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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월진천 17화

무료소설 패월진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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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패월진천 17화

16화. 당가 오금쇄(五禁鎖)

 

 

 

 

서슬 퍼런 기세에 녹의단주 당호가 나서서 말했다.

“목가, 금가, 안가, 백가. 네 곳이 진가와 거래를 텄습니다.”

“뭐라? 이런 버러지 같은 것들이 그동안 돌보아 준 은혜도 모르고!”

당구독이 싸늘하게 말했다.

사실 당가 예하에 불과한 그들이 진가에 붙는다 해서 크게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다섯 가문 중 가장 큰 목가 검장이라고 해 봐야 방계 중 하나인 당가 철방의 보조 역할에 불과했다.

진가가 근래 성장을 했다고는 하지만 다섯 가문이 합한 무력이라고 해 봐야 녹의단이 하루가 못 걸려 쓸어버릴 만큼 약했다.

하지만 문제는 당가의 자존심이었다.

그들은 지금 오랜 세월 이어져 온 당가의 지배력에 도전을 한 것이고 자존심에 작은 상처를 내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 뭐라고?”

당구독의 물음에 대답한 것은 사천의 자경대를 운영하고 있는 당가 녹혈방의 방주 당추렴이었다.

“진가가 간양에서 치안대를 조직했습니다.”

“치안대?”

“예. 얼마 전 진무월창이라는 조직의 무인들과 녹혈방 간양 지부의 무인 간에 마찰이 있었습니다.”

“진무월창? 하! 그래서?”

당구독의 진노가 더욱 거세지고 있었다.

“일단은 그냥 두었습니다. 간양 땅이기도 하고 간양의 현령이 중재하는 바람에…….”

“이런 멍청한 놈 같으니! 그래서 그놈들을 그냥 두었다?”

뿌드득.

당구독의 이가 부러질 듯이 갈리자 당추렴이 찔끔하며 목을 움츠렸다.

“멍청한 놈! 네놈이 뭔데 스스로 당가의 명예를 실추시킨단 말이냐!”

“죄, 죄송합니다.”

“닥쳐라! 죄를 청할 생각이라면 그러지 말았어야지. 녹의단은 지금 즉시 녹혈방주를 구금하라!”

“예! 가주!”

녹의단 무인들이 당추렴의 양팔을 잡았다.

“당추렴을 지하동에 한 달간 구금하고 물 한 모금도 주지 마라!”

“존명!”

명이 떨어지자마자 당추렴이 끌려 나갔다.

“감히 나의, 당가의 허락도 없이 사천에서 자체적으로 치안대를 조직해? 내버려 둘까 했더니 어린놈이 너무 겁 없이 설치는군. 이 당가가 사천에서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지 알려 줘야겠어.”

당구독은 독이 잔뜩 오른 뱀처럼 차가운 분노를 흘려 내고 있었다.

“비선당주!”

“예. 가주!”

짧은 부름에 당구창이 서둘러 앞으로 나왔다.

“당가의 힘이 미치는 사천의 모든 곳에 명을 전하라. 당가가 오금쇄(五禁鎖)를 발동한다고!”

“존명!”

그때 만독전주 당욱이 고개를 내저으며 나섰다.

“안 됩니다, 가주! 오금쇄라니요!”

“…….”

당구독의 눈빛에 신경질이 묻어났다.

“왜요?”

“아시다시피 새로이 나타난 독우를 구하느라 황금 스무 관을 추가로 지출하였습니다.”

그것은 삼양전에 모인 당가의 수뇌들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만독해’를 익히기 위해 폐관에 든 당태위가 계속해서 답보 상태였던 터였다.

애초에 그의 독공을 오 성이나 익히게 만든 독우가 아니던가.

하나만 더 있다면 십 성에 이를지 모를 그것이었기에 당구독의 아쉬움은 너무나 컸다.

그 와중에 독우가 또 나타났다.

문제는 가격이었다.

황금 스무 관이라니, 당가타의 일 년 총 예산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암시장 자체를 완전히 뒤집어 놓고 싶었다.

하지만 급한 것은 당태위의 독공이었다.

“미래의 독왕입니다.”

당구독이 당욱을 노려보았다.

그는 만독전의 전주이면서 자신의 숙부였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함부로 할 수는 없었다.

“운남과의 거래가 물 건너가 버린 이상 믿을 것은 태위뿐입니다. 모르십니까? 만독해를 극성까지 익힌다면 당가는 단번에 오존자를 보유한 가문이 되는 겁니다.”

“압니다. 하지만 오금쇄는 안 됩니다.”

당욱이 고개를 내저으며 반대했다.

“태위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음을 압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에 오금쇄를 펼친다면 가문의 재정이 더욱 악화됩니다.”

“그래서요?”

“벌써 방계의 곳곳에서 불만이 많습니다. 근자에 올린 세금이 과하다고요. 일부는 세금을 내지 못해서 뇌동에 잡혀 왔다 들었습니다.”

“계속하시죠.”

“가주, 오금쇄를 재고해 주시기를…….”

터억!

“컥, 커컥!”

순간 태사의에 앉아 있던 당구독의 모습이 당욱의 목울대를 잡아채며 나타나자 모두가 놀란 표정으로 엎드렸다.

“숙부…… 숙부께선 당가의 가주인 제 결정이 우스워 보이는 모양입니다? 이것은 의논이 아니라 명령입니다.”

“죄, 죄송…….”

얼굴을 가까이 당겨 잡아먹을 듯이 눈을 부라렸다.

“잊으신 모양인데, 당가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기어오르는 것들을 용서해 본 적이 없습니다. 전의 가주님도 그 전대의 가주님도요.”

당구독이 손을 털자 바닥에 주저앉은 당욱이 힘겹게 기침하며 목을 어루만졌다.

“비선당주! 오금쇄를 발동하라.”

“존명!”

비선당주 당구창이 당욱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밖으로 나갔다.

“녹의단주!”

“말씀하십시오.”

“이번 결정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자가 있다면 그 어떤 누구도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

“존명!”

“녹혈단 부단주!”

“예!”

“지금부터 가문과 연결된 흑린(黑鱗)에게 전해라.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자금을 끌어모아 오라고…….”

“예? 하지만 그리되면 관에서 두고 보지만은 않을 텐데…….”

“걱정할 것 없다. 압박에 쪼들린 놈들이 운남을 통째로 가져다 바쳐 줄 테니까.”

 

* * *

 

운남과의 거래가 결정되고 진가는 연일 바쁘게 돌아갔다.

거래하기로 한 각 가문에서는 총관을 파견해 연락 대책을 강구했다.

진가는 그 나름대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표사의 수가 부족하다 보니 무관의 무인들을 임시로 표사로 임명해 운남으로 출발시켰고 사천 전역에 방을 붙여 긴급히 표사를 모집했다.

그사이 소청은 새로 만들어 준 창 단월을 들고 수련하는 소강의 수련을 돌보고 있었다.

사도련에서 훔쳐 온 만년설삼을 먹은 소강의 내공은 어마어마한 공능을 발휘했다.

처음에는 갑자기 생긴 내공에 적응이 되지 않는 듯 담벼락을 죄다 날려 먹더니 제법 기운을 다룰 줄 알게 되었다.

‘녀석, 팔괘연환이 많이 자연스러워졌구나.’

소청은 창대를 통해 물 흐르듯 뻗어 나오는 강맹한 기운에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관에 이어 표국 확장까지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 녀석이 내 빈자리를 채워 줄 거야. 문제는 실전인데…….’

동생의 수련을 한참 동안 보고 있던 소청이 아무 생각 없이 고개를 돌렸다가 소강의 최근 성취에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는 모자겸과 눈이 마주쳤다.

“아!”

불현듯 떠오른 생각에 얼굴이 밝아졌다.

‘딱 있네, 적당한 상대가. 내공도 비슷하고.’

소청이 모자겸을 불렀다.

“대족장.”

“말씀하십시오, 은공.”

“바쁜 일 없으시죠?”

“예. 뭐 도와 드릴 일이라도?”

“다른 건 아니고 대련 좀 부탁드립니다.”

“예? 대련이라 하시면?”

모자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소청의 실력은 자신이 감히 바라볼 수 없는 위치에 있었다.

대련을 한다 해도 그다지 도움이 안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자 소청이 손가락으로 소강을 가리켰다.

“저기…….”

“아!”

모자겸이 그제야 알았다는 듯이 단숨에 연무장으로 걸어갔다.

그 역시 바라고 있던 참이었다.

너무 큰 실력 차가 나는 소청과는 아무리 비무를 해도 도움이 되지 않겠지만 소강이라면 충분했다.

더욱이 소청이 쓰는 창법을 경험해 볼 수 있는 진귀한 경험이었다.

“그럼 모쪼록 부탁드립니다. 소강, 너도 최대한 살기는 쓰지 말고.”

“예!”

연무장에 선 둘의 대련이 시작되었다.

수십 개의 부족을 통일한 대족장인 그에 비하면 아직 한참 모자란 실력이었지만 몇 수를 나누어 본 모자겸이 적절한 수준으로 조절하며 상대하자 소강이 조금씩 적응하기 시작했다.

모자겸의 변칙적인 공격에도 차츰 능숙하게 반격하기 시작한 소강은 절대고수까지는 아니어도 일전에 비무를 한 당태위 정도는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또한 생소한 창법을 보게 된 모자겸도 무척이나 즐거운 얼굴이었다.

“이런…….”

문제는 너무 신이 나 버린 둘이 주변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담벼락이 무너지는 것도 모자라 팔괘연환의 공력을 펼치는 소강으로 인해 소진각이 뒤흔들렸다.

“이거 대연무장으로 옮겨서 해야겠는데?”

갑작스러운 지진에 왕칠과 소진각의 일꾼들이 놀란 얼굴로 튀어나오자 소청이 어색하게 웃었다.

 

대연무장으로 옮겨 간 둘의 대련을 진무월창의 무인들과 함께 바라보던 소청의 눈에 헐레벌떡 뛰어들어 오는 목하동이 보였다.

“어? 목 가주님이 웬일이시지?”

그는 소청을 보지도 않고 가주전으로 뛰어들어 갔다.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는 건가?”

의아하게 생각한 소청이 그를 뒤따랐다.

“진 가주! 진 가주!”

“아, 목 가주님. 무슨 일이기에 그리…….”

“다, 당가 오금쇄가 발동되었소.”

“……!”

진가신이 그만 들고 있던 서류 뭉치를 떨어트리고 말았다.

“오금쇄라니요? 전시 상황도 아니고 위기 상황도 아닌데 어찌 오금쇄가 발동된단 말입니까?”

“모르겠습니다.”

‘오금쇄? 그게 뭐지?’

막 가주전으로 들어서던 소청이 문밖으로 들리는 소리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들어가 진가신과 목하동에게 인사를 했다.

처음 들어 보는 것이었다.

“가문에 철광의 거래가 중단되어 풀무가 멈췄소. 해서 알아봤더니 당가에서 오금쇄를 발동했다 하더이다.”

목하동은 하늘이 무너진 듯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뿐만이 아니오. 금가, 백가, 안가. 모두가 직접적인 피해를 보고 있소.”

“으음…….”

진가신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각오하고 있었던 일이었다.

하지만 진가 하나일 때와 나머지 가문이 함께 있을 때는 달랐다.

“이 일을 어찌한단 말이오. 운남에서 철광석이 오려면 한두 달은 걸릴 것이고, 지금 당장은 몰라도 지속되면 그 타격은…….”

목하동의 얼굴은 점차 사색이 되어 갔다.

“일단 알겠습니다. 제가 대책을 강구해 보겠습니다. 잠시 생각을 정리할 동안 돌아가 계십시오.”

진가신이 부탁에도 목하동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지 몇 번이고 돌아보다 말에 올랐다.

“아버님, 오금쇄가 무엇입니까?”

“음…….”

진가신이 침통해진 표정으로 말했다.

“오금쇄는 당가가 위기 상황에 이르렀을 때 힘을 집중하기 위해 발동시키는 안정책이다.”

“위기 상황의 안정책? 한데 어찌 그것이 문제가 됩니까?”

“그건…….”

진가신이 설명하려던 때 진가성이 뛰어왔다.

“가주, 큰일 났습니다.”

“뭔가?”

“진무월창의 무인들이 당가로 잡혀갔습니다.”

“뭣이! 그게 무슨 소리냐?”

“얼마 전부터 간양에 나타난 도적 떼를 소탕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가 당가의 녹혈단과 부딪친 모양입니다.”

“아니 그건 지난번에도 있었던 일이지 않나?”

“예. 하지만 이번엔 간양 현청에서 중재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당가의 요청이 있었는지 재차 청원해도 묵묵부답이었습니다.”

“음.”

진가신의 표정은 더욱 심각하게 일그러졌다.

“이것도 오금쇄 때문입니까?”

“그래. 아마도 관이 움직이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사천에서 당가의 영향력은 일개 현령이 버틸 수 있는 힘이 아니지. 그나저나 큰일이구나. 진무월창의 아이들이 꽤나 고초를 치를 것인데…….”

 

그날부터 각지에서 피해가 속출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진가를 비롯한 다섯 세가뿐만 아니라 사천 전역에 공통적으로 발생하기 시작했다.

당가가 사천에 뻗어져 있던 모든 분가를 본가로 소집하고 무인들이 빠져나가자 도적 떼와 사파의 무인들이 득세하기 시작했다.

대낮에 강도 살인이 일어났으나 그동안 당가로 인해 치안 병력을 모조리 국경으로 배치한 터라 관에서는 수습할 여력이 되지 않았다.

사천성주가 직접 나서서 당가를 설득했지만 병환을 이유로 문을 걸어 버린 당구독은 묵묵부답이었다.

시간이 지속될수록 이 모든 것이 진가의 책임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 * *

 

“아버님 소청입니다.”

“들어오너라.”

가주전에 앉은 진가신의 얼굴엔 고심하는 표정이 그대로 떠올라 있었다.

“오금쇄라는 게 대단한 모양입니다.”

“그래. 오랫동안 사천을 지배했던 당가가 아니더냐. 당가가 곧 사천이라는 말은 그저 나온 것이 아니니…….”

소청은 희미하게 웃으며 진가신을 바라보았다.

“당 가주께서 저를 부르시는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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