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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월진천 12화

무료소설 패월진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21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패월진천 12화

11화. 월창진당혼 (3)

 

 

 

 

당태위는 확신해 마지않았다.

천뢰칠성표.

벼락의 힘을 담아 쏟아 낸 폭발을 막지 못할 것이라 자부했다.

지난 세 달간, 한계까지 자신을 몰아붙여 얻은 힘이었다.

당가가 자랑하는 녹동인 셋을 흔적도 없이 박살 내 버린 기술이었다.

우우우웅!

그런데.

공간이 갑자기 일그러졌다.

휘이이잉!

세찬 바람이 폭발이 만들어 낸 여파를 모조리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새하얀 궤적이 천상의 무희가 추는 춤처럼 아름답게 펼쳐져 비무대를 가득히 채웠다.

‘설마!’

단번에 단전의 기운을 모조리 긁어낸 당태위는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그 아름다운 궤적을 응시했다.

궤적이 멈추자 관중들은 긴장감으로 마른침을 삼키며 숨소리를 죽였다.

선명하게 드러난 소청은 폭발의 여파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으로 기수식을 취하고 있었다.

낮고 느리게 쉬어지는 호흡 소리가 당태위의 귓가에 선명하게 들려왔다.

그리고 호흡이 멈췄다.

“이제 받아 봐라.”

나지막한 소청의 목소리.

순간 소청의 앞발이 내디뎌졌다.

일순간 소청이 당태위의 기감에서 사라졌다.

‘헛!’

헛바람을 집어삼키는 순간 물러서는 당태위의 호흡이 흐트러졌다.

불과 한 호흡이었지만 그 차이는 컸다.

방어세를 취하기도 전에 측면에서 나타난 소청의 창대가 휘돌아 옆구리를 때렸다.

쩡!

간신히 들어 막은 필멸비가 휘어졌고 검면에 덧댄 손바닥에서 피가 튀어 올랐다.

‘크윽!’

머뭇거릴 새도 없이 창극이 두 개로 갈라지는가 싶더니 빛살처럼 뻗어 나왔다.

‘감월식!’

소청은 막을 틈도 주지 않았다.

아차 하는 순간에 양쪽 옆구리에서 피가 튀어 올랐다.

‘간월식!’

산악 같은 기세가 뿜어져 당태위를 집어삼켰다.

쉬지도 않고 창대가 휘둘러졌다.

속도를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치고 들어오자 일일이 막지 못한 당태위는 육참골단(肉斬骨斷 : 살을 주고 뼈를 침)의 수법으로 창대를 행해 몸을 내밀며 소청의 가슴팍을 향해 필멸비를 뻗었다.

‘손월식!’

순간 당태위를 비웃듯 소청의 공격이 변화를 일으키며 내뻗은 필멸비를 휘감으며 찔러 들어왔다.

‘리월식!’

뜨거운 열기와 함께 몰아치는 기운 내뻗은 팔에 수십 개의 자상을 만들었다.

“으윽!”

‘진월식!’

이번엔 갑자기 허공중에 예측하기도 힘들게 방향을 틀어 오며 당태위의 온몸을 때렸다.

“크윽!”

더 이상 그를 막을 수가 없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이끌려 다니기만 하고 제대로 된 공격조차 하지 못할 것 같았다.

“젠장!”

당태위는 무언가를 작심한 듯한 표정으로 훌쩍 물러나 비무대의 끝자락에 섰다.

당가의 모두가 기대감을 가진 채 보고 있는 상황이니 져서는 안 되었다.

그는 누가 뭐라 해도 당가의 자존심이자 미래였다.

당구독이 어째서 그리 혹독하게 자신을 다루었는지 어째서 더욱 실망했는지 알고 있었다.

꺾여서는 안 되는 자존심이었기에 그는 처참하게 패배하기보다는 악수를 두기로 했다.

비어 버린 단전에 생명력이나 다름없는 원정지기를 뽑아내 채웠다.

날카로운 필멸비의 예기가 느껴졌고 그는 소청을 향해 몸을 솟구치며 자신이 가진 모든 힘을 필멸비에 담아 뻗어 내었다.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넷, 넷이 여덟…….

필멸비가 수많은 잔영을 만들며 비처럼 쏟아졌다.

“만! 천! 화! 우!”

“저런!”

멸절사태를 포함한 수뇌들이 튀어나올 듯 눈을 크게 뜨며 놀란 표정으로 벌떡 일어났다.

비록 완벽한 화후를 가지진 못했지만 과거 무림 일절이라 불렸던 당환 이후 누구도 익히지 못했던 당가 최강의 암기술이 펼쳐졌다.

모두가 끝이라 생각하는 순간 하얀 궤적을 만들어 낸 소청의 창이 모두의 걱정을 단번에 날려 버렸다.

“태월식.”

휘도는 창이 거대한 소용돌이를 만들었고 소용돌이는 전설의 영수 ‘탐’처럼 필멸비의 잔영을 모조리 먹어 치웠다.

그리고 소청의 눈에서 서늘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연무장이 뒤흔들릴 정도로 진각을 밟고 솟구쳐 하늘에 떠오른 순간.

달이 떠올랐다.

소청의 창극에 모인 기운이 거대한 구(球)처럼 변했다.

모든 것이 정지했다.

솟구친 소청을 따라 고개를 들어 올린 이들의 호흡이 멈추었고 허공에 떠 있던 당태위의 낙하가 멈추어졌다.

그리고 소청은 창대의 끝을 잡고 내리쳤다.

“만월의 압살(壓殺)!”

나지막하게 내뱉은 한마디.

창대가 부러질 듯이 휘어졌고, 멈춰졌던 시간이 찰나에 흐르기 시작했다.

당태위의 눈에는 세상을 빛으로 가득히 채우던 달이 부서져 유성처럼 아름답게 떨어지는 듯 보였다.

콰콰콰콰!

연무장이 통째로 내려앉았고 강렬한 기의 폭풍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며 먼지구름을 만들었다.

휘오오오오!

바람이 불어 먼지가 서서히 걷히고 창대를 비껴든 소청과 쓰러져 정신을 잃어버린 당태위의 모습이 보였다.

“…….”

그 자리에 있던 어떤 이도 입을 떼지 못했다.

‘압도’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강렬한 소청의 모습은 그 어떤 설명도 필요하지 않았다.

쓰러진 당태위를 지그시 응시하던 소청은 아릿한 아픔이 느껴지는 자신의 옆구리를 바라보았다.

당태위가 던진 필멸비가 스치고 지나간 자리였다.

‘역시 미래의 암왕이라는 건가? 대단하군, 당태위. 완벽한 만천화우였다면…….’

완전히 막지 못했다.

또한 짐조의 독을 얻어 만독불침을 이루지 못했다면 필멸비에 발린 패혈산에 죽은 것은 자신이었으리라.

소청의 얼굴에는 왠지 씁쓸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워, 월……창, 진당혼(月槍鎭唐魂).”

누군가의 입에서 흘러나온 한마디가 모두의 가슴에 파고들었다.

진가의 월창이 당가의 혼을 짓밟다.

패배한 당가도 승리한 진가도 그저 멍하니 소청을 바라볼 뿐이었다.

‘대단한……. 저 정도라면 둘 다 후기지수의 수준을 넘었다. 더욱이 진가의 대공자는 내공만 받쳐 준다면 백대 고수에 버금가는 실력이 아닌가.’

멸절사태 역시 놀람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놀람보다는 장문인이 된 이후 잊고 있었던 호승심이 끓어올랐다.

창을 쓰는 무인은 흔하지 않았다.

그것도 자신과 비슷할지도 모를 정도의 무인이 창을 쓰는 경우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움켜쥔 그녀의 주먹에서 땀이 배어 나왔다.

고작 십구 세의 나이에 만천화우를 펼쳐 낸 당태위나 그것을 막으며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위력의 창술을 보인 진소청이나…….

‘진소청, 변두리 가문에서 무림을 뒤흔들 무인이 나타났으니 사천의 세력 판도가 뒤흔들리겠구나.’

그렇게 당가가 주체한 비무 대회는 끝이 났고 긴 여운은 무너져 버린 비무대만큼이나 오랫동안 남아 있었다.

 

* * *

 

“…….”

소청은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비무가 끝나고 돌아온 뒤로는 일절 외부 활동을 하지 않았다.

문득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찌르르한 느낌이 여전히 손안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

비무를 할 때는 몰랐던 느낌이었다.

“무공이라…….”

신투였던 전생에서는 제대로 무공을 익힐 수 없는 한계에 부딪혔지만 누군가와 격렬하게 싸워 본 적도 없었다.

무공을 완전히 몰랐던 것이 아니다.

경공이라면 그를 따라올 자가 없었고, 알고 있는 무공에 대한 식견과 그 가짓수로만 따지면 중원에서 그보다 뛰어난 자는 없을 것이라 자부했다.

대성하기에는 너무 늦은 나이에 무공을 익혔고―기관진식이라면 모를까― 딱히 경공 이외에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무공을 익히려 그토록 노력했는데 지금은 그 무공이 너무도 쉬웠다.

당태위와의 비무에서 느낀 그 짜릿함.

“손맛이랄까?”

타격 시에 창대를 통해 느껴지는 찌르르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흥분되게 했다.

 

그렇게 이틀 동안 누워서 천장만 보던 소청은 밖으로 나갔다.

“큰도련님!”

어머니 섭약란의 일곱 살 먹은 시동이 졸다가 소청을 보고는 입가의 침을 닦았다.

“어? 네가 왜 여기 있어?”

“왕칠 아저씨는 바빠요.”

“바빠?”

“네. 요 며칠 찾아오는 사람이 너무 많아져서요.”

“그래?”

고개를 주억거린 소청은 무심코 걸음을 옮겼다.

자신의 거처인 소진각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소담하게 지어진 작은 전각과 정원, 정원 안에 만들어진 연못, 그리고 이제는 좁아 보이는 연무장.

“흠. 이곳에서 처음 시작했구나. 나도 패월창도.”

소청은 소진각으로 향하는 문을 지나 본전각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표국으로 이어진 길이 보였다.

그리고 여느 때와는 달리 표국 쪽이 무척이나 시끄럽게 느껴졌다.

“무슨 일 있나? 소란스럽네. 대규모 표행 건이라도 들어온 건가?”

호기심을 느낀 소청이 본전각으로 가던 발길을 돌려 표국으로 향했다.

익숙한 담벼락.

익숙한 표국의 깃발들.

그리고.

“어! 월창진혼이다!”

“뭐?”

“뭐라고?”

갑자기 누군가 외쳤고 수많은 사람들이 담벼락에 달라붙었다.

깜짝 놀란 소청이 물러나다 반대편 담벼락에 등을 부딪쳤다.

“…….”

“월창진혼! 저는 북서 낭인대의…….”

“저는 비혼 표국의…….”

“저는…….”

겹겹이 쌓인 사람들이 저마다 자신의 이름을 외쳐 대기 시작했다.

소청은 도통 적응되지 않는 상황에 눈만 말똥하게 뜨고 끔벅거렸다.

‘뭐, 뭐야? 이 사람들?’

그때 당황한 표정을 한 대표두가 뛰어나와서 소청에게 각 잡힌 인사를 건넸다.

“충!”

“…….”

“대공자를 뵙습니다.”

“…….”

무릎까지 꿇은 대표두가 고개를 숙이는 모습에 어안이 벙벙해진 소청은 더욱 눈을 크게 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시시껄렁한 농담을 건네 오며 살갑게 대해 주던 대표두였다.

대표두가 미친 게 아닐까?

한데 갑자기 담벼락에 몰려들었던 이들의 얼굴 표정에 부러움이 떠올랐다.

‘뭐야? 뭘 부러워해?’

그리고 소청은 대표두의 표정을 볼 수 있었다.

부끄럽기 짝이 없는 자신의 행동을 무척이나 만족스러워하는 표정이었다.

‘뭘 만족하는 거야? 이 작자야!’

어이가 없어진 소청을 향해 대표두는 갑자기 호위 무사라도 된 양.

“제가 모시겠습니다. 대공자!”

“아니 지금 뭐 하는…….”

“아, 핫핫핫. 괜찮습니다. 저쪽으로 가시지요. 핫핫핫.”

어색한 웃음으로 말을 끊어 버린 대표두는 뒤에서 부러움에 찬 눈으로 지켜보는 이들의 눈치를 살피며 소청의 곁에 바싹 달라붙어 속삭였다.

“어허, 왜 이러시나. 연기 좀 해요, 연기.”

“에?”

“못 들었어요? 월창진혼. 전부 소각주님 때문에 모인 사람들이잖아요.”

“에?”

“어쨌든 저쪽으로 갑시다. 거참 눈치 없기는……. 쯧쯧.”

“…….”

현 상황이 정리되지 않은 소청을 대표두가 끌고 가듯이 당겼다.

“물러서라! 진가 대공자님 지나가신다.”

그 말이 효과라도 있은 것일까?

담벼락에 있던 이들이 화들짝 놀라며 뒤로 몇 발이나 물러났다.

‘이것들이 단체로 경극을 배웠나? 뭐가 이리 합이 잘 맞아? 그리고 도대체 이 웃긴 상황은 뭐고?’

대표두는 소청을 쫓아내다시피 후원까지 데려다 놓고 돌아갔다.

“나 참, 뭐야 도대체. 월창진혼? 달 창이 혼을 누른다니? 뭔 말이야?”

고민보다는 짜증이 먼저 나 버린 소청은 얼굴을 찡그리고 본전각으로 돌아갔다.

그곳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예물을 들고 줄을 지어 있었다.

“이건 또 뭐야?”

“어? 진혼창이다!”

“뭐? 정말?”

“진짜 진혼창이잖아?”

같은 상황이 반복되었다.

표국에서처럼 달려들진 않고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지만 표정은 매 한가지였다.

“헛! 대공자!”

“…….”

멀리서 소청을 발견한 진가성이 나쁜 짓을 하다 들킨 듯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한달음에 달려왔다.

‘설마? 숙부님까지? 무릎을?’

진가성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며 외쳤다.

“대호법 진가성이!”

‘대공자를 뵙습니다.’

“대공자를 뵙습니다.”

‘역시……. 뭘 꾸미길래 다들 대사가 똑같은 거야?’

후생이긴 해도 숙부는 숙부였다.

난감해진 소청이 그를 일으키려 다가가려는데.

“그냥 하는 대로 처받아! 초 치지 말고!”

원래 이런 성격이었을까?

공손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진가성이 그를 잡아먹을 듯이 쳐다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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