가워요. 백수연이라고 해요.”
“주양악이에요. 적 사형하고 많이 닮았네요. 척 봐도 누이동생이라는 걸 알겠어요.”
“네? 네. 고마워요.”
적교희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소문만 듣고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그 고생을 하면서 찾아왔었다. 그리고 적운상을 보고 얼마나 가슴이 뛰었던가?
적운상은 그녀의 기대 이상이었다. 뛰어난 외모는 둘째 치고서라도 모든 사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아직 서른도 안 된 나이로 말이다.
게다가 비무가 끝나고 났을 때 사람들의 반응이란 정말…….
적교희는 그런 적운상이 자신의 오라버니라는 것에 가슴이 북받쳐 올랐었다.
하지만 비무 전날 그녀를 냉담하게 대하는 적운상의 태도 때문에 마음이 많이 상했었다. 자신이 온 것을 적운상은 썩 내켜하지 않는 것 같았었다.
어렸을 때 버림을 받은 이후, 한 번도 찾은 적이 없으니 그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은 반가워할 거라 여겼던 것이다.
그래서 비무가 끝난 이후에도 말조차 붙이지 못하고 주위를 맴돌았었다. 혹시 이대로 쫓겨나서 혼자서 집으로 가야 하는 건 아닌지 불안하기도 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모두 이렇게 반겨주자 이제야 적운상에게 누이동생으로 인정을 받았다는 생각에 눈물이 흐른 것이다.
사람들은 적교희가 갑자기 눈물을 흘리자 당황하며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녀가 왜 우는지 얼추 짐작이 갔다. 당연히 모두의 곱지 않은 시선이 적운상에게 향했다.
적운상은 그들의 시선쯤이야 모두 무시할 수 있었지만 백수연과 주양악의 시선은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적교희에게 다가갔다.
“울지 마. 일찍 가서 쉬는 게 좋겠다. 내일은 내가 집까지 데려다 줄 테니까.”
“오라버니가 직접이요?”
“그래. 누이동생을 다른 사람한테 맡길 수는 없잖아.”
“오라버니…….”
적교희가 부끄러운 것도 모르게 적운상의 품을 파고들었다. 적운상은 순간 당황하다가 미소를 지으면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 * *
이른 아침 적운상은 세 명의 여인들과 함께 형산파를 나섰다. 세 명의 여인들은 백수연과 주양악, 그리고 적교희였다. 그녀들은 가벼운 경장 차림에 봇짐을 하나씩 메고, 한 손에는 검을 들고 있었다.
형산을 내려가는 동안 백수연과 주양악은 적교희와 쉬지 않고 수다를 떨었다. 남자들은 술 한 잔으로 친구가 되지만 여자들은 입담을 떨면서 친구가 된다더니 정말 그런 것 같았다.
가끔 앞서 가는 자신의 험담도 들려왔지만 적운상은 애써 무시했다. 그녀들에게 악의가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형산을 내려와 마을에 도착하자 사람들이 모두 반가운 얼굴을 했다. 소문을 접한 몇몇 사람들은 경외심을 가지고 바라보기도 했다.
형산에서 강서성으로 넘어가려면 수로로 가는 것이 좋았다. 육로로 가면 길이 험해서 힘들었다. 그렇지 않고 관도를 타고 가면 삥 둘러가야 했다.
선착장에 도착하자 적운상은 강서성으로 가는 배를 알아보러 가고 여인들만 셋이 남게 되었다. 그러자 몇몇 사내들이 그녀들에게 접근을 했다. 외모가 남다르니 수작을 걸어보려는 것이다.
사실 이곳까지 오면서 그런 마음을 품은 사내들이 수두룩했지만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박력이 느껴지는 적운상 때문에 모두 몸을 사렸었다.
“잠시 실례를 해도 되겠소?”
재질이 좋은 무복과 포를 걸치고 태가 좀 나라고 보석이 박힌 검까지 허리에 찬 사내가 대여섯 명의 사내들과 함께 다가오며 말을 걸었다.
“무슨 일이죠?”
백수연은 상대가 좋지 않은 의도로 접근했다는 것을 알았다. 이런 일을 여러 번 겪어봤기 때문이었다.
“어디까지 가시는 길이오?”
“그건 왜 묻는 거죠?”
“하하. 혹시 동행인가 해서 묻는 거요?”
“일행이 있어요.”
“후후. 그리 딱 잘라서 말할 게 뭐 있소? 우리는 대정문(大正門) 사람들이니 그리 경계하지 않아도 되오.”
사내가 웃으면서 말했다. 대정문은 강서성에서 세력이 가장 큰 문파였다. 강서성의 성도인 남창(南昌)에 위치해 있는데 문주인 대력패도(大力覇刀) 인의정은 의롭고 남을 돕는 데 인색하지 않아서 대협이라 칭송받는 사람이었다.
한 번은 흉년이 들었는데 나라에서 나 몰라라하고 있자 관청으로 쳐들어가서 군량미를 풀어 양민들을 구하기도 했었다.
그때 관청의 관리들을 협박하기 위해서 인의정이 무위를 보였는데 거대한 도가 한 번씩 휘둘러질 때마다 삼 장 밖에 있던 관리들의 수염과 옷이 펄럭거렸다고 한다.
대력패도라는 별호가 붙은 것도 그래서였다. 문주가 그렇게 올바르니 제자들도 그랬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세력이 크면 항상 그 힘을 등에 업고 어깨에 힘을 주려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었다.
“아, 대정문 사람들이었군요.”
적교희는 강서성에서 살기 때문에 그들의 이야기를 귀가 따갑게 들었었다. 하지만 백수연과 주양악은 아니었다. 그저 그런 문파가 있다는 것 정도만 알 뿐이었다.
어쨌든 사내들은 적교희가 아는 척을 하며 조금 감탄한 기색을 보이자 어깨가 우쭐해졌다.
“혹시 강서성에서 오셨소?”
“네. 그래요.”
백수연이 말리기도 전에 적교희가 대답을 했다. 백수연이 보기에 저들도 강서성으로 가는 것 같았다. 하는 꼴을 보아하니 자신들도 강서성으로 가는 길이라면 동행하려 할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강서성의 가는 길이면 같이 갑시다. 마침 우리 대정문의 상단에서 운영하는 배가 있소이다. 함께 타고 가면 어떻겠소?”
“정말요? 그렇잖아도 배를 알아보던 참이었어요.”
적교희가 신이 나서 말하는데 백수연이 그녀의 팔을 잡아당겨 진정시키면서 말했다.
“괜찮아요. 이유 없는 호의를 받아들이자니 조금 껄끄럽군요. 이미 배를 알아보러 갔으니 우리들은 신경 쓰지 마세요.”
“흠. 그렇소?”
사내는 조금 퉁명스럽게 말하다가 곧 미소를 지었다.
“그러지 말고 함께 가는 것이 어떻소? 오늘과 내일은 강서로 가는 배가 없을 거요.”
“믿을 수 없어요.”
“속아서만 살았나 보구려. 그러지 말고 함께 갑시다. 정 신세지기가 싫다면 뱃삯을 내면 되지 않겠소?”
“괜찮아요. 배가 없다면 육로로 가면 돼요.”
“이거 너무하는 것 아니오? 좋은 마음으로 선의를 베풀려는데 사람을 이리 대해도 되는 거요?”
“우리가 도움을 청한 기억은 없군요. 마음만 고맙게 받겠어요.”
“좋은 게 좋은 거니 그렇게 도도하게 굴 것 없지 않소?”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죠?”
백수연이 살짝 짜증을 내면서 쏘아붙이자 그들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었다.
“도대체 대정문의 제자를 뭐로 보고…….”
말을 하던 사내가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옆에서 느껴지는 존재감 때문이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빼어나게 잘생긴 사내가 시선을 내리깔고 보고 있었다. 적운상이었다.
시선이 마주치자 사내는 주춤하며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을 물러났다. 그리고 곧 그것을 깨닫고는 부끄러움에 얼굴이 빨개졌다. 대정문의 제자인 자신이 단지 눈빛에 기가 눌려 뒤로 물러났으니, 스스로 용납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의지와는 달리 목소리는 약간 떨리면서 나왔다.
“뭐, 뭐요?”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내 일행에게 볼일이 있나?”
서로 나이가 엇비슷한 것 같았는데 자연스러운 하대였다. 그러나 사내는 그러한 것도 모르고 있었다.
“일행이라면…….”
사내가 고개를 돌려 백수연을 봤다. 그러자 백수연이 적운상에게 친근한 미소를 지었다. 사내에게는 결코 보여주지 않던 미소였다.
“배는 알아봤어?”
“응. 이틀 동안은 강서로 가는 배가 없다더군. 관청에서 뭔가를 한다나 봐.”
사내의 말은 사실이었다. 이에 사내가 거보란 듯이 백수연을 봤다. 하지만 백수연은 그를 싹 무시하며 적운상에게 말했다.
“급할 것 없으니까 이틀 정도 인근에서 쉬었다가 가자.”
“그러지. 그런데 이자들은 뭐야?”
“험! 우리는 대정문의 제자들이오.”
“그런데?”
짧게 툭 던진 한마디에 잠시 어깨를 폈던 사내가 다시 움츠러들었다.
“그, 그러니까… 우리 대정문에서 자체적으로 운행하는 배가 있소이다. 여기 있는 소저들이 강서로 간다기에 태워주려고 했을 뿐이오.”
적운상이 사내들을 한 번씩 슥 훑어보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대충 어찌 된 건지 이해가 갔다.
“그래? 그럼 타고 가기로 하지.”
“나는 내키지 않는데.”
“태워주겠다는데 거절할 필요 없잖아.”
“알았어. 그럼 그렇게 해.”
반대를 하던 백수연은 결국 적운상의 말을 따랐다. 사내들은 뻣뻣했던 백수연이 적운상에게는 나긋나긋하니 대하자 약간 질투가 났다.
“앞장서.”
“알겠소. 그런데, 험. 올해 몇인데 하대를 하는 거요?”
이제야 그걸 깨달은 사내가 용기를 내서 물었다. 그러자 적운상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안내나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