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월진천 1화
무료소설 패월진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43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월진천 1화
서(序)
한 세력이 있었다.
그들은 어느 순간 나타났으며 순식간에 중원 삼대 세력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스스로를 마의 하늘이라 칭한 자들.
마천(魔天).
역사에 기록조차 되지 않았던 그들은 갑자기 무림에 등장했다.
십만대산(十萬大山: 광서와 광동 경계의 산맥)에서 시작해 파죽지세로 중원의 모든 경계를 지우고 마의 깃발을 꽂았다.
구주팔황(九州八荒)을 아우르고 천하 제패를 목전에 두었던 그들은 배수의 진을 친 정사 연합의 처절한 항전에 가로막혔다.
삼 년 가까이 지속된 결전이 이어져 수많은 시체가 들에 쌓여 산을 이루고 핏물이 강이 되어 흘렀다.
천하를 호령했던 마천은 생존자 하나 남기지 못했고 승리를 거머쥔 정사 연합에 남은 것은 상처의 쓰라림뿐이었다.
* * *
달이 뜨지 않은 그믐의 밤.
한 뼘밖에 되지 않는 첨탑 위에 복면의 긴 끈을 휘날리는 사내가 서 있었다.
휘이이잉!
삭풍이 몰아닥쳤지만 그의 몸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마치 세상을 관조하듯이 아래를 바라보는…….
“엣취! 아 젠장, 분위기 좀 잡아 볼랬더니…….”
너무 높다.
재채기하다 비틀거려서 오십 년 삶을 마감할 뻔했다.
역시 겨울바람은 춥다.
“흐흐흐, 마천 비고. 이번에야말로!”
신투(神偸) 막야.
경공과 은신 하나로 중원의 모든 곳을 제집처럼 드나들었던 사내!
원하고자 했으면 중원 최고의 거부가 되었을 것이고, 훔친 서적으로 소림의 장경각보다 더 거대한 서책의 탑을 세웠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무림공적…….
하 씁쓸하다.
결국 세상은 무인 나부랭이들만 대접해 준다.
어찌 나의 진가를 모른단 말인가?
짜식들, 부러워서 그러는 거지 부러워서…….
어쨌든 그는 지금 정사 연합군에 의해 무너진 마천의 첨탑 꼭대기에 서 있었다.
“이것으로 세 번째. 이번에야말로 뚫는다!”
막야는 지난 두 번의 실패를 떠올렸다.
만상귀혼진(萬象鬼魂陣).
구성하는 데만 백여 년씩이나 걸리는 절진이다.
참 노력이 가상하다.
진 하나 만드는 데 백 년이나 걸리다니…….
어쨌든 그런 절진으로 막고 있으니 호기심이 더욱 끓어오른다.
불귀미궁(不歸迷宮).
한 발만 내디뎌도 시작되는 기관의 미로.
모든 곳이 입구지만 출구가 없으며, 모든 곳이 똑같아 보이지만 미세하게 다른 그곳.
역시 마천 비고. 뭔가 있다.
아니면 이따위 걸 뭐 하러 만들어 놓았단 말인가?
그리고 마지막 일천(一千) 청동상(靑銅像).
비고를 지키는 기물(奇物).
앞선 두 번의 도전에서는 청동상은커녕 쇠 쪼가리 하나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세 번째!
뚫는다.
그 머리 좋다는 제갈세가도, 무림의 정점에 선 오존도 뚫지 못한 곳을 뚫는다.
“엣취! 생각을 너무 많이 했네. 자 그럼 들어가 볼까?”
* * *
콰쾅!
이런 썅!
발을 내딛자마자 시뻘건 안광을 토해 낸 청동상이 미친 듯이 덤벼 왔다.
검과 창, 도와 편.
그 수를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무구들이 막야의 앞을 가로막았다.
‘망할! 이 정도일 줄이야!’
고작 크게 열두 걸음.
겨우 삼 장을 지나왔음인데 막야의 목숨은 경각에 달했다.
오존조차 쫓지 못한 자신의 경공이라면 최소 십 장은 갈 수 있으리라 자신했다.
하지만 오판이었다.
나무 기둥과 움직이는 청동상은 완전히 달랐다.
당대 최고의 은신술은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청동상들은 귀신같이 자신의 위치를 찾아 무구를 찔러 넣었다.
여름날 폭우 속을 피해 달린다는 우중거(雨中巨)의 신법조차 도움이 되지 못했다.
청동상의 등 어림에 숨었지만 동료애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놈들이었다.
손바닥보다 작은 크기로 잘리고 부서지는 청동상 때문에 등줄기로 서늘한 소름이 돋아 올랐다.
비보다 촘촘하게 날아오는 무기와 사방에서 뿌려지는 암기에 온몸이 난자당하고 있었다.
최선을 다하고 있었지만 청동상의 공격은 그의 노력을 완벽히 짓밟았다.
‘망할! 결국 일보월하(一步月河)를 쓸 수밖에 없나.’
한걸음에 강을 건넌다는 은형섬전보의 마지막 비기.
십 장 이후를 위해 남겨 둔 최후의 경공밖에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멈칫하는 순간 창날 하나가 그의 목을 향해 날아왔다.
사방이 칼끝이라 피할 곳이 없었다.
그에겐 몰려드는 공격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무공 따윈 애초에 없었다.
‘젠자앙!’
다급해진 그는 결국 단전의 기운을 모조리 용천혈을 향해 밀어 넣었다.
무릎이 굽혀지고 종아리와 허벅지가 터질 듯이 팽팽해졌다.
파앙!
사라졌다.
수백 개의 무구들이 막야가 남긴 잔상을 꿰뚫었다.
그리고 그 속도에 반응하지 못한 일천 청동상이 뒤늦게 방향을 틀어 막야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파앙! 파앙! 파앙!
모습은 없었고 귀를 때리는 소음과 파헤쳐지는 흙만 보였다.
십 장, 이십 장, 삼십 장…….
그리고 드디어 눈앞에 화강석을 파내어 쓴 용사비등한 글귀가 선명하게 보였다.
@[마천 비고(魔天秘庫)]
남은 것은 육 장여의 거리.
막야는 희열에 찬 표정으로 몸을 날렸다.
푹! 푸푹!
하지만 막야의 속도가 느려지는 순간 무표정한 청동상의 검이 뱃가죽을 뚫고 들어왔다.
이 새끼들아 고만 찔러라.
대화만 통하면 그렇게 외치고 싶었다.
뒤이어 온몸에 갖가지 무구들과 수백 개의 암기가 틀어박혔다.
“아…… 우라질. 다 왔는데…….”
무구들이 천천히 뽑혀 나오고 온몸에서 피가 쏟아졌다.
땅이 기울어지는지 자신이 기울어지는지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의식이 흐릿해져 왔다.
털썩.
움직임을 멈춘 청동상 사이에 막야가 쓰러졌다.
고작 육 장의 거리를 남기고 실패해 버렸다.
“무공…… 십 장을 나아갈 수 있는 무공만 있었더라도…….”
아쉬움이 들었다.
처음 십 장여에서만 시작되었어도 마천 비고는 자신의 손안에 들어 올 수 있었다.
평생을 살며 가장 큰 희열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겠지만.
결국 실패했다.
결국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 누구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는 결국 마천 비고와의 승부에서 패배한 것이다.
치욕스러운 패배였다.
흐려지는 의식 사이로 이승과 연결된 그의 마지막 끈이 끊어지려던 그때.
쩌적.
쩌저적.
멈춰 있던 청동상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쿠르릉.
거대한 공동의 천장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번쩍!
마천 비고의 열린 문에서 눈을 뜰 수도 없는 빛이 쏟아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