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월진천 1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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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44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월진천 11화
10화. 월창진당혼 (2)
소청이 당태위를 향해 피식 웃었다.
‘이런 망할 자식이!’
여유 있게 받아넘기는 그 모습에 당태위는 머리끝까지 화가 치솟았지만 애써 마음을 진정시켰다.
‘나를 도발하려는 것이겠지. 그러나 전처럼 그리되지는 않을 것이다.’
당태위는 심호흡을 하며 품에서 필멸비를 꺼내 역으로 쥐었다.
“아니! 필멸비를?”
진가신은 물론 멸절사태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당가의 그 많은 무공 중 암기술을 사용한다 했을 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필멸비를 꺼내 드는 모습에 눈가가 파르르 떨려 왔다.
무릇 백일창, 천일도, 만일검이라는 말이 있다.
백일창, 그만큼 익히기 쉽다는 뜻이다.
시전자의 능력보다 무구 자체의 이점이 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익히기 쉽고 단순하나 그 길이로 인해 공수 전환이 느린 것은 어쩔 수 없는 단점이었다.
그로 인해 창술가 중 천하를 울리는 고수는 흔치 않았다.
아미창의 달인이라는 자신조차 그 점만은 부인할 수 없었다.
그런 창법에서 가장 상대하기 까다로운 무기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암기’였다.
암기술은 일반 무공과 달랐고 특히나 당가의 그것은 그 출수와 궤적을 예측하기 어려웠다.
괜히 ‘당가삼배공’, 즉 당가의 신묘막측한 암기술을 피하려면 세 배의 무공을 가져야 한다고 했겠는가?
그런데 그 와중에 공수 전환이 빠른 단검을 꺼내고 그 단검 중 최고의 작품이라 불리는 필멸비라니…….
‘암기술은 물론 단검술까지 함께 펼칠 생각인가? 당가가 모두의 앞에서 진가의 자존심를 무너뜨려 놓을 생각이군!’
하지만 소청이 암기술을 수용한 이상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멸절사태가 고개를 돌려 당구독을 째려보았다.
하지만 당구독은 모르는 척 얼굴을 돌리며 비릿하게 웃고 있었다.
‘비겁한지고……!’
당태위가 기수식을 취하는데 소청이 자세를 편하게 세웠다.
“아, 잠깐.”
“……뭐?”
당태위의 신경질적인 물음에 대답도 하지 않은 소청은 천천히 걸어 수뇌부의 자리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목가 검장의 가주 목하동을 향해 공손하게 인사했다.
“아, 아니 뭔?”
소청의 행동 때문에 그에게 시선이 집중되자 목하동이 당구독의 눈치를 살폈다.
“목가에서 만들어 주신 이 창,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저를 위해 성심을 다해 만들어 주신 모양인지 손에 착 달라붙더군요.”
“아, 아니 그건…….”
눈을 찡긋거리는 소청의 말에 목하동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버렸다.
‘이런 개자식이! 일부러?’
목하동은 어떻게든 모면해 보려 했지만 당구독의 얼굴은 이미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소청의 말 한마디에 마치 당가를 이기기 위해 진가를 도와준 꼴이 되어 버렸다.
‘망할……. 진가 놈. 지난번엔 아들놈을 그리 만들더니…….’
속으로 눈물을 흘리는 목하동을 뒤로한 소청이 다시 당태위를 응시했다.
“자, 난 준비됐는데. 어떻게, 내가 먼저 갈까?”
소청이 창을 비껴든 채 또다시 당태위를 도발했다.
“아니, 선수는 내가 먼저 가도록 하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일보에 공간을 뛰어넘었고 비무가 시작되었다.
소청의 눈앞에 나타난 당태위의 필멸비가 수십 개로 나뉘며 전신 요혈을 노리고 들어왔다.
‘아무리 공격이 많아 보인다 해도 사람의 손은 둘. 나머진 모두 허초, 실초는 일단 목인가?’
단숨에 허와 실을 구분한 소청은 가볍게 상체를 흔드는 것만으로 검격을 모조리 피해 버렸고 슬쩍 들어 올린 창으로 당태위의 겨드랑이를 찔렀다.
“흥!”
지면을 박차며 몸을 물린 당태위의 손에 다섯 개의 암기가 잡혔다.
피피피핑!
허공중에서 쏘아 낸 암기가 소청을 향해 쾌속하게 날아왔다.
‘뼈의 끝은 이빨, 근육의 끝은 혀, 혈관의 끝은 모, 피부의 끝은 손톱과 발톱. 십지조지(十指爪地) 하여야 용천이 살아나고 손가락을 펴야 노궁이 살아난다.’
소청이 발가락에 힘을 주며 창대를 중단으로 옮기자 거목과도 같은 기세가 뿜어졌다.
“일단은 가볍게…….”
나지막하게 읊조린 소청이 창대를 튕기듯이 움직였다.
따다다당!
암기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튕겨 나가는 사이 어느새 측면에 나타난 당태위가 필멸비를 횡으로 그어 왔다.
소청은 가볍게 몸을 뒤로 젖히며 발을 뻗어 올렸다.
턱!
예상한 것처럼 팔을 들어 막은 당태위는 한 발로 선 소청의 하단을 노렸다.
장창의 움직임을 봉쇄하기 위한 근접전을 선택한 것은 매우 뛰어난 판단이었고 그만큼 당태위가 대련에 능숙하다는 뜻이었다.
빠바박! 팍!
반 장도 안 되는 거리를 두고 권각 수십 초가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르게 이어졌다.
권각에 이어 필멸비가 날카로운 예기를 뿜으며 휘둘러졌지만 모조리 피해 내는 소청의 얼굴에는 조금의 당황스러움도 떠올라 있지 않았다.
‘제법이군. 역시 암왕이야. 삼양수에 추뢰신법. 금룡편법을 활용한 단검술까지. 말이 암기술이지 당가의 무공을 빠짐없이 섞었네.’
소청은 빠른 공격을 피해 내면서도 그가 사용하고 있는 무공을 모조리 읽어 내고 있었다.
“차앗!”
갑자기 좌측에서 필멸비를 휘두른 당태위의 신형이 우측으로 낮게 이동해 빠지며 손을 휘저었다.
아래에서 엄청난 속도로 솟구치는 비표를 본 소청은 비릿하게 웃었다.
예전의 그였다면 꼼짝없이 당했을지 모를 한 수였지만 지금 당태위가 뿌려 내는 천뢰칠성표는 너무나 느렸다.
차작!
깡!
순식간에 짧아진 창이 칠성표의 궤적을 비틀었다.
당태위가 일그러진 표정으로 물러나며 손을 당기자 비껴 나갔던 비표가 회선하며 소청의 뒤를 노렸다.
팍!
하지만 소청이 비무대를 강하게 밟으며 따라붙었다.
핑!
피피피핑!
연속적으로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칫!”
당태위를 향해 곧바로 달려가던 소청이 앞발을 내밀어 속도를 줄이고 허공으로 솟구쳤다.
“흥!”
날아오던 암기가 급격히 휘어지며 소청의 따랐다.
‘은형섬전보. 분영.’
허공에 발을 받쳐 주는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소청의 신형이 갑자기 둘로 나뉘었고 지켜보던 이들이 놀란 표정으로 눈을 비볐다.
파파팍!
비표는 분영을 모조리 꿰뚫으며 지워 버렸다.
“…….”
잔영이라는 것을 깨달은 당태위가 급히 필멸비를 들어 올려 경계하는 순간 그의 비어 있는 측면에서 소청이 나타났다.
차자자작!
‘제길!’
창날이 늘어나는 소리에 당태위가 급히 양팔을 교차했다.
쩌엉!
엄청난 충격이 찾아왔다.
경기공을 잔뜩 일으키고도 뼈마디가 부스러질 것만 같았다.
아픔에 인상을 찡그리고 일 장 가까이나 미끄러진 당태위가 황급히 소청의 신형을 찾았다.
“…….”
그런데 소청은 재차 공격할 생각은 하지 않고 멀찍하게 떨어져서 서 있었다.
둘이 떨어지자 관중성에서 뜨거운 함성이 터져 나왔다.
가히 용호상박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의 비무였다.
“역시!”
소청은 얼굴 가득히 웃음을 짓고 있었다.
새로운 장난감을 받은 아이처럼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웃고 있었다.
“재미있어. 즐거워 미치겠어. 온 몸에 전율이 날 정도야!”
“…….”
소청이 당태위를 보며 웃었다.
마주친 그의 두 눈은 왠지 정상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비무라는 게 이렇게 재미있는 줄 처음 알았어.”
“뭐라고?”
“당태위. 고맙다. 정말 고마워.”
도무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당태위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소청은 전력을 다하지 않고 있었다.
마지막 공격을 제외하면 그저 피하기만 하고 있었다.
공격은 하나도 먹혀들지 않았고 회심의 공격이었던 천뢰칠성표는 스치지도 못했다.
왠지 자신이 노리갯감이 되어 버린 것 같은 기분에 당태위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닥쳐!”
“그래. 그래야지. 닥치고 집중해야지. 암!”
희열, 아니 광기에 가까운 표정으로 창대를 고쳐 잡자 소청의 몸에서 진득한 투기가 뻗어 나오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당태위는 갑자기 돋아 오르는 소름과 함께 눈앞에 있던 소청이 거인처럼 커 보였다.
“부숴 줄게.”
차갑게 읊조린 그의 몸이 움직였다.
쑤앙!
창의 기본초식인 찰법.
기본중의 기본인 찌르기 한 동작이었는데 갑자기 세상이 밀려 나오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핏!
창날이 어깻죽지를 예리하게 자르고 지나갔다.
재빠르게 피하지 않았다면 그대로 꿰뚫렸을지도 몰랐다.
주춤하는 사이 해일 같은 기세를 품은 창대가 휘돌아 날아왔다.
“헙!”
단 두 초 만에 완전히 압도당해 버린 당태위는 피하기에 급급해져 물러나는데 무려 두 걸음 만에 다가온 소청의 창대가 마구잡이로 휘둘러져 그의 전신을 때리기 시작했다.
‘망할!’
속수무책이었다.
필멸비를 들어 최대한 튕겨 내었지만 그 충격에 손아귀가 터져 나갈 것만 같았다.
그리고.
후웅!
창날이 살기를 머금고 베어졌다.
순간 당태위는 허리가 반 토막 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크윽!”
가까스로 퇴보로 밟아 물러났던 당태위가 아릿한 아픔을 느끼며 배를 잡았다.
축축한 느낌.
예리하게 잘려 나간 옷과 함께 피가 배어 나왔다.
그러곤 또다시 공격이 멈췄다.
소청이 광기 어린 표정으로 어깨에 창대를 둘러메고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해 보란 듯이 빈정거리고 있었다.
‘이 자식이…….’
당태위는 자신이 완벽하게 조롱당하고 있다 생각했다.
최대한 소청의 도발에 걸려들지 않으려 애를 썼던 당태위의 이성이 끊어졌다.
“으아아아!”
비무대가 통째로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온몸의 기운을 남김없이 끌어 올린 당태위의 눈에 핏발이 돋아 올랐고 그의 옷자락이 세찬 바람을 맞은 것처럼 펄럭거렸다.
그의 기운을 그대로 받고 있는 소청은 짜릿함을 느끼며 창대를 고쳐 잡았다.
비무를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제대로 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패월창법, 진식. 팔괘연환.”
휘링.
때아닌 바람이 일어났다.
힘주어 밟은 뒤꿈치에서 일어난 바람이 맹렬한 투기로 변해 전신을 타고 올랐다.
창의 기본초식인 찰(찌르기), 난(휘돌려 치기), 타(때리기), 참(자르기), 벽(쪼개기)을 응용해 만들어진 진가의 월식.
하지만 패월창법은 월식을 한 단계 진일보시킨 창술이었다.
하늘에 떠오른 달, 건월(乾月).
침식하는 달, 태월(兌月).
뜨거운 불꽃의 달, 리월(離月).
벼락 속의 달, 진월(震月).
바람 스친 달, 손월(巽月).
물에 비친 달, 감월(坎月).
산에 걸린 달, 간월(艮月).
대지를 비추는 달, 곤월(坤月).
여덟 개의 초식으로 만들어진 패월창 진식은 전생과 후생을 통해 수도 없이 휘두르며 익혔다.
극성에 이른 지 오래, 부족한 게 있다면 실전 경험뿐이었다.
“으아아!”
온 힘을 다한 당태위의 두 손에 시퍼런 전극이 겹겹이 어리며 ‘파지직’ 소리를 만들었다.
“천뢰! 출!”
갈지(之)자로 지면을 밟은 당태위의 신형이 순식간에 소청의 앞까지 다가왔고 좌우로 흔들어 뻗자 수십 개의 뇌전이 쏘아졌다.
따다다당!
패월창이 곧바로 뻗어져 좌우로 흔들리며 공격을 차단했고 쇳소리에 모두가 귀를 틀어막았다.
방어와 동시에 솟구쳤던 창대가 휘어져 내려왔다가 멈췄다.
후웅!
강렬한 바람에 실린 기파가 연무장 전체를 내리눌렀다.
우지끈!
비무대가 힘을 이기지 못하고 들썩거렸고 지면에 떨림이 느껴졌다.
“이야압!”
당태위는 벌게진 눈으로 솟구쳐 공세를 피하고 허공에서 뇌전을 뻗었다.
손을 떠난 새하얀 뇌전 수십 개가 잇달아 쏘아졌다.
가만히 지켜보던 소청이 창을 뒤로 빼내어 잡았다.
날아오는 기운을 향해 내지른 창이 번개처럼 갈라지며 당태위의 기운을 때렸다.
파파파팡!
허공중에 부서진 기의 편린이 비무대 곳곳을 박살 내었다.
“허, 이게 이제 막 때를 벗은 후기지수들의 비무란 말이야?”
모두가 둘의 공방에 모두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뇌전을 머금은 당태위의 암기는 매섭게 몰아붙였고 소청의 창은 이제껏 중원 어느 곳에서도 본 적 없는 강렬함을 각인시켰다.
악가의 창보다 매섭고 조가의 창보다 빨랐다.
으드득!
당가가 자랑하는, 자신이 가장 자신 있어 했던 암기술이 번번이 막히자 당태위의 분노가 더욱 거세졌다.
“천뢰! 폭멸!”
소청의 주위로 암기가 칠성의 별자리를 점하고 박혔다.
그리고 폭발했다.
콰과과광!
폭발의 여파에 눈을 뜰 수도 없을 만큼 거센 바람이 사방으로 밀어닥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