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월진천 3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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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66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월진천 35화
34화. 남궁세가
남궁천린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벌써 몇 번째란 말인가?
맹주 취임식이 두 달 앞으로 다가온 터라 남궁천세를 비롯한 일검과 이검, 삼검이 정천맹으로 떠난 뒤였다.
그들의 대형인 일검 남궁천위가 떠나기 전, 안휘성에서 사파를 지우라 명했다.
맹주의 가문이 있는 곳에 작은 흠집이라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앞으로 맹주위를 수행하며 들어갈 수많은 돈을 메울 이권을 만들고자 하는 저의가 깔려 있음을 모르지 않았다.
다음 대의 맹주가 나온 마당에 괜한 마찰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던 사도련은 웬만큼 큰 예하 세력들은 모두 안휘성 밖으로 이주해 놓은 상태였다.
현재 안휘에 남은 사파들은 사도련에서도 버린 세력으로 앞뒤 구분 못 하고 설치는 잔당뿐이었다.
소가주 남궁진수, 이 공자 남궁진하, 삼 공자 남궁진린.
앞으로 대 남궁세가를 이끌어 가야 할 그들에게 실전 경험을 쌓아 주려 했다.
무릇 칼이란 쓰지 않으면 무뎌지는 게 아니던가.
그런데.
그나마 가장 가까운 안경으로 떠났던 남궁진린이 허겁지겁 돌아왔다.
함께 간 창천검수 스물이 모조리 부상을 당했다.
$-분명 파천도였습니다!
자신의 질책에 남궁진린이 항변하듯이 말했다.
처음에는 믿지 않았지만 부상당한 창천검수들까지 증언했으니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급히 말을 달려 오검과 함께 안경의 흑사방 지부로 달려갔다.
그런데 남은 것이라고는 흑사방 지부의 쓸모없는 쓰레기뿐이었다.
안 그래도 화가 나는데 목척승이라는 놈이 자신들을 향해 ‘씨발 놈’이라는 경박스러운 욕까지 내뱉는 통에 모조리 목을 베어 버렸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세가로 돌아온 그는 팔이 부러진 소가주인 남궁진수를 보아야 했고, 의원에 실려 갔다는 이 공자 남궁진하의 소식을 들어야 했다.
그들이 지목하는 것은 단 한 명.
막야.
그 찢어 죽일 놈이 남궁의 후계 셋의 행사를 방해하고 모조리 돌아오게 했다.
그것도 사도련주 위도혁의 독문 무공인 파천도의 삼 초식을 골고루 사용하면서…….
“이런 개자식이! 감히 남궁세가를 어떻게 보고!”
사도련주의 전면적인 도발이나 다름없다 생각한 남궁천린이 욕설을 내뱉었다.
“간을 보는 게지. 간을 보는 게야!”
집무실의 집기를 닥치는 대로 부숴 놓았지만 화가 풀리지 않았다.
“숙부님, 일단은 진정하십시오.”
“시끄럽다! 내 사도련에 정식으로 항의할 것이야! 감히 우리를 어떻게 보고 사도련주가 그의 제자를 보내 우리 행사를 방해한단 말이냐!”
“확실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확실하지 않아? 소가주의 말을 듣지 못하였느냐? 파천도가 분명하다 했다. 진린은 만경창파에 당했고 진하는 경천기개(驚天氣槪), 소가주는 붕산진곤(崩山鎭坤)에 당했다. 하늘 아래 누가 있어 위도혁의 삼 초를 흉내 낼 수 있단 말이냐!”
오검 남궁무한의 만류에도 그는 화를 삭이지 못했다.
“형님, 하지만 정식으로 항의를 하자면 가주의 승인이 필요합니다. 맹주위의 계승 준비를 하고 계시는 분께 알리실 생각입니까?”
“…….”
그럴 수는 없었다.
잘못하다가는 안휘에 일어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가주에게 보고했다는 소문이 날 것이다.
안 그래도 ‘막야’라는 이름이 안휘 전역으로 퍼지고 있는 마당에 창천검수들이 해결하지 못했다는 말이 나돌면 그들이 중시하는 명예가 땅바닥에 던져지게 될 것이었다.
“망할!”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화풀이할 곳조차 없었다.
“일단은 가문의 검수들을 풀어 최대한 찾아보는 게 어떠실는지요? 우리와 마주치지 않고 도망치는 것을 보면 다행히 두려워하는 것이 틀림없어 보입니다. 제 실력이 우리에겐 못 미친다 생각한 것이지요.”
“찾으면?”
“몰아야지요. 천라지망까지는 아니어도 남궁가와 그 예하 무관의 무인들이라면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흠, 네 말은 일단 아이들이 몰면 우리가 잡으면 된다?”
“예. 토끼몰이입니다. 좌우에서 소리를 질러 우리 쪽으로 유인하기만 하면 됩니다.”
생각해 보니 옳은 방법일 것 같았다.
“허, 이제야 내 속이 풀리는구나. 옳다. 네 말대로 하자. 하면 어디가 좋겠느냐?”
“서릉협 하구로 몰고 우리가 안경에서 기다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서릉협 하구?”
서릉협 하구는 호북성을 휘도는 장강의 마지막 협곡으로 안휘성의 서측 초입에 해당하는 곳이었다.
“예. 그중 좌우가 막힌 백림하에서 기다린다면 도망칠 곳이 없을 겁니다.”
“좋다! 그리하자. 지금 즉시 세가와 안휘 전역에 명을 내리도록 해라.”
남궁세가에 명이 내려졌고, 인근 예하 문파를 향해 전서구가 날아올랐다.
남궁천린과 남궁무한이 직접 이끄는 창천검수 이백이 백림하를 향해 말을 내달렸다.
* * *
징 소리와 북소리가 끊임없이 울렸다.
쫓기는 소청은 마치 연회석에서 연주를 감상하듯이 그들이 쳐 대는 타악 소리를 들으며 여유롭게 걸었다.
표정은 여유로웠지만 일보에 일이 장씩을 쑥 하고 지나갔다.
‘제법 나왔네. 협곡으로 몰 셈인가 보지?’
소청은 그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이미 다 알고 있었다.
오히려 자신이 의도한 바대로 잘 따라와 주고 있기도 했다.
‘자, 일단 안휘성을 돌면서 정파가 아닌 사파의 정보들을 좀 모았고 남궁세가의 전력들을 모조리 끌어내 놓았으니까. 집은 비어 있겠구먼. 후후, 역시 도적질의 최고봉은 빈집털이지.’
소청이 안휘성에 와서 막야의 이름으로 남궁가와 부딪치며 소란을 피운 것은 모두가 이런 상황을 연출해 내기 위함이었다.
아무리 제갈휘문이 뛰어나다 해도 사도련 예하의 정보까지 취합할 수는 없었다.
중원 천지에 걸인이 없는 곳이 없다고 하더라도 사도련의 세력권에서는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제갈휘문에게 서신을 보냈고 그가 흑선을 움직여 조사하는 동안 소청은 안휘성 내의 사파를 통해 정보를 얻어 내었다.
‘흑사방의 목척승, 대룡파의 유칠. 그놈들은 분명히 말했다. 남궁세가가 은밀하게 아이들을 유괴해 모종의 장소로 보내고 있다고. 하나면 몰라도 둘이나 알고 있다는 것은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다는 이야기지. 하여간 위선과 가식으로 들어찬 놈들 같으니…….’
소청은 협곡 주위에서 느껴지는 남궁가 무인들의 안내(?)를 받으며 그들이 파 놓은 함정을 향해 스스로 걸어 들어갔다.
‘자, 그럼 이쯤 하고 혼란을 좀 줘 볼까?’
그가 걸음을 멈추고 슬쩍 좌측을 올려다보았다.
서릉협의 마지막 협곡인 백림하가 시작되는 절벽 위로 무인들이 개미 떼처럼 달라붙어 몸을 숨기고 있었다.
‘은신의 기본도 안 된 놈들 같으니. 어디 한번 뭐 빠지게 찾아봐라. 이 새끼들아.’
“어? 저놈 멈췄는데요?”
“뭐? 좀 더 징을 울려라! 북을 치고! 백림하의 깊은 곳까지…….”
순간 숨어 있는 자신들을 향해 소청이 눈을 찡긋하면서 웃었다.
그리고.
퍼엉!
물보라가 튀어 올랐고.
“까꿍!”
한 호흡도 하기 전에 수박만큼 커진 소청의 얼굴이 나타났다.
“…….”
“놀라기는!”
미처 방비도 하기 전에 나타난 소청은 그들의 포위망 안쪽으로 유유히 파고들었다.
“잘들 전해. 난 이쪽으로 간다.”
친절하게(?) 행로를 알려 준 소청이 기운을 양손에 담았다.
오른손엔 인당의 기운을, 왼손엔 백회의 기운을…….
화산을 떠나 안휘로 오는 보름여 동안 새로 얻은 힘을 수도 없이 연구해 한 가지 사용법을 만들었다.
아직 완전하지 않았지만 산자락의 솔밭을 뿌리째로 날려 버릴 정도로 강렬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팔괘연환공 서문. 태극에서 음과 양이 나오고, 이 두 개의 의(儀)를 둘로 나눈 것을 사상이라 하며 이것을 나누어 다시 팔괘가 된다.’
소청은 기억 속에 남은 팔괘연환공의 서문을 되뇌었고 자신이 깨달은 바를 되새겼다.
‘나누었으니 다시 합할 수도 있는 거지. 원래 하나였으니까! 천과 화가 합하여 뇌와 풍이 생기듯 인당의 뇌와 백회의 천을 합하면 건(乾)이 된다. 팔괘연환 합일. 천뢰충파(天雷衝破)!’
진득하게 모인 기운이 손바닥을 찢어 놓을 듯 고통을 선사할 때 소청이 강제로 부딪치게 했다.
우르릉! 꽈광!
천둥소리와 함께 충돌하며 터트려진 거대한 두 개의 기운의 파도가 절벽면의 상단부를 삽시간에 집어삼켰다.
기파에 휩쓸린 수십 장의 공간에 거대한 반원형 폭발이 일어났고 절벽이 뿌리째 뽑힌 나무와 함께 통째로 허물어졌다.
휩쓸린 무인들은 폭발에 튕겨 나가 잔해에 파묻혀 쓰러졌다.
자신이 만들어 버린 엄청난 상황을 음미하던 소청은 약간 기운이 없어 보이는 얼굴로 히죽 웃었다.
“흐흐흐, 처음 써 보는 것인데, 대인전에서는 최고겠구먼. 손바닥이 찢어진다는 단점만 없으면…….”
힘을 이기지 못한 노궁(勞宮)혈 겉면의 살갗이 징그럽게 터져 나가 피가 뚝뚝 흘러내리는 것을 바라보던 소청은 가볍게 발을 굴러 모습을 감추었다.
“저! 저게 뭐야!”
막야라는 놈이 오기까지 함정을 파고 기다리던 남궁천린은 멀리서 보이는 거대한 폭발에 입을 떡 벌리고 말았다.
마치 군문에서 사용하는 대장군포 수십 발을 얻어맞은 듯이 절벽이 통째로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삐이이익!
폭발이 일어난 곳 인근에서 날카로운 호각성이 들렸다.
“젠장! 무슨 일이냐!”
“놈이 도주했습니다. 사상자를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
살심이 절로 끓어올랐다.
지금까지는 부상을 당해도 경미한 수준이었지만 방금 전 폭발로 인해 사망자가 생기고 말았다.
남궁천린는 굳은 얼굴로 협곡의 중앙으로 몸을 드러냈다.
“남궁가와 그 예하 세가 무인들은 들어라!”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내뱉은 목소리가 사자후가 되어 계곡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지금부터 막야! 그놈은 대남궁의 원수다! 발견 즉시! 추살하라!”
결국 추살령이 떨어졌고 포위망이 해제되었다.
남궁가의 창천검수를 포함해 안휘의 모든 무가가 살기를 뿜으며 그의 뒤를 쫓았다.
* * *
안개와 함께 짙은 어둠이 찾아온 황산의 남궁세가.
가장 높은 대전각의 지붕 위에 흑색 피풍의에 검은 방립을 걸친 소청이 서 있었다.
‘쯧, 익숙지 않아서 힘 조절을 못 했네. 죽이고 싶진 않았는데…….’
소청은 눈을 살짝 찡그렸다.
백리하에서 천뢰충파를 쓴 이유는 실험적인 성격도 강했지만 남궁가의 무인들이 더욱 자신의 뒤를 쫓게끔 만들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오롯이 제어되지 못한 힘으로 사람들을 죽이고 말았다.
별 원한 관계도 없는 사람들을…….
‘후우. 어쩔 수 없지. 후에 제라도 올려 줘야지. 일단은 남궁가를 뒤지는 게…….’
무수한 전각들을 내려다보며 은신을 하려던 소청은 순간 얼어붙듯 멈추고 말았다.
누군가 자신을 바라보는 듯한 서늘한 느낌이 등줄기를 파고들었다.
소청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삼십 장 밖.
검은 야행복에 요상한 가면을 쓴 호리호리한 인물이었다.
‘뭐지? 남궁가의 인물?’
그럴 리가 없었다.
남궁가의 인물이었다면 야행복을 갖춰 입고 지붕 위에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그가 경공을 펼치는 순간 소청은 자신의 눈을 의심해야 했다.
‘이, 일보월하?’
한 줌의 진기로 강을 건넌다는 비마 곽추의 은형섬전보.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최강의 공간 이동술 일보월하가 눈앞에서 펼쳐진 것이다.
‘어떻게?’
자신이 은형섬전보의 비급을 얻은 것은 지금의 시간에서 십 년 후 사람이 찾지 않는 인적 드문 산속에서였다.
그런데.
‘설마? 저자가 비마 곽추?’
소청은 움직이지도 못하고 서 있었다.
분명 은형섬전보는 곽추만이 익히고 있었던 최상승의 절예가 확실했다.
그는 어찌 보면 자신의 스승과도 같은 인물이었다.
전생에 도적의 기술을 가르쳐 준이가 동정호의 배수 왕철이었다면 신투로 만들어 준 것은 본 적도 없는 비마 곽추였다.
한 번도 대면해 본 적이 없는 그를 만나게 되었다는 사실이 소청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가 표홀하게 날아와 소청의 일장 앞으로 마주 섰다.
“그대가 진소청인가?”
대면해 보지 못한 스승의 목소리는 여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