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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월진천 10화

무료소설 패월진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7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패월진천 10화

9화. 월창진당혼 (1)

 

 

 

 

삼 개월 후.

당가의 본전각 삼양전 연무장.

“청성과 아미뿐만 아니라 사천에 뿌리를 둔 대부분의 문파를 초대했다. 준비는 되었느냐?”

당구독의 물음에 당태위는 피식 웃었다.

“보시면 알 것입니다. 저급한 것들이 무슨 잘못을 한 것인지.”

당태위는 대답 대신에 석등을 어루만졌다.

푸스스.

화강석으로 만든 석등의 머리 부분이 가루처럼 부서져 나가자 당구독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당태위.

당구독의 아들은 어렸을 때부터 천재성을 보여 왔다.

크게 노력하지 않았음에도 당가의 무예 사범들은 물론 자신까지 놀라게 한 경우가 허다했다.

고작 열여덟 살의 나이에 중원의 날고뛴다 하는 청년 무인들을 제치고 칠룡에 오른 그는 수백 년 당가의 후손들 중에서 가장 빠른 성취를 보였다.

백대 고수밖에 되지 못한 자신과는 달리 오존의 반열로 성장할 가능성이 보이는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첫 패배를 경험하고 죽도록 노력했다.

당가의 폐관동에서도 악명 높은 녹동인의 관문을 누구의 도움도 없이 석 달 만에 통과해 내었다.

녹동인의 관문이 만들어진 이후 최초였다.

“좋구나. 내일 비무에서 어떤 무공을 쓸지 생각해 두었느냐?”

잠시 고민하던 당태위가 자신 있게 대답했다.

“천뢰칠성표입니다.”

“천뢰를? 흠, 여지를 두지 않기 위함이냐?”

“예.”

“좋다. 어떤 놈들은 비겁하다 하지만 암기술은 우리 당가가 존속하게 만든 무공이자 네가 가장 잘하는 무공이다.”

“놈의 목을 뜯고 온몸에 당가의 흔적을 남겨 놓을 것입니다.”

“암! 그래야지. 그래야 하고말고!”

당구독이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돌아가도 되겠습니까?”

“오냐. 쉬거라.”

“아닙니다. 범은 토끼 한 마리를 잡을 때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 했습니다.”

당태위는 결연한 표정으로 인사를 하고는 연무장으로 향했다.

전투를 앞둔 무인이 칼날의 예기를 벼려 놓듯이 마음을 가다듬어 놓기 위함이었다.

그는 이전과 달리 조금도 자만하지 않았다.

“그래. 그래야 내 아들이지. 그래야 당가의 소가주지.”

당구독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당 가주가 슬쩍 고개를 돌리자 녹의인 하나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무색무취의 패혈산(敗血散)이다. 태위의 암기에 몰래 발라 놓아라.”

품에서 꺼낸 작은 약병을 내밀자 녹의인이 말없이 받아 들고 사라졌다.

“태위는, 당가는 앞으로 그 누구에게 져서도 안 된다.”

 

‘허! 이런 쌍놈 자식들을 봤나. 피독주를 훔친 게 미안해서 짐조의 깃털을 넣어 두고 왔더니…….’

천독곡에서 돌아온 뒤 볼일이 있어 당가로 숨어들었던 소청은 본 전각 천장 어둠 속에서 당구독과 당태위를 지켜보고 있었다.

짐조의 내단으로 괄목상대한 그의 은신술을 눈치챌 수 있는 이는 당가에 없었다.

‘뭐? 패혈산? 이것들이 아주 나를 죽이려고? 오냐. 좋다. 아주 철저하게 짓밟아 주마.’

패혈산은 마시거나 스치기만 해도 피가 썩어 버리는 극독 중의 극독이었다.

소청은 사악하게 웃으며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재차 만독전의 보고에서 나오는 그의 손에는 녹색 빛깔의 털 하나가 들려 있었다.

 

* * *

 

“와아아!”

당가의 내성 문이 모처럼 만에 활짝 열렸다가 수백 명의 사람들이 그 안을 빼곡하게 채우고 나서야 닫혔다.

네모반듯하게 지어진 비무대를 놓고 가장 앞줄에는 당가와 청성, 아미, 그 뒤로 당가 예하 방계를 포함한 수십 곳의 주인들의 자리가 마련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중앙에 진가의 자리가 마련되었다.

그것도 당구독의 바로 옆자리.

승리자의 미소를 가장 정확히 볼 수 있는 자리였고 이전까지 함께해 왔던 모든 이들에게 손가락질당하고 멸시를 받게끔 의도적으로 만든 자리였다.

“어서 오시오, 진 가주.”

당구독이 먼저 인사를 건네 왔다.

“오랜만입니다, 가주님.”

진가신은 떠날 생각을 굳힌 터였음에도 오랫동안 몸에 습관이 배어서인지 위축된 모습으로 답했다.

“어째 큰아드님은 보이질 않소?”

“예? 아, 곧 온다 하였습니다.”

“흐흠, 무서워서 도망친 게 아니길 빌겠소.”

당구독이 비웃으며 앉는데 내성 문 앞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금빛 가사를 두르고 나타난 인물 때문이었다.

“아니!”

승혜를 위시하여 나타난 것은 다름 아닌 아미의 장문인 멸절사태였다.

그녀가 올 것이라 생각지도 못한 당구독이 서둘러 달려가 맞이했다.

“아, 아니, 사태께서 어찌?”

“왜요? 제가 오면 안 되는 자리입니까?”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어서 오르시지요.”

사천의 어떤 곳이라 해도 멸절사태의 걸음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것이 당가의 가주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진 가주님, 오랜만입니다. 지난번엔 상황이 여의치 않아 감사를 제대로 드리지 못했네요.”

아미의 승혜가 자리에 앉으며 생긋이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아, 소저. 청이에게 전해 들었습니다.”

“참, 소개해 드릴 분이 있어요.”

승혜가 슬쩍 물러나자 멸절사태가 환한 웃음을 지었다.

“아미의 현명입니다.”

‘현명’은 멸절사태의 법명이었다.

“진가신입니다. 사태의 높으신 함자는 항상 흠모하고 있습니다.”

진가신이 깜짝 놀라며 일어나 포권을 했다.

“불가의 제자가 얻은 허명입니다. 진가의 창이야말로 평소 흠모해 왔습니다. 언제 아미창과 겨루게 될 날이 있길 빌겠습니다.”

“예? 감히 어찌 저희가 아미창을…….”

멸절사태가 가문의 창술을 칭찬하자 진가신이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그보다 아드님을 잘 키우신 모양입니다. 사람을 쉬이 판단하지 않는 승혜가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더군요.”

“예?”

멸절사태의 말에 승혜의 얼굴이 발갛게 물들었다.

“아, 예. 감사합니다.”

멸절사태가 창술에 이어 아들을 칭찬하자 진가신은 어벙한 표정이 되었다.

오랫동안 사천에서 살아오며 멸절사태를 본 것은 손에 꼽을 정도였고 대화를 나눈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소, 소생의 둘째입니다.”

진가신은 서둘러 옆에 앉은 소강을 소개했다.

“진소강입니다.”

어딘가 걱정스러워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예의에 어긋남이 없었다.

“소문난 큰아들만큼 작은아드님까지도 좋은 기운을 가졌군요.”

“가, 감사합니다.”

진가신과 멸절사태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던 당구독의 표정에는 신경질적인 짜증이 떠올랐다.

‘망할, 멸절사태가 참석하다니. 그래도 당가를 능멸한 놈을 살려 둘 순 없지. 패혈독에 대해서는 후에 적당히 둘러대는 수밖에…….’

당구독이 싸늘한 시선으로 고개를 돌렸다.

‘고작 별 볼 일 없는 문파 자제의 죽음일 뿐이니까.’

진가를 축출하며 그의 아들을 죽여 버리려는 잔인한 계획이 당가 내부의 문제이니만큼 아무리 멸절사태라 해도 끼어들 수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물론 이로 인해 조금의 잡음은 생길지라도…….

“아버님, 아직 형님이 안 보입니다. 며칠 전 돌아오셔서는 한동안 잠만 주무시더니…….”

소강이 불안한 눈빛으로 소곤거리자 진가신이 그의 손을 꼭 잡아 주며 미소를 지었다.

“걱정 마라. 시간에 늦기야 하겠느냐?”

“하지만 긴장되어 죽겠습니다. 이런 유명 인사에 사천의 무인들이 모조리 모여 있는 자리인데…….”

“네 형을 믿어라. 반드시 제시간에 올 것이다.”

진가신의 손에서는 진득한 땀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진가의 운명이 결정되는 순간이니 긴장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버님…….”

소강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지잉~!

비무의 시작을 알리는 징 소리가 연무장 안을 가득히 채우자 사람들의 목소리가 잦아들었고 한 인물이 비무대로 올라와 각파의 수뇌부가 앉은 자리를 향해 공손히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소생은 당가의 녹의단주 당호라 합니다! 사천의 영웅들께서 이 자리를 찾아 빛내어 주셔서 영광입니다!”

당호가 사면을 돌며 포권을 했다.

“잠시 후에 본 가문의 대공자와 저기 진가 대공자의 비무가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모처럼 속세로 내려와 자리를 빛내 주신 분이 있어 소개할까 합니다.”

그가 중앙 관중석을 바라보았다.

“아미창의 달인이신 멸절사태께서 직접 찾아 주셨습니다.”

“와아아아!”

당호의 소개 겸 인사로 우레와 같은 함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고 너도 나도 얼굴을 한번 보기 위해 소란이 일었다.

모두의 존경이 담긴 시선을 받은 멸절사태가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일어나 인사를 했다.

중원 백대 고수라는 의미가 가진 바는 엄청난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 하나가 있음으로 인해 아미는 구파에서도 꽤나 큰 입지를 유지하고 있었고 당가가 청성보다 아미의 눈치를 살피는 것도 모두 그녀의 존재 때문이었다.

멸절사태를 필두로 각파의 수뇌들이 소개되었다.

“자, 그럼 이번 대회의 주인공들을 소개하겠습니다. 먼저 본가의 대공자이자 칠룡의 영예를 얻은 당태위 공자입니다!”

그의 소개에 미리 만들어진 천막의 휘장을 걷고 나온 당태위가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거세게 바닥을 밟았다.

쿵!

그 순간 길처럼 깔아 둔 붉은 주단이 허공으로 치솟았고 몸을 훌쩍 뛰어 올린 당태위가 그 위를 날듯이 달려 비무대로 올랐다.

“우와아아아!”

멋들어진 그의 모습에 관중들이 함성으로 찬사를 보냈다.

“허! 당공자의 경공이 보통이 아니군. 암기술만 일절인 줄 알았더니 괜히 칠룡이 아니었어!”

“맞네. 무려 십여 장이나 되는 거리를 초상비(草上飛), 아니지 비단을 밟고 달렸으니 단상비(緞上飛)라고 해야 하나? 하여간 대단하군그래.”

각파의 수뇌들이 모인 자리에서도 감탄과 칭찬이 끊이지 않았다.

“자, 그럼 다음은 우리 대공자님께 ‘가르침’을 내려 줄 진가의 대공자 진소청입니다!”

당호는 비웃듯이 ‘가르침’이라는 말에 힘을 주어 소개했다.

진가신과 소강이 얼굴에 난감한 표정을 짓는 그때.

그그그긍.

내성 문이 천천히 열렸고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돌아갔다.

거대한 문틈으로 백의를 입은 진소청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혀, 형님!”

“소청아!”

마음을 졸이고 있던 진가신과 소강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잠시 연무장을 천천히 둘러본 소청은 힘주어 단창을 뻗었다.

차자자작!

장창으로 변한 창대를 가볍게 말아 쥔 소청은 창날을 내리고 비껴들었다.

웅성거림이 잦아들고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그는 당태위처럼 특출한 경공이나 화려한 기예를 선보일 생각도 없는지 그저 창을 잡고 천천히 발을 내디뎠다.

자박.

함성이 잦아들고 정적이 찾아왔다.

자박.

이상하게도 귀를 기울이게 되는 발소리였다.

자박.

딱히 공력을 일으킨 것도 아닌데 연무장으로 가까워 오는 그는 존재감이 좌중을 짓눌러 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마른침을 삼키며 지루할 만도 한 그의 걸음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길고긴 고요 속에서 아무도 없는 것처럼 소청은 홀로 걸었다.

‘호오? 제법이야. 발소리 하나하나에 힘을 담았구나. 승혜의 말대로 지켜볼 만한 아이로다.’

아무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지만 멸절사태는 소청의 발소리에 미약하게나마 음공이 담겨 있음을 깨닫고 속으로 감탄했다.

비무대에 도착한 소청이 창날을 박아 세우고 나서야 모두가 억눌린 신음을 토해 냈다.

“진소청입니다.”

나지막한 어조로 고개를 숙이는 그에겐 어떠한 함성도 없었다.

그저 조용히 새어 나오는 신음뿐이었고 그 안에 당태위의 존재가 잊힌 것처럼 모두가 소청을 바라보고 있었다.

“크흠!”

당구독의 불쾌한 기침 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린 당호가 당황스럽게 진행을 이어 갔다.

“죄, 죄송합니다. 자, 그럼 지금 바로 비무를 시작하겠습니다. 무릇 무림에 파가 다르고 무공이 각양각색인 만큼 서로가 내세우는 무공이 있습니다. 해서 이번 자리는 서로가 가장 자신 있는 무공으로 대결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당호의 말에 당태위가 앞으로 나서며 수뇌들에게 허락을 받듯이 고했다.

“당가의 태위! 소생은 평소 진가의 대공자의 높은 무공을 흠모해 왔습니다. 가르침을 받는 자리이니만큼 제가 가장 자신 있는 암기술을 사용하려 합니다.”

비무인 이상 각자의 무공을 알리고 시작하는 것이 관례였다.

하지만 ‘암기술’이 거론되자 좌중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물론 당태위가 칠룡에 오른 이유가 암기술 때문임을 부인할 수 없었지만 생사투가 아닌 비무에서 암기를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 자리에 모인 모든 분의 우려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 제 실력이 모자라 그런 것이니 양해해 주시길…….”

당태위는 슬쩍 소청을 쳐다보았다.

의견을 묻기 위함임을 눈치 채지 못할 소청이 아니었다.

“뭐, 실력이 모자라다는데. 너그러운 마음으로 받아들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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