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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월진천 23화

무료소설 패월진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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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패월진천 23화

22화. 마천 비고 (3)

 

 

 

 

“어!”

아무것도 없었다.

무언가 숨겨져 있을 것이라 최대한 조심스럽게 회무진을 빠져나온 그의 눈에 보인 것은 드넓은 평지뿐이었다.

높디높았던 성곽도 없었고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던 전각도 보이지 않았다.

“이게…….”

잘못 찾아왔을 리도 없었다.

오랫동안 비고를 노려 온 자신이었기에 그 위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눈을 감고도 작은 전각의 위치까지 그려 낼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원래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았고 황량하게 자리 잡은 평지뿐이었다.

“말도 안 돼. 이 거대한 곳이 하늘로 솟구친 것도 아니고 땅으로 꺼진 것도 아닐 텐데.”

소청은 멍한 눈으로 바라보다 과거의 기억을 더듬었다.

과거 그가 수없이 침투했던 방법대로 비고가 있었던 곳을 찾았다.

“여기 분명 성곽이 있었다. 일 장 두께의 성곽. 그리고 십 장이 떨어진 곳에 첫 번째 전각 마영전.”

소청은 눈을 감고 거리 계산을 하며 천천히 걸었다.

“여기서 우측으로 삼십 보, 골목을 지나면 측마전이 나온다. 그다음은…….”

세부적으로 발자국 수를 세고 거리를 가늠해 다가간 곳에서 눈을 뜬 소청은 복면을 찢어 버렸다.

“망할! 어째서! 어째서 아무것도 없는 거지?”

그가 선 곳에 대전각이 있어야 했다.

마천의 중심이라 불리는 천마전이 그곳에 있어야만 했다.

허탈했다.

갑자기 삶의 목적을 잃어버린 것만 같았다.

환생을 경험한 이후 오로지 비고를 생각하며 보낸 시간이 팔 년이었다.

그 시간 자체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느낌이었고 과거의 모든 기억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머리가 멍해진 소청은 허탈한 표정으로 주저앉았다.

“이럴 리가 없어. 십만대산에서 천 년 동안이나 자리 잡고 있었던 마천이다. 그런데…….”

손에 만져지는 것은 황량한 흙뿐이었다.

“아니야. 원래 없었다면 회무진을 만들어 놓을 리가 없지. 분명 내가 알지 못하는 이유가 있는 거야.”

소청은 오래전 드나들었던 것처럼 대전각을 머릿속에 그리고 다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비고가 시작되었던 입구를 향해 기억에 따라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허사였다.

그가 도착한 곳에도 아무것도 없었다.

“이런 씨발!”

누군가 있다면 멱살을 틀어잡고 하루 종일 욕이라도 해 주고 싶었다.

치밀어 오른 분기를 삭이지 못하고 털썩 주저앉아 땅을 짚은 그의 손에 묘한 이질감이 느껴졌다.

“어?”

이상함을 느낀 소청은 갑자기 일어나 창대로 땅을 찔렀다.

사방 십여 장의 공간을 두고 몇 번이나 찔러 넣었던 그의 얼굴에 묘한 감상이 생겼다.

“달라?”

창대가 꽂히는 느낌이 달랐다.

아무것도 없었던 땅과 건물이 있었던 곳의 토질의 다져짐이 다르게 느껴졌다.

그리고.

푸욱!

비고의 입구가 있었던 곳에 창을 찔렀을 때.

“이게 뭐지?”

창이 힘없이 깊숙하게 박혔다.

소청은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이곳저곳에 창대를 꽂아 넣고 지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눈앞에 비고로 향하는 입구의 모양이 그려졌다.

“하!”

묘한 표정을 떠올린 소청이 입구가 있었을 것 같은 그곳의 땅을 파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땅속에서 실마리와도 같은 흔적을 찾아내었다.

흙 속에 섞여 있는 흰색 가루와 검게 그을린 흙.

소청은 흰색 가루를 살짝 찍어 혀에 가져다 대었다.

“초석?”

초석은 화약을 만드는 재료인 염초의 주성분이었다.

그리고 흙이 검게 그을렸다면?

“요 새끼들 봐라?”

소청의 입가에 비릿한 웃음이 지어졌다.

분명 이곳에 비고가 있었던 게 틀림없었다.

폭약으로 지하의 공간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매장해 버린 게 분명했다.

소청이 가늘게 뜬 눈으로 주위를 바라보았다.

“마천은 이곳에 있었어.”

분노는 사라지고 그의 눈동자에 희열과 생기가 떠올랐다.

하지만 문제는 과거와 달라졌다는 것이다.

앞으로 삼십 년 후, 마천의 중원 정벌이 시작되었고 정사의 무림은 그들의 발에 짓밟혔다.

오존과 백대 고수들을 위시한 정사의 연합군은 십만대산을 뿌리째 뒤집어 놓았다.

그때까지는 마천이 이곳에 있어야했다.

그런데.

“마천이 통째로 옮겨졌어. 어째서? 도대체 어째서? 과거와 무엇이 달라졌기에?”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아직 어딘가에 분명히 마천이 있다는 것이었고 비고가 여전히 존재할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소청, 아니 막야로서의 도전이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크크크, 그래. 달라질 수도 있지. 그럴 수도 있어. 사람이 환생하는 판에 과거가 달라진 게 뭐가 대수야.”

오기가 생겼다.

신투였던 그때처럼 승부욕이 들끓기 시작했다.

어딘가에 분명히 있을 비고, 훔치지 못했고 다가서지 못했다.

무언가를 훔친다는 것은 그가 살아가는 의미였다.

어려울수록 더욱더 그의 호기심과 흥미를 자극해 왔다.

피부에 소름이 돋아 오르고 심장이 미칠 듯이 뛰어 올랐다.

“그래, 숨어라. 꽁꽁 숨겨 놓고 있어라. 하지만, 달라진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 있다면 내가 반드시 찾겠다. 전 중원, 아니 세외를 뒤져서라도 세상에 남아 있다면 반드시 찾아서 가지겠다. 으하하하하!”

소청이 앙천대소를 터트리곤 마천 십봉이라 불린 그곳을 떠났다.

 

* * *

 

“예? 무슨 소리십니까? 저 산에 사람이라니요?”

은하촌 촌장 노인이 겁에 질린 모습으로 엎드려 말했다.

하루 전 절벽을 날아가는 소청을 산신쯤으로 생각한 그였기에 한 행동이었다.

‘몰라? 분명 교류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마천의 흔적을 찾아낸 소청은 그들의 꼬리를 잡기 위해 은하촌의 촌장을 찾았다.

‘그렇군. 회무진이 깔려 있었으니 일반인들은 마천에는 접근도 하지 못했겠지. 그들이 일부러 자신의 정체를 밝혔을 리도 없고 모습을 드러냈을 리도 없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소청이 재차 물었다.

“혹시 지진이 있거나 하지 않았습니까?”

“지진요?”

촌장 노인이 한참이나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제 손을 탁 하고 쳤다.

“맞습니다. 있었지요. 한 십 년 전쯤인가? 대산이 온통 뒤흔들린 적이 있었지요. 그때 집이 수십 채나 무너졌습니다.”

‘찾았다! 이 새끼들. 십 년 전에 이사했구나. 흐흐흐.’

“그러고 보니 막쇠 아비가 그때 사냥을 갔다가 뭘 봤다고 하던데…….”

“막쇠 아비요?”

“예. 사냥으로 먹고사는 놈인데 그 산에 들어갔다가 무슨 안개에 들어가서 길을 잃고는 며칠 만에 병신이 되어 돌아왔지요. 그 후로는 아무도 못 들어가게 하고 있습니다요.”

“어디 있습니까? 그 사람!”

“저기 저쪽에 감나무 있는 집이 그놈 집입니다. 몸도 성치 않은 놈이 안개에서 뭘 봤는지 실성을 해서는 헛소리만 지껄입지요. 뭐 사람이 날아다닌다고, 아! 그러고 보니, 산신님처럼…….”

촌장이 고개를 들었을 때는 이미 소청은 그 자리에 없었다.

“어헙!”

방금 전까지 대화를 나누던 사람이 사라지자 촌장은 다시 엎드려 자신이 지은 죄를 빌기 시작했다.

 

막쇠 아비의 집에 도착한 소청은 주인에게 허락도 받지 않고 문을 열어젖혔다.

“뉘요?”

힘없는 쇳소리가 들려왔다.

“막쇠 아비요?”

“예? 예.”

방 안으로 들어가자 한 사내가 반쯤 몸을 일으킨 채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몸을 살펴보니 몸이 엉망이었다.

부러지고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굳어 버린 것인지 팔다리가 기형적으로 변해 있었다.

‘쯧, 너무 오래돼서 고칠 수 없겠군.’

소청이 눈을 찡그렸다.

“십 년 전 저 산의 안개에서 혹시 무엇을 보았소?”

소청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십 년 전…….”

막쇠 아비가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리며 성을 내었다.

“뭘 물어보려는 거요? 됐소! 또 미친 사람 취급하려고! 나가시오! 나가!”

아마도 맺힌 것이 많았던 모양이었다.

소청은 그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탁자에 놓인 병의 물을 바닥에 부었다.

“뭐 하는 게요!”

막쇠 아비가 화를 내건 말건 소청이 손을 꺼내 힘을 주자 차가운 한기가 스미더니 바닥에 쏟아졌던 물이 하얗게 얼어붙었다.

“허헉!”

빙긋이 웃은 소청이 또다시 기운을 바꾸어 열기를 내뿜자 얼음이 녹고 펄펄 끓어올라 기체로 변했다.

“다, 당신! 그들과 같은!”

‘봤군. 흐흐. 마천의 무인들을 본거야.’

하지만 그가 가진 정보는 얼마 되지 않았다.

우연찮게 안개를 빠져나간 그는 바삐 움직이는 이들을 보았고 온몸이 바스러지는 충격을 받고 정신을 잃었다.

깨었을 때는 마을 입구였다고 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한 건 아니었다.

마천이 이곳에 있었다는 사실은 확신으로 변했다.

그리고 그들이 이곳을 떠난 시기가 십 년 전, 자신이 환생을 했던 시기보다 이 년이 빠른 시간이었다.

그렇다는 것은 분명히 무림의 누군가는 마천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고 그만한 인원이 움직였다면 무수히 많은 정보 집단의 눈에 걸렸을 것이다.

이제 그들의 꼬리를 잡아 그 뒤만 쫓으면 될 일이었다.

‘그래. 차근차근 가자. 차근차근 인근에 있는 정보 단체부터 하나씩 훑어보자. 흐흐흐.’

소청은 그렇게 은하촌을 떠났다.

은하촌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더 이상 없었다.

그들의 흔적을 가장 빨리 알 수 있는 방법은 인근에 있는 정보 조직에 의뢰하는 것이었다.

 

* * *

 

은하촌을 떠나온 소청은 검은 피풍의와 면사가 드리워진 방립을 걸치고 십만대산에서 조금 떨어진 오주(梧州)에 도착했다.

익숙한 발걸음으로 성 밖으로 나간 그는 인근에서 제법 큰 관제묘하나를 찾아갔다.

오랫동안 관리하지 않은 때문인지 사당은 폐가나 다름없었고 걸인들의 거처로 사용되고 있었지만 소청은 그곳의 정체를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아무렇게나 뒹굴고 있는 걸인들을 지나 관제묘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힘깨나 쓸 것으로 보이는 거지 하나가 그의 앞을 막았다.

“어이, 여긴 함부로 들어올 곳이 아니야.”

제멋대로 기워 붙인 옷에 시커멓게 변한 맨발이었지만 기도가 예사롭지 않았다.

소청은 품에서 전낭을 꺼내 누런 황금을 보였다.

“단두를 만나러 왔다.”

“…….”

단두(團頭)라는 용어를 안다는 것은 무림에 속한 인물이라는 뜻이었다.

“의뢰이십니까요?”

좀 전의 기도는 온데간데없어진 걸인이 두 손을 모으고 허리를 굽힌 채 비굴하게 웃었다.

소청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공손하게 거적을 걷어 내며 안쪽으로 안내했다.

관제묘의 안쪽에는 수십 명의 걸인들이 작은 쪽지들을 종류별로 분류하고 있었고, 한쪽으로 모인 것들 중 일부를 추려 상석에 대충 기대어 앉은 노개에게 전했다.

‘중원 제일의 정보 조직, 개방.’

소청은 그들이 개방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정천맹에 소속된 구파와 비등한 힘을 가진 무림 단체였지만 돈이 된다면 어떤 정보라도 조사해서 갖다 바치는 걸인들의 조직.

그곳이 바로 개방이었다.

그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 방도를 거느리고 중원의 모든 곳의 정보를 주무르는 그들은 각성에 지도자급 걸개를 두고 단두라 불렀다.

부급(府級), 현급(縣級), 향급(鄕級)의 도시 규모에 따라 배치된 단두는 각 지역의 모든 정보를 총괄했다.

오주와 같은 성급을 맡고 있는 단두일 경우에는 개방 장로의 아래 단계인 오결 이상의 걸개였고, 그가 부리는 거지의 수는 최소 천 명을 상회했다.

 

“단두 어른.”

“응?”

“지급(地級) 손님입니다.”

오주의 단두 육지개는 ‘지급’이라는 말에 깜짝 놀라며 일어났다.

돈을 들고 오는 규모에 따라 정해지는 손님의 등급.

지급이라면 최소 황금 한 냥 이상은 들고 왔다는 말이었다.

“이놈아! 귀한 분을! 어서 상석으로 모셔라!”

육지개가 자신이 있던 자리에서 비켜서자 함께 온 걸인이 소청을 자리로 안내했다.

“야! 다 나가!”

호통치며 발길질을 하자 수많은 쪽지를 취합하던 걸개들이 관제묘를 우르르 빠져나갔다.

“저, 무엇을 알고 싶으신지.”

모두 나간 후에 육지개가 무릎을 꿇고 앉아서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

소청은 그것이 장삿속임을 알고 있었다.

오결개는 무림에서도 제법 알아주는 고수였기에 그 자부심이 어마어마했다.

돈을 벌어야 했기에 저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위협이 된다면 저 비굴한 웃음이 칼이 되어 돌아올 것이었다.

“마천.”

“예?”

순간 육지개의 눈매가 날카롭게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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