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월진천 3화
무료소설 패월진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82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월진천 3화
2화. 이것이 기연이다!
수업은 진가의 본공인 월식창술을 수련하는 것이었다.
발을 다친 소청은 수업에서 제외되어 연무장 한쪽에서 표사들이 수련을 참관했다.
‘쯧쯧, 저게 뭐야? 찰법(찌르기)이 저래서야. 날아가는 파리도 못 잡겠네.’
턱을 괴고 심드렁하게 바라보던 소청은 혀를 차며 고개를 내저었다.
‘정말 별 볼 일 없는 창술이군. 초식이라는 것도 고작 기본 다섯 동작을 연결한 것뿐이고……. 허, 저게 뭐야? 저래서 어떻게 내공을 싣는다는 거지?’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실망스러웠다.
실초와 허초의 연계도 엉망이었고 투로 자체가 말이 되지 않았다.
‘저래서는 아무리 수련해도 일류도 못 되겠네. 저러니 지방에서 표국이나 운영했지.’
그가 제일 먼저 익힌 무공이 창법이었다.
패월창법(覇月槍法)과 팔괘연환공(八卦連環工).
십 년이나 되는 세월 동안 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익혀 창술의 조예는 깊어졌으나 내공이 늘지 않았다.
아무리 뛰어난 창술을 가지고 있어도 내공이 뒷받침되지 않으니 그저 변두리 무관의 무사부나 삼류 정도의 실력밖에 되지 못했다.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의 몸은 천종맥(千終脈)이었다.
기혈과 세맥이 서서히 막혀 무림인이 될 수 없는 지극히 일반인스러운 팔자.
그 사실을 알게 된 이후 패월창법은 그저 매일 몸을 푸는 아침 운동이 되었다.
그러다 어느 날 비마(飛馬) 곽추의 은형섬전보(隱形閃電步)의 비급을 얻어 신투로 명성을 날리게 되었다.
하지만 무공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은 그는 온갖 문파에 숨어들어 무공을 훔쳐보았고, 황제외경(黃帝外經)이라는 책을 통해 중원 곳곳에 숨은 영초와 영물을 쓸어 먹었다.
‘그 결과 무림공적까지 되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지.’
단전의 내력은 늘어났지만 그뿐이었다.
이미 굳어 버린 기혈과 세맥은 확장되지 못했다.
만약, 그가 천종맥이 아니었다면 천하제일 신투가 아니라 오존이 되었을…….
어찌 되었건 전생에 오랫동안 사십 년 가까이 창술을 수련해 온 소청의 눈에 진가의 창술은 허접하기 짝이 없어 보였다.
‘저럴 거면 차라리 패월창법을……. 어? 잠깐만.’
소청은 갑자기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적인 생각에 벌떡 일어났다.
‘열두 살? 다른 사람의 몸?’
소청은 서둘러 전생에 익혔던 팔괘공을 따라 단전의 좁쌀을 움직였다.
‘회음에서 시작해 독맥 여덟 혈을 지나고 인당을 지나 기해까지. 그리고 다시 회음을 돌아 기해에 오면…….’
순간 그의 이끎대로 좁쌀이 신나게 몸속을 돌아다녔다.
“이, 이럴 수가!”
소청은 너무도 쉽게 행공이 되는 기운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는 서둘러 자신의 몸을 살폈다.
“기, 기혈이…… 세맥이!”
새롭게 얻은 몸은 천종맥이 아니었다.
어린아이라 그런지 기혈은 유연했고 세맥으로 가는 길목은 한 곳도 빠짐없이 열려 있었다.
별 볼 일 없는 가문이다 보니 행공의 흐름이 특정하게 정형화되어 있지도 않았다.
즉, 어떤 무공이라도 익힐 수 있는 상태였다.
“허!”
갑자기 소청의 얼굴에 극도의 희열이 떠올랐다.
그리고 전생의 기억들이 선명하게 스쳐 지나갔다.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으흐흐! 기연이다. 이것이 기연이야!”
소청은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고 수련을 하던 연무장의 사람들은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또다시 소진각에 끌려왔다.
어머니는 혹시나 아들이 미친 것은 아닐까 하며 의원을 불러 살피게 했다.
아비는 실망스러움이 잔뜩 드러나는 얼굴로 노려보고 돌아갔다.
소강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형을 끌어안고 걱정했지만 소청의 얼굴에 가득한 웃음은 지워지지 않았다.
“으흐흐흐.”
누가 뭐라고 하건 소청은 너무나 좋았다.
마천 비고의 보물은 천고의 영약이나 비급이 아니라 어쩌면 이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애면 어떠하고 내력이 없다는 게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새로운 삶.
그리고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전생의 기억들.
사기도 이런 사기가 없었다.
이미 그의 머릿속은 중원의 내로라하는 무공으로 가득 차 있었다.
더욱이 도적으로서 필요했던 기관, 진법, 잡기의 지식은 전문가 뺨 때린다.
문제는 공력?
하아! 그까짓 거!
그는 중원에 퍼져 있는 영물과 영초의 위치까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어떤 놈이 언제 무엇을 얻었는지 그 시기와 장소까지 외우다시피 했다.
그가 열두 살이었던 그때, 동정호 작은 객점의 점소이였다.
하지만 지금은 이름이 없어도 무가의 대공자였다.
그가 스무 살이 넘었을 때 꽤나 알아주는 뒷골목 배수(소매치기)로 감옥을 들락날락했다.
하지만 그때가 되면 엄청난 무공으로 강호를 뒤흔들고 있으리라.
“됐어! 이제 됐어! 막야면 어떻고 소청이면 어때! 이제는 무인이 될 수 있어!”
* * *
다음 날부터 소청은 무공 수련에 혼신의 힘을 쏟아부었다.
서둘러 이런 갑갑한 곳을 떠나야했다.
‘흐흐흐, 신투의 귀환이다!’
연무장에 좌정하고 앉은 소청은 다리가 낫기 전까지는 내공을 수련할 작정이었다.
‘우선은 팔괘공.’
본디 익숙한 게 제일인 법이다.
팔괘연환공은 어느 이름 없는 무인이 만든 내공법이었다.
비록 활동하기도 전에 죽어 버려서 고서에 남은 게 다였지만…….
독맥 여덟 혈에 단전과 똑같은 공력을 쌓을 수 있었고 단전의 내공을 소모하면 여덟 혈의 기운을 순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기괴한 내공법이었다.
‘전생에는 회음으로 기운을 보낼 수 없어서 제대로 익히지 못했지.’
소청이 천천히 진기를 끌어 올리자 좁쌀이 꿈틀거렸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
단전에 머문 좁쌀을 단번에 회음으로 돌렸다.
그러자 꿈틀거리던 기운이 일어나더니 쏜살같이 내달려 회음에 떡하니 자리를 잡았다.
그러고는 회음을 두고 기본 심법을 운용해 단전에 또다시 좁쌀만 한 기운을 모았다.
단전에 모인 기운을 회음으로 보내자 회음의 기운이 도망치듯이 미려에 자리를 잡았다.
“흐흐흐, 역시!”
전생에 하지 못했던 운기법에 금세 좁쌀이 세 개로 늘자 소청이 만족하며 웃었다.
소주천을 통해 단전에 좁쌀을 만들고 만들어진 기운을 회음으로 옮기고 또다시 좁쌀을 만들고…….
낮이 지나고 밤이 늦도록 소청의 수련은 계속되었다.
소청은 소주천과 대주천을 반복하며 팔괘연환공을 수련했다.
벼루에 찧은 발이 다 나아 갈 때쯤 회음, 미려, 명문, 협척, 대추, 옥침, 백회를 지나 인당까지 척추를 따라 올라가는 여덟의 주요 혈 자리에 좁쌀이 쌓였다.
“허억, 허억…….”
새벽닭이 홰치는 소리가 들려왔을 때가 되어서야 수련을 마친 소청은 물먹은 솜처럼 축 늘어졌다.
“됐어. 됐어. 으하하하!”
* * *
“뭣이? 빼 달라고?”
진가의 창술 사범이자 소청의 숙부인 진가성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근 한 달을 쉰 소청이 별안간 창술 수업을 받지 않겠다 말한 것이다.
“네놈이 지금 제정신이냐?”
“네.”
너무도 당당한 소청의 모습에 진가성은 할 말이 없어졌다.
“쯧, 흰소리 말고 창을 들고 오너라!”
자신의 청을 매몰차게 거절해 버린 진가성의 모습에 소청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정말 쓸모없는 창술을 배워야 한다니. 수련할 시간도 부족한데…….”
답답함에 무심코 중얼거린 말에 진가성이 눈을 치켜뜨며 소청을 노려보았다.
“뭐라 했느냐?”
“예?”
“방금 뭐라고 했느냐 말이다.”
“아, 그게…….”
“어서 대답하지 못할까!”
다그치는 모습에 소청은 슬쩍 기분이 나빠졌다.
진짜 숙부였다면 참았겠지만 몸은 소청이되 그 속에는 막야가 들어 있었다.
평생을 제멋대로 살아온 그가 다시 산다고 해서 그 성격이 어디 가겠는가?
더구나 전생의 자신보다 한참이나 어린…….
“쓸모없는 창술이라 했습니다.”
“뭐라? 쓸모가 없어? 가문의 대공자라는 놈이 가문의 비전인 창술을 어찌 그리 평가한단 말이냐!”
자신이 생각에는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니었는데 진가성이 화를 내자 또 배알이 꼴리기 시작했다.
‘고작 저따위 허술한 창술이 가문의 비전이라니…….’
화가 나자 마음속에 있는 말이 마구 입 밖으로 나왔다.
“다 잘못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땅을 짚지 못하고 창을 잡은 손이 헐거운데 어찌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합니까! 더욱이 투로는 어찌나 어설픈지. 좌변에서 막히면 우변의 변초는 어찌 막아 낼 것이며 퇴보가 자유롭지 않은데 어찌 공수 전환이 된단 말입니까!”
소청이 짜증스럽게 대답하자 진가성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소청의 말은 핵심과 찌르고 있었다.
땅을 짚지 못한다는 것은 기본자세가 굳건하지 못함을 말하며 손이 헐겁다는 것은 파지법을 말함이었다.
또한 좌변과 우변, 퇴보에서 전보로 전환되는 허술함은 월식창법의 최대 약점과 같은 것이었다.
진가성이 기억하기로 소청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찰식 하나도 제대로 펴지 못했었다.
“붙여 말할까요? 애초에 창식이 잘못되었습니다. 잘못된 무공을 가르치는데 어찌 실력이 늘겠습니까? 기본조차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
모두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구구절절 맞는 소리였기에 더욱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진가성의 얼굴은 달아오를 대로 달아올라 있었다.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지만 고칠 방법을 알지 못하는 자신의 가르침을 비판하는 조카의 말이 그의 자존심을 건드려 놓았다.
“오냐. 그 정도로 말할 것 같으면 그 성취 또한 남다르겠지?”
진가성이 서슬 퍼런 기세로 소강을 불렀다.
“소강! 네 형에게 창을 주어라!”
“예?”
“어서!”
소강이 쭈뼛거리며 나무 대로 만들어진 창을 들고 와 소청에게 건넸다.
“형님…….”
형을 걱정하는 마음에 눈동자가 떨리고 있었다.
“흥!”
하지만 소청은 이미 진가성만큼이나 화가 나 있었다.
빼앗듯이 창을 받아 든 소청은 진가성 앞에 섰다.
진가성은 자신의 주위로 둥근 원을 그렸다.
“증명해 보거라. 만약 네가 나를 이 원에서 조금이라도 물러서게 한다면 앞으로 수업에서 빼 주마. 하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단단히 각오해야 할 것이야!”
진가성은 입만 살아 있는 소청을 흠씬 두들겨 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팔다리가 부러지고 고생을 좀 하면 삐뚤어진 정신 상태가 제대로 박히리라.
소청은 앞으로 진가를 이끌어 가야 할 대공자이기에 조금이라도 잘못된 길로 가서는 안 된다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으름장에 소청이 오히려 가늘게 눈을 뜨고 당차게 대답했다.
“그 말씀 지키시기 바랍니다.”
“흥! 네 녀석의 자신감이 진짜이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창을 들고 선 진가신을 보며 소청이 한 장 정도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곤 눈을 감고 머릿속에 기억되어 있는 패월창이라는 창술을 떠올렸다.
‘내력이라면 몰라도 창술의 예리함이라면 내가 훨씬 더 앞선다!’
그의 머릿속으로 패월창법의 여덟 개의 초식이 물 흐르듯이 펼쳐졌다.
한참이 지나도록 소청이 눈을 감은 채 반응이 없자 진가성이 짜증스럽게 말했다.
“뭘 하는 게냐? 막상 해 보려니 자신이 없어?”
“…….”
소청은 가만히 눈을 뜨고는 아무 말 없이 연습하듯 창대를 가볍게 휘둘렀다.
그 모습이 너무 허술해 진가성이 조소를 머금는데 갑자기 움직임이 유려해지더니 허공에 궤적을 만들어 낼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 저건!’
마치 잘 짜인 합처럼 창대가 뻗어지고 당겨졌다가 휘돌리기를 반복할 때쯤에는 그 기세가 점점 더 예리해져 가고 있었다.
처음 보는 창술이었다.
더욱이 월식창술이 부끄러워질 만큼 그 짜임새가 완벽했다.
파앙!
두발을 마보세보다 넓게 벌린 채 양손으로 창대를 잡아 중단에 멈춰 세우자 공기가 찢어지는 굉음이 연무장을 가득히 채웠다.
“후우…….”
소청이 슬쩍 기를 흘리자 단전에서 일어난 좁쌀이 온몸에 청량감을 불어 넣었다.
온몸의 기감을 열리고 세포 하나하나마다 대기의 기운이 느껴져 왔다.
가볍게 내쉰 숨에 지켜보던 소강이나 표국 무사들이 마른침을 꿀꺽 소리가 나도록 집어삼켰다.
“준비되었습니다.”
투명할 정도로 맑아진 눈이 된 소청이 진가성을 바라보았다.
“그, 그래. 아, 아니 잠시…….”
소청의 창술에 의문이 생긴 진가성이 잠시 기다리라 말하려는 순간 소청이 앞섰던 발이 미끄러지듯이 앞으로 나왔다.
‘찰법. 일섬!’
소청의 창이 가볍게 내질러졌다.
순간!
창날이 사라졌다가 나타나는 것처럼 빠르게 뻗어 나갔다.
“헙!”
따앙!
분명 가벼운 움직임이었는데 순간적으로 눈앞에 창날이 나타나자 진가성이 기겁하며 창을 튕겨 내었다.
아무리 빠르다 해도 어른과 아이의 힘 차이가 있어 오히려 공격하던 소청이 살짝 밀려났다.
‘치잇! 멈추지 않는다! 두 번째는 연속! 연환섬.’
하지만 밀려남과 동시에 지면을 밟고 몸을 비튼 소청이 재빠르게 창대의 끝을 내질렀다.
“이 무슨!”
첫 수에 놀란 진가성은 소나기처럼 뻗어진 창대에 헛바람을 집어삼키며 서너 걸음이나 밀려났다.
‘다음은 난법(휘돌려 치기)!’
소청이 찔렀던 창대를 회수하며 원을 그리는 순간 단전의 좁쌀이 움찔하며 반응을 보였다.
‘응? 뭐지?’
찌르기에서 때리기로 변한 동작이 너무도 매끄럽게 이어졌고 단전에서 일어난 좁쌀이 소청의 손을 타고 창대를 타고 뻗어 나갔다.
“이, 이런!”
너무나 빠른 전환에 피하지 못한 진가성이 대경하며 경기공을 일으켜 몸을 웅크리는데 소청의 나무로 만든 창대가 산산이 부서졌다.
파아앙! 쨍그랑.
지지대를 잃은 창날이 바닥에 떨어져 쇳소리를 내었다.
진가성이 등줄기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끼며 어이없는 표정으로 발을 바라보았다.
‘…….’
믿을 수가 없었다.
자신이 그렸던 원에서 한 발 밖.
그는 소청을 응시했다.
고작 한 달이었다.
발을 다친 채로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그 정도로 실력이 늘 수 없었다.
더욱이 창대를 터트려 버릴 정도로 강력한 내공은 더욱 믿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언제 이렇게 성장했단 말인가?
연일 장난만 치고 수업을 등한시하던 조카가 아니었던가.
한데 소청은 눈만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좁쌀이…… 빠르게 커졌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