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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월진천 32화

무료소설 패월진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0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패월진천 32화

31화. 흑매화(黑梅花)의 진실 (2)

 

 

 

 

감월식으로 현우자의 검격을 터트려 버린 소청의 창법이 줄곧 방어세를 취하다가 공격세로 전환되었다.

뻗어 내는 창날의 기세가 날카롭게 변해 현우자의 전신을 향했다.

까가가강!

수십 초를 뻗어 내었음에도 너무도 손쉽게 쳐 낸 현우자는 악귀 같은 얼굴을 하고 소청을 공격해 왔다.

매화노방(梅花路傍)에서 시작해 매향성류(梅香成流)까지의 이십사수매화검법의 초식이 물 흐르듯이 이어지고 짙은 향기에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다시 한 번 펼쳐진 매화만리향의 초식을 튕겨 내었을 때, 갑자기 그의 공세가 변하기 시작했다.

“구궁? 이런 썅!”

매화검법에 이어 구궁검법의 초식이 순식간에 연이어졌다.

짜앙!

곧게 뻗어 오는 검기의 기운을 허리를 젖혀 피하고 바닥을 쓸듯이 창을 돌려 현우자의 하체를 공격했다.

살얼음 위를 걷는 것만 같았다.

한순간만 놓쳐도 그의 검이 전신을 난자할 것 같았다.

패월창법으로는 그의 강맹한 기운을 온전히 막지 못했기에 은형섬전보를 극성으로 펼쳐야 했다.

내력을 쪼개고 쪼개 필요한 기운을 사용하며 태극동의 내부를 사방으로 뛰어다녔지만, 순간적으로 공간을 뛰어 피하면 귀신같이 쫓아와 검을 날렸다.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기운을 느끼는 것만 같았다.

또다시 검이 변했다.

이번에는 옥녀소검이었다.

매화검법이 유려하면, 구궁은 무거웠고, 옥녀는 날카롭기 그지없었다.

그의 몸에서 뿜어지는 칼날 같은 기세가 소청의 옷자락을 넝마로 만들고 있었다.

사방에서 날아오는 검격에 조금씩 상처가 생기고 옅은 피가 배어 나와 옷자락을 물들였다.

건월식 만월의 기운은 단번에 쪼개져 나갔고 손월식의 삭월은 아스라이 부서져 나갔다.

소청은 자신이 움직일 수 있는 최대의 속도로 할 수 있는 모든 기예를 쏟아부었다.

하지만 그의 몸에 제대로 된 상처를 입히기는커녕 공격을 막는 것이 전부였다.

검을 통해 뻗어 나오는 초식 하나 하나가 엄청나게 위력적이었다.

만약 단전의 힘만으로 싸웠다면 매화검법에서 이미 내력이 다해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내력이 다하면 월하일보로 재빨리 퇴보를 밟고 독맥 여덟 혈의 기운을 연환하여 단전을 채웠다.

벌써 여섯 번째 혈인 명문의 기운까지 다해 가고 있었다.

남은 것은 미려와 회음의 내공뿐이었다.

그럼에도 현우자의 검에 실린 기운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고 있었다.

‘이 영감! 도대체 내력이 얼마나 되는 거야?’

속으로 욕이란 욕은 전부 내뱉으며 몸을 빼는 순간 길어진 검기가 그의 목 언저리를 스쳤다.

최상의 경공인 일보월하의 거리조차 뒤쫓기 시작했다.

전생의 기억에 오존은 그의 종적을 따라잡지 못했었다.

도망치는 게 아니라 정면으로 맞붙는 것은 차원이 달랐다.

또다시 검격이 변했고 소청은 미려의 기운을 단전으로 돌렸다.

우웅!

갑자기 공격을 멈추고 검을 뒤로 물렸던 현우자의 검격이 웅혼한 울음을 토해 내기 시작했다.

발검하며 뽑아 올린 검이 횡으로 그어졌고 검격에 붉은 빛 무리가 어려 있었다.

“낙영(落英)이라니! 미친!”

꽃이 떨어진다는 뜻을 가진 검공.

화산의 마지막 초식이자 한 번도 펼쳐진 적이 없는 무공이었다.

훔쳐 본 비급에만 남겨져 알고만 있던 그 초식은 현우자가 아니라면 그 누구도 시전하지 못할 극예였다.

검의 궤적을 따라 뻗어 나온 붉은 빛이 공동 안의 짙은 어둠을 밀어내고 검붉은 빛이 사방을 온통 시뻘겋게 물들여 갔다.

이미 미려의 기운이 단전을 채우기 위해 독맥의 혈들을 지나 단전으로 치닫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미려의 기운만으로는 눈앞에 펼쳐진 낙영에 실린 힘을 막을 수가 없었다.

일보월하를 펼친다 해도 이곳은 거대한 공동.

검격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은 없었다.

피할 곳 없는 최강의 절초 앞에서 만난 무력감은 태산 앞에 전라의 몸으로 맞선 것처럼 깊어져 스스로가 초라하고 볼품없이 느껴지는 순간, 소청의 시간이 갑자기 느려졌다.

죽음.

살아온 기억들이 느릿하게 변한 시간을 따라 주마등처럼 머릿속에 그려졌다.

푹!

푸푹!

청동상의 검이 뱃가죽을 뚫고 수백 개의 암기와 무구에 난자당해 죽은 막야의 기억.

이미 한번 경험해 보았다고는 해도 다시는 경험하기 싫은…….

‘어떻게 얻은 기회인데……. 나는 죽고 싶지 않아!’

극한의 상황에서 끓어오르는 생의 의지와 염원.

두근!

거세게 뛰어오르는 심장 소리와 함께 모든 시간이 멈췄다.

움직이는 것은 소청의 내부뿐이었다.

심장 소리가 천둥처럼 커지고 소나기처럼 빨라져 소청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힘차게 뛰기 시작한 심장은 평소보다 수십 배나 빨리 온몸에 피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휘우우우!

갑자기 독맥의 마지막 혈 자리인 회음이 미친 듯이 요동하더니 물길을 거슬렀다.

순행이 아닌 역행!

자칫 주화입마에 빠질 수도 있다는 그 위험한 역천의 운기가 시작되었고 미려에서 출발해 백회와 인당을 돌아 단전을 채우는 기운과 맞부딪쳤다.

콰앙!

미처 손쓸 새도 없었다.

경험해 보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두 개의 기운이 단전에 서로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부딪쳤고 소청에게 끔찍한 고통이 찾아왔다.

‘크윽!’

일말이족(一襪二足).

버선 하나에 발 두 개가 들어간 격이었다.

단전이 강제로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짐조의 내단을 얻을 때보다 더욱 고통스러웠다.

소청은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미 단전의 크기는 한계치에 이르러 있었다.

하나는 여유로웠고 두 개의 기운을 담기에는 부족했다.

‘망할! 역천이라니!’

가가가각!

서서히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

멈춰져 있던 순간을 보상받기 위해 점차 빨라져 붉은 낙양의 기운이 동굴 벽을 파헤치며 다가왔다.

반격을 하든가 피하든가.

당장에라도 무슨 수를 내야 했다.

그런데.

망할 놈의 기운이 산 하나를 놓고 영역 다툼을 하는 범처럼 으르렁거리며 움직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이 자식들아! 이게 너희들 몸이냐! 죽는다고!’

있지도 않은 무형의 대상에게 표현하지 못할 욕설을 내뱉는데 미려와 회음의 기운이 서로를 감싸 안듯이 회전하기 시작했다.

휘오오오오.

두 개의 기운이 회오리를 만들더니 미친 듯이 회전하기 시작하며 하나의 모양으로 변해 갔다.

태극!

태극의 모양으로 멈춘 순간 한 치 앞으로 다가온 칼날!

갑자기 시간이 빨라졌다.

“으아아압!”

이를 악물고 진각을 밟아 물러난 소청은 탈피하는 매미처럼 선명한 잔상을 남겼고 뻗어진 창날과 함께 잔상에 태극의 기운이 실렸다.

꽈아앙!

창대를 뻗어 나온 기운이 거칠게 회전하면서 낙영의 횡격 중심부를 때리며 붉은빛이 팽팽한 천에 가위를 댄 것처럼 반으로 갈라 버렸다.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기의 충돌에 태극동은 물론 연화봉 전체가 뒤흔들렸다.

투두둑!

우르르…….

“우웩!”

상세가 그리 깊지는 않았지만 갑작스러운 역행으로 모든 기운을 쏟아 버린 터라 더 이상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내상으로 인해 검은 핏물을 울컥이며 그가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들었을 때.

태극동 안쪽에서 허리께가 짐승에게 물어뜯긴 것같이 상처를 입은 매화검존 현우자가 비틀거리며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제길…….’

더 이상 끌어낼 내공도 없었다.

닿지 못했다.

무림에 나온 이후의 첫 패배.

짐조의 무공을 얻은 지금이라면 충분히 해볼 만하다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오산이었다.

검존의 벽은 생각보다 너무나 높았다.

멸절사태를 두고 가늠해 본 백대 고수와 오존의 차이가 이렇게 클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팔괘연환의 내공이 아니었다면 진작에 끝났을 싸움을 꾸역꾸역 끌어온 것이 아닌가.

끝이다 생각했던 소청을 향해 현우자가 물었다.

“자네는 누군가?”

입가에 옅은 선혈을 흘리는 현우자의 눈에는 더 이상 검은빛이 감돌지 않았다.

순간 몸의 긴장이 풀려 버린 소청이 ‘파아’ 하는 숨소리와 함께 주저앉아 버렸다.

 

* * *

 

“사숙!”

연화봉의 떨림이 태극동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을 깨달은 운상자와 화산의 무인들이 홰를 든 채 철문을 열고 쏟아져 들어왔다.

운상자가 급히 뛰어가 부상을 입은 현우자를 부축하고 무릎을 꿇고 있는 소청을 보는 순간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감히!”

노기를 뿜은 그는 불같이 명했다.

“무엇 하는가! 당장 저자를 참회동에 구금하라!”

명을 받은 일대제자들이 흉흉한 기세를 뿜으며 나서는 것을 현우자가 손을 뻗어 막았다.

“사숙?”

운상자가 의아해하자 현우자가 물었다.

“장문인, 이자는 누구요?”

“진소청이라는 인물인데…….”

“진소청이라.”

고개를 끄덕인 현우자가 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화산의 제자 현우가 진 공자에게 큰 은혜를 입었네.”

“…….”

갑작스러운 그의 말에 화산의 무인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무림의 최고 배분을 가진 이들 중 한 명이자 오존의 일인이며 화산의 자존심과 같은 그가 아닌가.

“사, 사숙!”

운상자가 놀란 표정을 짓자 현우자가 온화하게 말했다.

“장문인께선 나를 보고도 모르겠소?”

“예?”

그러고 보니 그의 몸에서 이전에 가득히 느껴지던 마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운상자의 얼굴이 금세 밝아졌고 감격스러움에 눈물이 차올랐다.

“맙소사! 하면!”

“천운이 닿았소. 허허. 진 공자를 서둘러 천주궁으로 뫼십시다. 내 진 소협과 나눌 이야기가 많을 듯하니.”

“아, 알겠습니다.”

화산의 일대 소란이 지나갔다.

소청과 현우자의 기운이 태극동 안에서 충돌하며 생긴 여파에 연화봉이 흔들리면서 천주궁을 받치던 축대가 쓰러져 버렸다.

화산의 상징이기도 한 천주궁이었지만 그 누구도 탓하지 않았다.

그로인해 검존 현우자가 십 년의 면벽을 끝내고 세상에 나왔기 때문이었다.

 

* * *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찻잔을 사이에 두고 옥녀정에 세 사람이 앉았다.

매화검존 현우자, 화산 장문인 운상자, 그리고 소청이었다.

몸의 상처는 둘째 치고 깊은 내상을 입었지만 운상자는 그를 위해 화산의 영단인 ‘자소단(紫召丹)’을 선뜻 내어 주었다.

천고의 영약이라 불리는 소림 대환단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도가 연단술의 정수라 불리는 자소단(紫召丹)으로 인해 입은 내상을 회복함은 물론 내력까지 일부 상승하게 되었다.

“덕분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네. 내 다시 한 번 감사드림세.”

현우자가 온화한 얼굴로 말했다.

“덕분에 죽을 뻔했습니다만. 화산의 경고를 무시하고 태극동에 들었으니 제가 사과를 해야 할 일입니다. 더욱이 자소단까지 내어 주시고…….”

소청이 고개를 숙이자 운상자가 손을 내저었다.

“사과라니, 자소단이 문제겠는가? 오히려 내가 감사하고 싶은 심정이네. 안 그래도 사숙으로 인해 고심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운상자가 현우자의 눈치를 살피며 뒷말을 흐렸다.

“그보다 어찌 된 일인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명망 높으신 검존께서 마기라니요?”

소청의 말에 현우자과 운현자의 얼굴에 착잡함이 떠올랐다.

“음…… 장문인, 자리를 좀 비켜 주겠소? 이제부터는 진소협과 둘이 대화를 나누었으면 하는데.”

“예? 아! 알겠습니다. 응당 그리해야지요.”

듣고 싶었지만 고집하지 않았다.

운상자는 현우자가 제정신으로 돌아온 것만 해도 하늘에 제를 올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럼 밖에서 번을 설 테니 필요하면 부르십시오.”

“양해해 주어 고맙소.”

“별말씀을…….”

운상자가 나가고 잠시 뒤, 현우자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십 년 전쯤 처음 보는 인물이 찾아왔네.”

‘십 년 전…….’

“비무를 청하더군. 거절을 했었네. 하지만 그리하면 연화봉을 무너뜨리고 화산의 제자를 하나씩 죽이겠다 협박하더군.”

현우자가 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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