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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월진천 16화

무료소설 패월진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11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패월진천 16화

15화. 제안

 

 

 

 

어찌 된 일이냐며 길길이 날뛰던 목하동은 운남의 무인들에게 쫓겨나듯이 목가로 돌아갔다.

진가 본전각 가주전.

진가신은 자신과 마주한 사내로 인해 좌불안석이었다.

당가 정도가 문제가 아니었다.

상대는 운남을 통일하고 운남왕부로부터 천독곡 일대의 거대한 대지에서 자치권을 행사하는 대족장 모자겸이었다.

게다가 일만의 부족 전사를 수하로 두고 있는 자가 지금 자신의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너무도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소청아, 어떻게 좀 해 보거라. 대족장께오서…….”

진가신의 거듭되는 부탁에 소청은 하는 수 없이 모자겸에게 말했다.

“일어나세요. 아버님께서 불편해하시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어찌 제가 은공과 동석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은공께선 제게 큰 은혜를 베푸셨고 우리 고강족을 운남 최고의 자리에 올리신 분입니다.”

모자겸은 한사코 거부했다.

진가신이 어쩔 줄 몰라 하자 소청은 어쩔 수 없이 기운을 일으켜 모자겸을 강제로 일으켰다.

‘으음!’

모자겸의 안색이 금세 변해 갔다.

부드러운 경기가 자신을 감싸는가 싶더니 들어 세우는 게 아닌가?

일 각 가까이를 버텼다가 속으로 깜짝 놀라 일어났다.

‘과연! 은공께선 반로환동에 만독불침의 고수! 이만한 내공을 연속해서 쓰시면서도 얼굴색 하나 바꾸지 않으시다니!’

모자겸은 속으로 깜짝 놀랐다.

느껴지는 힘에 버티기 위해 단전의 내공을 모조리 일으켰다.

하지만 버틸 수가 없었다.

아무리 뛰어난 무인이라 해도 이렇듯 과한 기운을 계속해서 유지할 수는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기운이 약해지기 마련인데 소청의 힘은 조금도 옅어지지 않았다.

‘젠장, 이 양반 왜 이래? 못 이기는 척 일어나 주지. 세 개의 혈에 있는 내공이 모조리 빠져나갔잖아.’

사실 그것은 소청이 강해서가 아니었다.

단전에 쌓인 힘은 모자겸과 비슷한 정도였지만 그 지속력이 달랐던 것이다.

통상 단전이 비면 운공을 해야 했지만 소청은 단전이 빔과 동시에 인당의 힘이 단전을 채우고 그 다음 혈의 기운이 인당을 채웠다.

즉, 같은 힘을 아홉 번이나 사용할 수 있는 지속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내공을 다시 채우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훨씬 더 많은 운공 시간을 보내야 하는 단점이 있었다.

‘은공의 내공이 실로 대해와 같구나.’

소청의 팔괘공을 알지 못한 모자겸의 오해는 더욱 깊어져만 갔다.

 

잠시의 소요가 끝나고 차가 내어져 오자 모자겸이 입을 열었다.

“제가 찾아온 이유는 은공을 뵙고 싶어 하는 마음도 컸지만 실은 거래를 하고 싶어서였습니다.”

“거래요?”

“예. 운남을 통일하고 난 뒤 어떻게 하면 천독곡의 부족들을 더욱 윤택하게 만들까 고민을 했습니다.”

왕부에서 받은 천독곡은 천혜의 보고였다.

오랫동안 사람의 손이 닿지 않아 개발되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짐조가 사라져서 그 깊은 곳까지 들어간 모양이군.’

소청이 고개를 끄덕였다.

“철광석부터 갖가지 약초와 영물들이 너무도 풍족합니다. 해서 저는 천독곡을 키우기 위해 이 모든 물건을 중원과 거래하기 위해 사천의 당가를 염두에 두고 찾아왔습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진가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의 문파가 아닌 운남 천곡독과 같은 거대한 곳이라면 그저 그런 문파로는 턱도 없는 물량일 것이었다.

그들의 물량을 소화하자면 모자겸의 말대로 당가 정도는 되어야 했다.

“하면 이제 당가로 가실 참입니까?”

“예?”

모자겸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당가를 염두에 두셨다고 하셔서…….”

“처음에는 그랬지요. 한데 와서 보니 은공께서 기거하는 장원이 너무도 작더군요.”

‘이 양반이! 무려 만 평에 가까운 우리 진가를 어떻게 보고? 무관이 생기기 전에 봤으면 아주 거지 취급했겠구먼?’

소청이 눈을 샐쭉하게 떴다.

“그렇지요. 천독곡에 비하면 겨우 손톱 하나만 한 크기가 아니겠습니까?”

진가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해서 결심했습니다.”

“예? 무얼?”

“앞으로 운남 천독곡은 진가와 독점 거래를 할 생각입니다. 은공께서 이런 작은 가문에 계시게 해서는 안 되니까요.”

“…….”

예상치 못한 제안에 진가신이 멀뚱하게 눈을 뜨고 있다가 기겁하는 표정을 지었다.

“대족장! 그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운남에서 거래하려는 물량이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인데……. 본가가 다 소화할 수 없습니다.”

“예?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오다 보니 표국이 있던데…….”

“고작 사천 내를 돌아다니는 작은 표국입니다. 그 정도로 성과 성 사이를 오고 갈 수는 없습니다. 또한 저희는 표국 가문인지라 철광석이나 독물과 같이 다양한 물건을 취급할 수는…….”

진가신이 난색을 표하는데 소청이 나서며 말했다.

“좋습니다. 제안을 받아들이죠.”

“뭐?”

진가신은 아들을 향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잘됐어. 안 그래도 근래 무관만으로는 재정이 모자라는 상황이어서 짐조의 깃털을 하나 더 팔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운남과 거래 독점권을 가지고 표국을 키우면 진가의 재정은 계속해서 쌓여 갈 거야.’

소청은 내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청아. 너 무슨 생각으로…….”

“걱정 말고 맡겨 주십시오.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진가신의 어두운 표정은 밝아지지 못했다.

근래 아들이 믿지 못할 일들을 이루어 내기는 했지만 사안이 너무 컸다.

“허허. 가주님, 은공을 믿으십시오. 은공께서 보통 분이십니까? 전설상에 나오는 반…… 읍읍.”

“…….”

소청이 갑자기 모자겸의 입을 틀어막고 어색하게 웃었다.

“하, 하, 하. 먼 길 오시느라 피곤하셨을 텐데…….”

“아니! 소청아, 대족장께 어찌 이런 무례를…….”

진가신이 화들짝 놀라며 아들을 제지하려 했다.

“아버님, 운남과의 일은 제가 알아서 하도록 하겠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계획이 완성되면 찾아오겠습니다.”

소청은 모자겸의 입을 틀어막은 채 막을 새도 없이 허둥지둥 가주전을 나가 버렸다.

“허, 정말 알다가도 모를 아이로구나. 도대체 밖에서 무슨 짓을 하고 다니길래 운남의 대족장이 은공이라고 부른단 말인가? 허 참. 내 아들 소청이가 맞기는 한 것인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지만 믿음직하게 성장한 아들로 인해 내심 기분이 좋은 진가신이었다.

 

* * *

 

며칠 후.

운남의 사람들은 대족장을 호위한다는 명목 아래 몇 명만 남고 돌아갔다.

상황이 어찌 돌아가는지 궁금해 참을 수가 없었던 진가신은 몇 번이고 고민하다가 소진각을 찾아왔다.

가주라는 신분도 잊어버린 것인지 살그머니 소진각의 문을 열고 빼꼼히 바라보다가 수련 중인 소강과 눈이 마주쳤다.

“아버님?”

“어, 응? 험험, 소강이냐?”

“거기서 뭐 하십니까?”

“응? 아니 뭐. 수련 중이더냐. 창날이 제법 매서워졌구나. 소청이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다들 이젠 아비가 매도 못 들 정도로 성장했어.”

“무슨 그런 말씀을……. 언제든지 매를 들어 주십시오. 아직 배울 게 많습니다.”

“험, 험. 그런데 네 형은 어디 간 것이냐?”

“대족장과 함께 목가장에 갔습니다.”

“목가장?”

진가신이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예, 금가장, 안가장, 백가장에 이어서 오늘은 그쪽으로 간다 했습니다.”

“뭐?”

근래 출입이 잦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진가를 제외한 당가 예하 다섯 가문을 방문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당가와 척을 지고 연을 끊어 버린 뒤로는 그들과 만날 일이 없던 터였다.

“무엇 때문에 그곳들을 찾아갔단 말이냐?”

“글쎄요. 모든 일이 완료되면 아버님께 보고를 드린다고 했습니다.”

“흐흠.”

소강도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이놈이 도대체 무얼 꾸미는 게지?”

진가신이 얼굴을 찌푸리자 소강이 밝게 웃었다.

“걱정 마십시오. 아버님. 이제까지 형님이 실망시켜 드린 일이 있었습니까?”

“안다. 알아서 걱정인 게야. 근래에 변화가 너무도 빨리 찾아와서…….”

물론 자신이 꿈꾸고 있던 가문으로 변해 가고 있었지만 아들이 움직일 때마다 가문이 너무나 큰 변혁을 겪고 있었다.

걱정이 될 정도로…….

 

* * *

 

한동안 화병으로 누워 있던 목하동은 별안간 자신의 집을 찾아온 소청으로 인해 붉으락푸르락해진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소청과는 꽤나 악연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운남의 대족장을 대동하고 온 터라 들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네가 어쩐 일인가?”

말투가 퉁명스러웠다.

“어쩐 일이라니요. 한때는 당가의 그늘 아래서 함께했던 인연이 아닙니까?”

소청이 빙글거리며 웃자 목하동의 눈에 핏발이 돋아 올랐다.

“인연? 흥! 자네로 인해 우리 목가의 손해가 얼마인지 아는가? 그리고 그리 대놓고 찾아오면 당가에서 우리를 뭐라 생각하겠는가! 안 그래도 운남의 일로 소홀하거늘…….”

화를 내면서도 모자겸의 눈치를 살핀 목하동은 뒷말을 흐렸다.

“안 그래도 그래서 찾아왔습니다. 제가 가주님께 좋은 제안을 하나 할까 해서요.”

“제안? 흥!”

목하동이 고개를 돌려 버렸다.

“일단 들어 보시지요.”

“대충 말하고 가게. 자네와 크게 나눌 말이 없으니!”

“예. 그럼 대충만 말하고 가지요.”

은공을 대하는 목하동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은 모자겸은 당장이라도 그의 모가지를 꺾어 버리고 싶었지만 소청이 참고 있으니 코끝만 계속 찡그렸다.

“운남 천독곡 철강 제련에 관한 독점권을 드리겠습니다.”

“…….”

순간 뻣뻣한 자세를 취하고 있던 목하동이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키고 말았다.

“뭐, 뭐라고?”

“들으신 대로입니다.”

확인해 주며 빙긋이 웃자 목하동이 흔들리는 눈동자로 모자겸과 소청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소청은 웃고 있었고 모자겸은 언짢은 표정이었다.

“그럼 이제 앉으시죠. 자세히 말씀드릴 테니.”

“…….”

목하동은 못 이기는 척 자리에 슬며시 앉았다.

“대족장님, 처음 거래하실 철광석의 양이 얼마라고 하셨죠?”

“수레 열 대분입니다, 은공.”

퉁명스러운 모자겸의 말에 목하동은 뒤로 넘어질 뻔했다.

“수, 수레 열 대분요?”

어마어마한 물량이었다.

“예. 그렇다는군요. 대족장님 계속하시죠.”

“예. 뭐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은공께 전권을 드렸으니……. 운남은 철을 제련하는 기술이 부족합니다. 해서 철광석을 지원하며 각종 무기류와 농사에 필요한 도구들을 만들어 줄 곳을 찾고 있습니다. 물론 그에 합당한 가격도 치러야지요.”

“…….”

모자겸의 말에 목하동이 눈을 끔벅거렸다.

“그렇다는군요. 하지만 전권을 가진 저희 진가는 제련 기술이 없습니다. 대장간을 짓는다 해도 고매한 기술을 익히자면 한두 해로는 어려울 것입니다. 해서 저는 이를 목가에 맡기고자 합니다.”

“아, 아니 진 공자. 어찌 그런 큰 건을!”

어느새 목하동은 소청에 대한 호칭을 바꾸고 있었다.

“공짜가 아닙니다. 제련과 생산은 목가에서 하되 저희는 운송권을 가지겠습니다. 좀 더 생각해 주신다면 목가의 다른 운송권을 챙겨 주셔도 좋고요.”

소청이 빙긋이 웃었다.

“…….”

목하동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운남과의 접촉에 실패해 버린 터라 당가와의 관계가 날로 악화되고 있었다.

이미 당가에서 들어오던 물량이 반토막 나 있는 상황이라 재정이 악화되고 있었다.

그런데 운남과의 거래라는 어마어마한 제안이 들어온 것이다.

‘이 거래만 성사되면 당가에서 얻는 것보다 몇 배나 많은 이득을 취할 수 있다.’

쉴 새 없이 침이 넘어갔다.

하지만 쉽게 결정할 수가 없었다.

근래에 진가의 힘이 점점 커지고 있는 추세라고 하지만 고작 방계 하나에 불과한 전력이었다.

당가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했다.

지금 진가와 손을 잡는 것은 도박이었다.

당가와 연을 끊는다는 결심을 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이득이 너무 컸다.

위험했지만 성사만 된다면 목가는 더 이상 당가를 바라보지 않아도 되었고 더 이상 그들에게 고개를 조아리며 핍박받을 이유도 없었다.

“쉬운 결정이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시간을 드리지요. 심사숙고해서 연통을 주시길 바랍니다.”

소청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목하동이 자신도 모르게 엉거주춤 따라 일어났다.

“하지만 너무 오래 기다리지는 않을 생각입니다. 그럼.”

소청은 공손하게 포권을 하며 돌아갔다.

목하동은 그런 둘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허, 그저 돌이 던져진 파문인 줄 알았더니 승천을 위한 용오름이었던 것인가. 용이 될지 이무기로 남을지 모르겠구나…….”

목하동의 한숨이 깊어졌다.

 

* * *

 

당가의 삼양전.

콰앙!

철제 의자가 진기를 이기지 못하고 찌부러졌다.

진노로 수염까지 부들부들 떨던 당구독이 그의 앞에 모인 수뇌들을 무시무시한 눈으로 쓸어 보며 말했다.

“뭐라? 다시 말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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