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336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1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336화
336화. 적교희 (1)
비무가 끝난 후에도 사람들은 바로 형산파를 떠나지 않고 머물렀다. 그들 중 삼분지 일 정도는 형산파에 남기를 원했다. 형산파의 제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도 있었고, 그렇지 않으면 식객으로라도 머물고 싶어 했다.
그 사람들을 모두 수용하려면 돈이 부족했다. 형산파의 재정은 지금 그리 넉넉한 상황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문제는 의외로 쉽게 풀렸다.
형산파의 제자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돈을 싸 짊어지고 온 것이다. 거기다 여러 상인들이 형산파를 후원해주고 너도 나도 나섰다.
그 일들을 처리하느라 막정위와 초사영, 그리고 나한중은 정신없이 바빴다.
“후우…….”
방에서 장부를 정리하던 막정위와 초사영이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야 반을 끝낸 것이다. 초저녁인데도 눈이 다 침침할 정도였다.
그때 방문이 열리면서 나한중과 적운상이 들어왔다.
“사숙님.”
“수고하는구나.”
“아닙니다. 응당해야 할 일인걸요.”
막정위가 웃으면서 하는 말에 나한중도 피식 미소를 지었다. 지금 형산파는 두 번째의 부흥을 맞고 있었다. 일은 힘들어도 마음은 기뻤다.
“얼마나 했느냐?”
“이제 반 정도가 끝났습니다.”
“뭔가 도울 건 없습니까?”
적운상이 묻는 말에 막정위가 손사래를 쳤다.
“관둬라. 천하제일고수한테 장부 정리를 시켰다가 그 뒷감당을 어찌하라고?”
“그런 말 마십시오.”
“하하. 낮에 보니까 적 사제를 따르는 사람들이 어마어마하더라. 사부님께서 그 모습을 보셨어야 했는데…….”
말끝을 흐리는 막정위의 눈에 눈물이 살짝 고였다. 형산파가 이리 다시 일어서기 시작하자 사부인 임옥군이 생각난 것이다.
“구대문파 놈들은 정말 그대로 보낼 겁니까?”
막정위가 임옥군 이야기를 하자 초사영이 감정을 누르지 못하며 나한중에게 물었다.
비무가 끝나고 나자 나한중은 모두를 불러 모아놓고 이제는 원한을 잊으라고 당부를 했다. 적운상이 무당삼현과 화산이로를 꺾은 것은 무림맹을 꺾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일영진인과 구지선사를 비롯한 몇 명의 장문인들은 사문으로 돌아가서 십 년 동안 봉문을 할 거라고 했다. 그러니 나름 복수가 된 것이다.
나한중은 그 사실들을 피력하면서 복수심을 버리라고 당부를 했고, 모두가 동의를 했었다.
하지만 초사영만큼은 마음 정리를 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임옥군과의 정이 제일 깊었던지라 복수하고자 하는 생각을 쉽게 버릴 수가 없었다.
“이미 떠났다. 그러니 더 이상 마음에 두지 말거라.”
나한중의 말에 초사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금방이라도 방을 뛰쳐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나한중이 무서운 눈으로 쏘아보자 그러지 못했다.
“초 사제, 당분간 조사묘에 가서 마음을 좀 가다듬는 것이 어때?”
막정위가 안타까운 눈으로 보며 말했다. 그러자 초사영이 잠시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장문사형. 괜찮습니다. 일을 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습니다.”
“나도 그게 좋을 것 같구나. 바쁘게 지내다 보면 차차 마음 정리가 될 것이다.”
나한중도 반대를 하자 막정위가 초사영의 어깨를 두드려줬다.
“그래, 그럼. 나도 말해놓고 조금 후회가 됐다. 나 혼자 저걸 어떻게 다 처리하겠냐?”
“나보다 자기 고생할 것이 더 걸렸단 말입니까?”
“하하하. 아니란 걸 알지 않느냐?”
막정위가 웃음을 터트리며 말하자 모두가 훈훈한 웃음을 보였다.
“장문사형.”
“왜, 적 사제? 할 말 있어?”
“네. 잠시 다녀올 곳이 있어서 한 두어 달 형산파를 떠나 있으려고 합니다.”
“어디를 가는데?”
지금 수많은 사람들이 적운상 한 명 때문에 형산파에 머물러 있는데, 갑자기 어딘가를 간다고 하자 막정위는 의아했다.
“혹시 누가 초청한 거냐?”
초사영이 끼어들며 묻자 적운상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악안에 좀 갔다 오려고 합니다.”
“악안이면 강서성의 악안을 말하는 거냐?”
“네. 맞습니다.”
“거기는 무슨 일로 가는데?”
적운상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잠시 망설였다. 지금껏 사형제들에게 가족 이야기를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스스로도 잊고 살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 그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려니 조금 멋쩍었다.
“그곳이 제 생가입니다.”
생각지도 못한 말에 세 사람은 서로를 보며 놀란 눈을 했다. 생각해보니 적운상은 고아가 아니었다. 어렸을 때 임옥군에게 듣기로는 분명히 가족이 있었다.
하지만 찾아오는 사람도 없었고 적운상이 찾아가는 일도 없었다. 게다가 돈 몇 푼에 팔려왔다는 이야기를 임옥군에게 얼핏 들은 이후로는 아무도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묻지 않았었다.
그러다 적운상이 구혁상을 따라가는 바람에 십 년을 떨어져 지내게 되자 완전히 잊은 것이다.
“그렇구나. 네게도 가족이 있겠지. 부모님을 만나러 가는 거냐?”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적운상이 썩 내키지 않는다는 어투로 말했다. 막정위는 그런 적운상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보아하니 그동안 한 번도 연락이 없었던 것 같았다. 적운상의 생가에서도 연락이 안 오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렇게 크게 되었으니 가족을 보는 거야 당연한 일이지만 왜 이렇게 갑자기 가려는지 물어도 되겠냐?”
막정위가 묻는 말에 적운상은 이번에도 대답을 망설였다. 평소의 적운상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는 무슨 일을 하건, 어떤 상황에 처하건 항상 거침이 없었고, 말하는 것도 그랬었다.
그런데 지금은 자꾸 머뭇거리면서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만큼 고민도 되고 갈등도 된다는 뜻이었다.
“누이동생이… 와 있습니다.”
“뭐?”
이번에도 전혀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라 막정위는 깜짝 놀랐다. 누이동생이라니?
“그게 정말이냐?”
“네. 절 만나려고 혼자서 몰래 집을 빠져나온 모양입니다. 비무하기 전날 밤에 조사묘로 저를 찾아왔었습니다.”
“그랬구나.”
잠시 어색하니 침묵이 흘렀다. 적운상이 어색해하니 분위기가 그럴 수밖에. 그 침묵을 깨고 나한중이 괜히 헛기침을 하며적운상을 불렀다.
“험! 운상아.”
“예, 사숙님.”
“네가 어떻게 형산파로 왔는지는 예전에 장문사형에게 이야기를 들었다. 자기가 아는 것이 항상 진실은 아니란다. 연란이와 연오 때문에 내가 했던 짓을 생각해보아라. 그 당시 그 아이들 입장에서는 정말 몹쓸 아비지 않았더냐? 하지만 나는 그게 최선이라 생각해서 행한 일이었다. 혈연이라는 건, 그런 것이다. 아닐 수도 있지만, 뭔가 이유가 있었을 수도 있다. 네 생각만으로 뭔가를 단정 짓지 말고 편안한 마음으로 갔다 왔으면 좋겠구나. 지금의 네 모습을 보면 가족들도 크게 후회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냐?”
“맞습니다. 적 사제, 나도 사숙님과 같은 생각이다. 무당파의 장문인과 소림사의 방장까지도 후회를 하며 돌아갔는데, 네 가족이라고 다르겠냐? 오히려 더하면 더할 것이다. 당당히 어깨를 펴고 갔다 와. 아, 양악이와 백 소저와 함께 가는 것이 좋겠다.”
“아닙니다. 그냥… 저 혼자서 갔다 오겠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두 사람이 네 비무 때문에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겠냐? 같이 유람을 간다는 생각으로 느긋하게 갔다 와. 여기 일은 걱정하지 말고.”
“정말 괜찮습니다, 장문사형.”
“괜찮긴 뭐가 괜찮아? 네가 명성 좀 얻었다고 이제는 이 사형의 말을 무시하는 거냐? 정 싫다면 장문인으로서 명령을 내리겠다. 함께 갔다 와!”
막정위가 생각보다 강경하게 나오자 적운상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러다 안 되면 사부인 임옥군의 이름까지 거론하는 막정위였다. 그 수법에 형산파의 제자치고 굴복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하하. 잘 생각했다. 그럼 이제 네 누이동생을 한 번 보자꾸나.”
“장문사형, 그, 그러지 않아도…….”
“괜찮아. 괜찮아. 초 사제는 가서 사제들하고 사매들 불러오고, 백 소저도 불러와.”
“네.”
눈치 빠른 초사영은 적운상이 붙잡을세라 재빨리 방을 나갔다. 그걸 보고 적운상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 * *
“뭐? 적 사형의 누이동생?”
백수연하고 수다를 떨던 주양악이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그래. 빨리 대청으로 와.”
“응.”
초사영의 말에 주양악이 후다닥 뒤따라 나가려다가 백수연에게 팔을 붙잡혔다.
“왜요?”
“그냥 가면 어떻게 해? 처음으로 적 동생의 가족을 보는 건데 간단히 몸단장이라도 하고 가야지.”
“에?”
그런 것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이 주양악이 백수연을 봤다. 그러자 백수연이 웃으면서 약간의 설명을 덧붙였다.
“시누이잖아. 처음부터 얕잡아 보이면 안 돼.”
“아, 그렇구나.”
“초 대협, 우리는 조금 후에 그리로 갈게요.”
“알았소.”
초사영이 웃으면서 밖으로 나가자 백수연은 주양악을 꾸며주기 시작했다. 그동안 초사영은 사형제들을 대청으로 불러 모았다. 모두들 자기 일을 하다가 적운상의 누이동생이 왔다는 말에 주양악과 같은 반응들을 보였다.
“장문사형, 그게 정말이에요?”
초사영에게 이미 들었지만 은서린은 믿기지가 않아서 대청에 들어서자마자 막정위에게 다시 한 번 물었다.
“그래. 적 사제가 데리러 갔으니까 거기 앉아 있어.”
대청에는 이미 사형제들이 모두 와 있었다. 잠시 후에 적운상이 한 소녀와 함께 대청으로 들어왔다. 적교희는 적운상이 어디로 간다 말도 안 하고 무조건 따라오라고만 하자 얼결에 따라왔는데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 줄은 몰랐다.
게다가 모두들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로 눈을 빛내니 살짝 겁이 났다. 이에 적운상의 소매를 잡고 슬쩍 뒤로 숨었다.
그걸 보고 사람들이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하는 행동을 보니 적운상과는 완전히 다른 것 같았다.
“왜 이래?”
“무서워요.”
“하아… 괜찮아. 모두 사형제들이니까.”
그제야 적교희가 조금 당당하게 사람들 앞으로 나섰다. 하지만 사람들의 시선을 한눈에 받으니 부끄러움에 얼굴을 살짝 붉혔다.
“훗! 반가워요. 나는 은서린이라고 해요. 적 사형의 사매예요. 예쁘게 생겼네요. 이리로 와요.”
은서린이 적교희의 손을 잡아서 이끌었다. 그러자 적교희가 조금 불안한 눈으로 적운상을 봤다.
“괜찮다고 했잖아.”
적운상이 퉁명스럽게 말하자 은서린이 곱지 않은 눈초리를 보냈다.
“적 사형! 오랜만에 만난 누이동생한테 말투가 왜 그래?”
적운상은 듣기 싫다는 듯, 한쪽에 있는 자리로 가서 찻잔을 들었다. 그러자 은서린이 적운상을 한 대 때릴 것처럼 주먹을 꽉 쥐어서 들었다가 내렸고, 적교희가 그걸 보고 킥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헤에. 웃으니까 더 예쁘네. 이리로 와요. 사람들을 소개시켜줄 테니까.”
그때부터 은서린은 적교희의 손을 잡고 사형제들을 일일이 모두 소개시켜줬다. 그 와중에 도자명이 얼굴을 붉히면서 인사를 하자 강은영이 사나운 눈초리를 보냈다. 패악룡은 몸 둘 바를 몰라 하며 깍듯하게 인사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