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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월진천 4화

무료소설 패월진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79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패월진천 4화

3화. 칼질하면 더 빨라!

 

 

 

 

이상한 느낌이 든 소청이 급히 내공을 운용해 보자 팔괘연환공을 수련할 때보다 단전의 좁쌀의 크기가 늘어나 있었다.

“소청.”

“…….”

나지막하게 부른 진가성의 목소리에도 소청은 좁쌀을 생각하느라 제 몸만 바라보고 있었다.

“진소청!”

“예?”

연무장을 울릴 정도로 소리를 지르고서야 소청이 고개를 들었다.

“대단하구나. 언제 이렇게…….”

“숙부님!”

“어?”

소청이 갑자기 그의 말을 잘라먹었다.

“제가 이겼으니 가도 되지요?”

“그야…….”

“그럼!”

소청이 인사를 하고는 쏜살같이 연무장을 빠져나갔다.

 

* * *

 

소진각으로 돌아온 소청은 연무장에 좌정하고 앉아 몸 안의 기혈과 세맥을 점검했다.

‘커졌어. 미미하지만, 분명히 커졌어!’

희열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무공을 사용하면 내공이 더 빨리 증가하는 건가?’

신이 난 소청은 창을 잡고 일어났다.

그리고 단전의 기운을 소주천해 몸 안을 가득 채우고 패월창법의 기본 공을 펼쳐 내었다.

역시나 커졌다.

“그래! 좋아! 으하하하!”

신이 나서 미칠 것만 같았다.

소청은 단전에 커진 좁쌀을 회음으로 보냈다.

그러자 한 칸씩 밀려나 인당의 내공이 단전으로 돌아왔다.

“처음 좁쌀 크기로군.”

하지만 어차피 남는 게 시간이었다.

전생의 기억을 가졌으니 남보다 훨씬 빨리 갈 수 있다.

전생에서는 거북이였으나 이제는 토끼다.

게으름만 피우지 않으면…….

소청은 소진각의 일을 보아주는 왕칠을 불렀다.

“왕칠 아저씨! 아저씨!”

“예, 도련님.”

“무기고에 가셔서 창을 있는 대로 가져다주세요.”

“창을요?”

“예. 창요.”

“열 개 정도면…….”

“아뇨! 스무 개? 아니면 서른 개?”

“예에?”

“어쨌든 빨리 준비해 주세요.”

왕철을 내쫓듯이 보낸 소청은 창을 움켜쥐고 연무장 중앙에 섰다.

“최대한 빨리 내공을 모은다. 그리고, 크크크. 이따위 집구석에서 벗어난다!”

굳이 있을 이유가 없었다.

어차피 자신과는 관련이 없는 가문일 뿐이었다.

기운을 일으키자 기분 탓인지 온몸의 털들이 전율을 일으키며 돋아 올랐다.

 

소청의 수련은 갑자기 쏟아진 비에도 멈출 줄을 몰랐다.

장마가 져서 빗물이 쉴 새 없이 흘렀지만 소청은 여전히 연무장에서 미친 듯이 창대를 휘둘렀다.

“저, 저럴 수가!”

소청이 창술 수련에 불참하기로 했다는 진가성의 말에 매를 들고 찾아왔던 진가신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고할까요?”

왕칠이 쭈뼛거리며 물었다.

“아, 아니 잠깐만.”

진가성을 이겼다 했을 때는 고작 어느 정도의 성취나 이루었겠지 생각했다.

고작 그 정도에 기고만장해 있다면 매질을 해서라도 정신머리를 뜯어고쳐야겠다 생각하고 온 걸음이었다.

그런데.

아들이 보여 주고 있는 창법은 진가의 것이 아니었다.

확연히 달랐다.

언제나 가문의 창술을 발전시키기 위해 고민하고 고민했던 이상향이 그곳에 있었다.

강맹하고 매서웠고 변화가 무궁무진했다.

‘이 내가 실초와 허초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빠른 변환이라니. 내가 저 아이를 잘못 보고 있었던 것인가?’

소청의 창술은 이미 진가의 월식을 넘어 있었고, 고작 열두 살 아이가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얼마나 수련을 하면 저 정도의 경지를 보여 준단 말인가?

며칠 가지고는 턱도 없는 수준이었다.

‘설마 저 아이가 아무도 몰래 홀로 수련을 이어 갔단 말인가? 허,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혼만 내었으니…….’

진가신은 자신을 책망했다.

“얼마나 되었는가?”

“예?”

“수련한 지 얼마나 되었냐는 말일세.”

“오시 말에 깨신 이후로는 계속 저러고 계십니다. 부서진 창만 해도 열 개가 넘습니다요.”

“허!”

왕칠의 대답에 진가신은 감탄사를 터트렸다.

오시 말부터라면 벌써 세 시진째란 말이었다.

‘설마하니 무아(無我)? 저 아이가 스스로 기연을 만들고 있단 말인가?’

감격스러움에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왕칠.”

“예, 가주님.”

“저 아이가 수련을 끝낼 때까지 창을 계속해서 바꾸어 놓게.”

“예? 예.”

진가신은 그 말을 끝으로 돌아섰다.

‘모두에게 알려야겠군. 저 아이 스스로 수련을 끝내기 전에는 그 누구도 방해하지 못하도록.’

진가신이 돌아가는 길에 비가 변해 눈이 되었고 세상은 금세 하얗게 변해 갔다.

 

* * *

 

소청은 눈밭을 내려밟으며 창대로 바닥을 거칠게 때렸다.

충격과 바람이 만들어 낸 눈보라가 연무장을 가득 채웠다.

“형님은 정말……. 벌써 세 해가 지나가는데 수련을 멈추지 않으시는구나.”

다시 벚꽃이 피어 떨어질 때쯤엔 열두 살이 된 소강이 창 하나를 들고 찾아왔다.

인근 대장간에서 제련한 최고급 백련정강으로 만든 창이었다.

“형님께 드리세요. 이게 벌써 몇 개째인지.”

“예, 둘째 도련님.”

왕칠이 창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 다시 계절이 돌아 겨울이 되었다.

“손월식.”

지면을 밟고 물러선 소청이 몸을 젖혔다가 온 힘을 다해 창을 던졌다.

쐐애액!

던져진 창이 대기를 꿰뚫으며 장쾌한 울림을 만들었다.

“섬전보!”

소청의 발이 지면을 내딛자 화살처럼 쏘아졌다.

창이 벽에 박히려는 찰나 측면에서 나타난 그는 창대를 잡아당기며 방향을 바꾸었다.

쩌엉!

하지만 창에 실린 기운이 회수되지 못했는지 담벼락 한쪽이 황소가 때려 박은 것처럼 짓눌려 밀려 나갔다.

“진월식!”

끝을 잡고 휘돌린 창대가 휘어져 여덟 곳의 허공을 때렸다.

파파파팡!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가 연무장을 울리고 강맹한 기운의 조각들이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후우…… 후우…….”

창대의 끝을 한 손에 잡고 길게 늘어뜨린 소청이 거칠게 숨을 몰아 내쉬었다.

겨울 찬 바람에 추울 만도 한데 상의를 벗고 있었다.

드러난 맨몸에서는 허연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고 과하지 않을 정도로 균형 잡힌 근육이 꿈틀거렸다.

머리칼은 한참을 정리하지 않아 허리까지 내려와 헝클어져 있었다.

높았던 담벼락 밖이 보이도록 훌쩍 커 버린 소청은 기분 좋은 얼굴로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들었다.

감은 눈꺼풀 위로 눈송이가 내려와 달아오른 열기를 식혀 주었다.

‘후, 상쾌하다. 무공이라는 것은 이런 기분이었구나.’

소청이 오른발로 가볍게 지면을 밟자 쌓였던 눈이 훅 하고 밀려나며 둥근 공간이 만들어졌다.

천천히 좌정한 소청은 팔괘공을 일으켰다.

회음에서 시작해 인당에서 밀려나 단전으로 돌아온 여덟 번째의 기운은 훌쩍 자라 버린 소청처럼 어느새 밤톨만 해져 있었다.

‘밤톨이 모두 아홉. 아쉽군. 합칠 수만 있다면 좋았을 텐데…….’

소청이 단전에 모인 밤톨의 기운을 진가 본공의 경로를 따라 소주천했다.

‘만족하긴 멀었다. 여덟 개의 기운을 연환하여 사용할 순 있지만…….’

소청은 제대로 익히기 시작한 팔괘연환공이 불완전함을 가진 무공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신투였을 당시에는 연환만으로 충분했다.

하지만 제대로 무공을 익히다 보니 무언가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단전의 기운을 포함한 아홉 곳의 내공을 합친다면 그 위력은 감히 추측조차 할 수 없을 텐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삼 년을 수련해 좁쌀이 밤톨이 되었다.

하지만 그래도 창술의 숙련도가 높아져 자연스러워질수록 기운이 모이는 속도가 조금씩 빨라지고 있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하다. 이제 영약 하나만 취하면! 충분히 가능할 거야.’

운기를 끝낸 소청이 눈을 뜨자 그의 주위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어?”

진가신, 섭약란, 진소강, 그리고 숙부 진가성과 왕칠 아저씨.

“아버님을 보고 ‘어’라니.”

섭약란이 빙긋이 웃으며 질책했다.

“아, 죄송합니다, 어머님. 이렇게 다들 찾아오신 게 뜻밖이라서. 아버님, 숙부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아니 형님, 오랜만이라니요? 삼 년입니다, 삼 년! 삼 년 동안 두문불출하셨단 말입니다!”

소강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랬나? 하하.”

“아니, 하하가 아니라. 어떻게 사람이 삼 년이 지나도록 그렇게 수련에만 매진할 수 있습니까. 이 아우는 섭섭합니다.”

“…….”

애늙은이 같은 동생은 여전했다.

시간이 그렇게 흘렀다고는 생각도 못 했다.

“큰 도련님, 지난 삼 년 동안 여기 계신 분들께서 매일같이 한 번씩은 찾아왔었습니다.”

“아, 아. 하하. 그러셨나요?”

“하여간 형님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소강을 물려 내고 진가신이 입을 떼었다.

“그래, 성과는 있었느냐?”

“예. 어느 정도는…….”

주먹을 움켜쥐며 대답하는 소청의 얼굴에 자신감이 가득했다.

그 모습에 고개를 끄덕이며 서로의 얼굴을 바라본 진가신과 진가성의 표정에는 왠지 모를 뿌듯함이 섞여 있었다.

삼 년을 한결같이 지켜봐 온 아들, 소청은 이미 자신을 훌쩍 뛰어넘어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 얼마나 더 발전할지 가늠할 수도 없었다.

이미 소청은 자신이 걸어 보지 못한 길에 들어서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계속 내버려 두고 싶었다만…….”

갑자기 진가신의 얼굴 한 곳에 씁쓸함이 어렸다.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그게…….”

진가신은 무엇 때문인지 말하기를 주저했다.

“당가 대공자의 소가주 임명식이 있답니다.”

“소가주 임명식?”

소강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소청은 더러운 기억 하나를 떠올렸다.

‘지금의 대공자라면 암왕 당태위? 그래, 예전에 당가에 들어갔다가 그놈한테 고슴도치가 될 뻔했었지. 벌써 그렇게 됐나? 그렇군. 지금쯤이면 열여덟 살 정도가 됐으려나?’

“그의 임명식을 축하하기 위해 회합이 소집되었다.”

“회합? 축하요?”

“그래.”

무슨 애새끼가 소가주 되는데 찾아가서 축하까지 해 줘야 한단 말인가?

당태위에 대한 기억이 좋지 않았던 소청이 인상을 찡그렸다.

“그래. 마음에 들지 않겠지만 아직은 어쩔 수가 없구나. 사천에서 당가의 명은 절대적이니까.”

“그런데 제게 알려 주시는 이유는…….”

소청이 영문 모를 표정을 짓자 소강이 답답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당연하지요. 형님은 진가의 대공자 아닙니까.”

“그러니까 그게…… 혹시 나도?”

“예. 당연히 축하객 명단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직접 예물도 전해야 하고요.”

“하!”

자신도 모르게 어이없는 감탄사를 내뱉고 말았다.

수련할 시간도 부족한데 그딴 놈을 축하해 주러 가야 한다니…….

“가기 싫은 모양이구나.”

“그게…….”

“안다. 나도 네 나이 때는 그랬지. 하지만 지금은 참아야 한다. 어쩔 수 없이.”

진가신은 못내 마음에 들지 않는 얼굴이었다.

더 발전할지도 모를 자식의 수련을 멈춘 것이 못내 아쉬웠다.

또한 자신이 경험했던, 그리고 지금까지 경험해 온 모멸감을 자식에게까지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그런 마음을 감추기 위해 그는 오히려 더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

“준비하거라. 내일이니.”

진가신은 마음 한편에 끓어오르는 화를 자식에게 드러내고 싶지 않았기에 짧게 말하고 몸을 돌렸다.

“아니, 아버…….”

소청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부르려는데 섭약란이 그 손을 잡았다.

“이해하거라. 아버님은 그저 네게 미안해서 그런 것이다. 당가의 무조건적인 명을 거역하지 못하는 본인에게 화가 나기도 하셨을 것이고.”

“…….”

“몇 번이고 고민하셨다. 소강이만 데려가려 생각했지만…….”

“…….”

“이번엔 둘 다 데려오라고 하더구나.”

섭약란은 못내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설명했다.

‘젠장, 그 재수 없는 놈을 또 봐야하다니. 도망갈까?’

소청은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생각했다.

‘상관없잖아? 어차피 필요한 수련은 끝났고 이제 영약만 구하면 되는데.’

준비는 끝나 있었다.

삼 년 동안 이 순간만을 위해 수련에 매진해 온 자신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리 알고 준비하겠습니다.”

밤사이 도망치려 마음을 먹은 소청은 시원하게 대답했다.

“그래. 회합에 필요한 옷가지를 보내마. 일단은 좀 씻고 모처럼 든든히 배를 채우렴.”

“예.”

그러고 보니 몸에서 찌든 냄새가 진동했다.

 

그날 밤.

초승달 무늬가 선명하게 새겨진 붉은색의 예복과 함께 잔칫상 같은 저녁상이 준비되었다.

배가 든든하도록 먹은 소청은 준비된 의복을 보고 피식 웃으며 제쳐 두고 검은 야행복을 갖추어 입었다.

“자, 준비는 끝났고. 잘 있어라. 꽤나 정들었었다.”

작은 봇짐을 챙겨 든 그는 나갈 준비를 서둘렀다.

이미 패월창법과 함께 수련한 비마의 ‘은형섬전보’가 극성을 이루었으니 아무도 자신의 흔적을 찾지 못할 것이었다.

더욱이 천변만화라면 누구도 자신을 알아볼 수 없을 것이었다.

그런데 막 밖으로 나가려는데 왕칠과 옷을 가져온 섭약란의 시비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물이 설삼이라며?”

“예, 은 백 냥짜리라던데요?”

“허, 무리를 하셨구먼.”

“말 마세요. 지난번에 당가에서 총관 보좌라는 놈이 와서 칠룡에 든 당가 소가주에게 보낼 예물이 하찮으면 안 된다고 어찌나 성화를 부리고 가던지.”

“하긴 그날 가주님께서 그 화를 삭이시느라 난리가 났었지. 가모님께서 대공자님을 생각해서 참으라고 겨우 말리셨다니까.”

“그래도 얼마나 다행이에요. 대공자께서 진가 역사상 가장 놀랄 만큼 성장 중이라시니. 이대로 성장하신다면 우리 진가가 당가도 어쩌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면서요?”

“암만. 가모님께서도 어찌나 좋아하시던지. 지난 삼 년간 혹여 몸이라도 상할까 매일 찾아와 몇 시진이나 보다 말 한마디 걸지 못하고 가시는 게 어찌나 마음이 아프던지.”

방문을 열려다가 멈춘 소청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전생에서 느끼지 못했던 어머니의 따뜻함이 생각났다.

‘젠장, 망할!’

깊은 한숨을 내쉰 소청은 방문을 열던 손을 내렸다.

‘이놈의 오지랖은 고쳐지질 않는군. 그래. 마지막이다. 딱 한 번만 참고 떠나는 거야. 당태위 그 자식을 보고 싶진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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