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월진천 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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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10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월진천 9화
8화. 짐조, 독중의 제왕!
“물러나세요. 제가 상대하죠.”
“으, 은공.”
모자겸과 그 일행은 소청의 믿음직한 등을 보며 감격해 마지않았다.
“감히 한낱 미물이 사람을 공격하다니.”
고개를 돌리며 짐짓 영웅 행세를 하는 소청을 향해 삼두홍사가 비웃음을 가득히 머금고 솟구쳐 올랐다.
쉬이이익!
“흥!”
재빠르게 피한 소청이 삼두홍사의 옆구리를 때렸다.
쩌엉!
가죽이 원체 단단해서였는지 몸통을 얻어맞고서도 일어나 독기를 피워 내었다.
“과연!”
모자겸과 일행들은 감탄해 마지않았다.
자신들은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하고 독에 중독되었는데 소청은 독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 듯 보였다.
“설마 반로환동에 만독불침?”
“대단합니다. 삼두홍사의 독기를 맨몸으로 받아 내는 사람이 있다니.”
소청이 당가의 보물 피독주를 입에 물고 내독성이 강한 교룡피까지 입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그들의 오해는 점점 더 깊어졌다.
그사이 자신의 독기가 상대에게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삼두홍사가 화풀이라도 하듯이 미친 듯이 날뛰며 주변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이 새끼. 속 좁기는…….”
소청이 씨익 하고 웃으며 단창을 꺼내 들었다.
그의 몸에서 진한 살기가 뻗어 나가자 삼두홍사가 잔뜩 독이 올라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잔상이 생길 정도로 빠르게 주위를 맴돌던 삼두홍사가 소청을 향해 새하얀 독니를 꺼내며 아가리를 벌렸다.
그런데…….
“너 뭐 하냐?”
어느새 삼두홍사의 옆으로 따라 붙은 소청이 조소를 날렸다.
자신과 같은 속도를 낼 수 있는 인간이 있다는 사실에 기겁한 삼두홍사가 식은땀을 흘리며 더욱 속도를 높였다.
하지만 망할 인간은 한 발짝도 떨어지지 않았다.
크아아아!
새하얀 독아를 내밀며 힘을 내려는데 소청이 삼두홍사의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그러고는.
푸욱!
단창을 삼두홍사의 입안에 깊이 박아 넣고는 비틀어 버렸다.
푸하학!
뱃가죽이 그대로 갈라졌고 수백 년을 살아온 삼두홍사는 적을 알아보지 못한 자신을 탓하며 죽었다.
치이-익.
삼두홍사의 피가 바닥에 떨어져 시커먼 독연을 피워 내었지만 소청은 너무도 익숙하게 배 속을 뒤져 조그만 내단 하나를 꺼냈다.
그러고는.
툭.
“어?”
모자겸이 제 앞으로 떨어진 내단과 소청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왜요? 이걸 구하려던 게 아닙니까?”
“예? 마, 맞긴 하지만. 어찌.”
“어차피 내겐 필요 없는 물건입니다.”
“……!”
어찌 저런 대인이 있단 말인가?
목숨을 살려 준 것도 모자라 수십의 금 수레와도 같은 삼두홍사의 내단을 통으로 던져 주다니…….
“은공!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모자겸이 땅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감격했다.
“뭐 그렇게까지야…….”
‘어차피 네 거였는데.’
머리가 깨어져 피가 나면서도 감사해하는 모자겸을 본체만체한 소청은 삼두홍사의 시체와 독주머니를 챙겼다.
“이건 내가 가져도 되겠습니까?”
“암요! 암요! 당연합니다.”
“고맙습니다. 그럼 서둘러 떠나시오.”
“알겠습니다. 은공! 그 전에 혹시 높으신 함자라도 알려 주시면!”
“이름? 나는 막…… 아니, 사천의 진소청이오.”
“진소청…….”
모자겸과 그 일행들은 수없이 되뇌며 그곳을 떠났다.
그들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던 소청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걸렸다.
“크크크. 바보 같은 것들. 내가 고작 만년설삼에도 모자라는 삼두홍사를 찾아온 줄 아나? 흐흐흐.”
무슨 말일까?
삼두홍사만 해도 그 값어치가 어마어마한데…….
“삼두홍사의 내단, 소강을 주었으면 좋겠지만 어차피 피독주는 하나. 둘 다 가질 수는 없지.”
전생의 그는 모자겸이 삼두홍사를 먹고 고수가 되었다는 말을 듣고 꽤나 오랫동안 영물을 찾아 헤맸다.
그 후 그는 황제의 서가에 숨어들었다가 전국 시대의 고서 하나를 훔쳐 나왔다.
‘황제외경, 잡학 영물 편.’
황제와 의원의 이야기를 옮겨 적은 내경과 함께 쓰인 또 다른 이야기인 외경에는 대북별왕이라는 무인과 황제가 나눈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별왕의 이야기는 언제나 신기하군. 하면 세상에서 가장 독한 짐승은 무엇인가?
@-음, 수많은 독물들이 있으나 그중 최고를 꼽으라면 짐조입니다.
@-짐조?
@-예. 폐하. 짐조는 천 년을 사는 새입니다. 일찍이 용이 되지 못한 구렁이가 이무기가 되는 것처럼 봉황이 되지 못한 새는 짐조가 되지요.
@-호오? 어째서 그렇소?
@-천 년을 살며 영능을 닦았지만 봉황이 되지 못한 한이 독이 되어 그렇습니다.
@-본 적이 있소? 어찌 그리 잘 아시오?
@-제가 잡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대화의 아래 짐조를 잡은 대북별왕의 이야기가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여기가 삼두홍사의 서식지였고, 한 마리밖에 남지 않았다면 놈은 분명히 이곳에 있다. 삼두홍사의 천적이자 아직까진 누구도 본 적이 없는 짐조. 내 목표는 그놈이다.”
소청이 자신의 단전을 바라보았다.
“비록 과거에는 만년설삼을 먹고도 방법을 몰라 영기를 제대로 흡수할 수 없었지. 하지만 이젠 다르다. 지난 삼 년의 수련으로 기혈과 세맥은 튼튼하게 넓혀 놓았고 대북별왕만큼 거대한 단전은 아니지만 그에 걸맞은 내공 수련법이 있으니 그릇은 충분해.”
소청은 무슨 생각에선지 삼두홍사의 사체를 나무에 걸었다.
그리고 독단을 갈라 그 위에 뿌렸다.
독 향이 진하게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자, 미끼는 준비되었고 짐조여. 모습을 드러내라.”
소청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모습을 감추었다.
짐조는 영물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기에 부족할 정도로 대단한 놈이었다.
어쩌면 잡을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묘한 승부욕이 소청의 몸을 달아오르게 만들고 있었다.
‘놈은 사람에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발견된 적이 없지. 하지만 놈이 가장 좋아하는 삼두홍사를 미끼로 내밀어 놓았으니 탐욕스러운 식욕에 잠시 틈이 생길 거야. 그걸 노려야 돼.’
소청은 혹시나 자신을 느낀 짐조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까 모든 감각을 죽이고 귀식대법을 펼쳤다.
숨소리와 생기마저 숨긴 채 서서히 자연에 동화되어 갔다.
지루한 싸움이 한낮이 지나고 해가 질 무렵까지 이어졌다.
소청은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때 초록색을 가진 한 쌍의 눈동자가 숲속에서 나타나 주위를 면밀하게 살피기 시작했다.
새 주제에 부리를 내밀고 냄새를 맡기도 했고 꾀꼬리와 부엉이를 흉내 내 울기도 했다.
그러고는 드디어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미끈하게 빠진 초록색의 깃털에 일곱 가지 색으로 물든 긴 꼬리를 늘어뜨린 채 나타난 그것은 여전히 조심스럽게 삼두홍사의 주위를 배회했다.
캬악!
왠지 신난 듯한 놈은 삼두홍사보다 배는 빠른 속도로 몸을 날렸고 나무에 매달린 사체를 뜯어 먹기 시작했다.
캬악! 캬악!
만찬을 즐기듯 신을 내며 놈이 열중하고 있을 때.
“짐조!”
소청이 귀식에서 깨어남과 동시에 몸을 날렸다.
차자자작!
단창이 뻗어져 장창이 되었고, 온몸의 기운을 창에 가득 담은 소청은 이를 악물고 짐조의 머리를 내리쳤다.
까아앙!
무쇠에 부딪힌 듯한 충격과 함께 때린 속도만큼 빠르게 튕겨 나간 소청이 재빨리 몸을 세웠다.
캬아아악!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 화가 난 건지, 아니면 머리를 맞았기 때문인지 짐조가 칠색의 꼬리털을 공작처럼 곤두세우고 화를 쏟아 내었다.
파파파팍!
“헛!”
암기처럼 쏘아져 나오는 깃털에 소청이 헛바람을 집어삼키며 몸을 틀었다.
치이이익!
깃털이 박힌 자리가 순식간에 시커멓게 변했다.
“크윽!”
모두 피하지 못했는지 옆구리에 따끔한 충격이 느껴졌고 내독성에 있어 최고봉이라 불리는 교룡피가 녹아내렸다.
“과연 짐조! 삼두홍사도 어쩌지 못한 교룡피를 녹이다니.”
놀라고 겁을 먹을 새도 없었다.
소청은 장창을 두 손으로 잡고 공격했다.
짐조가 마음먹고 공격한다면 자신이 인간의 경지를 넘어 버린 대북별왕이 아닌 이상 버틸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놈이 제대로 공격을 펼치기 전에 몰아붙여야 했다.
“패월창법! 손월식! 태월식! 일섬! 분영! 첩경! 팔괘연환! 만월!”
소청은 숨 한 번 쉬지 않은 채로 창을 휘두르고 찌르며 단번에 백여 초를 쏟아 내었다.
쉴 새 없는 공격에 방어하기 급급해진 짐조는 화가 났는지 날개를 모으며 쏘아지듯 달려들었고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 소청은 피하지 못했다.
투웅!
한참을 튕겨 나간 소청은 충격에 다리가 부러진 것인지 일어서려다가 비틀거렸다.
그사이 몸을 띄웠던 짐조가 소청의 가슴을 한쪽 발로 짓밟았다.
날카로운 발톱이 교룡피를 뚫고 가슴살 깊이 파고들었다.
“크으윽!”
고통스럽게 얼굴을 찡그린 소청을 번들거리는 녹색 눈알로 노려보던 짐조가 날개를 활짝 펴고는 위협하듯 입을 벌렸다.
캬아아악!
“이걸 기다렸다. 이 새 새끼야!”
소청은 웃었다.
그리고 뱉었다.
케엑!
입안으로 날아든 물건에 짐조가 뱉어 내려 용을 쓰는데 소청이 그대로 손을 아가리에 쑤셔 박았다.
“죽어라! 큭큭큭!”
케-에엑!
눈이 터질 듯 튀어나온 짐조가 갑자기 뒷걸음질 치며 켁켁거리기 시작했다.
“흐흐흐. 피독주 맛이 어떠냐?”
크아아아!
입안으로 들어간 피독주가 짐조의 독과 만나 녹아내렸다.
만고에 해독하지 못할 것이 없다는 당가의 보물이 녹을 정도니 짐조의 체내에 얼마나 강한 독이 있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짐조가 고통스럽게 울부짖으며 독기를 토해 내자 사방 수십 장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흐흐, 내가 피독주를 훔쳐 온 주된 이유지. 이 새 새끼야! 너한테 쪼아 먹힌 삼두홍사 가족의 복수다!”
크에에엑!
독연이 옅어졌고 피독주에 의해 독으로 이루어진 짐조의 내장도 함께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한참이나 계속된 몸부림에 짐조는 피독주와 함께 흐물거리며 완전히 녹아 버렸다.
남은 것은 녹빛을 띠고 있는 일곱 개의 칠색 깃털뿐이었다.
“으으윽.”
몸이 부러진 소청은 힘겹게 기어 깃털을 헤쳤다.
피독주가 없으니 순식간에 중독 현상이 찾아왔다.
피부는 녹색으로 변해 고름이 흘러나왔고 살점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아찔한 현기증에 무너지는 정신을 애써 잡아 두던 소청의 손에 큼직한 내단이 잡혔다.
‘빨리 먹어야 해. 짐조의 내단이 가진 독성에 견딜 수 있는 시간은 아무리 길어도 반 각(7분). 그 안에 내단을 용해시키지 못하면 죽는다.’
소청은 움켜쥔 내단을 그대로 입에 넣었다.
조금이라도 계획과 달라지면…….
‘죽는다.’
후우웅!
엄청난 열기가 목구멍을 녹이고 내장을 태웠다.
‘정신을 잃으면 안 돼! 어떻게든 내단을!’
소청은 팔괘연환을 통해 짐조의 내단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팔괘연환은 단전의 기운을 최대한으로 키워 담지 못하는 기운을 여덟 혈맥에 고루 나누는 방법. 대북별왕처럼 거대한 단전은 없지만 단전을 포함한 아홉 곳에 기운을 나눈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순간 단전으로 향하는 길을 틔워 주자 흐름이 생겼고 엄청난 양의 기운이 그 길을 따라 해일처럼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으으으으…….”
하지만 그의 단전에 쌓이는 내단의 기운이 너무 빨랐다.
제대로 정제하기도 전에 넘쳐 난 내공에 배꼽 아래가 공처럼 부풀어 올랐고 단전이 찢어질 듯이 팽창했다.
‘아직이야. 최대한 일 갑자까지는 단전을 넓혀야 돼!’
당장이라도 단전이 터질 것 같았다.
찌지지직!
밤톨만 했던 기운이 두 주먹을 합한 양만큼 커지자 더 이상은 단전이 버티지를 못했다.
‘지금!’
소청은 단전으로 흘러들어 오던 내단의 힘을 회음으로 돌렸다.
단전의 고통이 줄어들고 회음에 고통이 찾아왔다.
회음에 단전과 비슷한 양의 기운이 응축되어 자리 잡자 소청은 기운을 미려, 명문까지 차례대로 내몰았다.
기운이 여섯 번째 혈인 옥침에 다다랐을 때 급류처럼 쏟아지던 내단의 기운이 서서히 잔잔해지기 시작했다.
‘됐다. 이대로 백회, 인당까지 간다.’
독맥의 여덟 혈에 각기 일 갑자에 가까운 기운이 담겼다.
채워지지 못한 기운을 세맥으로 흘리자 녹아내린 소청의 몸에 새살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됐어! 짐조의 내단을 담아 냈어!’
극도의 희열이 찾아왔다.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었다.
내공을 담기만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중요한 것은 여기서부터야. 이대로 소주천과 대주천을 반복하며 내공을 연단한다.’
소청은 팔괘공의 초반부인 패월심법을 일으켰다.
광포하게 떠돌던 기운이 점차 안정적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단전을 연단하고 팔괘공을 일으켜 회음으로 보내고 인중에서 받아들인 기운을 다시 패월공으로 연단하고……. 연단되지 못한 기운은 호흡을 통해 외부로 내보냈다.
“후우…… 하아…….”
같은 방법으로 아홉 번을 반복했을 때 단전에 주먹만 한 기운의 덩어리가 정제되어 자리 잡았다.
그리고 나머지 여덟 혈에도…….
소청의 몸에 생겨났던 녹빛이 점점 옅어졌다가 푸르게, 붉게, 누렇게, 검게 그리고 하얗게 변했다가 원래의 색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칠 주야가 흐르자 숨소리는 점차 안정을 찾아 고르게 변했고 소청의 안색은 편안해졌다.
천천히 깨어난 소청의 두 눈에서 칠색의 안광이 번쩍였다가 스며들어 원래의 색으로 돌아왔다.
소청은 주먹을 움켜쥐어 보았다.
묵직한 힘이 온몸에서 느껴져 왔다.
“됐다! 됐어! 으핫핫핫!”
소청의 웃음소리에 천독곡 전체가 뒤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