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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월진천 14화

무료소설 패월진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21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패월진천 14화

13화. 암시장(독우)

 

 

 

 

성벽 틈으로 내려간 지하에는 거대한 마을을 방불케 할 정도로 많은 건물들이 지어져 있었다.

“역시 대단해. 지하에 이런 마을을 만들다니…….”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에 서서 지하 공간 전체를 바라보던 소청이 과거에도 그랬듯이 혀를 내두르며 감탄했다.

그러곤 천천히 암시장 안을 걷다가 한곳에서 멈춰 섰다.

갖가지 병장기와 쉽게 볼 수 없는 물건들이 정리되지 않은 모습으로 쌓여 있었다.

“초박!”

큰 소리로 부르자 중년의 사내 하나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걸어 나왔다.

“뉘쇼? 뉘신데 내 이름을 아는 게요?”

초박은 여유로운 얼굴 표정과 달리 꽤나 긴장하고 있었다.

암시장에서 오랜 세월을 보낸 그는 ‘흑사’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고 초박은 어린 시절 아명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손짓하자 네 명의 사내들이 그들을 포위했다.

“그냥 알아. 이렇게 할 것도…….”

피식 웃은 소청이 새하얀 송곳니를 빛내며 포위한 인물들이 칼을 뽑기도 전에 움직였다.

“저, 저럴…….”

초박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를 포위한 네 명의 인물은 사천 낭인계에서도 꽤나 알아주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고작 십여 초 만에…….

“자, 그럼 이제 대화할 준비가 됐나?”

“도대체 당신 누구길래?”

“나?”

소청이 방립을 벗자 쉰이 넘은 중년의 얼굴이 드러났다.

“막야.”

“마, 막야? 설마 당가에서 피독주를 훔친 그 막야?”

“혀가 길면 잘리는 법이지.”

소청의 눈에 살기가 감돌자 헛바람을 집어삼킨 초박이 낮게 허리를 숙이며 안내했다.

“드, 들어오십시오.”

쌓여 있는 물건들을 구경하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는 소청의 뒤를 따르며 쓰러진 낭인들을 힐끗거린 초박은 혀를 내둘렀다.

‘대단한 자다. 그저 뛰어난 도둑으로만 소문나 있거늘…….’

 

소청은 서가를 밀어내고 나타난 작은 방으로 안내되었다.

“흠. 방이 좀 작은데?”

“예?”

“독성이 좀 센 녀석이라.”

“대인!”

초박이 눈치를 살피면서도 약간 허세스럽게 말했다.

“소인이 이곳 장사만 이십 년째입니다. 다루어 본 독이 수백 종도 넘습니다. 하니 그 점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나름 독성에 내성이 있음을 자부하던 초박은 언짢은 듯한 표정이었다.

“그래? 뭐 자신 있다면야.”

소청이 피식 웃으며 함의 뚜껑을 열었다.

“크헙!”

함이 열리자마자 초박이 얼굴이 노래져서 밖으로 튀어 나갔다.

“내성 같은 소리 하네…….”

초박은 아무렇지도 않게 깃털을 들고 있는 소청을 괴물 보듯 하며 자신이 가진 최상질의 내독단을 삼켰다.

“대, 대단합니다. 이런 독성이라니…….”

내독단을 먹고서도 초박은 감히 방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삼두홍사의 독보다 수십 배 이상 강한 독이다.”

“사, 삼두홍사?”

초박은 눈이 튀어나올 뻔했다.

사중지왕이라는 삼두홍사의 독은 쇠를 녹일 정도로 강했다.

그런데 그것보다 수십 배 이상 강하다니…….

그런 독은 아직까지 알려져 있지도 않았다.

“못 믿겠으면 시험해 봐도 좋아.”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그 정도라면 작은 가격이 아닌지라.”

초박은 온몸에 보호구를 두르고 긴장감을 품은 채 깃털의 독성을 시험했다.

몇 가지 약품으로 시험해 본 그는 경악했다.

‘이, 이럴 수가! 정말로…….’

초박은 깃털과 소청을 번갈아 쳐다보았고 소청은 씨익 웃으며 손가락 두 개를 폈다.

“두 관, 황금으로.”

“너무 비싸…….”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소청이 일어났다.

“흥정하러 온 것이 아니야. 팔 곳은 많으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소청은 깃털을 함에 넣고 닫고 있었다.

다급해진 것은 초박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물건이었다.

암시장 불문율만 아니라면 어디서 구한 것인지 도대체 그 깃털의 정체가 무엇인지 물어보고 싶었다.

“두, 두 관! 드리겠습니다.”

소청이 고개를 내저었다.

“방금 가격이 올랐어. 의문을 가진 순간부터…….”

“예?”

“두 관 반!”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반 관이면 쓸 만한 초옥을 몇 채나 살 수 있는 금액인데…….

하지만 이미 소청은 가게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두 관 바……, 이런 젠장! 세 관 드리겠습니다.”

“좋아.”

소청의 걸음이 멈추었고 입가에 미소가 생겼다.

초박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손해는 아닐 것이다.

삼두홍사의 독 한 병이 금 스무 냥에 거래된다.

그 수십 배에 달하는 독성이라면 최소 다섯 관은 받을 수 있었다.

저 깃털에서 독을 추출할 방법만 찾는다면…….

함을 넘겨받고 완전히 봉하자 독성이 줄었지만 초박은 다시 철함을 꺼내 단단히 봉했다.

“여기 있습니다.”

금을 받은 소청이 손에 들고 가려 하자.

“아니 들고 가시려고요? 제가 댁으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안전하게.”

“꼼수 쓰지 마. 내 정체를 알아서 좋을 것 없으니까.”

“…….”

“혹시 흑전 있나?”

“예? 여기 있습니다.”

“그럼.”

흑전을 받고 그를 향해 웃어 준 소청의 모습이 안개처럼 흩어져 버렸다.

“어?”

방금 전까지 눈앞에 있던 사내가 사라지자 초박이 제 눈을 몇 번이고 비볐다.

 

* * *

 

세가로 돌아온 소청은 가주전을 찾아가 금 두 관을 꺼내 놓았다.

“허헙!”

진가신은 물을 마시다 사레가 들려 켁켁거렸다.

미소를 지은 소청은 자신이 세운 계획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이른바 ‘진가 부흥책.’

한참을 고개를 끄덕이던 진가신의 얼굴에는 놀람과 감탄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허! 그런! ……허 참.”

감탄만 내뱉던 진가신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는 소청의 어깨를 몇 번이나 두들기며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허, 언제 이리 세부적으로 계획을 세워 뒀단 말이냐? 무관이라니. 바로 시행하도록 하마. 그리고 무관은 네가 맡거라.”

“예? 아, 아닙니다. 무관은 가성 숙부에게 맡길 생각입니다.”

“가성이에게?”

“예.”

“하나 이제 가문의 최고수는 네가 아니냐.”

“기초를 가르치기에 가성 숙부만큼 뛰어난 분은 없습니다. 그리고 잊으셨습니까? 저도 가성 숙부에게 배웠습니다.”

“흠.”

잠시 고민하던 진가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그리하거라.”

“예. 아버님.”

 

진가신이 본가 좌우로 사들인 삼천 평의 대지에 공사가 시작되었다.

수많은 목수들과 인부들이 동원되었고 시간이 갈수록 차츰 그 모습을 갖추어 갔다.

공사가 시작된 지 여덟 달.

진가 무관이 개관되었다는 소식은 간양에서 시작되어 사천 전체로 퍼져 나갔다.

진혼창 소청이 진가의 창을 가르친다는 소문은 사천을 또다시 들썩이게 만들었다.

제법 날고뛴다 하는 가문의 자제들이 기대와 호기심을 가지고 진가의 무관에 등록하기 위해 줄을 지어 찾아왔다.

 

* * *

 

따악!

“틀렸어!”

신경질적인 호통 소리가 들려왔다.

단봉을 든 소청은 자신이 직접 가르치고 있는 무인들 틈을 누비며 휘둘러 대었다.

봉이 휘둘러지면 어김없이 무인 하나가 무릎을 꿇었다가 신음 소리도 내지 않은 채 일어나 자세를 잡았다.

“뒷손은 새끼손가락부터 말아 쥐고 앞 손은 얹어 놓듯 가벼워야 하며 내질렀을 때는 비틀듯이 잡아라!”

그의 외침에 근 사십여 명이나 되는 무인들이 일제히 창대를 내뻗었다.

촥!

오와 열을 맞추어 일제히 뻗어지는 창대의 합은 마치 군문의 그것을 보는 양 장엄했다.

그저 기본기인 찰법 하나임에도 진가의 무인들은 조금의 허술함도 보이지 않았다.

“항상 강조했듯이 모든 무공의 기본은 십지조지다. 기초가 튼튼하지 못하면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할 수 없어!”

창대가 내질러지는 와중에 소청이 지나다니며 일부러 무인들의 발을 찼고 넘어지는 이에게는 여지없이 몽둥이세례가 이어졌다.

하지만 그 누구의 표정에도 불만은 없었다.

오히려 얻어맞은 자는 소청의 가르침에 감사하며 고개까지 숙였다.

소청이 가르치고 있는 무인들은 ‘진무월창’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소청이 진가를 위해 직접 만든 무인대였다.

마음과 열망, 노력은 있으되 돈이 없고 끈이 없어 무공을 이루지 못하는 자들.

소청은 진가를 찾아온 이들 중에 그들만을 따로 선발했다.

무공에 대한 갈망만 있다면 낭인이든 건달이든 직업을 가리지 않았고 아이이든 노인이든 나이를 가리지 않았다.

그들에게 창술과 내공심법을 가르쳤고 손수 몸을 어루만져 기혈과 세맥을 뚫어 주었다.

소청이 그들에게 해 준 벽타고증, 괘근안마, 권종지사의 열두 가지 기예가 무림인이라면 제 스승에게 한 번이라도 받길 바라 마지않는 추궁과혈임을 알게 된 이후에는 그 충성심이 하늘을 찌를 듯했다.

처음에는 언제나 퉁명스럽기만 하고 갖은 욕설과 매질을 해 대는 소청에게 적응하지 못해 화도 내 보고 대들기도 했지만 서너 달이 흐른 지금에는 오히려 그 퉁명스러움이 즐거웠고 욕설이 진심 어린 충고처럼 들렸다.

“뭘 처맞으면서 실실 웃어!”

소청의 핀잔에 인근 나무꾼의 아들인 청연이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웃었다.

“이런 씨!”

몽둥이를 높이 들었다가 청연의 웃는 얼굴에 소청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야! 다 모여 봐!”

소청이 진무월창의 무인들을 불러 모으고 연무장 한편에 놓인 바위 앞에 섰다.

그러곤 연무장과 이어진 진가 무관의 담벼락을 힐끗거렸다.

진가신이 없는 틈을 타서 무관의 문하생들이 참새 떼처럼 담벼락에 붙어 진무월창의 수련을 구경하고 있었다.

“너희들이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모양인데! 찰법은 그렇게 하는 게 아냐! 그저 찌르기만 하는 게 아니라 제대로 된 찌르기를 하란 말이야!”

소청은 나무 창 하나를 들고 바위 앞에 섰다.

“첫째는 자세!”

그가 항상 강조하던 기본이었다.

두 발을 넓게 벌리고 서자 마치 땅속에 뿌리박은 고목처럼 굳건해 보였다.

“둘째는 파지!”

그들이 잘 볼 수 있도록 손가락을 하나씩 천천히 말아 쥐고 창대를 넓게 잡자 산악과도 같은 기세가 퍼져 나갔다.

“셋째는 극의! 목표를 향해 똑바로 내질러야 해. 흐트러져서도 안 되고 떨려서도 안 돼!”

바위를 노려보는 소청의 들숨이 가슴을 터트릴 듯 부풀렸고 날숨이 천천히 흘렀다.

순간!

차앙!

창날이 엄청난 속도로 내질러졌다.

“와아아아!”

창대가 바위를 깊숙하게 박혀 든 모습에 담벼락에 붙은 무관의 문하생들이 감탄하면서 함성을 질러 대었다.

애써 듣지 않는 듯 무시한 소청은 진무월창을 향해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이게 제대로 된 찰법이다. 그리고 내공이 가미된…….”

소청이 창대를 잡고 단전의 기운을 일으켜 창대로 밀어 넣었다.

쏜살같이 내달린 기운이 창날의 끝에 도달하는 순간 그의 손이 가볍게 비틀렸다.

취릿!

꽈앙!

창이 꽂혀 있던 바위가 산산조각 나며 터져 버렸다.

“이것이 기초 중의 기초! 란과 나법.”

그 위용 어린 모습에 무관의 문하생들은 입만 떡 벌리고 있었다.

사람만 한 바위를 창대 하나로 터트린다는 것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

중원 일절이라 불리는 아미창이나 가능한 경지였다.

“야, 근데 대공자께서 웬일로 직접 시범을 보이시냐? 이 공자 안 시키시고?”

적산이 소곤거리자 청연이 턱짓으로 문하생들을 가리켰다.

“사형, 정말 눈치하고는……. 홍보 아닙니까, 홍보. 저 봐요. 당장이라도 지금 본 모습을 사방에 소문낼 듯한 눈들이잖아요.”

딱! 따악!

“으극!”

적삼과 청연이 동시에 머리를 감싸 쥐었다.

“이것들이! 웬 잡설이야! 아직 할 만하지? 지금부터 진가 외곽으로 백 바퀴! 제일 늦은 놈은…… 뒈질 줄 알아!”

소청의 외침에 아연실색한 진무월창의 무인들이 청연과 적삼을 째려봤고, 소강은 이미 쏜살처럼 달리고 있었다.

 

* * *

 

진가는 차츰차츰 성장해 나가기 시작했다.

전생에 수많은 문파들 중 기초를 다지며 성장해 왔던 이들을 생각하며 소청이 세운 계획대로 천천히 사천에 자리를 잡아 나갔다.

개관 이 년을 맞이한 무관은 서서히 그 입지를 굳히며 두각을 드러내는 무인들을 배출하기 시작했다.

“자, 이제 무관은 되었고 남은 건 소강인가?”

소청은 연무장 지붕 위에 올라가 진무월창의 무인들과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달리고 있는 소강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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