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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월진천 29화

무료소설 패월진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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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패월진천 29화

28화. 또 다른 변화

 

 

 

 

비가 내린 뒤의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했고 모처럼 먼지가 빗물에 씻겨 내려간 때문인지 공기마저 상쾌했다.

“와아!”

악양루로 향하며 동정호를 바라보던 소혜가 한달음에 뛰어가 감탄사를 내뱉었다.

“자매인데 성격이 많이 다르시네요?”

“예? 아, 예. 좀…….”

소청의 말에 승혜가 얼굴을 살짝 붉혔다.

“진 공자께서도 동생분과 많이 다르시거든요.”

소혜가 소청과 소강을 번갈아 보며 입을 삐죽거렸다.

소강은 동백기름으로 빗은 머리를 옥관과 건으로 고정하고 입고 있는 옷은 칼같이 주름을 잡았다.

그에 반해 소청은 묶지도 않고 아무렇게나 흐트러뜨린 머리칼에 그저 걸쳤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짙은 흑의를 입고 있었다.

더구나 지난밤에 보여 준 그의 모습은 한 마리 야수에 버금갈 정도로 거침없었고 잔인했다.

그의 행동이 어떤 파장을 미칠 것인지 생각하지 않는 듯 무덤덤한 얼굴.

‘차분한 서생과 풀어 놓은 거친 호랑이 한 마리.’

둘을 바라보는 소혜의 느낌이었다.

누가 봐도 형제라 보기 어려웠다.

물론 둘 다 보기 드물게 잘생긴 얼굴이긴 했지만…….

“허! 저 꽁생원 같은 놈과 비교하다니.”

소청이 장난스럽게 웃자 소강은 얼굴을 찡그렸고 소혜는 따라 웃었다.

“근데 소혜 소저는 불가이시면서 사내와 연분을 나누어도 되는 겁니까?”

소청이 의아하게 묻자 승혜가 낮은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소혜뿐 아니라 저도 귀의한 게 아니라 속가입니다. 결혼을 해도 되는…….”

“예?”

소청이 의아해하며 되묻자 갑자기 얼굴이 빨개진 승혜가 어색하게 웃었다.

“예? 아! 악양루네요. 서두르시죠.”

어색하게 웃으며 당황하던 승혜가 한참이나 남은 악양루를 향해 걸음을 바삐 움직였다.

 

악양루(岳陽樓).

‘동정천하수(洞庭天下水), 악양천하루(岳阳天下楼)’라는 시구가 어울릴 정도로 거대한 누대에 오르면 악양의 경치가 한눈에 들어오고 광활한 동정호와 군산도가 눈앞에 펼쳐졌다.

“엄청나네요.”

과거 삶의 주 무대였던 곳이라 소청은 별다른 감흥을 보이지 않았지만, 소강과 소혜뿐 아니라 승혜마저도 성문 앞에 멈춰 올려다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놀랍지 않으세요?”

무덤덤한 소청의 표정에 소강이 물었다.

“그냥 술집이야. 놀랍긴 개뿔. 하암.”

하품을 하며 안으로 들어가는 소청은 그저 피곤하기만 했다.

황보인이나 적호단과의 마찰 따위는 신경조차 쓰이지 않았다.

그는 대회합이니, 정천맹이나 오대 무가니 하는 것은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

소강이 아니었다면 끼어들지도 않았을 싸움이었다.

그에게 지금 중요한 것은 오로지 ‘마천 비고에 대해 알고 있을지 모르는 제갈휘문’을 만나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오주를 떠나 동정호로 오게 된 것이다.

지난밤.

동생과 잠시간의 회포를 푼 소청은 잠든 소강을 두고 은밀히 숙소를 빠져나와 정천맹의 수뇌부가 묵고 있다는 악양루의 천향당으로 숨어들었다.

밤새 잠도 못 자고 샅샅이 뒤져 보았지만 제갈휘문을 찾을 수가 없었다.

‘분명히 어젯밤에 육지개의 모습을 보았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뒤를 밟아 보았지만 그는 배를 타고 동정호를 빠져나갔다.

해가 밝아 오는 통에 아무런 성과도 없이 숙소로 돌아온 그는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망할, 어디에 숨은 거지?’

제갈휘문에 대한 생각으로 한참을 고심하던 그는 소강의 걸음을 따라 회합이 열리는 삼취정(三醉亭) 앞뜰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이미 수많은 후기지수들이 단 앞에 집중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승혜야!”

외곽의 한산한 탁자에 자리를 잡은 소청 일행을 향해 누군가 반가운 목소리로 외치며 다가왔다.

“어머, 언니!”

소혜가 알아보고 손을 흔들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승혜가 합장을 하자 여인이 여전하다는 듯이 그녀를 끌어안았다.

“너는 어째 어릴 때나 지금이나 변하질 않니.”

“그러게 말이에요.”

무표정하기만 한 승혜를 향해 소혜가 핀잔을 주었다.

“그런데 이들은 누구니? 너희 자매가 이렇게 멋진 공자님들이랑 같이 다니다니 의외인데?”

그녀의 말에 소혜가 재빨리 소개를 했다.

“이쪽은 사천 간양 진가의 진소청, 진소강 형제분들이에요.”

“아, 진혼창!”

여인이 소청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알은체를 했다.

“아시네요?”

“알다마다. 이미 소문이 파다한걸! 근데 사천도 모자라 어젯밤에는 황보가의 이무기마저 박살 내 놓았다며?”

그녀가 엄지를 치켜세웠다.

“우와, 정말 소문 빠르네요.”

“당연하지. 지금 악양루가 그 이야기로 난리야. 삼단의 대장들과 장로님들이 그의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어. 그리고 대부분은 진 공자의 행동에 몰래 박수를 보내고 있거든.”

“박수요?”

“그럼, 무공에 가문을 믿고 못된 짓을 좀 많이 했었니?”

그러곤 소청을 향해 눈을 찡긋거렸다.

“그래도 심했어요. 일 조장 남궁문이 이를 갈고 있던데? 아마 적호단이 가만있지는 않을 거예요. 오대 무가도 마찬가지고.”

“그러거나 말거나…….”

주의를 주는 듯한 말이었지만 신경조차 쓰지 않는 소청의 말투에 그녀가 피식 웃고는 소강을 가리켰다.

“그럼 이쪽이 사천잠룡?”

“사천잠룡요?”

“그래. 악표를 이겼다며? 그것도 창술로.”

“와 진짜. 대단하다 정말, 얼마나 지났다고.”

“모르는 게 이상하지. 지금 다들 그 이야기뿐이거든. 이름하여 사천이룡!”

“사천이룡? 푸흡! 하여간 이름 짓기 좋아한다니까.”

“절강쌍미나 사천이룡이나. 그런데 너희들, 나는 소개 안 해 줄 거야?”

“아! 미안해요.”

소혜가 혀를 쏙 내밀고는 그녀를 소개했다.

“이분은 정천맹 삼단 중 하나인 황봉단(黃鳳團)의 일 조장 모용연화 언니예요. 일명 황봉고화(黃鳳孤花).”

“이게!”

모용연화가 웃으면서 소혜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황봉고화란 ‘황봉단의 외로운 꽃’이라는 뜻으로 스물이 넘도록 남자한 번 못 사귀어 본 그녀를 지인들이 놀릴 때 쓰는 말이었다.

“진소청입니다.”

“예. 저는 진소강입니다.”

“반가워요. 느껴지죠? 두 분 이름이 나오자마자 주위의 이목이 집중되잖아요. 두 분 소협께 다들 기대가 커요.”

그녀의 말처럼 사천이룡이라는 말에 모두가 그들을 향해 시선을 두고 수군거렸다.

물론 다른 이들과는 달리 적호단의 시선은 날카롭기 그지없었고 한기를 풀풀 날리고 있었다.

 

일부, 삼단, 이각, 일선.

원로원을 제외한 정천맹 예하의 조직들을 부르는 이름이었다.

일부(一府).

맹주와 각 장로들을 호위하는 호위부.

삼단(三團).

맹의 주요 무력 단체인 청룡단, 적호단, 황봉단.

이각(二閣).

의원들의 집합체인 백의각과 군사부라 불리는 청초각이었다.

그리고 일선(一線).

개방의 인물들이 대다수 포함된 곳으로 일명 ‘흑선’이라 불리며 각종 정보 수집과 연락을 담당한다고 했다.

‘흑선. 제갈휘문의 수족들.’

소청은 전생의 기억에서 정천맹의 조직을 떠올렸다.

‘아마도 그 육지개라는 놈도 흑선 소속이겠지.’

소청은 오주에서 만났던 육지개를 떠올렸다.

“승혜는 구파니까 어쩔 수 없이 청룡단에 들어가겠지만 소혜 너는 황봉단으로 올 거지?”

“전 소강 공자가 가는 데로 따라갈 건데요?”

“응?”

확정 짓듯 말한 모용연화가 소강을 보며 눈을 끔벅이다가 소혜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이게 진짜! 어디 언니 앞에서 염장질을!”

“아! 왜 때려! 시든 꽃 주제에!”

“뭘 시들어! 아직 한창인데!”

둘의 모습에 피식 웃은 소강이 소청을 향해 슬쩍 물었다.

“형님, 혹시 마음에 둔 곳이라도 있으십니까?”

“왜? 따라오려고?”

“저야 뭐, 하하하.”

잠시 제갈휘문에 대한 생각을 접어 둔 소청은 소강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반드시 따라올 녀석이었다.

아마 지옥으로 간다고 해도 따라올 게 틀림이 없었다.

‘하지만 내가 어딘가에 소속될 수는 없다. 마천 비고를 찾아야 하는데 제약이 될 수도 있어. 하지만 이 녀석이라면…….’

후에 세가를 운영하자면 삼단 중 하나와 연을 맺는 것이 좋았다.

삼단에 속한 무인들은 대부분 후에 자파로 돌아가 핵심 인물이 되었으니까.

‘그래. 소강이 주인이 되어야 할 진가다.’

소청은 모용연화와 장난을 치고 있는 소혜를 슬쩍 바라보았다.

‘상리와 무리를 병행하는 거대 세가보다는 절강을 주름잡는 은가(殷家)상단과 같은 곳과 연을 맺는 것이 더 유리하다. 만약 소강이 저 여인과 혼인이라도 한다면…….’

소청의 얼굴에 사악한 미소가 생겼다.

‘그래, 어차피 관계를 맺을 것이라면 구파가 주류인 청룡이 좋겠지. 이미 오대 무가 쪽과는 틀어져서 다시 호감을 얻긴 힘들 테고……. 고지식한 저 녀석 성격상 그쪽이 더 맞겠지.’

결정은 내려졌다.

“소강.”

“예?”

“만약 간다면 청룡단으로 갔으면 좋겠다.”

“예! 알겠습니다.”

뭐가 이리 간단하단 말인가?

하지만 그 대답에 승혜는 아무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소강에게 그리 말했다면 소청도 분명 청룡단을 선택한 것이리라 생각했다.

“그럼 나도 청룡단!”

갑자기 소혜까지 결정을 해 버렸다.

“뭐? 야!”

다급해진 모용연화가 울상이 되었다.

승혜는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소혜는 반드시 황봉단으로 데려와야 했다.

그녀의 뒷배에는 오존의 일인인 검후 옥선하가 있었기 때문이다.

“야, 잘 생각해! 보타암은 대대로 우리 황봉단 소속이었다고!”

“아, 됐어요! 다 시든 꽃이랑 함께 다니면 나도 시들어! 그 여자들뿐인 곳에 뭔 재미로. 흥!”

“이게 진짜! 어휴!”

모용연화가 답답해하며 제 가슴을 치는데 멀리서 징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호법부의 무인들과 정천맹을 이끌어 가는 장로들이 모습을 드러내었고 그들 중앙으로 현 정천맹주 방유현이 모습을 드러냈다.

“반갑습니다. 저는 방유현입니다.”

모두가 방유현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없어?’

제갈휘문이 보이지 않았다.

소청이 잠을 못 자 충혈된 눈으로 수뇌부를 살피는 사이, 방유현이 짧게 인사를 끝내고 물러난 자리를 차기 정천맹주인 남궁천세가 채웠다.

“어?”

순간 소청은 사고가 정지해 버린 듯이 남궁천세를 응시했다.

‘어떻게 된 거지? 남궁천세라니?’

그가 아니었다.

방유현의 뒤를 이은 맹주는 남궁천세가 아니라 화산의 매화검존 현우자(炫宇子)여야 했다.

그런데 남궁천세라니?

또다시 무언가 달라졌다.

그리고 달라진 무언가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어야 했다.

모자겸과 당태위의 변화에는 자신이 있었고 마천이 달라진 이유는 아직 찾지 못했다.

그 이유를 찾기 위해 제갈휘문을 만나러 온 길이었다.

그리고 남궁천세는…….

소청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왠지 껄끄러운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유가 있을 거야. 필시 이유가 있을 거다.’

소청이 굳은 표정을 짓고 있자 의아하게 생각한 승혜가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어디 안 좋은 곳이라도?”

“예? 아니요. 별것 아닙니다. 그런데 남궁 대협께서 차기 맹주로 추대된 모양이죠?”

“모르셨습니까?”

의외라는 표정이었다.

“하여간 형님은 무림사에 관심이 없으시다니까요. 승혜 소저도 아시죠? 당가에 갔을 때도 사천에 있는 후기지수들의 이름도 몰랐잖아요.”

“아.”

그러고 보니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 승혜가 고개를 주억거리고 상세하게 설명했다.

“남궁 가주께서 이 년 전쯤에 벽을 넘으셨습니다. 오랫동안 백대 고수에 머무르신 분이라 스스로도 포기하고 있었다고 하시더군요. 매화검존께서 십년면벽에 드시고 나서 차기 맹주의 위가 불안했는데 실로 무림의 홍복이라 해야겠지요.”

“매화검존이라면 현우자, 그분을 말하는 겁니까?”

“허, 어떻게 또 그분은 아시나 보네요?”

소강이 장난을 치듯이 놀란 표정을 지었고 승혜가 대답했다.

“예, 맞습니다. 매화검의 정수를 깨달으신 그분이 검을 꺾고 면벽에 드실 줄은 아무도 생각 못 했습니다.”

“…….”

믿을 수가 없었다.

현우자가 면벽에 들다니…….

더욱더 제갈휘문을 만나야 할 이유가 늘어만 갔다.

왠지 그라면 자신의 답답한 마음을 풀어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그가 없다면 대회합 따위는 자신이 신경 쓸 이유가 없었다.

그건 그저 그들만의 잔치일 뿐이었다.

“휴우…….”

소청이 일어나자 소강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디 가세요?”

“밤잠을 설쳤는지 몸이 좋지 않아. 먼저 들어갈 테니 여기 있어. 청룡단 사람들과 안면도 좀 트고. 알겠지?”

“예? 예.”

볼을 부풀린 소강과 무언가 아쉬워하는 표정의 승혜를 뒤로한 소청은 복잡해진 마음으로 용소 객점으로 돌아왔다.

 

“대인! 대인!”

소청이 돌아오자마자 대삼이 헐레벌떡 뛰어와 맞이했다.

“무슨 일이야?”

“이걸.”

대삼이 내민 것은 작은 쪽지였다.

“이게 뭐니?”

“모르겠어요. 어떤 손님이 전해 달라고 하시고는 나가셨어요.”

“손님?”

소청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쪽지를 펼쳤다.

 

@[군산 반죽원(斑竹院) 술시 말]

 

장소와 시간이 적힌 쪽지.

글귀를 보는 순간 소청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제갈휘문.’

보낸 이가 누구인지 적혀 있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고맙다.”

소청의 대삼의 머리를 쓸어 주며 은전 하나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대인!”

대삼이 허리를 직각으로 꺾으며 인사했다.

“나와 함께 온 일행들을 기억하지?”

“아, 동생분과 그 아리따운 소저님들요?”

“그래. 혹, 그들이 나를 찾으면 벌써 떠났다고 전하거라. 동생에게는 성년식 전까진 집으로 돌아갈 테니 기다리라 하고.”

“알겠습니다. 다른 말씀은 더 없으시고요?”

“그래.”

소청은 웃으며 문을 닫았고 창을 잡고 검은 면사가 달린 방립으로 얼굴을 덮었다.

“흐흐흐, 제갈휘문.”

소청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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